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2화>
“너한테, 풋사과, 향이 난다고.”
“…….”
너한테, 하고는 침묵 2초. 풋사과, 하고는 침묵 1.5초. 말을 끝내고도 못 다한 말이 길게 남은 사람처럼 무려 15초간 눈빛 발사.
미친 19금 작가 한태준 씨께서 이빨로 시동을 걸어오고 있었다. 지안은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저, 저한테 내, 냄새 나요?”
“샴푸향인 것 같기도 하고, 파우더 향인 것 같기도 한데. 아니면 살 냄새, 인가?”
“…….”
살 냄새에 방점을 찍은 그의 눈빛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그,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향수 쓰냐.”
“아니요. 응? 아니아니, 가끔 쓰는데 오늘은 안 쓴 것 같은데……. 아니, 썼나. 저도 잘…….”
오늘 향수를 썼는지 안 썼는지, 지안이 미간에 힘을 주고 기억을 헤집고 있는데. 헉. 갑자기 그가 10센티미터 정도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지안은 붕어빵을 먹다가 실제 붕어대가리를 씹은 것처럼 깜짝 놀라며 상체를 뒤로 뺐다.
태준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치명적인 미소였다. 그의 까맣고 큰 눈동자가 반짝이는데 기분이 좋아보였다.
“좋다고. 냄새가.”
“…….”
지안은 또 어지러웠지만 그의 말을 작업 멘트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늘 이상했으니까.
눈빛은 보통 시크했지만 뭔가를 집요하게 바라볼 때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빛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었다.
말을 할 때도 깊게 생각하다가 꺼내는 건지, 필터링 없이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그의 모든 행동과 눈빛은 보통 사람들과 묘하게 리듬이 달라서 알 수 없는 세계의 사람 같았다.
“저, 사과 버릴게요. 더러워졌으니까…….”
왜 이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냥 버리면 되는데 하도 얼이 빠져서 그런 거다. 태준은 제자리로 가지도 않고, 또 누가 주방으로 오는지 힐긋거렸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장례식 때, 나 불러.”
“?”
응? 장례식? 누, 누가 죽었나? 생뚱맞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장례식이라는 단어 때문에 지안은 소름이 돋았다. 맥박이 정신없이 빨라졌다. 태준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또 던졌다.
“수육은 넉넉하게 주문하고.”
“?”
장례식? 수육? 장례식을 말하는 얼굴치고는, 너무 장난기 있어 보였다. 농담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지안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조금 전에 있었던 큰 사건이라면……. 사과가 바닥에 떨어진 일이었다.
‘우리 예쁜이, 전치 24주 나오겠는데.’
그는 전치 24주가 나오겠다고 했지만, 내가 버린다고 했으니까…….
아! 사과 장례식을 말하는 거구나! 장례식 때 올 손님을 위해서 수육을 넉넉하게 주문하라는 거였어! 지안은 번개를 맞고 머리가 번쩍 깨는 기분이었다.
“향은 머리에 꽂으면 된다.”
“!!!”
역시 사과 꼭지 부분에 향을 꽂으면 된다는 얘기였어! 외계인과 소통에 성공한 지구의 과학자가 된 것 같았다. 지안은 희열에 들떠서 작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하지만 이내 그를 정말 외계인 보듯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알아듣는다고 이러는 건지…….
아이큐 163인 사람이 보통 사람에게 유머로 폭격을 퍼붓는 것만큼 난감한 건 없었다. 출구 없는 유머의 동굴에 갇혀버렸다.
해석하느라 타이밍을 한참이나 놓쳤고, 커다란 남자 때문에 싱크대 구석에 가둬진 것과 같아서, 이건 당최 웃어지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이 남자에게 미친 끼가 있다는 생각은 확실하게 들었다.
게다가 그의 유머를 못 알아들어서, 머리가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나쁜 머리는 아닌데 말이야.
아이큐 163의 유머를 알아들었다는 티를 꼭, 꼭 좀 내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지안은 떨어진 사과를 표창장인양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지안은 보란 듯이 사과 한가운데를, 두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폭폭폭폭 다섯 번쯤 눌렀다. 그리고는.
“아후…….”
꽤 힘들었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며 손등으로 이마를 닦고 말을 이었다.
“심폐소생술을 해도 안 되네요.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봤지만, 안타깝게도 사과님은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러니 딸기님을 좀 드셔보세요…….”
“…….”
지안은 딸기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그는 미간에 힘을 살짝 줬고, 입꼬리가 올라갈 듯 말 듯했다. 무슨 표정인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출구 없는 유머의 동굴에서 탈출한 건지, 도리어 함께 갇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딸기 하나를 입에 가져다 물었다. 새빨간 야함이 그의 입속에 천천히, 아주 제대로 박혔다. 그의 눈썹 한쪽이 슬며시 구부러졌다.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이 아찔했다.
