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134)화 (134/143)

134화.

13장. 너에게 가는 길

끝났다.

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코마는 소멸했고, 오랫동안 딜리언을 괴롭히던 저주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 품엔…….

두근, 두근.

맞닿은 가슴을 통해 힘차게 뛰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딜리언을 힘껏 껴안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딜리언 씨.”

“네, 리아 씨.”

“딜리언.”

“네. 저 여기 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딜리언의 이름을 불렀다.

이 기적이 믿기지 않아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까 봐.

딜리언이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런 내 감정을 읽은 걸까.

딜리언이 내 허리를 단단히 껴안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 등을 느리게 토닥였다.

따뜻하고 다정한 그 손길에 겨우 잦아든 울음이 다시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시큰거리는 목에 힘을 주며 딜리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어디 안 갈 거죠?”

“가긴 어딜 갑니까. 아직 리아 씨랑 식도 못 올렸는데.”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리아 씨가 절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두고 가겠습니까. 저 없다고 울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어디 못 가죠.”

잠깐, 듣다 보니 이상한데?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딜리언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나 울보라고 놀리는 거예요?”

“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이죠. 봐봐, 또 우는 거 같은데?”

“안 울거든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조금 찔끔하긴 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딜리언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른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리아 씨.”

“왜요.”

별안간 다가온 입술이 부루퉁한 내 입술을 훔쳤다.

꾹, 누르고 떨어지는 입술의 감각이 선명했다.

“이제 안심되죠?”

“허…….”

날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고?

거짓말.

“딜리언 씨 사심 채운 건 아니고요?”

죽다 살아나도 딜리언은 딜리언이었다.

이런 순간마저 능글맞을 줄이야.

황당해서 벌어진 입을 딜리언이 엄지로 꾹 눌렀다.

“리아 씨. 눈치가 너무 빨라졌습니다.”

아니, 이건 눈치 없는 사람도 알아차릴 정도로 노골적이라고.

“사실, 리아 씨 달래는 건 핑계고 제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내게는 똑똑히 전해졌다.

당시 딜리언이 느꼈던 감정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두려웠는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시 리아 씨를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두 번 다시 나를 보지 못할까 봐 느낀 감정이었다.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나는 품에 안겨 온 딜리언의 머리를 껴안았다.

“……살아서 다행이에요.”

서로를 껴안은 채, 둘만의 세계에 빠진 그때였다.

“크흠.”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좋을 때라는 건 알지만 주변 좀 둘러보거라.”

나단이 연신 기침을 하며 뒤를 가리켰다.

삐걱거리는 목을 간신히 돌린 나는 벌떼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입을 벌렸다.

‘왜, 왜 다 쳐다봐, 얼굴은 왜 저러고?’

그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을 적시고, 입을 틀어막았다.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제 얼굴을 숨기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얼굴 사이로 유일하게 다른 두 얼굴이 있었으니.

“내가 참자, 좋은 일이잖아. 참아…….”

눈을 가리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슈만과,

“아름답군.”

진지한 얼굴로 찬사를 보내는 카시스였다.

‘마, 망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을……!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덮쳤다.

허둥지둥 딜리언을 밀어낸 나는 붉어진 얼굴로 버벅거렸다.

“큼, 다, 다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우린 괜찮은데, 리아 양에게 떠밀린 공작이 아파 보이는군.”

딜리언? 딜리언이 왜…….

고개를 돌린 나는 깜짝 놀랐다.

“딜리언 씨?”

“윽…….”

옆구리를 움켜쥔 딜리언이 신음을 흘렸다.

하얀 셔츠 사이로 피가 비쳤다.

‘아니, 죽은 사람 살려냈으면 당연히 상처도 치료해줄 것이지. 치사하게 진짜 살리기만 했어!’

속으로 원망을 터트린 나는 딜리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딜리언 씨, 괜찮아요? 제가 지금 당장…….”

하지만 내 손은 딜리언에게 닿지 못했다.

“너, 너!”

바람처럼 달려온 해리스가 딜리언을 껴안은 탓이었다.

딜리언을 향해 뻗은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 맴돌았다.

“드디어 저주가 풀렸구나!”

뒤늦게 딜리언의 저주가 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해리스는 제 일처럼 기뻐했다.

“……이거 놔라.”

“아, 아프다고 했지. 보자. 어기군.”

단번에 상처를 찾아낸 해리스가 신성력을 이용해 치료했다.

신성력과 닿으면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몸이 순순히 신성력을 받아들였다.

저주가 완벽하게 풀렸다는 증거였다.

“진짜로 되네.”

말끔히 치료된 딜리언의 옆구리를 보며 놀란 듯 중얼거리던 해리스의 얼굴에 기쁨이 떠올랐다.

“딜리언! 정말 저주가 풀렸구나!”

정작 딜리언은, 몹시 황당해 보였지만 말이다.

눈 뜨고 코를 베여도 저것보단 덜 당황하지 않을까.

“누가 멋대로 치료하래.”

