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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120)화 (120/143)

120화.

신병, 그것은 신성력이 몸 안에서 휘몰아치며 생명을 갉아먹는 병이었다.

이 병에 걸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신관이 아니라면 이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신병……?”

역시나 처음 듣는 병인지 지젤이 멍하니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신성력이 생명을 갉아먹는 병이에요.”

“그, 그럴 리가. 단테에겐 신성력이 없어. 신성력은 선천적인 거잖아.”

“그래. 단테에게 신성력이 있었다면 딜리언이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겠지.”

테르제도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주 미약한 신성력이라 여러분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지금 연회장 안에 신성력이 가득 찼어요.”

나는 딜리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신성력이 딜리언 씨에게 분명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지젤과 싸우면서도 딜리언에게 신경을 쏟았다.

아이의 신성력이 그에게 닿지 못하도록, 내 신성력으로 딜리언을 감싸는 중이었다.

“유스틴 백작. 단테에게서 나오는 게 신성력이 맞아.”

딜리언이 신성저항력이 강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신성력에 대해선 누구보다 예민하게 구는 그가 인정했다. 그 사실에 지젤은 믿을 수 없다며 입을 뻐끔거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그들 말처럼 신성력은 대개 선천적이며, 태어나는 순간 신성력의 양이 정해진다.

그리고 신성력을 갖고 태어난 이들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신성력을 운용하고 순환시킨다.

하지만, 예외가 존재했다.

“후천적 발현자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우리 단테가 후천적 발현자라고?”

지젤이 떨리는 눈동자로 단테를 내려다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신성력을 타고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후천적 발현자들은 신성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를 확률이 높아요.”

아니, 애초에 신성력이 발현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신성력이 발현하면 열병이 찾아오는데 대부분 감기 혹은 독감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감기인 줄 알았죠?”

“의, 의원이 감기라고……. 그리고 신관들도 열병이라고만…….”

“누군진 몰라도 그 신전은 물갈이 한번 하는 게 좋겠네요.”

도대체 뭘 배웠길래 신성력이 발현한 줄도 몰랐던 거야.

“그 멍청한 신관이 단테의 신성력이 순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면 신병에 걸릴 일은 없었어요.”

단테가 발현한 건 아마도 3년 전.

차라리 그때 딜리언을 만났더라면 지금처럼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운명의 장난인지 딜리언 또한 3년간 공작성에 발길을 끊었다.

‘운이 나빴지.’

나는 색색, 숨을 몰아쉬는 단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단테를 제게 넘겨주세요. 지금 당장 치료해야 해요.”

무려 3년이다. 그간 단테의 몸속에 갇혀 있던 신성력이 아이의 속을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렸을 거다.

“이대로 두면 위험해요.”

억눌려 있던 신성력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다. 이러다 한 번에 터져버리면 단테의 여린 몸을 부수고 말 것이다.

“그럼 단테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죽어요.”

단테의 폭주로 인해 생긴 균열은 점점 벌어져 구멍이 될 테고, 그 구멍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다.

나는 허공에 벌어진 틈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휘이이잉-

틈새로 새카만 암흑이 보이고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컥!”

“단테? 단테!”

단테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아이의 몸이 부서질 것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젤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단테!”

쨍! 단테의 폭주로 인해 창문이 깨졌다.

샹들리에가 덜컹거리며 떨어질 것처럼 흔들렸다.

이상 현상에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다.

나는 순식간에 찾아온 혼란에 이를 악물었다.

‘코마는 처음부터 이걸 계산한 거겠지.’

그때처럼 다시 한번 세상에 혼돈을 가져오려고.

“지젤, 당장!”

“내 아들이 죽어……? 우리 단테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지젤에게서 단테를 빼앗은 테르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리아. 치료할 수 있느냐?”

“없었으면, 지금처럼 당당하게 나오지도 않았어요.”

나는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지젤을 무시한 채, 단테를 품에 안았다.

‘엉망이야. 고위 신관도 함부로 손을 못 대겠어.’

대신관급이 아니면, 이 폭주를 멈출 수 없다. 그만큼 단테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 약, 3황자가 줬죠?”

“…….”

“지젤, 모르겠어요?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누구인지.”

언제 단테를 발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약을 먹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약은 신성력을 짓누르고,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기조차 막아버려 단테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단테의 병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전부 약 때문이었다.

