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종은 오늘도 죽습니다 (83)화 (83/185)

#83

암흑가 간부들의 회의실 앞은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여느 때와 다르게 소란스러웠다.

한 여자와 두 남녀가 대치해 퍽 날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또 그 소리 하러 오신 거면, 돌아가세요.”

“누군 이러고 싶어서 온 줄 알아? 비켜.”

셀턴은 제 앞을 막고선 잭을 밀어냈다. 그러자 이번엔 재키가 빽 소리를 지르며 양 팔을 벌리고 뛰어들었다.

“주군 아직 안 죽었다고요!”

“죽었어. 이젠 인정할 때도 됐잖아.”

“안 죽었어요!”

“그만하라고. 안 죽었는데 왜 안 나타나? 아, 그래. 살았는데도 모습을 안 보인다는 건 우릴 버렸단 뜻이네! 멋대로 품고선 멋대로 버렸어!”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주군은, 주군은…!”

“안 죽었다고요!”

잭과 재키가 동시에 악을 썼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꿈인 것처럼, 그 꿈에서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두 얼굴을 보며, 셀턴은 헛헛한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일 년.”

아득바득 대들던 잭과 재키가 한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일 년이야, 얘들아.”

단호하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목소리가 서글프게 떨어졌다.

나지막하게 내뱉어진, 어떤 이들의 시간.

그녀가 없는, 빈자리를 바라만 봐야했던 시간.

그 시간을 마주한 쌍둥이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무려 일 년이나 지났다고.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긴 해?”

날카롭게 쏘는 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매정하게 굴긴 했지만, 사실 그녀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속에도 없는 말이 멋대로 튀어나오는 건, 믿었던 만큼 배신당한 기분에 속절없이 빠져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확신시켜야 배신감이 조금은 덜해지니까.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비켜.”

셀턴은 기어코 쌍둥이를 밀어냈다. 금전까지 빳빳하게 맞버티던 몸체가 부질없이 밀려났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셀턴이 들어가려다 말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다고.”

여린 풀잎 같은 목소리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마냥 넋 놓고 있기엔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입술을 짓씹으며 셀턴은 문고리를 돌렸다. 어두운 방 안에 오도카니 있는 클라인과 슈타커가 곧장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다가간 셀턴이 고개를 숙였다.

“보스. 길드장들의 원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수장을, 하다못해 후계라도 정해야합니다. 이대로 계속 공석으로 둘 순 없습니다.”

“내가 제재를 가하겠다.”

“그래도 힘들 겁니다. 공작님께서 나서신 것도 벌써 수차례이지 않습니까.”

던켈하이트의 수장 자리는 1년이 지나도록 공석이었다.

전 수장, 메이블린 슈트레커가 죽고 난 후.

새로운 수장을 뽑는 것을 간부 보스인 클라인이 내내 미뤄왔기 때문이었다.

그가 길드원들과 간부들의 독촉에 시달릴 때마다 매번 슈타커가 나서서 원성을 막아주었지만, 이젠 그조차도 한계였다.

수장 자리를 노리는 들개들이 발톱을 드러내고 호시탐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간 참다못한 이들이 선동해 반기를 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클라인은 쉽사리 새로운 수장을 지명하겠노라고 답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 메이블린이 아닌 다른 이가 앉는다면, 그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봐.

이젠 정말로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될까봐.

슈타커와 클라인은 그것이 두려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클라인이 이마를 짚던 손을 떼며 말했다.

애절하기 짝이 없는 음성에, 셀턴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보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듭니다.”

* * *

똑똑.

“…….”

늘 그랬듯, 안에선 어떠한 인기척도 돌아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노아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미하일. 아카데미에서 안내문이 왔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노아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미하일 앞에 편지를 내려놓았다.

아카데미 인장이 찍힌 종이는 붉은 글씨로 시작했다. 이 이상 출석을 거부하면 퇴학 처리된다는 일종의 경고장이었다.

“내일부터 다시 나가, 미하일.”

“…….”

“강제로라도 보낼 테니까 나가. 사정을 봐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안 돼.”

“…싫습니다.”

“미하일!”

노아가 성을 냈으나 미하일은 노아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그러는 형님께서도 기사단에서 퇴출될 위기 아닙니까.”

반박하려던 노아가 몸을 굳혔다. 미하일의 말마따나, 노아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훈련에 제대로 참석하지도 않았고, 설령 나온 날에도 넋을 빼놓고 검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다음 기사단장은 노아 슈트레커가 따 놓은 당상이라던 항설도 쏙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의 근무 이행 성실도는 언제 퇴출되어도 이상할 것 없을 만큼 바닥을 치는 중이었다.

