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잘 지냈어?”
나비가 날개를 팔랑이며 몸을 들썩였다.
“눈이 와서 신났나 보네.”
내 주변을 부산스레 날아다니는 나비는 마치 신이 난 아이 같았다.
실제로 나비가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도는 나비들을 구경하던 그때, 나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아, 이제 꽤 능숙해졌구나.”
“수련한 지 일 년인데 기본도 못 하면 큰일이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가락 끝에 앉은 나비를 가볍게 날려 보냈다.
수련. 단어가 주는 느낌은 거창했으나 실상은 별것 아니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신성력의 운용을 배우는 것이었으니까.
“네가 다짜고짜 나비를 실체화하라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 황금빛 나비는 진짜가 아니다. 그렇다고 허상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나비는 세계의 흐름 같은 존재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존재하나, 신성력이 없는 일반인은 볼 수가 없다.
다만, 지금처럼 방대한 신성력을 풀면 형체를 띠기 때문에 일반인도 나비를 볼 수 있다.
‘리아, 늘 말하지만 볼 수 있다면, 보이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나비를 실체화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친해지는 거였지.’
그건 어렵지 않았다.
나비들은 처음부터 날 잘 따랐으니까.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지휘자가 된 것처럼.
그럼 나비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것처럼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잘하고 있구나.”
나단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간간이 내게 칭찬을 건넸다.
“그런데 이게 정말 도움이 돼?”
약초를 키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됐지만, 매일 도를 닦는 기분으로 수련을 해야 할까?
“뭐든지 기본기가 중요한 법이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신성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되면 훗날 위험한 상황이 닥쳐와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거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그럼 좋겠다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녀석이 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 않느냐.”
딜리언. 그는 평화롭던 내 삶에 불쑥 끼어든 암초 같은 존재였다.
“조만간 딜리언, 그 녀석의 저주가 식사를 원할 거다.”
“하지만 전에 배불리 먹었잖아.”
내가 얼마나 많이 먹여줬는데. 죽기 직전인 반송장도 그만큼 신성력을 잡아먹진 않을 거다.
“배는 금방 꺼지기 마련이지.”
“좀 굶으라고 하면 안 돼?”
“리아 너라면 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은 상황에서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안 먹고 참을 수 있겠느냐?”
“…….”
그건 못 참지.
“걱정 말거라. 전처럼 무섭게 폭주하진 않을 거다. 짐승 한 마리의 생명력 정도만 해도 충분히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거다. 특수한 상황만 아니라면.”
“그야 그렇겠지만…….”
딜리언이 폭주하는 상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폭주한다는 건 목숨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저주를 제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딜리언은 강했다. 제가 가진 것들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했고, 저주가 날뛰어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즉,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폭주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기억을 잃어서 불가능하지만.’
“그 전에 내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듯싶구나.”
나단의 말처럼 눈은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뒷마당에 눈이 차곡차곡 쌓였다.
내 근심도 차곡차곡 쌓였다.
* * *
기억을 되찾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딜리언의 손에선 책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다.
어느 정도냐면, 식사와 수면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독서에 할애할 정도였다.
더는 청소에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덕분에 살림살이가 거덜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나를 향해 질문이 억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책을 주면 조용해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질문이 사라지긴커녕, 두 배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로하임 제국은 신성 국가예요. 건국사를 보면 유일신 ‘오벨러스’가 세상을 만들고 제국을 세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죠.”
딜리언의 앞에 펼쳐진 책은 역사 입문서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아동 서적이었다.
나는 큼지막하게 그려진 그림을 차례로 짚었다.
“신성 국가인 만큼 신전의 힘이 커요. 수도엔 유일신인 ‘오벨러스’를 모시는 대신전이 존재하고, 그 아래로 신의 충실한 종이자 사도였던 천사들의 이름을 딴 신전이 제국 각지에 자리하고 있죠.”
내가 몸담고 있던 나다니엘 신전도 그중 하나였다.
“신성 국가인 만큼 신권은 강력하나, 정치엔 관심이 없어요. 이들은 오로지 신을 모시기 때문이죠.”
선대 대신관은 어땠을지 모르나 현 대신관은 권력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신전의 견제가 없으니, 황권 또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요.”
그가 대신관이 된 지 200년이 넘었으니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 절대 권력인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황실만큼이나 큰 세력이 있죠.”
나는 책 어귀를 검지로 짚었다.