딜리언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성질머리 보니까 멀쩡하네.”

“저리 꺼져.”

딜리언이 해리스를 씹어내듯 무섭게 경고를 했지만, 기쁨에 젖은 해리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들에게서 한발 뒤로 물러난 나는 둘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티격태격하긴 해도 사이가 좋단 말이야.’

딜리언에게 곧장 달려온 해리스가 너무 고마웠다.

그만큼 딜리언을 소중히 여겼다는 거니까.

그리고 덕분에 딜리언의 저주가 완전히 풀렸다는 걸 확인받은 기분이라 뛸 듯이 기뻤다.

“해리스 씨. 딜리언 씨 몸에 다른 상처가 있나 확인해주세요.”

“리아 씨…….”

“저만 믿으십시오.”

딜리언이 애타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해리스에게 그를 맡겼다.

소란의 중심에서 벗어난 나는 구석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다른 세상처럼 보일 정도로 조용하고, 고요했다.

“아이나. 단테는…….”

“아이는 괜찮아.”

아이나가 품에 안고 있던 단테를 내게 내보였다.

나는 아이나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단테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진 않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코끝에선 고른 숨이 부드럽게 흩어졌다.

맞닿은 손에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하…….”

그제야,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단테, 버텨줘서 고마워.”

“으응.”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단테가 칭얼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는 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까망이는?”

아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구나.”

결국은 그렇게 갔구나. 자신을 희생해서…….

나는 단테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그의 부드러운 뺨을 감쌌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혹시, 그곳에 있을지 모르는 존재를 향해.

“고마워. 단테를 지켜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분이야.

코마로부터 단테를 지키고, 그를 끝낼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부디, 그에게 이 마음이 전해지길.

“하하하-”

등 뒤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폐허가 된 주변을 배경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부상으로 엉망진창이었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따라 웃었다.

마침내 찾아온 평화였다.

* * *

코마와의 전투로 쑥대밭이 된 건물은 폐허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곳이 있었으니.

“여깁니다.”

슈만이 커다란 철문을 여니,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엉망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오늘 경매에 참가하려 했던 사람들이자, 슈만이 만들어낸 허상의 주인공들이었다.

“읍, 으읍!”

그중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 경매의 사회자이자 책임자였다.

사내를 질질 끌고 온 슈만이 카시스에게 그를 내밀며 싱긋 웃었다.

“황태자 전하, 선물입니다.”

카시스의 오랜 정적이었던 마누스가 죽었다고는 하나, 그의 세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니 이자를 이용해 그들을 완전히 쳐내라는 의미였다.

대규모의 암시장을 운영하던 자가 제국의 3황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완전히 무너질 테니 말이다.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었다.

“마광석 채광권, 저희에게 주십시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마탑주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카시스는 흔쾌히 허락했다.

이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물이었으니까.

그리고 제국의 질서를 무너트린 귀족들에게도 모두 책임을 물 생각이었다.

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민의 신고에 달려온 경비대는 폐허가 된 주변을 살피며 황망히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침 잘 왔군.”

“누구, 화, 황태자 전하?!”

잔뜩 기합이 들어간 경비대 대장을 향해 손을 내저은 카시스가 제 뒤를 가리켰다.

“인사는 됐다. 그보다, 저 안에 기절해 있는 자들을 모두 체포해라.”

“네! 명 받들겠습니다!”

리아와 딜리언은 뒷정리하느라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갔다.

나단을 품에 안은 세라와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는 키라가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아가씨! 전하!”

“전하-!”

“마님!”

밖으로 나오자마자 만난 사람은 리아와 딜리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샤텐 기사단이었다.

“다행이에요. 다들 무사하네요.”

리아는 활짝 웃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기사단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딜리언 씨 저주가 풀린 걸 알면 다들 기절하겠어요.”

“기절하면 버리고 갈 겁니다.”

그 무심한 대답에 웃음을 흘리던 리아는 뺨에 닿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한참 전부터 저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듯, 딜리언의 시선은 리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왜 그렇게 봐요.”

“좋아서요.”

부드럽게 휘어진 입술이 리아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안 돼요. 밖에서는 금지.”

다가오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막아낸 리아가 붉어진 얼굴로 웅얼거렸다.

“하고 싶으면 집에서 하란 말이에요.”

“집은 괜찮습니까?

“당연하죠. 우리 집이잖아요.”

“우리 집…….”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딜리언이 입을 가렸다.

우리 집.

리아와 함께 살 집.

리아와 평생을 함께 살 집.

지금껏 무의미하던 집의 존재가 처음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닙니다. 얼른 가고 싶어서요.”

“어딜? 집에요?”

“네. 우리 집이요.”

우리 집, 입 밖으로 나오는 울림이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가슴이 떨렸다.

딜리언은 떨리는 가슴을 애써 감추며 웃었다.

“돌아갑시다. 우리 집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요? 그럼 빨리 가야겠네.”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발을 맞추어 걸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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