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95)

<외전13화>

이게 무슨 말이지? 섬뜩했다. 지안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강냉이는 남자들 사이에서 이빨을 나타내는 은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반구 강냉이는 윗니? 윗니가 위험해지는 수준으로 인공호흡을 하겠다고? 이 미친 오빠가…….

놀란 지안은 본능적으로 몸을 벽에 바짝 붙였다. 절대 몸을 돌려 입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몸을 납작하게 벽이 붙이고 얼굴을 오른쪽으로 슬며시 돌렸더니, 등 뒤에 바짝 붙은 오빠의 단단한 가슴이 느껴졌다. 

빠른 비트박스처럼 심장박동이 쿵쿵쿵 휘몰아쳤다. 아까 주방에서 맡았던 산뜻한 향도 풍겨왔다. 이 오빠, 살 냄새인가? 앗, 내가 왜 이래…….

어쨌든 오빠의 숨결이 가까워졌다. 기겁한 지안은 그를 피해 얼굴을 반대쪽으로 슬그머니 돌렸다. 능구렁이가 담을 넘듯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랬더니 오빠의 뜨거운 숨소리가 또 쫓아왔다. 자꾸만 오빠의 얼굴이 따라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오빠가 내뿜는 거친 호흡이 귀에 있는 솜털을 오소소 세웠다. 숨이 막혔다. 그의 입술과 지안의 귓바퀴는 너무나 가까웠다. 

그는 말과 말 사이에도 호흡을 때려 박고, 말을 시작할 때도 호흡을 때려 박는 남자라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상당히 위험했다. 

그가 파열음을 발음하려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붙였다가 떼어내니, 공기를 터뜨리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풋사과. 드디어 눈 떴네.”

“…….”

“죽겠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고.”

“…….”

“살았으면 됐어. 집에 가자, 이제.”

“…….”

그가 멀어지자, 정말 정말 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지안은 벽에서 몸을 떼어냈다. 

오른쪽 다리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지면을 단단하게 딛고, 직립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인공호흡을 해오는 것보다는, 쥐를 밟은 발로 북한 군인들처럼 씩씩하게 걷는 게 나았다.

“진짜 괜찮아?”

심박수가 200까지 치솟은 상태였지만.

“네……. 죽은 쥐 대가리를 밟은 게 인생에서 뭐 그리 큰일이라구요…….”

“눈알이 튀어나와서 심장마비 올 정도로 놀란 거 아니었어?”

“아, 아니요. 대가리를 제대로 밟으면 눈알이 튀어나올 수도 있죠…….”

“눈알 두 개 다 튀어나왔던데?”

“제가 체중을 실어서 완전 세게 밟았거든요…….”

“오른쪽 신발 발바닥에 터진 눈알이 붙어 있었어.”

“얼마나 다행이에요. 제 입술에 붙은 건 아니니까요…….”

지안은 문득 걷다가, 태준이 계속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어깨 한 쪽이 홀랑 젖어 있었다. 

“아, 저는 제 우산 쓸게요.”

지안은 그가 들고 있던 자신의 우산을 건네받고는 촤라락 펼쳤다. 걸어오는 내내 쥐에게 미안했다. 

왜 죽어서 길바닥에 나와 있었던 거니. 정말 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 부디 좋은 곳으로 가렴. 묻어주지 못해 미안해.

***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 지안은 자꾸만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농락당한 게 확실한데. 바보같이 그때는 어버버해서 사람 놀리지 말라고 말도 못했다. 아, 진짜 신경질 나……. 

아니, 무슨 말이 그래? 왜 예측이 안 되냐고! 죽은 쥐를 밟아서 떨고 있는데 왜 생뚱맞게 인공호흡이야? 내가 쓰러진 것도 아닌데!

콧김을 뭉근하게 내뿜다가 지안은 또 의구심이 들었다. 

“쥐를 인공호흡 한다는 거였나? 아, 진짜 이상한 오빠야. 머리가 좋아서 미쳤나 봐…….”

그 오빠는 말을 가지고 노는 건지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만만해 보여? 흥. 다음에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근데 천재를 이기는 방법이 없을까? 아, 왜 나는 천재가 아닌 거야……. 

***

다음 날. 학교에 갔던 지안은 오후 수업이 휴강돼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아, 냄새가 너무 좋잖아…….”

빵순이가 빵집 앞을 그냥 지나치는 건 곤욕이다. 지안은 자석에 이끌리듯 빵집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노릇노릇 예쁜 빵들 때문에 지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연유 바게뜨 금방 나왔네요?”

“네. 1분도 안 됐어요.”

지안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연유 바게뜨를 사서 집에 왔다. 어라? 현관에 남자 신발이 있었다. 형부가 이 시간에 집에 왔구나?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샤워하나 보다. 원래 형부는 안방에 있는 욕실을 쓰는데 혼자니까 아무데나 들어갔나 봐. 

지안은 소파에 앉아서 조금 전에 사온 빵을 와구 베어 물었다. 바사삭. 지안이 사랑하는 시간. 

달콤하고 보드라운 연유크림이 입술에 가득 묻었을 거다. 하지만 닦아봤자, 또 묻을 거니까 다 먹고 닦을 생각이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끊겼다. 우리 형부, 다 씻었구나? 혼자 있는 줄 알고 발가벗고 나오면 곤란하니까.

“형부! 나 일찍 왔어요!”

“…….”

대답은 없고, 문을 여는지 딸칵딸칵 소리만 들렸다. 아, 욕실 문이 며칠 전부터 살짝 맛이 갔다. 

