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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차 괴물 공작이 나를 아내로 착각한다 (15)화 (15/143)

15화.

“이게, 왜 이런…….”

이상하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나는 분명 저주를 잠재웠는데, 이건 왜 아직도 요동치고 있는 거지?

“나단. 왜, 왜 이러는 거야?”

지금껏 실패를 겪어본 적 없는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딜리언의 저주를 유심히 본 나단이 쯧쯧, 혀를 찼다.

“딜리언 녀석 도대체 뭘 주워 먹은 거냐. 저주가 강제로 날뛰고 있어. 네 힘으로 억지로 눌렀지만, 곧 다시 터질 거다.”

“강제로 날뛴다고……? 왜?”

“무언가가 딜리언의 저주를 계속 자극하고 있으니까.”

강제로 날뛰는 저주, 멈추지 않는 폭주.

그 순간, 저 멀리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달랑 세 줄. 불친절할 정도로 짧게 언급된 내용이었으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폭주한 딜리언이 마을 하나를 날려버렸다고. 그래서 그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고.

‘이번 일을 말하는 걸까?’

나는 위화감이 느껴지던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음습하고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건,

“저주 촉진제…….”

폭주시켜 통째로 날리고, 학살자라는 낙인을 찍어 가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약.

말 그대로 저주를 끊임없이 자극해 강제로 폭주하게 만드는 약이었다.

‘흘러가듯이 나온 이야기라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지금이 맞아.’

그 말인즉, 체내에 흡수된 약물을 정화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다행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긴장으로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아래로 처졌다. 입에선 안도의 숨이 터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 몸이 지치겠지만 다행이란 생각만 들었다.

‘그나저나 이 정신 빠진 계획을 짠 놈은 누구야?’

딜리언이 폭주하면 근처에 있는 생명은 모두 죽는다.

가장 먼저 죽는 건 딜리언을 습격한 암살자들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 계획을 세운 미친놈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겠지.

‘하여튼 미친 세계. 제정신인 사람이 없어요.’

나는 딜리언에게 신성력을 불어넣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흐릿하지만, 딜리언을 노린 녀석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 이름이 뭐더라.’

도대체 어떤 망할 새끼인지는 몰라도 다음에 만나면 뚝배기를 깨버릴 테다.

“으윽.”

딜리언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아프겠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 심해지면 더 심해지지. 딜리언을 암살하는 데 실패한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가 정확히 어디에,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모르는 나는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메이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단.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전령새가 있을까?”

“메이에게 연락하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녀석한테 보낼 거야.”

메이와 함께 천재라 불리는 사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근처에 움직일 수 있는 녀석이 있나 알아보마.”

“그럼 이걸 전해줘.”

나는 한 손으로 종이에 상황을 대충 휘갈겼다.

[결계석과 방어석이 필요해. 최대한 빨리 보내줘. 값은 다음에 치를게.]

결계석이 깨졌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괴한이 딜리언을 노리는 것도 문제지만, 들끓는 마물도 위험했다.

나단도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곧장 몸을 일으켰다.

“마탑으로 보낼까?”

나는 머리끈으로 종이를 말아 나단에게 내밀었다.

“응. 이거면 그 녀석이 알아볼 거야.”

“다녀오마. 혼자 괜찮겠어?”

“응. 다녀와.”

나단이 전령새를 찾아 떠난 후, 나는 딜리언에게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멀리서 소쩍새가 울었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던 그때, 마침내 딜리언의 의식이 돌아왔다.

“딜리언 씨! 정신이 들어요?”

“윽, 제가 왜…….”

“다행이에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하이패스 끊고 저세상 가는 줄 알았다고.

혼자 가면 몰라, 네가 저세상 갈 정도로 심각하게 폭주해서 애꿎은 나도 같이 죽을 뻔했다고!

논개 작전이야? 동귀어진이냐고!

“내가 진짜, 진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목소리 끝이 꼴사납게 떨렸다.

“미안합니다.”

“딜리언 씨가 왜 사과를 해요!”

나쁜 건 그 개자식들인데!

“그 새끼들은 전부 불지옥에 처박혀서 똑같이 고통받아야 해요. 모기한테 걸려서 얼굴 다 쥐어 뜯겼으면 좋겠어요. 인중 물리고 손바닥 물리고 발바닥 물리고! 눈꺼풀도 물려라!”

저주에 가까운 말에 딜리언이 실실 웃었다.

‘이걸 듣고 웃는다고? 역시, 아직 제정신이 아니야.’

아이러니하게도 딜리언 덕분에 화를 가라앉힌 나는 허공에 주먹질하던 손을 내려 딜리언의 손을 감쌌다.

“딜리언 씨. 약에 당했어요.”

“약?”

