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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32)화 (32/143)

32화.

“리아!”

리아를 발견한 나단이 재빨리 날아와 그녀를 살폈다.

리아와 나단의 만남을 확인한 나비들은 빛이 되어 날아갔다.

마치, 자신들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듯이.

“이게, 어째서 이렇게.”

나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리아의 상태를 보고 당황하기는 해리스도 마찬가지.

“이대로면 위험합니다.”

당장 신성력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리아는 의식을 잃은 상태.

본인이 제어하지 못하는 신성력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무리 중 유일하게 신성력에 대해 알고 있는 둘이 어쩔 줄 몰라 하자, 딜리언의 얼굴이 싸하게 가라앉았다.

“설마, 해결 방법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그렇다고 하면 찢어 죽일 기세다.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눈. 그 시린 눈빛에 루도가 움찔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보던 눈빛이었으니까.

하지만 루도는 기뻐할 수 없었다.

‘큰일 났다. 전하께서 화나셨어.’

기억을 잃기 전에도 이처럼 화를 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루도는 눈치껏 조용히 자리에서 빠져 리아가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리아를 치료하는 게 빨라 보였으니까.

“우선, 이리로 눕혀라.”

나단은 루도가 만든 자리에 누운 리아를 빤히 쳐다봤다.

‘신성 증폭이군.’

나단은 리아에게 그것을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

정확히는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아직 리아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식물을 기르는 것부터 가르쳤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차근차근.

‘그런데 어디서 이런 잘못된 방법을 배운 거지?’

자신이라면 절대 가르치지 않았을 방법, 리아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나단.”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말해보라는 그의 눈빛에 나단이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상태를 설명해주마. 리아는 지금 물이 가득 찬 유리병이다. 그런데 그 유리병에 금이 갔지.”

갑자기 많은 신성력이 터져 나온 탓에, 리아의 몸 어딘가에 금이 갔다.

“금이 갔으니 물은 좁은 틈을 타고 졸졸 새겠지. 문제는 그 병이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것이다. 물은 계속 솟아오를 테니 물줄기는 점점 거세질 거다. 아주 미세하던 구멍도 점점 커질 거고.”

그리고 종극엔, 쾅.

“완전히 깨지는 거다.”

터져 나오는 신성력을 버티지 못한 리아의 몸은 깨지고 말 거다.

“그럼 그 틈만 막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그 틈만 막으면 되지.”

방법을 알면서 왜 막지 않냐는 그의 눈빛에 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딜리언. 네가 해라.”

“뭐?”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리아의 이마를 닦아주던 딜리언이 눈을 찌푸렸다.

“네 저주로 리아의 신성력을 눌러라.”

신성을 가진 해리스나 자신이 리아의 몸에 손을 댄다면, 동화로 인해 더 빠르게 신성력을 토해낼 거다.

하지만, 리아의 신성력과 상극인 딜리언의 저주라면?

때로는 약이 독이 되고, 독이 약이 되는 법.

이 방법뿐이다. 이 녀석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저주는 리아 씨의 신성력을 잡아먹으려 할 텐데?”

“네가 조절해야지.”

기억도 없는 사람에게 알아서 하라니.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단은 믿고 있다. 딜리언은 성공할 거다.

“몇 번이고 리아의 신성력을 느껴봤으니 어렵지 않을 거다. 리아와 접촉하기만 하면, 느껴질 거야.”

신성력을 느껴봤다고? 두 사람의 대화에 해리스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확신에 찬 나단의 목소리에 딜리언은 리아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바싹 마른 버석한 입술,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밭은 숨.

딜리언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뜨거운 숨이 그의 입술에 닿아 부서졌다.

하지만 입술이 닿기 직전, 딜리언은 고개를 틀었다.

그의 입술이 향한 곳은 리아의 목.

심장과 가장 가까운 그곳에 입술을 묻은 딜리언이 이를 드러냈다.

“윽.”

찌릿, 하고 올라오는 통증에 리아가 눈을 찌푸렸다. 의식을 잃었음에도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딜리언은 달래듯 리아의 뺨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숨을 불어 넣었다.

신성력과 저주가 부딪히자 리아가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흐윽, 윽.”