밖에서 당겨줘야 문이 잘 열린다. 물론 안에서도 요령만 있으면 얼마든지 열 수 있는데, 형부는 저 욕실을 안 써서 잘 모르나 보네. 

“형부! 안에서 당기면서 열어야 해요!”

지안은 빵을 들고 욕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잠깐만요. 형부.”

지안이 문을 당기자. 어머나.

“…….”

“…….”

난데없이 눈앞에 한태준이 서 있었다. 편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상의를 벗은 상태로 말이다. 

남성 잡지 표지 모델 같은 몸이었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몸매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물기를 적당히 머금은 머리카락과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는 색기를 제대로 휘감고 있었다……. 그의 19금 소설처럼.

그, 근데 이 변태 오빠가 왜 우리 집에서 샤워를? 혼비백산한 지안이 손에서 빵을 놓쳤다. 지안이 빵을 밟아버렸고,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뒤로 넘어갔다.

“어? 어!”

안 넘어져 보겠다고 파닥파닥하는 순간. 태준이 번개 같은 운동신경으로 지안의 뒤통수를 커다란 손으로 감싸서 가슴에 안았다.

“윽!”

지안은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태준의 몸 아래에 납작만두처럼 깔렸다. 태준이 지안의 머리를 받쳐준 탓에, 부서질 뻔했던 지안의 두개골은 안전했다. 

그런데 지안의 얼굴은 키 차이 때문에 그의 가슴에 정확하게 박혀 있었다. 태준이 샤워를 끝낸 직후라 과일 향의 바디 클렌져 냄새가 지안의 후각을 빠르게 마비시켰다. 

건장한 남자의 몸이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어서 정신은 아득해져만 갔다. 그의 몸은 뭉근한 열기를 내뿜고 있어서 압력 밥솥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침 그의 쇄골에 있던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건 또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물방울이 넓고 단단한 가슴 근육을 타고 내려오는 게 아찔했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데 그 물방울만은 중력의 법칙을 따라 움직였다. 

숨이 막혀 죽겠는데 죽지는 않았고, 몸이 뜨거워 죽겠는데 또 죽지는 않았으며, 목이 말라 죽겠는데 역시 죽지는 않았다.

하아……. 물방울이 더디게 흘러서 지안의 입술에 닿았다. 물방울은 뜨거웠고 촉촉했으며 이상한 본능을 자극했다. 

미치게 목이 탔던 지안은 저도 모르게 눈을 깜빡이는 동시에, 약간 벌려 있던 입술을 오므리며 침을 꿀떡 삼켰다. 

적막한 공간에 침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지안은 화들짝 놀라며 눈을 위로 들었다가 태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지안의 심장이 쿵 떨어져서 휘리릭 날아가 싱크대에 툭 처박혔다. 지안은 그의 몸을 밀어내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쪽 소리가 날 정도로 남의 맨살을 빤 것처럼 보였을 거다. 이를 어쩌면 좋니…….

그가 일어나는 사이, 지안은 눈을 굴렸다. 금방 일어났던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추궁을 당하기 전에 우리 집에 들어온 그를 몰아붙이는 게 나았다. 

이 오빠를 상대로, 천재를 상대로, 설욕전을 펼쳐야 했다. 보기만 해도 긴장이 되는 남자라, 죽을힘을 다해 용기를 끌어 모은 지안은 목소리를 높여 공격을 감행했다. 

“오빠가 왜 우리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있어요?”

“집에 갑자기 물이 안 나와서. 이준이 형이 집에 아무도 없다고 비번 가르쳐 주던데.”

“…….”

형부랑 이 오빠가 아는 사이였어? 아니, 근데 우리 형부가 잘못했네. 왜 비번을 마음대로 가르쳐주고 그래……. 

난감했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한 짓이 있었기에, 지안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다다 쏘아붙였다. 

“여기는 우리 형부 혼자만 사는 데가 아니잖아요! 근데 우리 집에 씻으러 오시면 어떡해요? 우리 집이 공중목욕탕이에요? 돈도 많아서 최고급 외제차 타고 다니시면서! 목욕비 칠천 원 아끼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면, 목욕비 아껴서 목욕탕 인수하시게요?”

“…….”

“오빠보다 서른 살 많은 목욕탕집 아줌마가 재혼 생각 있으신지, 자꾸만 바나나 우유 주면서 삼촌 있냐고 물어보시던데! 오빠가 이렇게 공짜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평생 목욕비 안 들게, 친구 오빠도 괜찮냐고 물어볼 걸 그랬네요!”

“…….”

후, 후, 당하기만 했었는데 처음으로 공격을 했더니 살짝 쾌감이 있었다. 짜릿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곧바로, 아이큐 163의 역공격이 들어왔다.

“너, 오빠 어떻게 생각하냐.”

“네?”

“오빠를 남자로 보냐? 이성으로 생각해?”

부릅뜬 지안의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네에? 아닌데요?”

그는 300년 전에 돌아가신 조상님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호통 쳤다. 

“윤지안! 나는 네 친구 오빠다! 행여나 내가 씹던 껌이라도, 네 입안에 들어가면 당연히 뱉어야 하거늘!”

“…….”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두려웠다. 금세 분위기는 역전되고 말았다. 그는 또 말 머리에 호흡을 심하게, 아주 심하게, 피가 마를 정도로 길게 때려 박더니.

“감히, 오빠의 꼭지를 빨아?”

“네에?”

당황한 지안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지만 오빠의 드라마틱한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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