소설리스트

관종은 오늘도 죽습니다 (95)화 (95/185)

23. 돌아온 사람과 돌아가는 시간

#95

“누니임…! 정말, 정말 누님이 맞으세요? 흐읍, 흐아앙…!”

이젠 내 머리 하나만큼 더 훌쩍 커버린 미하일이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울음은 곧 일파만파 퍼져나가, 항상 쎈 척하기 바쁘던 노아조차 왈칵 눈물을 터뜨리게 했다.

“너, 너, 너 진짜…!”

“울지 마, 오빠. 못생겼어.”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의외였던 건,

“메이블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제일 무덤덤할 줄 알았던 다니엘이 누구보다도 먼저 내게 달려들었단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슈트레커 삼형제는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몸을 날렸다. 덩치 큰 남정네들이 달라 들어 저마다 찐한 포옹을 선사했다.

셋 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라서, 나는 거대한 급류에 휩쓸린 것 마냥 이리저리 흔들렸다.

“으악, 오빠들! 미하일! 진정 좀… 아빠! 좀 말려 봐요!”

숨막혀하는 내 외침에 아빠가 팔을 뻗었다.

그러나 이 틈바구니 속에서 날 구해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삼형제보다도 진심으로 날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품과, 그리운 집의 냄새가 동시에 끼쳐들었다.

“아이참, 다들 자꾸 이러면… 나도… 눈물이… 크응, 나잖아요….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애정공세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기쁘게 웃었다.

울다가, 웃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은 달고, 슬플 때 흐르는 눈물은 달다고 그랬던가.

제국에 처음 도착해 홀로 밤을 지새웠던 날. 그날 흘린 눈물은 바닷물마냥 서럽고 짜기 그지없었지만, 지금 절로 흐르는 눈물은 달았다.

그리움에 사무쳤던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다.

나를 있는 힘을 다해 껴안고 있었다.

나는 참고, 참고, 또 참은 끝에.

비로소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진심을 토해냈다.

“저도 너무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요….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마침내, 돌아왔다. 집으로.

* * *

격양됐던 공기가 진정됐을 즈음엔 더 이상 짜낼 눈물이 없을 만큼 눈이 퉁퉁 부은 때였다.

나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사람들이 연신 딸기코를 훌쩍였다.

그 깔끔하고 고고하던 다니엘까지 이따금 훌쩍일 정도였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뭐, 말 안 해도 뻔하겠지.

아빠와 삼형제는 나를 밀가루 반죽마냥 몇 번이고 조물락댔다.

그렇게 한참을 만져본 후에야 내가 완전히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현실로 자각했다.

꿈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자 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실토했다.

신수들을 만난 것부터 시작해 제국에서 어떤 위협을 가했으며, 왜 제국에 가야만 했었는지 까지.

내 능력은 교묘하게 숨긴 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얘기했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모두를 속여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같은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끔찍했던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나는 해냈고, 성공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상처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덮을 순 없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씹다가 애써 말을 이었다.

“모두에게 상처 주는 짓이었단 걸 알아요. 그러니, 절 마음껏 원망해도 돼요.”

날 아꼈던 만큼 원망스러움 역시 컸으리라.

기쁨의 눈물 뒤에는 따끔한 회초리 시간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미하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붕어 입술 마냥 부은 눈은 여전히 닭똥 같은 눈물을 찍어내는 중이었다.

“누님. 정말 너무하셨습니다. 어떻게 말 한 마디 없이 그러실 수 있습니까. 저희가 그동안 얼마나, 얼마나……. 누님을 차마 보낼 수 없어 괴로웠는데요.”

“그래.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줄 수 있는 거였잖아.”

노아도 코를 훌쩍이며 미하일을 거들었다. 나는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눈을 굴렸다.

물론 지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단 걸 알지만, 나름 암호를 남겨놨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저… 근데 정말 몰랐어요? 제가 표시 남겨두고 갔잖아요.”

“무슨 표시…?”

알아채기 쉬운 편은 아니어도 대충 뜻은 짐작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도돌이표 그려놓은 카드 남겨놨잖아요. 다시 돌아온다고.”

“……??”

하나같이 갈피조차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다 미하일이 무언가 떠오른 게 있는지 아, 하고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누님 책상엔 하도 난잡한 것들이 많아서, 그저 그런 낙서들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데 그것이 암호였군요…….”

미하일의 고개가 침울하게 떨궈졌다. 나는 거하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되었다.

만약 기네스북에 황당한 이유로 가족들을 슬프게 하기 종목이 있다면, 단연코 1등은 나일 것이다.

‘책상 더럽게 써서 정말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민망함에 술렁이는 내게 미하일은 그치지 않고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자책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영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 아냐. 미하일. 내 잘못이지. 책상을 항상 더럽게 썼던… 내 잘못이지.”

하나부터 백까지 거지같았던 제국이 내게 준 유일한 교훈 하나.

‘평소에 정리정돈을 바르게 하자.’

나는 흡사 예절교육 선생님에게 혼나는 듯한 심정으로 과거의 나를 후드리 챱챱 때려눕혀주었다.

그렇게 사소한 담소를 나누며 분위기가 한결 편하게 풀어지자, 나는 조심스럽게 다른 화제의 서두를 꺼냈다.

내 환향을 알려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나저나, 혹시 던켈하이트에서는 연락 온 거 없었어요?”

내가 암흑가의 수장이라는 것을 밝힌 후로는 더 이상 이에 관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제국으로 떠나기 전까진 클라인을 비롯한 간부진이 종종 은밀하게 저택을 드나들기도 했다.

애초에 다니엘과 켈른은 오랜 친우이기도 했고, 슈트레커 가는 그들의 방문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아까 얘기를 듣자하니 나를 찾는 수색대를 돌릴 때도 같이 팀을 꾸리는 등 협조를 했다던데.