“딜리언 씨 팔에 뭐 맞았죠? 그거 저주 촉진제예요. 맞으면 강제로 저주가 폭주하는 약인데, 뭔가 기억나요?”

희미하게 뭔가가 떠오르는지 딜리언이 사납게 눈을 찌푸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화살을 팔로 막았는데 갑자기 이게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저주를 꾹 누른 딜리언이 이를 세게 물었다. 턱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 것까지 기억납니다.”

말을 끝맺은 딜리언의 얼굴은 말을 걸기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

“죄책감 드세요?”

“죄책감이요?”

픽, 딜리언이 헛웃음을 뱉었다. 비틀린 입매가 싸늘했다.

“그냥,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제 몸인데도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기억을 잃어도 이런 건 여전하구나. 하긴 이쪽이 딜리언다웠다.

죄책감이니, 동정이니. 그런 건 딜리언과 어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를 죽이러 온 쓰레기들을 동정하는 건 더더욱.

“이젠 괜찮으니까 기분 풀어요. 슬슬 마무리하는 중이니까 다시 주무세요.”

나는 손등을 덮은 뜨거운 열기에 놀라 움찔거렸다.

“리아 씨, 이 힘은 뭐죠?”

“신성력이에요.”

나는 순순히 밝혔다. 그에게 신성력을 쓴 이상, 더는 숨길 수 없었다.

“리아 씨가 숨기려던 비밀이 이거였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약점으로 삼을 건가요.”

“그럴 리가요. 무덤까지 안고 가야죠.”

“꼭 그러길 바랄게요.”

딜리언이 말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땐, 이미 이곳을 떠났을 테니까.

“리아 씨. 이런 건, 아무한테나 해줍니까.”

‘이런 거? 이런 게 뭐지?’

몸에 주입된 약물을 정화하는 일을 말하는 건가?

“아무한테나 하진 않죠.”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딜리언의 입술이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딜리언 씨가 두 번째예요.”

부드럽게 풀린 눈이 싸늘하게 굳었다.

“첫 번째는 어떤 새끼입니까.”

“제 친구요. 메이라고 전에 말한 마법사 친구예요.”

“여자?”

“그럼 남자일까 봐요?”

뜻밖의 메이 성별 논쟁에 헛웃음을 터트리자, 싸늘한 눈이 이번엔 봄바람처럼 사르르 풀렸다.

‘약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구나.’

손바닥 뒤집듯 휙, 바뀌는 감정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왜요?”

딜리언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뺨은 왜 이래요.”

“아, 아까 유리 조각이 튀어서 베였나 봐요.”

딜리언이 내 뺨 주위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알싸한 통증에 눈가를 찌푸리자 딜리언이 손을 물렸다.

그리고 제가 더 아픈 표정으로 물었다.

“아픕니까?”

“별로요.”

아프긴 당신이 더 아프겠지.

나는 딜리언이 만졌던 뺨을 손으로 훑었다. 그를 치료할 때와 달리 무성의한 손길이었다.

“상처가, 나았네요.”

순식간에 새살이 돋은 내 뺨을 본 딜리언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이제 됐죠?”

“다음부턴 리아 씨 상처부터 치료하세요. 흉 지면 어떡합니까.”

“딜리언 씨 상처가 더 급하거든요?”

자신의 고통보다 나를 더 신경 쓰는 모습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입술을 꾹 물고, 딜리언의 상처를 노려보던 그때였다.

손등 위로 크고, 뜨거운 손이 겹쳐졌다.

“리아 씨, 따뜻합니다.”

그는 마치 음미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좀 더 깊이 닿고 싶다는 듯이.

딜리언의 뺨과 손 사이에 갇힌 나는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상냥하고.”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뜨거웠다.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려 손을 빼고 싶었지만, 아직 정화가 끝나지 않았다.

“다정합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서 무어라 대답했다간 그에게 말려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에 맞춰 심장이 쿵쿵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딜리언의 눈을 가렸다.

“끝났어요. 이제 안 아플 거예요.”

나는 천천히 몸을 물렸다.

‘환자인 딜리언보고 가라 할 수도 없고, 내가 딜리언 방에 가서 자야겠네.’

잠자리를 고민하던 그때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끌려갔다.

얼떨결에 딜리언의 품에 갇히게 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디, 딜리언 씨?”

“추워요.”

하긴, 추울 만했다. 딜리언이 폭주하면서 창문이란 창문을 죄다 깨부숴버리는 바람에 지금 내 집은 얼음성이나 다름없었다.

“이불 더 가져다줄 테니까 팔 좀 풀어봐요.”

“춥습니다.”

딜리언은 같은 말만 반복하며 칭얼거렸다.

허리를 옥죄는 팔을 풀어내려 해봤지만, 딜리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를 놓아주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목덜미가 간질거렸다.

“잠깐, 간지러워요!”

“제게 걸린 저주,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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