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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은 오늘도 죽습니다 (65)화 (65/185)

#65

파티는 생각보다 멀쩡하게 진행됐다.

마탑에선 정말 파혼하면 축하파티를 여는 관습이라도 있는 건지, 마법사들은 저마다 내게 축하의 언사를 쏟아내며 축배를 들었다.

처음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아 조금 어색하긴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유흥을 즐길 줄 아는 양반이라 얼마 가지 않아 흥겨운 분위기에 쉽게 녹아들었다.

나는 샴페인 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홀로 앉아서 구경하고 있는 루치펠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후후, 이 누나가 연애 상담 좀 해주마.’

옆의 의자를 빼고 앉자 줄곧 앞에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내게로 이동했다.

나는 손을 뻗어 루치펠의 볼을 쿡 찔렀다.

정확히는 도장처럼 찍혀있는 입술자국을.

“뭐, 애인? 아니면 아직 탐색하는 단계?”

나는 다 안다는 듯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런 내가 그의 눈에도 퍽 음흉해 보였는지 다소 신경질적인 어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거 아니야.”

“뭐… 그래. 이런 질문은 너무 식상하니까.”

고작 이 정도 반응에 굴한다면 메이블린이 아니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새로운 질문을 꺼냈다.

“그럼 관심 가는 사람 말고,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사람은 있어?”

“…….”

사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뭐, 애초에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그는 속마음을 내비치는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없으면 말…….”

“응, 있어.”

그런데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루치펠은 웬일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엔 봄 햇살처럼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어조였다.

“은근, 아니 많이 신경 쓰여. 그래서 그 사람 눈길에 내가 닿아있으면 좋겠어. 좀처럼 가만히 있지도 않아서 사고치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해.”

“어떤 사람인데 그래?”

누군진 몰라도 정말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루치펠은 살짝 들뜬 목소리로 그 사람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처음엔 그냥 좀 신기해서 봤는데 갈수록 애가 재밌더라고.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어쩔 땐… 빛나는 것 같아. 별도 아닌데, 반짝거려. 사람이.”

그리 말하는 루치펠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리저리 워낙 쏘다녀서 불안하긴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이 웃을 수 있는 길이니까 나는 그냥 지켜보려고. 그 사람으로서 행복할 수 있도록.”

“너… 은근 로맨티스트였구나.”

진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성난 황소처럼 콧김이 내뿜어졌다.

‘이야, 이 정도면 각 섰지. 말하는 게 이디스 말고 누가 있어? 오늘부터 주식 다 때려 붓는다.’

요 놈 이거, 이제 보니 입술 자국도 이디스 질투 유발하려고 그랬나 싶었다.

짜아식, 은근 귀엽다니까.

그러나 흥분의 도가니탕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루치펠은 답지 않게 다소 불안한 기색이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간혹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을 때만 붙잡을 건데, 날 뿌리칠까 봐… 무서워.”

머뭇거리는 말끝이 살짝 떨렸다.

그 파동을 타고 흘러나온 감정은, 진심이었다.

세상에, 제국 황제도 어디 촌구석 이장 취급하던 애가 무섭다는 말을 다 하다니.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답지 않게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에 나는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부러 힘을 주어 말했다.

“아냐. 안 그럴 거야.”

“정말 그럴까?”

“응.”

내가 팍팍 밀어줄 거니까! 나만 믿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잘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나는 앞으로 둘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겠노라 굳게 다짐하며 샴페인을 들이켰다.

아니, 들이키려고 했다. 순식간에 빈손이 되지만 않았다면.

내 샴페인 잔을 뺏어든 루치펠이 단어 하나하나 지그시 누르듯 말했다.

“졸부님. 앞으로 술 많이 마시지 마.”

“왜, 혹시 내 몸에서 술 냄새나? 그렇게 독해? 어제 좀 많이 마시긴 했어도 아침에 깨끗하게 씻었는데.”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는 날 보며 루치펠이 피식 웃었다.

“아니, 졸부님은 왠지 술 취하면 입버릇이 나쁠 것 같아서.”

“괜찮아. 내가 막 욕하고 그런 주사는 안 부리는 스타일이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아무한테나 뽀뽀하고 매달린다던가 하는 것보다는.”

루치펠의 눈썹이 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상하게 ‘뽀뽀’에 유독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들리는 건 착각이겠지.

주변을 잘 허락하지 않는 그답게 스킨십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서슴없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길래 오케이인 줄 알았는데. 앞으론 좀 조심해야겠네.’

루치펠이 먼저 다가온 적도 만만치 않게 많았던 것 같지만, 그건 내가 편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니 나쁠 건 없었다.

나는 걱정은 붙들어 매라는 표시로 손을 휘휘 저었다.

“아, 걱정 마셔. 네 앞에서는 주사 안 부릴 테니까. 아니면 뭐, 욕 들으면 흥분하는 그런 거시기한 취향인 거야, 루시?”

“우리 졸부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면 못 들어줄 건 없지.”

루치펠이 눈을 곱게 휘며 짓궂은 미소를 걸쳤다.

아니, 이게 또 훅 들어오네. 예고 좀 하라고.

‘빨리 이디스랑 맺어주던가 해야지, 원. 심장에 여간 해로워서 살 수가 있나.’

나는 한 쪽 눈을 찡긋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 즐거웠어, 루시. 그리고 나만 믿어.”

루치펠과의 연애 상담을 끝낸 나는 당연한 수순으로 이디스를 찾아갔다.