나는 혹여라도 그곳의 사정을 아는 것이 있으면 들을 요량으로 답을 기다렸다.

“던켈하이트라면…….”

예상대로 다니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저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켈른이 그간 착실하게 소식통 역할을 해준 모양인지 그는 퍽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이윽고 암흑가의 사정 파악이 끝나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뛰어올라가 스크롤을 무더기로 챙긴 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우당탕거리는 소란에 가족들은 저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 지금… 무얼하는 게냐?”

그들은 죄다 일어나 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스크롤을 찢음과 동시에 짤막한 인사말을 남겼다.

“저 잠시만 교통정리 좀 하고 올게요.”

* * *

던켈하이트의 광장은 한가할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곳곳에서 무리지은 이들이 저마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참습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습니다!”

“어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아니면 강제로라도 수장을 정하겠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붙잡고 뭐합니까!”

그들이 광포한 기세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던켈하이트의 간부진들이었다.

개중에서도 공석인 수장 자리를 채우길 거부하고 있는 자들.

‘아가씨, 어쩌면 좋을까요……’

클라인은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떠올리며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착잡한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수장을 세우길 미룬 게 어느덧 3년이었다.

단상 위에 선 셀턴과 잭이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젠 한계였다.

뒤에서 상황을 보던 재키는 막 단상 위로 올라가려는 슈타커를 붙잡고 슬며시 귀띔했다.

“아무리 공작님께서 나서셔도 더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다들 충분히 참을 만큼 참았다는 분위기이고요. 괜한 화를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았다.”

슈타커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짓씹으며 돌아섰다.

옛적 메이블린을 수장으로 공표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은 모두가 납득 가능한 이유 없이 공석을 질질 끌고 온 상태였다.

애초에 암흑가는 여타 조직들과 성격부터 달랐다. 소유보다는 관리의 개념으로 공작가에 소속된 조직에 가까웠다.

에스카로트가 건 목줄은 암흑가 던켈하이트라는 전체의 거대한 틀뿐.

그 안에 속한 개개인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 권리까지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길드와 길드원, 간부진은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바뀌곤 했다.

그 권력구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내버려 두는 것이 원칙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 예의의 선 차원에서 슈타커 앞에 고개를 숙였다지만, 계속 짓눌렀다간 언제고 반발해 뒤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리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먼저 나서서 선동을 이끌었다.

“진정으로 우릴 위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우리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수장 하나 정할 마음 따위 없는 당신들 눈치를 언제까지 봐야 합니까!”

“말조심하십시오, 펜트런 길드장. 어떻게든 수장 자리를 꿰차 던켈하이트를 입맛대로 주무르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보다 못한 클라인이 묵직하게 경고하며 나섰다.

단상을 사이에 두고 잔뜩 날선 기운들이 허공에서 부닥쳤다.

까딱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였다간 죄다 물어뜯을 생각밖에 없는 짐승들의 거친 숨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타다닷.

날선 분위기를 가르고 여러 개의 가벼운 발소리가 클라인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클라인이 보스로 있는 제르덴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지한 길드원들은 단상을 에워싸며 늘어졌다.

그를 본 펜트런 길드장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결국 이렇게 나오시겠다.”

몇 초간 이어진 적막 속에서, 그는 삐딱하게 말을 내뱉었다.

“사실 저희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오진 않았습니다. 그저… 이제 물갈이를 한 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죽은 사람에게 미련 두는 나약한 사람을 보스로 모실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펜트런 길드장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검은 두 눈이 광포한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끌어내려!”

“이야아압!”

그가 이끄는 무리가 성난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클라인과 셀턴을 비롯한 얼마 안 되는 간부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적으로 상당히 불리한 상태라, 웬만한 희생은 각오해야만 했다.

단단히 벼르고 온 것인지 목전까지 쇄도하는 날들이 시퍼렇게 빛났다.

“보스! 이러다간 다 죽겠어요!”

재키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지만 산사태처럼 밀려오는 기합에 먹혀들었다.

수하들을 지키기 위해 클라인이 재빠르게 몸을 놀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제길…!”

상대는 적어도 길드 다섯, 이쪽은 고작 하나였다.

이대로면 곧 모든 세력이 먹힐 것이었다.

바쁘게 암기를 피하며 타결책을 쥐어짜내던 찰나.

휘잉-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땀으로 젖은 그의 이마를 쓸고 지나갔다.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 드는 냄새였다.

‘왜 하필 이 순간에도 주군이 떠오르는 건지.’

하지만 이젠 다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던 이들은 머지않아 바닥으로 처박힐 것이고, 어쩌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자신이 먼저 선처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낙담하며 몰아치는 현실에 무릎 꿇으려던 때.

휘이익-!

산들거리던 바람이 돌연 미친 듯이 사납게 불어 닥쳤다.

“으윽…! 갑자기 뭐야!”

거침없이 내달리던 반란군들 전원이 뒤로 밀릴 만큼 세찬 광풍이었다.

그 거센 기류를 뚫고 무언가가 뇌전처럼 땅에 직격했다.

쿠웅!

흙먼지가 뿌옇게 오르고, 서로를 찍어 누르기 바쁘던 두 세력이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마침내 시야를 덮은 먼지가 점차 걷어지자, 그 사이로 작은 신형이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승전보처럼 푸르게 나부끼는 머리칼, 승리의 여신처럼 위풍당당한 자태.

부서진 잔해를 밟고 선 여자에게선 압도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더불어 자신만만하게 올라간 입꼬리.

“다시 말해봐.”

그를 비집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누가, 죽었다고?”

아, 클라인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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