딜리언은 저를 거부하는 리아의 몸을 힘껏 껴안은 채,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빌어먹을.’

리아의 목에 입술을 묻은 딜리언은 자조했다.

리아는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데, 본능에 충실한 제 몸은 그녀의 신성력에 나른하게 풀렸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리아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냥 손만 잡아도 되는 것을…….”

나단은 눈앞에서 펼쳐진 기행에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과격한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거세게 딜리언을 거부하던 신성력은 서서히 몸집을 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아의 숨이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네놈의 저주가 도움이 될 때가 올 줄이야.”

나단이 안도의 숨을 터트렸다.

“하아.”

간신히 저주를 제어한 딜리언도 막혔던 숨을 터트렸다.

딜리언은 새근새근 솜털처럼 부드러운 숨을 내쉬는 리아를 바라보다 그녀의 옆에 드러누웠다.

“리아 씨도 이렇게 힘들었을까?”

“리아가 너인 줄 아느냐. 그 정도로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이런 순간까지도 나단은 리아의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네.”

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한숨을 돌리고 있던 그때, 딜리언의 허리춤에 달린 통신구에 붉은빛이 돌았다.

<전하! 어디에 계세요? 괜찮으신 거예요?>

카나에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딜리언의 신경은 오로지 리아에게 꽂혀있었다.

카나에의 말에 대답할 정신조차 없는 딜리언을 대신해, 해리스가 답했다.

“나다. 딜리언은 나랑 같이 있다. 나단 님도 찾았어.”

<해리스 님? 전하께서 괜찮으신 건 맞죠?>

“이 녀석이야 늘 멀쩡하지. 왜? 무슨 일 있나?”

<다수의 암살자를 발견해서요. 이쪽은 저희가 다 처리했는데, 해리스 님 쪽은 괜찮으세요?>

“여기도 다 처리했다. 다들 무사해.”

<다행입니다. 저희가 그리로 갈까요?>

“아니, 밖에서 만나자.”

통신을 마친 해리스는 얼굴을 붉힌 채 어버버거리는 루도의 팔을 두드렸다.

“루도, 정신 차리고 나가자.”

“앗, 넵, 넵!”

열일곱의 소년에겐 퍽 자극적인 장면이었는지, 루도는 고장 난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그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암살자 무리를 제거하는 모습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혼자 내버려 둬도 일 잘하는 루도를 뒤로한 해리스는 앞서 나가는 딜리언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좀 떨어져라. 리아 씨가 불편해하잖아.”

“네놈이야말로 제대로 안아. 리아가 불편해하잖아.”

지금은 평범하게 나단과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아니, 저것도 평소 모습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살벌한 눈빛, 그리고 리아가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설마, 정말로…….’

해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품듯 리아를 껴안은 딜리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어느 한 방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자가 있다더니, 정말이었군.”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지 남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천하의 딜리언 시나이즈가? 여자?”

“네, 쓰러진 여자를 소중히 안고 돌아갔습니다.”

딜리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감시역을 맡아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단 말이지.”

처음엔 웬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황태자의 명령으로 약초를 찾으러 간 놈이 여자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여자를 노렸는데 이게 먹혀들 줄이야.

“렉스터 님, 한 번 더 시도해볼까요?”

부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렉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부하의 얼굴에 렉스터가 피식 웃었다.

“천하의 딜리언 시나이즈 그놈에게도 약점이 생겼으니 충분한 수확이지.”

멍청한 것.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소중한 것은 절대 만들지 말라고.

비죽 솟은 입꼬리가 한껏 비웃었다.

“네 생각은 어때. 딜리언이 그 여자를 데리고 돌아올 것 같나?”

“두고 오지는 않을 겁니다. 딜리언은 렉스터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그 여자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부하는 전과 달리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그런데, 딜리언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이상해?”

저주에 걸린 놈이 멀쩡할 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렉스터는 들려오는 이야기에 눈을 찌푸렸다.

“평소의 딜리언 시나이즈가 아닌 듯했습니다. 분위기도 평소보다 유하고, 시종일관 웃고 있었습니다.”

“소중한 것이 생기더니 변했나 보지.”

“그게 아니라, 정말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지만, 그간 자신이 본 딜리언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기억을 잃은 것처럼…….”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은 렉스터가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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