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29)화 (29/143)

29화.

* * *

빌헬름의 북단, 검은 숲.

땅이 썩고, 나무가 메마르고, 마물이 들끓는 그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거대한 성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허름하고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에선,

“아아악!”

귀신의 곡소리인 양 스산한 비명이 높게 울려 펴졌다.

“이거, 놔! 아악! 놓으라고!”

“우리 리아를 어떻게 한 것이냐!”

“악! 이 망할 부엉이, 당장 내 머리카락 놔! 아악!”

“우리 리아 털끝 하나 건드려봐라! 네놈들 싹 다 죽여버리겠다!”

“젠장! 너희 도대체 뭘 잡아 온 거야!”

난장판이 된 방에서 바닥을 구르는 사내가 고통 속에 꿈틀거렸다.

그들은 제 동료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부엉이를 당황한 얼굴로 바라봤다.

“……저거 뭐냐?”

“말하는 부엉이인 것 같은데…….”

“누가 귓구멍이 막혀서 그걸 물어본 줄 알아? 어떻게 부엉이가 말을 하냐고!”

“그러게…….”

“저것도 돈 좀 꽤 되지 않을까?”

이 머저리 같은 길드의 대장인 악트는 빙글빙글 도는 대화에 이마를 탁 쳤다.

“여자를 잡아 오랬잖아! 왜 부엉이가 걸린 거냐고!”

그것도 웬 쌈닭이!

그들의 목표물은 검은 숲에 홀로 사는 약초꾼이었다.

정확히는 약초꾼과 함께 지내는 어떤 남자가 목표였지만, 그를 잡기 위해선 꼭 그 여자가 필요했다.

‘일종의 미끼지.’

아주, 아주 중요한 미끼. 그러니 그들도 고가의 마도구를 서슴없이 던져줬을 터.

그만큼 여자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그 여자를 놓치다니.

‘실패하면 죽는다. 무조건 죽을 거야.’

시시각각 변하던 악트의 얼굴을 바라보던 부하가 입을 열었다.

리아를 위협한, 얼굴에 긴 흉터가 있던 그 사내였다.

“대장. 걱정 마. 저 부엉이, 그 여자가 엄청나게 애지중지하던 놈이거든. 분명 찾으러 올 거다.”

“……모지스. 그 말 믿어도 되겠지?”

“지금 나가서 다시 잡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빠를걸.”

악트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건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장, 꼭 이 성에서 해야겠어? 여기 터가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래. 여기 저주받은 숲이잖아. 마을 사람들도 쉬쉬하는 곳인데 왜 하필 여기야.”

사내들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덩칫값 못 하긴! 저주는 무슨 저주. 그냥 숲이 죽으니까 도망친 거……!”

쾅!

“헉!”

깜짝 놀란 악트가 어깨를 떨며 뒤를 돌았다.

갑자기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부하가 문손잡이를 잡고 눈을 도르륵 굴렸다.

“부담스럽게 왜 쳐다봐?”

대장을 힐끔거리는 동료들의 눈빛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악트가 부하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노크! 노크! 손은 장식이냐?”

“악! 왜 나한테 화풀이야!”

“안 그래도 흉흉한 얘기 중이었는데. 콱!”

“뭐라는 거야! 밖이나 봐! 목표물이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고!”

악트의 시선이 모지스에게 닿았다.

“말했지? 온다니까.”

어깨를 으쓱이는 한없이 가벼운 모습에 악트가 안도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쉬었다.

“예정대로 준비해라. 명심해라. 실패하면 우린 다 같이 X되는 거다. 알겠냐?”

“설마 실패하겠어? 대장은 너무 빡빡해서 문제야.”

“너는 그 태평한 태도가 문제다. 만약이란 게 있잖냐. 만약!”

“네네, 알겠습니다.”

“빈둥대지 말고 빨리 움직여!”

악트의 말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단에게 붙잡힌 녀석만 빼고.

“젠자아앙! 나 좀 살려 달라고!”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물었다! 이 호랑말코 같은 녀석아!”

“아아악!”

* * *

카나에의 마법 덕분에 수월하게 나단의 위치를 찾은 우리는 곧장 성으로 향했다.

다행히 성이 위치한 곳은 마물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곳이라 어렵지 않게 진입할 수 있었다.

성 정문 앞에 선 나는 기시감에 눈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언젠가 이 성에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리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딜리언을 바라보자, 그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딜리언 씨가 불렀잖아요.”

“제가요?”

눈을 깜박이던 딜리언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 어디서든 제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저를 좋아하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시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기가 허해졌나. 헛소리를 다 듣네.

