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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105)화 (105/143)

105화.

“딜리언 씨…….”

“도망치고 싶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절 주워온 게 리아 씨잖아요.”

이마를 맞댄 딜리언이 나를 응시했다. 무어라 반응해주길 바라듯.

하지만, 나는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딜리언이 이토록 노골적인 집착을 내보인 적이 있던가?

지금까지 그가 내보인 집착은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딜리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게 실망한 듯, 고개를 비틀었다.

‘실망? 정말로 실망한 사람이 누군데.’

당연히 내가 마누스의 손을 잡을 거라고 여긴 거야? 운명에 순응할 거라고 믿은 거냐고.

“리아 씨는 그저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운명이든, 장애물이든 우리 앞을 막아서는 것은 제가 전부 치워버릴 테니.”

그 순간,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나는 일어서는 딜리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힘에 떠밀린 딜리언이 균형을 잃고 물에 빠졌다.

온몸으로 딜리언을 들이받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첨벙-! 커다란 물보라가 허공에 부서졌다.

주저앉은 내 무릎 언저리에서 물이 넘실거렸다.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당신이야말로 뭐 하는 거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흥분으로 인해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왜 내가 떠날 것처럼 말해!”

갑자기 물에 빠진 것도 서럽고, 나를 믿지 못하는 딜리언이 미웠다.

“내가 언제 3황자한테 간다고 했어? 그 자식이 내 운명이라고 했냐고!”

열이 올라 붉게 물든 눈앞이 점점 뿌옇게 흐려졌다.

덩달아, 딜리언의 얼굴도 함께 일렁거렸다.

당황한 것처럼 보였는데, 알 게 뭐람.

“만약 운명이라도, 누가 그딴 운명 믿는데? 안 믿어! 안 믿는다고!”

분을 이기지 못하고 물을 쳐대던 나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좋아하는 건 당신이라고……. 그런데 왜 그렇게 못되게 말해…….”

젠장, 이렇게 고백하고 싶지 않았는데.

단정하게 꾸미고, 고르고 고른 예쁜 말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중력을 이기지 못한 눈물이 수면 위로 뚝 떨어졌다.

‘아, 씨. 쪽팔리게 왜 울어. 울긴.’

나는 눈물인지, 연못물인지 알 수 없이 흠뻑 젖은 눈을 벅벅 문질렀다.

나는 붉어진 눈으로 딜리언을 노려보았다.

“그 자식 죽이든지 말든지 네 마음대로 해!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죽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매섭게 쏘아붙인 나는 그를 향해 삿대질했다.

“자기 걱정해준 것도 모르고, 혼자 헛소리나 지껄이고! 이 멍청아!”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낸 나는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지금은 딜리언의 잘난 얼굴조차 꼴도 보기 싫었다.

턱을 따라 흐르는 물을 짜증스레 훔쳐내던 그때.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피할 새도 없이 딜리언의 품으로 무너지자, 그가 힘껏 나를 껴안았다.

“다시 말해봐.”

나를 바라보는 눈이 마치, 용암처럼 들끓었다.

내가 말할 것 같아? 누구 좋으라고!

“비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딜리언의 어깨를 밀쳤다.

하지만 바위처럼 단단한 몸은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넝쿨처럼 엉켜 든 그가 내 귓가에 입술을 묻고 속삭였다.

나를 달래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제가 잘못했습니다. 리아 씨 마음을 상하게 하다니,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게요.”

그리고 은근하게 속삭였다. 그건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매혹적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주면 안 됩니까.”

“으.”

뜨거운 숨이 닿은 귀가 간지러웠다.

파드득, 몸을 떨며 그의 어깨를 밀어내 간신히 거리를 벌리자, 이번엔 열기로 들뜬 눈이 나를 붙잡았다.

내 얼굴을 핥는 듯, 진득한 눈빛에 이제는 온몸이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확 바뀌어도 돼요?”

눈 돌아서 화낼 땐 언제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그를 향한 화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안에 부끄러움이 차올랐다.

“정말로 내가 좋습니까? 정말?”

“좋다고 한 적 없어요.”

“거짓말. 아까 좋아한다면서 울었잖아.”

이럴 때만 반말이지!

기분 좋게 올라간 입꼬리가 시야 끝에 걸렸다.

찰나의 순간, 스치듯 지나간 입술이 눈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움찔거렸다. 동시에 그의 어깨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말해달라고 했죠?”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리아 씨?”

놀란 듯, 크기를 키운 눈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나는 딜리언에게 입을 맞췄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불어오는 바람도,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도.

모든 게 멀어졌다.

‘첫 키스는 사탕처럼 달콤하다던데, 아무 맛도 안 나네.’

굳이 따지자면 물맛? 그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도장을 찍듯, 그의 입술을 꾹 누른 후, 천천히 눈을 떴다.

딜리언은 답지 않게 굳어, 숨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 멍하던 눈이 이내 음험하게 가라앉았다.

“……이제 알겠죠?”

이러다 일을 치르겠다 싶었던 나는 재빨리 딜리언에게서 벗어났다.

하지만 무릎을 세우기 무섭게 다시 그에게 붙잡혀 끌려가고 말았다.

