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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83)화 (83/143)

83화.

괴한에게 엿을 먹이려던 건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반지를 보여준 건지 구별되지 않는 얼굴이었다.

“저 여자 제정신이 아니네. 야! 당장 치워!”

괴한들이 황녀에게 달려들던 그때, 그녀의 뒤로 짜증이 가득 담긴 슈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오, 이건 또 무슨 탄내야!”

“사람이 타는 냄새군.”

“……그걸 어떻게 알지?”

“종종 맡아봤다.”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딜리언이 이 모습을 보면 화내겠지……?

내 뒤에 있는 사내나 목에 들어온 검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정말로 무서운 건 화가 난 딜리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화등잔만 하게 커진 두 쌍의 눈동자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 나 인질 됐어.”

슈만과 딜리언이 멈칫한 것도 잠시,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빠르게 다가오는 살기에 몸이 오싹거렸다.

“멈춰라! 이 이상 다가오면 이 여자를, 아악!”

나를 인질로 잡은 사내가 협박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슈만이 마법으로 남자의 팔을 꽁꽁 얼려 버린 순간, 나는 그 팔을 쳐내고 빠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날아온 딜리언이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나는 바닥을 나뒹구는 대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인질을 잘못 잡았다고 했잖아. 멍청아.”

그 뒤로는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 * *

“너는 여기에 메이가 없는 걸 감사히 여겨라.”

도망치는 길드원을 걷어찬 슈만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메이가 있었으면 네놈은 진작에 목이 잘려서 성벽에 걸렸어.”

“메이가 누구지.”

언제 준비한 것인지 의자에 앉아 싸움을 관람하던 데이지가 물었다.

그 모습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슈만이 대답했다.

“제 동생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경. 경의 동생이 아니더라도 저자들의 미래는 곧 그리 될 듯하네.”

데이지는 정신을 잃은 지 오래인 길드원들을 사정없이 쥐어패는 딜리언에 질렸다며 혀를 찼다.

“다른 놈은 몰라도 공작의 약혼녀를 건든 놈은 목이 잘리겠어.”

그녀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딜리언은 이 일에 관련된 그 누구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특히, 리아의 목에 더러운 검을 가져다 댄 그 빌어먹을 자식만큼은 저승으로 보내줄 작정이었다.

마지막 놈까지 잘근잘근 밟아 끝장을 낸 딜리언이 뒷정리를 시작하는 슈만에게 물었다.

“리아 씨는.”

“부상자 치료 중.”

슈만이 바로 옆 방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리아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할아버님, 실례할게요.”

마지막으로 리아에게 다가온 이는, 백발의 노신사였다.

그는 몇 번이고 같은 곳을 맞았는지 뺨은 부어터지기 직전이었고,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보기 흉했다.

하지만 그건 제 눈에만 그리 보이는 것이고, 리아의 눈엔 마냥 안타깝게 보이는 모양이다.

딜리언은 상처를 치료하는 리아를 흐뭇하게 바라보다, 그녀의 목에 생긴 붉은 자국에 눈을 찌푸렸다.

‘어디에 긁힌 상처인데.’

리아에 대해서라면 속속히 알고 있는 딜리언은 그녀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정황상 목걸이를 강제로 끊어내다 그녀의 목에 상처를 낸 것으로 보였다.

‘그놈도 목을 잘라버려야겠군.’

딜리언이 또 다른 참수 계획을 짜던 그때, 마지막 인질까지 무사히 복도로 내보낸 리아는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문밖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딜리언이 성큼 발을 들였다.

“딜리언 씨, 밖은 다 끝났어요?”

“슈만이 뒷정리 중입니다. 리아 씨는 괜찮습니까.”

“네,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딜리언 씨가 오셔서 멀쩡해요.”

숨길 생각인지, 아니면 자신이 다쳤다는 걸 모르는 건지.

어느 쪽이든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이 작은 상처 하나에도 이렇게 속이 들끓고, 화가 나다니.’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다 속으로 중얼거린 딜리언이 손을 뻗어 리아의 목을 쓰다듬었다.

“윽.”

통증에 눈을 찌푸린 리아가 어깨를 움츠렸다.

“이게 멀쩡한 겁니까.”

화를 참듯, 잔뜩 억누른 목소리에 리아가 눈을 깜박였다.

리아는 정말 자신이 다친 줄 몰랐다.

“검에 베인 건 아니죠?”

“……목걸이에 쓸린 상처입니다.”

“아, 목걸이! 그놈들이 그걸 가져갔어요!”

골드다이아몬드라고! 리아는 그 목걸이의 이름이 태양의 눈물인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걸 강탈해? 가만 안 둘 거야.’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던 그때, 뻗어져 나온 손이 부드럽게 리아의 허리를 감싸 당겼다.

얼떨결에 딜리언의 품에 안긴 리아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몸이 이 꼴인데 또 어딜 나가려고.”

“아…….”

“내가 늘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을 챙기기 전에 본인부터 챙기라고.”

“그게, 다친 줄 몰랐어요.”