‘악랄한 자식.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꾸민 거야?’

나는 평평한 바닥에 단테를 눕힌 후 그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깨진 창문으로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

모든 게 신경을 어지럽혔다.

개중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지젤의 울음소리였다.

“내, 내 아이가 죽어. 단테가, 내 아기가…….”

“죽긴 누가 죽어요.”

정신을 놓은 지젤은 이제 자포자기 상태로 보였다.

“엄마가 자식을 포기하면 어떡해요.”

나는 지젤의 태도를 따끔하게 꼬집은 후, 단테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신성력을 극대화시키자 나비가 하나둘, 나타났다.

내 주변을 맴도는 황금빛 나비에 놀란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엉엉 울던 지젤도 숨을 멈춘 채 멍하니 나비를 바라보았다.

“내가 살려줄 테니까 그만 울고 눈물이나 닦아요.”

나비가 지젤의 뺨에 앉았다. 그 움직임에 눈을 움찔거린 지젤이 손을 뻗어 뺨을 더듬었다.

그러자 나비들이 지젤의 뺨을 문지르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비현실적인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중심엔 내가 있다.

지젤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화장이 번진 얼굴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엄마가 귀신 꼴을 하고 있으면 애가 얼마나 놀라겠어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지젤이 뺨을 문질렀다.

“단테는 금방 깨어날 테니까 정신 놓지 말고 똑바로 보고 있어요.”

그 말이 신호가 되어 내 주변을 맴돌던 나비들이 단테의 몸 위로 살포시 앉았다. 더는 신성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테를 감싸 안았다.

금이 간 몸이 완벽하게 막힌 것을 확인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난도질당한 단테의 끊어진 생명줄을 찾아 다시 엮기 시작했다.

* * *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평범한 신관이었다면 애를 먹었겠지만 리아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으으.”

거친 숨을 몰아쉬던 단테의 호흡이 잦아들고, 이내 눈꺼풀이 느리게 끔벅거렸다.

“엄마…….”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단테도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엄마를 불렀다.

“단테!”

그 부름에 지젤이 바닥을 기듯, 무릎으로 다가와 단테를 끌어안았다.

“엄마 여기 있어. 응? 이제 괜찮아?”

“으응. 엄마. 나 이제 안 아파.”

“안 아파? 정말?”

“응.”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젤은 신을 부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엄마, 울지 마.”

“응, 엄마 안 울게. 우리 단테 정말 고생했어.”

말과 달리 지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단테는 작은 손을 펼쳐 지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 눈 이제 붕어처럼 퉁퉁 부을 거야.”

입을 삐죽이는 단테의 모습에 지젤이 울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참이나 지젤의 뺨을 문지르던 단테는 지쳤는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치료는 무사히 끝냈지만, 혹시 모르니까 단테가 아프다고 하면 저한테 데려오세요.”

리아는 혹시 몰라 덧붙였다.

“객기 부리지 말고 데려와야 해요. 또 큰일 나기 전에. 알겠죠?”

“네, 네. 꼭 그럴게요.”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놀라 멈칫한 사이, 지젤이 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가 평생 갚으면서 살게요……. 리아 님.”

극존칭에 리아가 질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하지만, 제가 어찌 은인에게 그런.”

“아뇨. 그냥 비앙카 님처럼 리아 양이라고 불러주세요.”

지젤에게 리아 님이라고 불리다니, 팔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던 리아의 등에 단단한 몸이 부딪혔다.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는 리아의 허리를 껴안은 그가 속삭였다.

“왜 이렇게 질색을 합니까. 조만간 듣게 될 호칭인데.”

“딜리언 씨는 내가 갑자기 전하라고 부르면 좋아요?”

능글맞게 놀리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렇게 불리고 싶으면 어디 한번 놀려보세요.”

“리아 씨 마음을 단번에 이해했습니다.”

“그렇죠?”

간만에 딜리언을 이긴 리아가 턱을 들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테르제였다.

저 빛, 저 나비.

대신관과 맞먹는 저 힘.

그리고 독이나 다름없는 신성력에도 편안해 보이는 딜리언…….

“설마…….”

홀로 중얼거리던 테르제의 어깨 위로 나단이 앉았다.

“운명의 아이를 찾고 있다지.”

“부엉이가 말을…….”

테르제가 억, 하고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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