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64)화 (64/143)

64화.

* * *

딜리언의 보호 아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침대 위로 쓰러졌다.

“피곤해.”

하루 만에 벌어진 사건 사고 때문에 머리가 멍했다.

“리아. 씻어야지.”

나는 등을 미는 나단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나단,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

“전부 다!”

수호천사라는 이상한 이유로 내게 집착하는 아이나는 물론이고, 딜리언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렉스터까지.

“나단. 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흐으음, 글쎄?”

침대에 누워 유유자적하던 나단이 내 부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데 먼저 알려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꼭, 내가 스스로 알아차리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렉스터가 쓴 그 힘은 어둠의 힘이 맞지?”

“그렇지.”

“그런데 왜 딜리언 씨랑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야?”

처음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하고 삿된 기운이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렉스터와 딜리언의 힘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혹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나단이 비웃을까 걱정이 된 나는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같은 힘이야? 예를 들면 근원이 같다든가?”

“그래, 같은 힘이란다.”

“아, 그렇구나. 역시…….”

……가 아니라!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잖아?

“나단! 알면서 왜 안 가르쳐준 거야! 그리고 왜 그렇게 태평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단이 이불 위를 빙그르르 굴렀다.

“나도 긴가민가하여 말할 수가 없었단다. 오늘 렉스터인지 랍스타인지를 보고 나니 확실히 알겠더구나.”

“그럼 그때 알려줬어야지. 너, 내가 안 물어봤으면 모른 척하려고 했지?”

“내가 그럴 리가. 네가 끝까지 못 알아차리면 알려주려 했단다.”

태평하다 못해 대책 없는 행동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순간, 핑 도는 현기증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힘의 근원이 같다면, 딜리언의 저주도 어둠으로부터 파생된 거야?”

“그래.”

“미친…….”

나는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리아. 걱정할 것 없다. 저주의 근원이 되는 어둠은 지금 완전체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그래,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 강하지는 않아.”

“어떻게 알아? 느껴져?”

“힘을 되찾았다면, 당당하게 네 앞에 본모습을 드러냈을 테니까.”

나는 빌헬름에서 만난 끈적하고 물컹거리던 마물을 떠올렸다.

‘하긴, 그게 진짜 같진 않았지.’

꿀렁거리던 마물은 딱 봐도 부하 1,2,3,4였다.

“거기다 네 공격으로 어둠의 계약자가 다쳤다. 분명 큰 타격을 입었을 테니,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다.”

내 공격 때문에 약해졌다면 다행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어둠은 분명 힘을 찾고 싶어 할 테니까. 다친 지금으로선 더더욱 원할 거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한 명뿐.

“……힘을 되찾기 위해 딜리언을 노리겠네.”

“역시 우리 리아.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니까.”

훌륭한 제자에 신이 났는지 나단이 날개를 파닥이며 좋아했다.

방긋 웃는 나단과 달리 내 얼굴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자 내 곁으로 다가온 나단이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하지만 그 녀석이 딜리언을 이길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

“확신해?”

“그래. 딜리언 그놈이 뺀질거리고 재수 없긴 하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 나는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딜리언이 더 강해. 어둠은 당장 딜리언을 죽여 힘을 찾고 싶을 테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아마 가장 마지막에 노릴 거다.”

불행 중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별안간 가설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그럼 딜리언 씨 저주가 어둠으로부터 파생된 거면, 어둠을 죽이면 딜리언 씨의 저주도 풀 수 있는 거겠네?”

“그래. 맞아. 근원을 파괴하면 저주 또한 사라지는 법이지.”

그 순간, 다 죽었던 의욕이 무섭게 샘솟기 시작했다.

“어둠은 어떻게 생겼어? 우리가 본 마물이랑 똑같이 생겼어?”

“아니. 내 예상이 맞다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어떤 얼굴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니. 그건 우리에게 퍽 위험한 일이었다.

언제, 어느 곳에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둠은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나단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정말 나야?”

“그래.”

“도대체 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귀찮게 구냔 말이다.

“막대한 신성력을 가진 내가 탐나는 거야? 아니면 날 이용해서 세계를 멸망시키기라도 하게?”

차라리 신성이 넘치는 내가 방해돼서 죽이려고 집착하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이해가 안 되네, 나한테 왜 이렇게 집착해?”

내가 뭐라고! 나는 그냥 리아 델리스라는 여자의 몸에 빙의된 평범한 사람인데!

나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발을 동동 굴렀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조만간 알게 될 거란다.”

“하나도 안 궁금해…….”

뭔진 몰라도 변태 같은 이유겠지!

분명 질척거리고 음습하고 음흉한 이유일 거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엉엉거리던 나는 몸을 빙글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자, 나단이 내 가슴을 토닥였다.

“걱정 말거라. 어둠이 너를 잡아가기 전에 네가 소멸시켜 버리면 되는 일이란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처럼 말하지 마.”