분위기상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해선 솔직한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런저런 얘기로 서두를 달구다가, 슬쩍 루치펠이 어떠냐고 물었다.

야심찬 첫 번째 스트라이크가 날아갔다. 잔에 술을 따르던 이디스의 손이 멈췄다.

“네…? 탑주님이요…?”

나는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아니, 뭐 꼭 루치펠을 말하는 거라기보다는… 그런 스타일 어떠냐는 거지. 솔직히 루시 엄청 잘생겼잖아. 인기도 많고. 먼 나라 공주님도 루시 얼굴 보러 마탑 오기도 한다며.”

“…어…… 네?”

“그러니까, 루치펠 어때? 이성으로.”

내 물음에 이디스는 잠시 잘못 들은 것 마냥 귀를 후비다가, 내가 다시 한 번 더 또박또박 질문을 던지자 세상 역겹단 표정으로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리고,

“우웨엑.”

토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무튼 토했다.

토하고 난 다음에는 입을 헹구면서 귀도 씻는 모습을 나는 그 옆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정말 미안할 정도로 박박 씻었다.

완전히 삼진 아웃이었다. 이디스는 공을 칠 생각도 하지 않고 퇴장해버렸다.

나는 조용히 루치펠을 향해 파이팅 포즈를 취해주었다.

‘힘내라, 루시…….’

루치펠의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멀어 보여 새삼 그가 안쓰러워졌다.

* * *

똑똑.

문을 두드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안으로 곧장 텔레포트했다.

“짜잔! 오늘은 블루베리 카나페를 가져왔어요! 저번보다 훨씬 잘 만든 것 같은데. 어서 먹어봐요.”

“…굳이 안 만들어 와도 된다, 메이블린.”

실버는 내 손에 들린 요리를 보자마자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저번에 먹었던 게 그렇게 끔찍했나? 그래도 이번 건 맛 나름 괜찮은데.

나는 식탁에 접시를 올려놓으며 실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새 집에서 지내게 된 소감은?”

“엄청 좋아요! 누나가 최고예요! 막, 막 사람들도 돌아다니고, 햇빛도 더 반짝반짝하고, 멋있는 것도 많아요!”

내 목소리를 듣고 쪼르르 달려온 콜린이 생기로 가득 찬 눈을 빛내며 말했다.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양 팔을 휘저으며 소리치는 것이 얼마나 신났는지 알 수 있었다.

매번 산속으로 가기도 좀 성가시고, 무엇보다 용용이와 실버를 계속 숨어살게 하기가 싫어 슈트레커 저 근처에 저택을 한 채 지어줬다.

처음엔 적당한 곳에 봐둔 걸 사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부가장치를 많이 붙여야 해서 아예 새로 지어버렸다.

인간의 근력을 넘어선 신수들이 자유롭게 다녀도 끄떡없게끔, 마법을 걸어주는 등의 부가장치들.

처음엔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거부하던 용용이도 막상 집을 보더니 기뻐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덕분에 나도 좀 더 수월하게 방문하는 중이었다. 아주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이보다 더 완벽한 덕질 라이프가 있을까.’

때마침 콜린의 옷을 사러 나갔던 용용이가 돌아왔다.

콜린은 성장기 아이답게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어서 거의 주기적으로 새 옷이 필요했다.

“이번엔 좀 넉넉하게 사왔… 또 왔냐.”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슬며시 미간을 좁혔다.

“너… 우리랑 이렇게 가깝게 지내도 돼?”

“안 될 건 또 뭐예요. 전 너무 좋은데요.”

용용이의 우려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상스럽게 넘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실버가 나섰다.

“우리는 저주받았다. 가까이 지내서 좋을 것 없어.”

“저는 미신 안 믿어요.”

“미신이 아니다. 믿어야 하는 사실이야.”

이 양반들이, 쌍으로 오늘따라 왜 이래.

설령 죽어 달래도 죽어줄 수 있었지만-어차피 다시 살아나니까, 뭐- 더 이상 만나러 오지 말라는 것만큼은 들어줄 수 없었다.

“허튼 소리 할 거면 이거나 먹어요. 이번엔 진짜 성공했다니까요?”

나는 실버와 용용이의 손에 카나페를 하나씩 쥐여 주고서 새 옷을 콜린에게 이것저것 대봤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무슨 생각 중인지 모를 얼굴로 카나페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껏 우리와 가깝게 지냈던 인간들은 모두 죽었어. 알고 지낸지 50년 넘은 인간부터, 며칠도 채 안 된 인간들까지.”

“마지막으로 같이 살았던 가족은, 나와 카렌을 제외한 모든 이가 역병으로 죽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머물고 있던 집만, 노인을 비롯해서 세 살배기 아이까지 전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주라니요. 무슨…….”

다들 지금 내 음식 먹기 싫어서 말 돌리는 거지? 그치? 거기 용용씨, 입에 넣다 말고 내려놓는 거 다 봤어, 어?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다들 너무 심각한 얼굴이었다.

“너도 엘리아를 알지 않아? 그녀는 주술사였어. 저주는 존재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보니 나도 조금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책 내용을 상기시켰다.

‘소설에서 엘리아가 악인을 처벌하기 위해 저주를 걸었던 장면이 몇 번 있긴 했었지.’

그녀가 실버를 처음 만났을 때도 실버를 잡으려던 밀렵꾼들에게 저주를 내렸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저주는 정말로 효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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