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관종은 오늘도 죽습니다 (2)화 (2/185)

#2

물론 나라고 관종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절대 아니다.

나도 내가 지금 하는 짓들이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나는 평화와 적막을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또 평범한, 어쩌면 조금은 소심하기까지 한 소시민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관종이 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었다.

나는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잠시 하던 짓을 멈추고 물을 벌컥 들이켰다.

빌어먹을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현재 당신의 관심 수치는 65%입니다.]

[남은 시간 내 100%를 달성하지 못할 시, 당신은 죽습니다.]

[남은 시간: 2일 11시간 25분 30초]

[당신의 칭호는 ‘관심받지 못하는 관종’입니다.]

[관종력 : ★]

“왜 나만, 왜 나만!!!”

나는 마시고 있던 물병을 냅다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마저도 호기롭게 굴러가다 말고 뭐에 부딪혔는지 다시 튕겨와, 악 소리를 지르며 욱신거리는 발목을 붙잡아야만 했다.

물론 내가 큰소리를 냈다고 해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몇 주 전이라면 서러움에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열만 미치도록 받을 뿐이었다.

네, 제가 빙의를 했긴 했는데요.

고작 10화밖에 연재가 안 된 소설이더라고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지 귀족 영애로 눈을 뜨긴 떴는데요.

관종이래요.

아니, 관종이 못 되면 죽는다네요.

그 흔한 SNS도 안 키우던 내가 관종이라니! 이게 말이야 똥이야.

‘말똥 같은 세상아, 똥을 아주 혁신적으로 싸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유튜버라도 돼 볼걸!’

“하아…….”

결국 오늘도 역시 꽝이었다. 나는 거친 숨만 몰아쉬며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관심 수치: 69%

남은 시간: 2일 5시간 6분 22초]

아, 혈압. 6시간 동안 별 지랄을 다 떨어가며 온갖 생쑈는 다했는데 어떻게 고작 4퍼센트밖에 안 오를 수가 있어?

나는 뒷목을 잡으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적당히 기댈 만한 것을 찾았다.

현재 내겐 내가 쓰러진다고 해서 갑자기 나타나 날 붙잡아줄 왕자님도,

대체 어디가 아픈 거냐며 별 주접은 다 떨어줄 공작님도,

당장 집으로 가자며 순간이동 시켜줄 마탑주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뛰어난 비트박스 실력과 그것을 알아봐 주지 않는 관중들뿐이었다.

그리고 내 손아귀에서 점점 처참하게 우그러뜨려지는 물병도…. 음, 다음엔 차력쇼나 해 볼까.

그렇게 낙심하고 돌아서려던 바로 그 때!

믿을 수 없게도 왕국의 핫가이 에스카로트 공작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게다가 정무로 공사가 다망하실 우리 왕세자님께서도 바람처럼 나타나 날 부축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마법으로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채운 마탑주님께서도 내 관심을 차지하기 위한 쟁쟁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는 물론 내 바람이었다.

상상은 왜 또 쓸데없이 구체적인 건지.

나는 차오르는 상실감을 애써 삼키며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날 위로해주는 이가 있긴 했다. 내가 먹다 남은 빵쪼가리를 얻어먹기 위해 매일 찾아와주는 유일한 관객.

‘맛있냐…. 많이 먹어라…….’

나는 발밑에서 알짱대는 비둘기를 노려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서 빵부스러기만 떨어졌다.

* * *

“다녀왔습니다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저택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거의 고함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울렸다.

귀족 아가씨로서 체통이 없는 짓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발광하지 않으면 이 집 식구들은 정말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내가 빙의한 이 소녀가 원래 그런 존재인지, 아니면 이 개똥같은 시스템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들 날 본체만체 했다.

그래서 처음 같이 저녁 식사를 했을 때 나는 내가 사생아거나, 억지로 떠맡게 된 먼 친척이거나, 불쌍해서 하룻밤 묵고 가게 해주는 손님 포지션인 줄로만 알았다.

‘근데 진짜 가족이었지.’

슈트레커 가의 불어터진 찬밥보다 못한 신세인 이 몸의 이름은 메이블린 슈트레커.

특출나게 잘 살지도, 그렇다고 궁상 떨 만큼 가난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자작가문의 영애였다.

자작 부인께서는 이미 이 몸이 어렸을 적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그녀의 생전 초상화를 확인했다.

푸른 남색 머리에 호박색 금안을 가진 여자.

자식들 중 유일하게 내가 부인의 머리색과 눈동자색을 전부 물려받긴 했다. 그러나 조금 비슷하기만 할 뿐, 나와 쏙 빼닮은 얼굴은 아니었다.

처음엔 혹 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제 부인과 닮아, 그 얼굴을 보기가 괴로워 기피하는 줄 알았다.

‘그런 설정이 아닐까 해서 초상화까지 구태여 찾아본 것인데.’

자작 부인을 몹시 그리워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잊지도 않은 딱 보통 사람 수준의 감상을 보이는 자작을 보면 섣불리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보통 차원이동이나 빙의를 한다고 하면 아버지 되는 작자는 모 아니면 도였다.

허구한 날 애를 갈구고 학대하거나 팔아먹을 생각밖에 없는 천하의 개새끼.

혹은, 사랑스러운 자식 손짓 한 번에 껌벅 죽는 딸바보.

하지만 슈트레커 자작은 이도 저도 아닌, 밍숭맹숭 맹물 같은 아버지였다.

관심이 없는 듯 보이면서도 필요한 것을 말하면 챙겨주긴 하는.