“이렇게 넘어가려고?”

열에 들뜬 목소리만큼이나 뜨거운 손이 내 뒷머리를 감싸 안았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콧날이 부딪혔다.

“말해봐요. 왜 했어요?”

“……알면서 이럴 거예요?”

“나는 모르겠는데?”

그가 잘게 웃음을 터트리자, 더운 숨이 뺨에 부딪혀 흩어졌다.

야살스러운 그 얼굴에 눈을 내리깔았던 나는 곧이어 들려온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한 번 더 해봅시다. 확실하게 알 때까지.”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항의하던 내 목소리는 이내 입술을 삼키는 그에게 먹히고 말았다.

* * *

딜리언은 제 품에서 바르작거리는 몸을 힘껏 껴안았다.

강한 손길과 달리 리아의 입술을 삼킨 입술은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그녀가 놀라 도망갈까 봐,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문질렀다.

조개처럼 굳게 다물린 입을 열어주길 종용하듯, 아프지 않게 아랫입술을 물자 리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쉬이.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리자, 리아가 서서히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틈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련한 사냥꾼인 딜리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로의 숨이 얽혀들었다.

“흐.”

리아의 달뜬 목소리가, 간신히 억누른 그의 욕망에 불을 질렀다.

젠장, 딜리언이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작고, 여린 그 목소리 한 번에 그동안 쌓아둔 둑이 무너지고 말았다.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입맞춤에 가슴이 뻐근했다.

“숨, 숨 막혀…….”

“쉬, 괜찮아요. 코로 쉬어요.”

그게 말처럼 쉽냐고. 리아는 울상을 지으면서도, 딜리언이 시키는 대로 코로 숨을 내쉬었다.

그를 밀어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싫지 않았으니까. 그와의 입맞춤은 잠겨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황홀했다.

리아는 몰아치는 파도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딜리언은 그런 리아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의 모든 걸 집어삼켰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건 딜리언도 마찬가지였다.

저와 같은 마음을 한 리아가 너무 좋아서,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이 아팠다.

이대로 심장이 멎어 죽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욱신거렸다.

하지만 딜리언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처럼.

그 집요함에 리아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더는 못 참겠어. 리아는 헐떡이며 고개를 비틀었다. 딜리언은 그 짧은 순간도 참을 수 없는지 쫓아와 다급히 입술을 삼켰다.

“그만, 그만……!”

리아는 손을 들어 다가오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키스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이 가빴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가쁜 호흡을 정리하던 리아는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에 몸을 떨었다.

딜리언은 여우처럼 샐쭉 웃으며 리아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만해요…….”

“전 아직 답을 못 들었습니다.”

쪽, 쪽. 뜨겁고 간지러운 그 낯선 감각에 리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좋아해요. 좋아해서, 그래서 그랬어요.”

“정말로 내가 좋아요?”

“그럼 내가 뭐 때문에 할아버님한테 기를 써서 이기려고 했겠어요!”

리아의 얼굴은 콕, 찌르면 터질 홍시처럼 붉었다.

“그야, 리아 씨는 한번 불이 붙으면 뒤도 안 돌아보는 성격이니까요.”

지금껏 승부욕 때문이라고 착각했던 딜리언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때문이었단 말이죠?”

“그렇다니까요.”

딜리언은 부루퉁한 대답에 세상을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저도 좋아합니다. 리아 씨, 좋아해요.”

담백한 그 고백에 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알아요. 질투에 눈이 돌아서 황자를 죽이려고 할 만큼 저를 좋아하잖아요.”

“리아 씨가 원하면 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혀줄게요.”

“싫어요. 절대 싫어!”

리아가 기겁하며 진저리를 치자, 딜리언이 그녀를 달래듯 입을 맞췄다.

작은 새가 쪼듯 쏟아지는 입맞춤에 리아가 그를 막아섰다.

“그만해요. 이러다 퉁퉁 붓겠어요.”

아니, 벌써 부은 것 같다고. 어찌나 괴롭혀 댔는지 입술이 얼얼했다.

그때였다. 목이 따끔거렸다.

그만하라고 했더니, 도리어 목을 물어버린 것이었다.

“앗. 왜 물어요!”

“내 거라는 표식을 남기려고요.”

그 새끼가 또 운명이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면 당당하게 보여줄 작정이었다.

약 좀 오르라지. 속으로 이죽거리던 딜리언은 저를 힐끔거리는 리아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나도, 해도 돼요?”

뭘? 목에 자국을 남겨도 되냐고?

전혀 예상치 못한 리아의 적극적인 모습에 딜리언의 심장이 쿵, 하고 널뛰었다.

그 모습을 거절로 착각한 리아가 먼 산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싫으면 말고요…….”

“싫다고 한 적 없어요.”

딜리언은 재빨리 리아의 턱을 잡아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내 부인이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라 좋아하는 중입니다.”

“그만 놀려요!”

“자, 어서 해주세요. 부인.”

셔츠 자락을 늘어트리며 목을 내밀자 리아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싫어. 안 해!”

아, 진짜 귀여워 죽겠다. 딜리언은 도망치는 리아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가 자신의 세상인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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