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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39)화 (39/143)

39화.

설마, 수영을 못하나? 다급히 숨을 들이마신 나는 재빨리 잠수했다.

‘저기다.’

검푸른 물속에서 부유하는 딜리언을 찾은 나는 그의 겨드랑이에 팔을 걸고 위로 헤엄쳤다.

“쿨럭!”

“수영도 못하면서 물로 뛰어들면 어떡해요!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했잖아요!”

나는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을 억누른 채, 연신 물을 토해내는 딜리언의 등을 두드렸다.

“쉬이, 천천히 숨 쉬어봐요.”

나는 두드리던 손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딜리언의 호흡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괜찮아요? 나 좀 봐봐요.”

나는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는 딜리언의 뺨을 붙잡았다.

갑자기 닿아온 온기에 놀란 딜리언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잠깐-.”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많이 놀랐는지 딜리언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디 부딪혔어요? 다친 거예요?”

그는 어디 부상을 입은 것처럼 상태가 나빠 보였다.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고.’

나는 딜리언의 뺨을 감싼 채 그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폈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딜리언 씨?”

붉어진 눈가를 문지르자 그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딜리언 씨,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그는 버퍼링이 걸린 사람처럼 자꾸만 버벅거렸다.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걸까, 아니면 어디 머리라도 부딪힌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딜리언이 못내 걱정이 됐다.

그의 등을 문지르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도 이곳까진 정령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지 조용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잡으러 올지 모르는 일.

“우선, 여기서 벗어나요.”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딜리언을 일으켜 세웠다.

늘어진 팔을 내 어깨에 걸치고, 그의 허리를 껴안아 숲 안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물을 가득 먹은 옷과 힘이 빠진 딜리언을 지탱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왜 이렇게 무거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나단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리아! 이리로!”

커다란 바위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틈이 나 있었다. 비좁았지만, 조금이나마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곳이었다.

딜리언을 그곳에 앉힌 나는 옷을 비틀어 물을 짜냈다.

“우선 옷부터 말려야겠어.”

영하의 날씨에 젖은 채로 돌아다니면 동상에 걸려서 죽을 거다.

순식간에 환자가 되어버린 딜리언을 뒤로한 나는 주변에 흩어진 나뭇가지를 한데 모았다.

그러자 나단이 내가 쌓은 장작 위로 불을 피워주었다.

타탁, 타닥. 나무 타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들려왔다. 나는 타오르는 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딜리언을 주시했다.

정말, 지금의 딜리언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평소답지 않아.’

지금쯤이면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니 제 품으로 들어오라 헛소리를 해야 할 타이밍이건만 그는 너무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정말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집요한 내 시선을 알아차린 딜리언이 고개를 들었다.

“딜리언 씨?”

“아무것도 아니, 아닙니다.”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넋이 나갔는데? 괜찮은 거 맞아?’

걱정되는 마음에 그의 이마로 손을 뻗자, 흠칫 놀란 딜리언이 몸을 뒤로 물렸다.

“아, 미안해요.”

황급히 손을 물린 나는 움찔거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덮었다.

딜리언이 나를 피한 적이 처음이라 그런가. 기분이 이상하다.

‘조금, 섭섭하네.’

그가 걱정되어서 살펴보려 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대놓고 피할 건 없잖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아래로 내려갔다.

‘안 돼, 정신 차려.’

나는 내 뺨을 짝! 치고 일어났다.

활활 타오르는 불 덕분에 빠르게 옷을 말리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장작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장작을 더 모아 올게요.”

“리아, 같이 가자.”

나는 내 어깨에 올라탄 나단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넌 딜리언 씨 옆에 있어. 아무래도 상태가 좀 이상해. 혼자 뒀다간 무슨 일 날 거 같아.”

내 말에 나단이 딜리언을 살폈다. 그가 보기에도 딜리언이 퍽 이상했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응. 금방 돌아올게.”

딜리언의 곁으로 돌아간 나단과 반대로 숲 안으로 들어간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품에 안았다.

“하, 정말 왜 저러는 거야.”

손끝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딜리언의 달라진 태도가 신경에 거슬렸다.

“수영 못한다고 혼내서……? 그런 일로 자존심 상해할 사람이 아닌데.”

돌아가서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피하려고 하면 붙잡고 매달려야지, 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장작을 모으던 그때.

뒤에서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렇지, 나를 피할 딜리언이 아니라니까.