“그나저나 여기, 규모가 상당하네요.”

카나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방도 많고요.”

당연한 소리였다. 다 쓰러질 것 같아도 명색이 성인데 작을 리가.

신의 사랑을 받은 아이가 머물던 곳이라, 한때는 빌헬름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숲이 죽어가기 시작하자, 다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성을 버렸다.

그렇게 방치된 지 백 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곳엔 흉흉한 소문만 더해질 뿐이었다.

귀신이 나온다느니, 마물이 서식하고 있다느니.

거기다 여기저기서 악취가 풍기다 보니, 질 나쁜 도적들조차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 바로 이 성이었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흩어져서 찾는 게 빠르겠어.”

성을 둘러보던 해리스가 말했다.

“난 리아 씨와 함께 가겠다.”

잽싸게 내 옆자리를 차지하는 딜리언을 보는 해리스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마음대로 해라. 그럼 내가 동쪽을 맡도록 하지.”

“저는 전하와 마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열혈기사 루도가 손을 번쩍 들었다.

“방해 말고 빠져라. 너희도 마찬가지다.”

“마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딜리언과 나의 타박에 루도가 우물쭈물하며 손을 내렸다.

가엽게 내쳐진 루도를 향해 손을 뻗은 건 해리스였다.

“루도, 너는 나를 따라라.”

그리하여 해리스와 루도가 동쪽.

엘드먼과 카나에, 제리가 서쪽.

벤은 남아서 기절한 클로드를 지키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딜리언과 나는 본성을 살피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내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나는 토를 달지 않았다.

왜냐고?

‘여기 무서워!’

귀신은 딱 질색이다. 거미는 더더욱 질색이야.

이 고성은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모아둔 총 집합체였다.

“찾으면 이걸 통해서 연락주세요. 통신구예요.”

카나에가 작은 구슬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우리 먼저 간다.”

나는 앞장서는 딜리언의 뒤에 바짝 붙었다.

“어두운 곳 싫어합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밝은 밖과 달리 어둑한 내부에 눈을 찌푸렸다.

성 주변을 둘러싼 나무 때문에 빛이 잘 들지 않은 탓이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당연하잖아.’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걸음을 바삐 놀렸다.

최대한 빨리 나단을 구출해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앞장설 자신은 없다. 나는 얌전히 그의 옆에서 발을 맞추며 걸었다.

별안간 딜리언이 발을 멈췄다.

“왜, 왜 그래요.”

“저기 뭔가 있습니다.”

덩달아 멈춘 내가 묻자 딜리언이 앞을 가리켰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검은 물체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악!”

깜짝 놀란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딜리언의 팔에 매달렸다.

진짜 싫어! 무섭다고! 나는 B급 공포 영화도 못 보는 사람이란 말이야!

딜리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신성력으로 악령 제령이 가능하던가. 애초에 잡을 수는 있나. 신전에서 그런 걸 배운 기억은 없단 말이야!

영화에서 본 퇴치법을 줄줄이 떠올리던 그때였다.

“미야옹.”

응? 미야옹?

귀신과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소리에 슬쩍 고개를 들자 검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먕.”

바보. 그렇게 들리는 건 내 착각이겠지.

고양이는 한심하단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떨떠름히 지켜보던 나는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낮은 웃음소리에 입매를 굳혔다.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떡하지.”

그제야 딜리언의 품에 안기다시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재빨리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쪽팔려……!’

딜리언의 미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귀여워하는 것 같아서 더 민망했다.

큼큼, 헛기침을 한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뭐,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눈앞에 불쑥, 커다란 손이 내밀어졌다.

“잡을래요?”

“허, 제가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그래요? 됐거든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내 손은 이미 딜리언의 손을 붙들고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젠장, 무서워 죽겠네.’

“하하.”

“웃지 마요. 뭐 튀어나올 것 같으니까.”

들썩거리는 딜리언의 어깨를 노려봤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 웃으라니까요!”

“리아 씨가 먼저 손 잡아준 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자꾸 웃음이 나네요.”

딜리언은 이때다 싶어 내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엮어 깍지를 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처음 아닌데…….’

지난번 딜리언이 폭주했던 그날, 내가 먼저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아주 간절하게 말이다.

본인이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나는 딜리언과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오늘 실컷 잡았으니 됐죠?”

반나절 사이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걸까.

전처럼 딜리언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일도 실컷 잡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꿈도 크셔라.”

“원래 꿈은 크게 꾸는 거죠.”

“너무 크면 펑 터지는 거 몰라-응?”

어느새 나타난 나비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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