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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118)화 (118/143)

118화.

예상은 했지만, 코마의 입으로 직접 사실을 전해 듣자 발밑으로 피가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웃는 얼굴까지 따라 했는데 어떻게 알아봤지?”

그는 리아를 앞에 두고서 혼자 중얼거렸다.

“결국, 이 눈동자 때문에 들킨 건가?”

그래, 이 눈동자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리아가 알아챌 리 없어.

이 얼굴은 리아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 지독히도 닮아있었으니까.

이 자색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성공했으리라.

눈 색 때문에 제 계획이 틀어졌다 여긴 코마가 이를 빠득 갈았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줄도 모르고.

자만심 가득한 착각에 리아의 눈이 종잇조각처럼 구겨졌다.

“마누스의 몸을 훔쳐서 그 사람을 흉내 낸다 해도, 네가 진짜가 되는 일은 없어.”

그의 미소를 따라 하고, 버릇을 흉내 낸들, 가짜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

“진짜 마누스는 어떻게 했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다 들킨 마당에 코마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천 년간 잠들어 있던 너를 마누스와 렉스터가 깨웠고, 몸이 필요했던 너는 마누스의 몸을 빼앗은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코마는 천 년 전에 육체를 잃었다.

그는 그림자를 분신처럼 부릴 수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물.

본체가 될 수 없다. 분명 자신을 깨운 둘 중 한 명을 숙주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거고, 렉스터보단 마누스의 몸이 탐이 났을 거다.

“언뜻 보기에 마누스는 리산드로를 닮았으니까.”

리아의 추측은 어디 하나 틀린 곳이 없었다.

더는 발뺌하기도 글렀다고 여긴 코마가 가벼운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맞아. 처음엔 리산드로 그놈이 다시 태어난 줄 알았어.”

어찌나 닮았던지, 다짜고짜 죽일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놈이 아니었다.

“리아, 너도 알 거야. 아주 먼 훗날, 자신과 닮은 후손이 태어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이 녀석이 그런 것 같더군. 닮아도 너무 닮았어.”

내용물은 다르나, 껍데기는 비슷한 인간의 등장은 그에게 퍽 기꺼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먹었어. 썩 맛있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껍데기가 마음에 들었거든.”

제 얼굴을 더듬으며 중얼거린 코마가 다시금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리아를 바라보았다.

“너도 그렇지? 처음엔 이 미소에 흔들렸잖아.”

그 역겨운 미소에 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턱,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녀의 심정을 보여주었으나.

코마는 리아가 좋아했던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그녀를 기만했다.

“개자식.”

증오로 가득 찬 리아의 눈빛에 코마가 몸을 떨었다.

“그런데도 네가 날 알아봤다는 게 기쁘면서도 짜증이 나.”

그 말을 증명하듯 코마의 얼굴은 웃는 건지 화를 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얼굴이었다.

“네가 이름을 불러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코마가 제 심장을 꾹 누르며 황홀경에 빠졌다.

다시는 듣지 못할 거라 여겼던 이름을 들은 순간, 죽었던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리아가 지어준 이름, 리아가 아껴준 이름, 그리고…….

리아가 버린 이름.

달뜬 얼굴이 차게 식은 건 순식간이었다.

자색 눈동자가 용암처럼 들끓으며 분노했다.

“평생 몰랐으면 좋았잖아. 내가 리산드로라고 착각했으면 너도 행복했을 텐데.”

행복? 개도 비웃을 헛소리에 리아가 비소를 터트렸다.

행복은 무슨, 하루하루 증오심을 키우며 코마를 죽였겠지.

“장담하는데 누구보다 불행했을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널 사랑하지만, 그만큼 네가 밉거든.”

자신은 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는 가차없이 자신을 버렸다.

코마가 리아에게 가진 감정은 질척한 애증이었다.

날것의 감정을 온전히 내보이며 리아를 향해 이죽거린 코마의 시선은 이내 그녀의 어깨로 향했다.

“언제나 네 옆을 차지하는 저 새끼는 더더욱 싫고 말이야.”

“예나 지금이나 집착이 심한 건 여전하군.”

“역시 천 년 전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네가? 나를? 천 년간 그 망상병은 조금도 고치지 못했구나.”

나단과 코마 사이에 살벌한 말이 오갔다.

“이길 수 있었다면 왜 숨어 다녔느냐. 정체가 들킬까 봐 그것이 두려워 내 앞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 아니냐!”

나단이 버럭, 호통을 쳤다.

그의 말대로 코마는 절대 나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형태는 변했으나 본질까지는 숨길 수 없는 법. 나단의 눈이라면 단번에 그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마누스는 나단을 피해 리아에게 접근했다.

“네가 두려운 게 아니야, 나단. 네가 함부로 혀를 놀려 리아에게 헛소리를 할까 방지한 것뿐이지.”

코마가 콧방귀를 뀌며 나단을 향해 이죽거렸다.

“넌 어차피 날 죽이지도 못하잖아?”

그래, 나단은 어둠을 죽일 수 없다. 이것은 리아의 사명이기 때문에.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코마를…….

리아가 팔찌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대려던 그때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코마가 리아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악!”

그 억센 힘에 팔찌가 부서졌다. 살을 파고든 조각에 리아가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물었다.

그녀의 고통 어린 신음에도 코마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또 나를 봉인하려고?”

“리아 님!”

“리아 양!”