“제가 없는 곳에서 또 다쳐 오면, 그땐 정말로 가둬 버릴지도 몰라요.”

목소리와 말투는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알았죠?”

딜리언은 대답을 종용하며 상처가 생긴 길을 따라, 손끝으로 훑었다.

“네, 네. 알았으니까 손 좀…….”

리아가 연신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간지러워서.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많이 아파요?”

“그건 아닌데…….”

“리아 씨의 여린 몸에 상처가 나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별로 안 아프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리아 씨는 제 몸보다 남을 치료하는 걸 더 중요시하니, 제 마음도 당연히 치료해주겠죠?”

“치료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리아는 딜리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신성력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짜잔. 상처 치료 끝!”

어색하게 웃자, 딜리언의 미소가 짙어졌다.

“역시 목을 베어버려야겠습니다.”

리아는 웃는 얼굴로 검을 뽑아 드는 딜리언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죽이면 안 돼요! 차라리 감옥에 보내세요, 감옥!”

여기서 죽이면 괴물 공작이 또 사람을 잡아먹었다느니 이상한 소문이 돌 게 뻔하다고!

리아는 몰랐다.

자신이 어느새 딜리언의 평판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리아 씨는 저런 쓰레기들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군요.”

하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딜리언은 속이 뒤틀렸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조차 감싸다니.

딜리언은 리아의 저 넓은 마음을 사랑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 저 사람들을 죽이면 딜리언 씨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진단 말이에요!”

무슨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어!

제 마음을 몰라주는 딜리언이 야속한 리아가 그의 허리를 꼬집었다.

그리고 여기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밖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딜리언이 소란을 잠재웠다 하더라도, 낭자한 피를 보면 흉흉한 뒷말이 돌지도 몰랐다.

“죗값은 감옥에서 치르면 돼요.”

다친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진정하고 포박만 해서……!”

그 순간, 크고 다부진 몸이 리아를 덮쳤다. 예고도 없이 저를 껴안은 강한 힘에 리아가 말을 더듬었다.

“왜, 왜 이래요?”

당황한 리아가 바르작거리자, 놓치지 않겠다는 듯 껴안았다.

그에 그치지 않고, 리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딜리언이 한껏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절 걱정하는 마음이었습니까? 저 새끼들이 아니라?”

“제가 저 인간들을 왜 걱정해요!”

이상한 오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리아가 펄쩍 뛰어올랐다.

“제가 딜리언 씨를 걱정하지. 누굴 걱정하냐고요…….”

민망함에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딜리언은 똑똑히 들었다.

저를 걱정하는 그녀의 말을.

“절 걱정했단 말이죠. 저를.”

리아의 걱정을, 관심을, 애정을 음미하듯 입 안에서 굴리던 딜리언이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기민하게 알아차린 리아가 눈을 굴렸다.

‘큰일 났다. 이러다가 또 놀림 받게 생겼잖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한 리아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딜리언 씨, 저는 다친 줄도 몰랐어요. 알았으면 제 몸부터 돌봤을 거예요. 그러니까 죽이지 말고 기절만 시키는 거예요. 알았죠?”

“누구 말씀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후,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내쉰 리아가 딜리언의 등을 두드렸다.

“좋아요. 사망자 없이 무사히 오늘을 넘어가면 다음에 하루 종일 딜리언 씨랑 놀아줄게요.”

그러자 순식간에 딜리언의 눈빛이 변한다. 맹수가 먹이를 노리듯 날카롭고 집요한 눈빛이 리아에게 향했다.

“스킨십 허용입니까.”

“손잡기까지만요.”

“그건 평소에도 하는 거잖아요. 뺨에 입을 맞추는 것까지 허용해주세요.”

“양심 있어요?”

“그런 거 안 키웁니다.”

딜리언은 당당했다. 그리고 뻔뻔했다.

예전이라면 질색했을 애정행각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리아는 고민 끝에 허용치를 높였다.

“포옹까지 허락합니다.”

“수지 타산에 안 맞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랬으니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선심 쓴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에 리아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것 참 감사하네요.”

“대신 데이트, 확실히 하는 겁니다.”

“속고만 사셨나, 자요.”

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빛보다 빨리 다가온 딜리언이 리아의 손가락에 제 손을 엮었다.

“다행이네요. 기분 풀려서. 정말로 파혼당하는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정말 놀랐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딜리언과 달리 리아의 얼굴엔 점점 열이 올랐다.

갑자기 인질이 되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

딜리언에게 엄청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사실을.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오자, 그 행동이 얼마나 철없고 부끄러운 짓이었는지 깨달은 리아가 민망함에 몸부림쳤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

속으로 비명을 지른 리아는 붉어진 얼굴을 애써 감춰보았지만, 매의 눈을 가진 딜리언을 피할 수는 없었다.

딜리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리아 씨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잖아요.”

“그, 그건!”

“제가 다른 여자랑 있어서 질투 났습니까.”

“아니거든요!”

“그런데 얼굴은 왜 빨개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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