“시나이즈 공작가.”
건국 당시부터 존재하던 가문. 어쩌면 황실보다 더 오래된 존재.
천 년이란 시간 동안 몇 번이고 황제의 성이 바뀔 동안 시나이즈 공작가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즉, 시나이즈는 제국과 함께 커 온, 살아있는 역사였다.
내 설명을 경청하던 딜리언이 질문을 던졌다.
“자체적인 세력을 가질 정도의 권세가인데 황실이 견제하진 않습니까.”
“딜리언 씨 말처럼, 견제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다들 실패했고, 결국엔 공생하는 걸 택했죠.”
황실로서는 딜리언을 견제하는 것보단, 손을 잡는 게 이득이었다.
왜냐면 시나이즈가 지지하는 자가 다음 대의 황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시나이즈 가문을 킹메이커라 불렀다.
시나이즈가 고른 자는 반드시 황제가 되니까.
“시나이즈가 먼저 황실을 버리지 않는 한, 황실은 시나이즈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을 거예요.”
특히나 이번 대의 주인은 딜리언이다.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위험한 존재였다.
“이것만 보면 시나이즈가 비선실세처럼 보이겠지만 이쪽도 정치엔 크게 관심 없어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참고로 이 의견은 딜리언이 직접 말한 것이다.
그는 제 사람, 제 영지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서 치고받고 싸우든 말든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사람이 딜리언이었다.
물론 시나이즈 가문이 대대로 독불장군인 경향이 있지만 딜리언은 그중 역대 최고라 해도 좋을 만큼 정세에 무심했다.
“잘 이해했나요. 딜리언 학생.”
“네, 이해했습니다. 리아 선생님.”
딜리언은 종종 의외의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처럼 슬쩍 장난을 걸면 피하지 않고 받아줬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훌륭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한술 더 떠 받아칠 때도 있었다.
‘내가 좀 편해진 걸까?’
그런 거였으면 좋겠는데.
조금 들뜬 나는 딜리언이 던지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으나,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이해가 안 갑니다.”
“선생님.”
“선생…….”
미치겠다. 돌아버릴 것 같아. 저 선생님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 짧은 사이에 기력이 쭉 빨린 나는 항복 선언을 했다.
“딜리언 씨, 저 선생님 그만할래요. 오늘부터 저는 도비예요.”
“도비가 뭐죠?”
“도비는 집요정이에요. 양말을 찾으면 자유가 되죠.”
나는 빨래 더미에서 양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도비는 자유예요!”
응. 도비는 자유니까 선생 역할 그만할 거야. 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옷을 갰다.
머리 위에서 나단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딜리언, 네가 너무 괴롭혀서 그런 거니 그만 묻거라. 리아 지금 과부하 걸렸다.”
“아, 그래서 헛소리를 했군.”
헛소리라니! 너무하네! 헛소리가 맞지만 듣는 도비 상처받는다고.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묻거라. 이 몸이 이래 봬도 오래 살아서 아는 게 많거든.”
“네가?”
“그래, 내가 좀 동안이라 믿기 힘들겠지.”
“미쳤군. 거울은 보고 살지 그래. 아니면 벌써 치매라도 온 건가.”
“네 이노옴!”
머리 위에서 살벌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응,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니까.
* * *
나단의 방대한 지식을 딜리언은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걸 내어준 나단은 생명을 쪽쪽 빨린 것처럼 퀭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리아, 내가 깨어날 때까지 건들지 마…….”
비틀비틀, 지친 나단이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안타까운 눈으로 나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달리 딜리언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만한 지식을 삼켰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리아 씨, 전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연스럽게 다음 표적이 된 건 바로 나였다.
“성은 있었을까요? 신분은 뭐였을까요? 직업은?”
무차별적 질문 폭격이 나를 공격했다.
“저도 잘…….”
나는 빨래를 개던 손을 바삐 놀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게 가족은 있을까요?”
미세하게 느껴지는 그리움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럼요. 당연히 있겠죠. 분명 딜리언 씨를 애타게 찾고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네. 분명 그럴 거예요.”
딜리언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은 모두 충성을 맹세한 이들이다.
그러니 눈만 그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딜리언을 찾아낼 거다.
‘그렇게 되면, 나는 곤란해지겠지만.’
나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이건 진실이군요.”
“이건……?”
의미심장한 말이다.
꼭 내가 거짓을 말한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