나는 퉁명스레 답했지만, 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원작에 없던 등장인물은 나와 어둠.

막대한 신성력을 가진 나와 삿된 저주를 가진 어둠.

내가 이 일을 해결할 키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본체는 어디에 있는데?”

“그건 네가 찾아봐야지.”

“아! 그게 뭐야!”

결국, 발로 뛰면서 개고생하라는 말이잖아!

“나단, 사실대로 말해. 아이나도 뭔가를 숨기고 있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수호천사라는 말은 금시초문이야.”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나단조차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는 소리였다.

나를 수호천사라고 부르는 아이나. 그녀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 * *

그날 밤, 시나이즈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다.

“웬일이냐, 네가 먼저 나를 부르고.”

해리스가 피식 웃으며 딜리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날, 멋대로 리아 씨를 만난 일로 욕하려고 불렀다면 사양이다. 리아 씨도 괜찮다고 했어.”

“제 발 저려 하는 걸 보면, 잘못한 건 아는군.”

새하얀 정복 차림인 해리스를 보고 눈을 찌푸린 것도 잠시,

딜리언은 냉수를 들이켜는 해리스를 향해 물었다.

“그림자는.”

“걱정 마라. 확실하게 잡아서 대신전 지하에 가둬 놨으니까.”

해리스가 어둠을 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 낮, 딜리언으로부터 리아가 외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정예를 꾸려 시내를 샅샅이 살폈다.

리아가 나타난다면, 분명 어둠도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해리스는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 포획 준비를 마친 채 어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비록, 본체가 아닌 그림자였지만 지금까지 전부 놓쳤던 전적을 생각하면 충분한 수확이었다.

‘딜리언이 노린 게 이거였겠지.’

어둠도 잡고, 리아도 지킬 병력도 늘리고.

해리스는 수도 곳곳에 숨어있던 시나이즈 가의 병력을 떠올리고 혀를 내둘렀다.

이 모든 게 딜리언이 잘 짜둔 판 같았다.

“찾아낸 정보는 있나?”

“아니, 쉽지가 않네.”

일이 잘 풀리지 않는지,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이 퍼석거렸다.

“말을 못 하는 미물이라?”

“아니, 전이랑 다르게 말을 할 줄 안다. 소통될 정도로 힘을 회복한 거겠지.”

“그럼 뭐가 문제야.”

“무슨 생각인지 성녀 앞에서만 입을 열더군.”

“엿들으면 되잖아.”

어깨를 으쓱인 해리스는 검지로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여기로 대화를 하니, 알 수가 없어.”

머리로만 대화를 나누니 엿들을 방법도 없었다.

신전의 사람들은 신성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지, 독심술사가 아니었으니까.

“회유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르겠군.”

“그럴 확률이 높지.”

신전과 성녀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회유하려 들거나.

비열한 녀석이니 그러고도 남았다.

‘그래서 더 떼어내려고 했는데, 성녀는 말을 듣지도 않고.’

고집도 그런 고집이 없다.

그림자의 옆에서 떨어지라고 몇 번을 말해도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며 자리를 지켰다.

그 결연한 눈빛을 보니 어둠에게 넘어갈 것 같진 않았지만,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 아닌가.

“……위치라도 알아내야 할 텐데.”

“어떤 수를 쓰든 상관없나?”

“괜찮은 방법이 있어?”

이런 쪽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딜리언이다. 해리스는 기대를 품으며 딜리언을 채근했다.

“성녀만 협조해준다면 말이야.”

해리스의 기대에 부응하듯, 딜리언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 * *

축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나는 떠오른 해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원작은 개뿔.”

예상대로라면 어제 정오에 터졌어야 할 시계탑은 멀쩡했고, 중단됐어야 할 축제는 마지막을 알리듯 더욱 타올랐다.

나는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취소선을 길게 그었다.

[시계탑 테러]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원작이 비틀리면서 사건이 사라진 걸까? 하지만 황태자를 미워하는 3황자의 감정은 여전할 텐데.

“이것도 아무런 쓸모가 없겠네.”

시계탑 테러 이후로도 벌어지는 사건을 간단히 메모해둔 것을 보며 나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딜리언이 빌헬름에서 나와 한 달이 넘도록 함께 있었다는 것부터 박살이 난 원작이기 때문에 크게 맹신하진 않았지만, 이젠 정말로 의미가 없었다.

“아는 자의 여유는 무슨.”

나는 들고 있던 펜을 내팽개쳤다.

이렇게까지 비틀린 이상, 원작은 참고 수준도 되지 못한다.

원작에 매달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위험에 빠지는 주인공들을 여럿 봤던 나는 미련을 집어던졌다.

이게 된 이상, 내가 할 일은 하나.

‘X까, 나는 내 길을 간다’ 전법을 사용할 때였다.

“그 사람을 만나야겠어.”

그 전에 밥부터 먹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