“이제 괜찮아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고개를 들었던 나는 이내 얼굴을 굳혔다.

나를 반긴 건 딜리언이 아닌, 나무 형태를 한 마물이었으니까.

그래, 그X트 닮은 녀석들.

도망칠 새도 없이 쉭, 뻗어져 나온 나뭇가지가 내 손목을 옭아맸다.

“이거 놔! 나단! 딜리언! 읍!”

숲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마물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읍! 으읍! 읍!”

“그어어어.”

저벅, 저벅, 다가온 마물 한 쌍이 내 팔을 붙잡아 뒤로 돌렸다.

잠깐, 이건 좀 아니잖아!

손목이 구속된 이 자세는 누가 봐도 연행되는 자세였다.

잡아갈 거면 평범하게 잡아가라고! 이러니까 범죄자 같잖아!

하지만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마물들은 나를 짐짝처럼 질질 끌고 갔다.

* * *

딜리언은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래로 한없이 끌려가는 기분이란 썩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 수면에 부딪히면서 받은 충격에 몸이 욱신거렸다.

그 순간, 낯선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하! 습격입니다!’

‘큭, 비겁하긴! 이런 더러운 수를 쓰다니!’

‘전하! 저희가 맡겠습니다. 우선 몸을 피하십시오!’

‘전하, 죄송해요!’

그가 모르는, 아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번쩍, 머리에 스파크가 튀듯 수많은 장면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마침내 찾은 용의 심장, 자신을 습격한 암살자, 다친 자신을 강제로 이동시켜버린 카나에.

그리고,

‘진정해요. 해치는 거 아니에요. 상처를 치료해줄게요.’

흐릿하게 보이는 리아의 얼굴.

물이라도 먹은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딜리언!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야!’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의 감각이 일어났다.

헉- 딜리언은 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은 채, 숨을 들이켰다. 물을 먹은 몸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다.

리아가 건져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가라앉았겠지.

잠시 뒤,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군가 머리를 후려친 듯한 충격이 연신 머리를 뒤흔들었다.

아니, 실제로 머리를 맞았다.

‘어이가 없군.’

기가 찼다. 황당했다.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이 휘몰아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딜리언은 손을 들어 버석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당신이 기억을 잃은 건 나 때문이에요.’

‘제가 당신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뚝배기 깨트리듯이 깨부쉈다고요.’

부인이라는 호칭을 쓸 때마다 기겁하며 필사적으로 거부하던 리아가 떠올랐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했다.

그런데 난…….

‘당신만 보면 심장이 무섭게 뛰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정신이 아찔합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뭡니까.’

사랑은 무슨, 머리가 깨진 거였다.

“하아…….”

딜리언은 눈을 왈칵 구기며 몸을 뒤로 젖혔다.

‘……죽고 싶다. 사랑? 운명? 내가 미쳤군.’

기억을 잃은 순간부터, 모든 게 돌아온 지금까지의 기억이 강제로 재생됐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았다.

그간 저지른 만행이 떠오르자 딜리언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치스럽군.’

딜리언은 한숨과 함께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리아뿐만 아니라 부하들, 그리고 해리스에게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미치자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나무를 내리쳤다.

쾅!

“아니, 이게 미쳤나? 갑자기 왜 이러느냐?”

딜리언은 제 옆에서 쫑알거리는 부엉이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왜 또, 또 눈을 부라리냐!”

“하아…….”

이 미친 부엉이는 제 눈빛에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리아 델리스가 이상하다며 날아가 버렸다.

무시하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공작으로서 쌓아 올린 명예는 진창으로 처박혀 엉망이 되었다.

이번 일은 제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는 게 이런 걸까. 사람들 머릿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우선은 내 머리를 후려친 리아 델리스부터 처리하는 걸로…….’

딜리언은 제 눈가를 매만졌다. 리아가 쓰다듬어 준 그 위치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딜리언이 화들짝 놀라서 손을 뗐다.

“……미쳤군.”

무의식이 이렇게 무섭다.

딜리언은 갈피를 잃은 손을 말아 주먹을 세게 쥐었다.

한 달. 그 사이 리아 델리스는 허락도 없이 제 안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역시, 처리해야겠어.’

리아를 어떻게 해치울지 고민하던 그때,

“딜리언! 리아가 사라졌다!”

다급한 나단의 목소리에 딜리언은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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