식사 자리에서 대화를 하진 않지만 꼬박꼬박 부르기는 하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그의 태도가 제법 좋았다. 과한 관심은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니까.

물론, 내가 관종이라는 사실만 제하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아이 러브 관심. 유어 도터 이즈 관종!

메이블린은 외동도 아니었다. 그녀의 위로는 두 명의 오빠가, 아래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올 시간이 됐는데…….

벌컥.

점잖은 오라버니들도 양반은 못 되는지 떠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보였다.

“오셨어요, 다니엘 오라버니.”

다니엘 슈트레커. 슈트레커 가의 장남으로써, 차기 가주가 될 인물이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마치 방금 우연히- 앞을 지나가다 마주친 듯한 컨셉으로. 절대절대 네놈의 답인사를 받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얼쩡거린 게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우리 총명한 오라버니께선 이를 어찌나 잘 아셨는지, 나를 떨떠름한 눈으로 한 번 쓱 훑어보고는 그냥 지나갔다.

얼음동상처럼 멀뚱히 서있는 내 뒤로 계단을 오르는 다니엘의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맵시 좋은 뒷모습을 보며 단정하게 묶은 남색 머리칼을 확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아오, 저 싹퉁바가지.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동생이 이리도 상큼 터지게 인사를 하는데 씹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서 둘째 노아도 들어왔다.

공부벌레인 다니엘과 달리, 노아는 무예 쪽에 소질이 있어 왕궁 기사단의 기사로서 활약하는 중이었다.

날도 더운데 오늘 훈련은 평소보다 조금 더 고되었던 모양이었다. 노아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굴하지 않고 환히 웃으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오늘 날이 좀 더웠지. 레모네이드라도 한 잔 타 줄까?”

노아는 내 얼굴과 손수건을 번갈아 가며 한 번씩 빤히 보다가, 이내 짤막한 대답과 함께 등을 돌렸다.

“됐어.”

심지어는 손수건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슬쩍 밀어내기까지 했다.

‘야 이놈들아, 정말 이러기냐. 누나 가슴에 피눈물 난다.’

이렇게 되면 남은 건 막내뿐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마지막 타자를 기다렸다.

손수건에 놓은 꽃자수가 수제비처럼 뭉개졌을 즈음, 오늘 하루 봐왔던 것 중 가장 경쾌하게 문이 열렸다.

“!”

미하일은 현관에 발을 내딛자마자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한 듯했다.

“누, 누님. 왜 여기 서계세요…….”

미하일이 조심스럽게 우물거렸다.

앗싸! 드디어 처음으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어! 역시 너밖에 없다, 막내야!

나는 미하일이 들어올 수 있도록 몸을 뒤로 빼며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냥, 저녁 먹으러 지나가던 중이었어. 너도 배고프지?”

“아…. 네…….”

미하일은 말끝을 흐리며 뒷목을 멋쩍게 문질렀다.

뭐지, 이 불안한 기류는?

으레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딱 들어맞는 법이었다.

말을 덧붙일 새도 없었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녀석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꼭 회식자리를 빠져나가려 무진장 애쓰는 신입사원의 표정이었다.

“그럼 전 씻으러 먼저 올라갈게요.”

“어? 지, 지금?”

“네. 좀 피곤해서요.”

“그래…. 피곤하면 씻어야지…. 하하…….”

뭔가 생산적인 대화가 좀 더 이뤄질 줄 알았건만. 미하일은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아니 잠깐만, 정말 이게 끝이야? 진짜 끝? 피니시? 엔드? 엔드게임?

나는 부들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시스템 창을 열었다.

[관심 수치: 71%

남은 시간: 2일 2시간 55분 16초]

[남은 시간 내 100%를 달성하지 못할 시, 당신은 죽습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내게는 정말이지 엔드게임인 상황이었다.

아니, 관심받아도 개복치처럼 죽어나가는 게 관종인데, 관심도 못 받는 관종은 어쩌라는 거야. 계속 죽으라는 거야 뭐야.

나는 하늘을 야멸차게 노려봤다.

‘이봐 신 양반, 듣고 있으면 좀 나와 봐.’

등장인물 복지 이래도 돼? 네가 그러고도 신 자격이 있냐고! 나 지금 1인 농성 중이라고! 너희는 뭐 민원접수 같은 것도 없냐?

“이… 이… 비트코인으로 전 재산 날릴 새끼야! 헬스장 수건도둑 새끼야! 지하철 소리 없는 가스방구 빌런 같은 새끼야아아!”

후, 시원하다.

온갖 졸렬한 욕지거리를 내뱉고서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만찬을 함께하는 홀로 향했다.

멀끔하기 그지없었던 세 아들들은 뭐가 그리도 찝찝했는지 죄다 씻으러 올라간다고 내게 통보한 연유로, 홀에는 아직 나와 자작뿐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끌어보고자 부러 우악스럽게 의자를 빼며 자작에게 인사했다.

“좋은 저녁이에요, 아버지.”

자작은 거슬리는 의자소리에도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았다.

다만 잠자코 날 바라보다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배가 고팠으면 말을 하지 그랬느냐.”

그의 시선은 내가 줄기차게 물어뜯었던 손수건에 향해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받아보는 비언어적인 관심이었다.

세상에, 이런 관심 좋습니다 좋아요. 우리 더 심도 있는 촬영을 해봅시다.

나는 보란 듯이 손수건을 더욱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아주 맛있는 칠면조 구이라도 되는 듯이.

“아닙니다, 아버지. 배고픔을 참는 법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단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 또한 있지요. 그리고…….”

나는 잘근거리던 손수건을 뱉고 자작의 짙푸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어차피 말해도 모르셨을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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