조용히 리아를 지켜보고 있던 세라와 카시스가 달려왔지만, 그들은 리아에게 닿지 못했다.

코마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서 솟구쳐 오른 마물이 두 사람 앞을 막아선 탓이었다.

둘은 재빨리 무기를 꺼내 마물을 공격했다.

“세라! 황태자님!”

“리아, 다른 이를 걱정할 여유가 있나 봐?”

웃음기 섞인 목소리 뒤로, 낯익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큭!”

“나단!”

리아가 잠깐 눈을 뗀 사이, 나단을 낚아챈 코마가 킬킬 웃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당장 그 손 안 놔?”

리아가 코마에게 붙잡힌 손을 거칠게 쳐내며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리아의 허점 가득한 공격은, 코마가 불러낸 그림자에게 막혔다.

쉬이익, 리아를 결박하듯 휘감은 그림자가 그녀를 뒤로 당겼다.

“리아!”

리아가 위험에 빠지자 나단이 재빨리 신성력을 풀어냈으나, 코마에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저주와 신성력은 상극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멍청하긴. 계속 너를 피해 다니던 내가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코마가 입술을 비틀며 턱을 치켜들자, 그에 맞춰 푸른 귀걸이가 흔들렸다.

그 안에 담긴 새하얀 빛이 파도치듯 일렁거렸다.

단번에 그 귀걸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나단이 우레와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코마, 네 이놈! 아레스트에게 손을 댄 것이냐!”

“아, 그 녀석 이름이 그런 거긴 했지.”

신수에겐 관심이 없어 몰랐다며 코마가 눈을 찡그렸다.

“그 녀석 덕을 보긴 봤지. 천하의 나다니엘이 내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뿐이랴, 강한 신성력이 저주의 힘을 덮어주어 지금까지 리아를 속일 수 있었다.

“감히, 감히……!”

“내가 깨어나자마자 한 게 뭔지 아나? 바로 너희 신전에 대항하기 위한 물건을 만드는 거였다.”

나단의 목을 틀어쥔 손에 점점 힘을 들어갔다.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잖아. 안 그래?”

두 번이나 같은 실수는 안 해. 코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선 너부터 보내고, 그다음은 딜리언 그 자식이야.”

리아가 보는 앞에서 딜리언을 죽이자.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죽여서, 다시 한번 리아의 정신을 무너트리는 거야.

그리고 리아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거다.

그녀의 곁에 자신만 남도록.

그녀가 자신에게만 의지하도록.

사탕처럼 달콤한 꿈에 취하던 그때였다.

“이 개자식아, 그럼 이것도 어디 한번 막아보든지.”

귀 옆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몸이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퍼억!

강하게 부딪쳐 오는 힘에 코마의 턱이 돌아갔다. 상당한 충격에 몸이 비틀거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은 리아가 코마의 손목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나단! 날아!”

리아의 말이 신호가 된 듯, 나단이 날개를 펼쳐 높이 날아올라 리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나단, 두 사람을 도와줘.”

“하지만,”

“어차피 코마한테 네 공격은 안 통하잖아.”

리아의 말대로다. 코마가 저 귀걸이를 하고 있는 이상, 나단의 공격은 조금도 먹히지 않는다.

“내 공격은 제대로 먹히니까, 가 봐.”

나단의 엉덩이를 밀어낸 리아가 코마의 앞을 막아섰다.

“그림자를 풀어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빠른데…….”

모래처럼 부서져 재가 된 제 분신을 본 코마가 쯧 혀를 찼다.

그러자 찢어진 입술이 욱신거렸다. 입술뿐만 아니라 입 안도 터졌는지 비릿한 쇠 맛이 느껴졌다.

‘신성력이군.’

나단, 그리고 지금껏 만난 신관들과도 다른 리아만의 고유 신성력.

그 힘에 한 방 먹고 말았다.

“리아, 너무 거칠어졌-.”

퍼억!

끝맺음을 맺지 못한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말할 틈도 안 주네.”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맞은 코마가 아릿한 턱을 매만졌다.

“야. 마법소녀물에서 악당들이 왜 항상 지는 줄 알아?”

“……무슨 말이야?”

“주인공들이 변신할 때까지 매너 넘치게 기다려줘서 지는 거야.”

말을 마치기 무섭게 리아가 코마의 배를 후려쳤다.

“윽!”

“무슨 뜻이냐고? 인생은 선빵필승이란 소리야. 이 망할 자식아.”

리아는 신성력을 두른 주먹으로 코마를 뚜드려팼다.

세간엔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아무도 몰랐지만, 초대 성녀인 아리아네는 전투형 성녀였다.

즉, 맨몸 전투도 수준급이라는 소리였다.

반대로, 코마가 빼앗은 마누스의 몸은 전투와는 거리가 먼 물몸이었다.

기억을 되찾고 각성한 리아와 완전체가 되지 못한 코마의 싸움.

코마가 완전체였다면 모를까, 불안정한 힘을 가진 그는 리아를 이길 수 없었다.

‘이 새X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왜 되지도 않는 싸움을 걸어온 거지?’

리아는 바닥에 쓰러진 코마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왜 아무런 반격 없이 자신에게 맞고 있는 걸까?

코마는 영악한 녀석이다. 머리 회전이 빨라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제가 가르쳤고, 그가 성장하는 것을 눈앞에서 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뭔가 잘못됐다.’

음습한 불길함이 등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쭈뼛, 소름이 돋은 그 순간.

“꺄아아악.”

연회장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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