삼형제 중 유일하게 일상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자는 오직 다니엘뿐이었다.

마침 지나가던 다니엘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다 못해 나섰다.

“둘 다 그만 궁상떨고 각자 할 일 해.”

단조롭다 못해 덤덤한 어조. 미하일의 이마에 핏줄이 으득 돋았다.

“형님께선 감정도 없으십니까? 어떻게 혼자 그렇게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 겁니까? 누님께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미하일이 다니엘에게 이리 대든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의, 그러니까 메이블린을 잃기 이전의 다니엘이라면 부드럽게 그를 다독이며 유연히 대처했을 것이다. 혹은 점잖게 타이르거나.

그러나 지금은 다니엘도 지지 않고 핏대를 세웠다.

“그래, 미안해. 미치도록 미안해! 그래서 멀쩡하게 일하는 거다. 더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게 어떻게…!”

“메이라면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보다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할 테니까.”

“…….”

말문이 막힌 미하일은 울분이 찬 얼굴로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막 다시 반문하려던 찰나. 그의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형제들의 소란을 듣고 다가온 윌리엄이 세 아들을 다독였다.

“다니엘 말이 맞다. 그러니 볼썽사나운 꼴은 그만 보이고 둘 다 이만 복귀해라.”

“아버지…!”

“못난 아비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부디 그렇게 해다오.”

그리 말하며 마른세수를 하는 손이 퍼석했다. 윌리엄의 거뭇한 눈가가 더 깊어졌다.

아버지의 처연한 낯을 본 미하일과 노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저하. 오후엔 대신들과의 회담이 잡혀있습니다. 이동하셔야 합니다.”

“…….”

“저하?”

“…아, 그래. 어서 가지.”

켈른이 칼리안의 시야에 뛰어들어서야 그는 퍼뜩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켈른은 다시 나서야 했다.

“저하. 회담장은 오른쪽입니다.”

“…요즘 정신이 없군.”

“그야 정신없이 일 하시니까요. 사람의 몸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닙니다, 저하. 잠은 제대로 주무시긴 하시는 겁니까?”

켈른의 타박에도 칼리안은 말없이 쓰게 웃기만 했다.

분명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뒤틀린 미소.

‘하, 내가 괜한 걸 물었지.’

결국 켈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회담은 취소하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한 시간만이라도 주무십시오. 아니면 대신들에게 저하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알릴 것입니다.”

“그러지 말게. 할 일이라도 있어야 생각이 덜 날 것 아닌가. 게다가, 날 따라 무리한 일정을 억지로 소화해내고 있는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자네도 나와 마찬가지잖나.”

“…….”

이번엔 켈른이 벙어리가 되었다. 그 역시 번잡한 머릿속을 지우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며 일하는 중이었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정곡을 찔려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칼리안은 푹 꺼진 눈으로 마저 걸음을 옮겼다.

“그럼 회담은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멈췄던 발걸음 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림자처럼 서있던 켈른은 서둘러 그의 뒤를 좇았다.

애써 내딛는 발을 누군가 자꾸만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실.

메이블린은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뜬금없이 나타나 헤실헤실 웃거나, 실없는 농을 던지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스럽게 뛰어올 것만 같은데.

열흘이 지나도, 열 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녀와 함께한 기억과 시간만이 그녀를 곱씹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벗어나래야 벗어날 수 없고, 인정하래야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녀를 알던 모든 이들은, 그 끔찍한 현실에 갇혀 살고 있었다.

* * *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이제 내가 볼 테니까 가도 좋아.”

다음 교대자인 선배 신관이 어서 들어가라며 손을 휘저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그에게서 멀어졌다.

초새벽의 황궁은 굉장히 썰렁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복도엔 내 그림자만 어른거렸다.

이젠 익숙해진 실비아의 그림자가.

오늘로 130번째 순찰을 마친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서 지도를 펼쳐 보았다.

‘앞으로 그려야 할 게…….’

달팽이만도 못했던 시간은 어느새 화살이 되어 흘렀다.

제국에 온 지도 벌써 두 해가 지났고, 세 번째 해가 코앞이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텅텅 비어있었던 지도는, 드디어 마지막 출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듯 두 팔을 하늘로 쭉 뻗었다.

“하, 이제 이 짓도 얼마 안 남았네. 나가는 길만 완성하면 끝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