그게 미치게 위험한 느낌이어서, 마치 쏙 잡아먹히는 느낌이어서, 지안은 딸기 접시를 두고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와 문을 잠근 지안은 제 머리를 쿵 쥐어박았다.
“나 미쳤네. 심폐소생술이 웬 말이야…….”
***
“어? 술이 이것 밖에 없나?”
소희가 냉장고를 열고, 안을 살폈다. 그때 적응 못하고 있던 지안이 벌떡 일어났다.
“내가 마트 갔다 올게.”
“비 오는데 괜찮겠어?”
“그럼. 비가 무슨 대수라고.”
지안이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태준이 술잔을 놓고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섰다. 수찬이 태준에게 물었다.
“너 어디 가?”
“담배 피러.”
“끊은지 3년 됐다며. 어제 밤 단톡방에서 얘기하지 않았나?”
“아, 오늘 낮부터 피웠어. 갑자기 당기더라고.”
“좀 참지, 인마.”
“하나만 피우고 올게.”
참나. 후딱 먼저 나가기도 그렇고. 지안은 어정쩡하게 서서 기다리다가 그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아파트 입구로 나왔다. 빗방울이 바닥을 꽤 적시고 있었다. 지안은 우산의 펼침 버튼을 만지며 말했다.
“그럼 담배 피우세요. 저는 갔다 올게요.”
“아.”
“?”
“담배가 없네. 사러 가야겠다.”
“…….”
이걸 어쩐담. 또 변태작가님과 뜻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됐네……. 아까도 어색해서 죽을 뻔했는데. 지안은 지혜를 끌어 모아 거짓말을 했다.
“오빠는 어제 이사 오셔서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르시죠?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앞에,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편의점이 있어요. 옷에 빗물 튀면 안 되니까 거기서 담배 사세요…….”
갑자기 불편한 일이라도 생긴 듯 그의 눈썹 한쪽이 힐긋 올라갔다.
“너는?”
“…….”
그의 미간이 좁혀져서 약간은 사나운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지안은 곧 닥칠 태산 같은 침묵, 해저처럼 깊은 불편함이 두려웠다. 아랫배에 숨겨진 용기를 끄집어 올릴 차례였다.
“저는 여기서 왼쪽으로 갈 건데요. 멀어서 차 없이는 가본 적 없는데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했으니까, 장기 레이스를 펼친다 생각하고 거기로 갈 거예요…….”
“…….”
너무 과대포장 했나. 그의 호흡이 조금 전보다 거칠어진 것 같아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지안이 우산 펼침 버튼을 누르려는데, 충격적인 그의 발언이 지안의 발목을 탁 붙잡았다.
“나는 편의점 담배 안 좋아해.”
눈을 최대한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네에? 편의점 담배랑 마트 담배랑 달라요?”
“다르지. 맛이.”
“…….”
담배를 안 피워서 편의점 담배랑 마트 담배랑 다른지 몰랐잖아! 흐음, 편의점 새우깡이랑 마트 새우깡은 똑같은 것 같던데.
아니다. 마트 새우깡이 더 짰나? 눈뜨자마자 먹어서 짰나? 아, 되게 헷갈리네…….
“마트에 같이 가자.”
“…….”
대형 거미줄도 아닌 것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마트에 도착했다.
“마트. 생각보다 많이 가깝네.”
“…….”
조금 난감해진 지안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마트가 왜 가까워졌지? 월세 비싸서 옮겼나?”
“…….”
미칠 것 같은 침묵 속에서, 미치지 않으려 정신줄을 꼭 부여잡고 쇼핑을 했다. 지안은 골반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경보선수처럼 걸었다.
딱 살 것만 샀다. 태준이 비닐 봉투를 들었고, 각자 우산을 폈다. 가로등 몇 개가 고장 나 있어서 길이 좀 어두웠다.
조금 전보다 빗물이 더 고여 있어서, 지안은 웅덩이를 피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지안은 길바닥 한가운데 나와서 죽어 있는 쥐를 정통으로 밟았다. 뿌지직. 시뻘건 내장이 터져 나왔다.
“으악~~~~~~~~~!”
지안은 발바닥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오른발을 들고 낑낑거렸다. 태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어, 어, 어떡해요! 주, 죽은 쥐를 밟았어요, 어떡해! 아으으윽, 으으윽.”
지안은 너무 기겁한 나머지 우산도 팽개쳐버렸다. 쥐를 밟은 오른쪽 다리에 힘이 쫙 빠졌다. 지안은 두 손을 벽에 짚고 왼발에 체중을 실고서, 감전된 것처럼 오른발을 달달달 떨었다.
“으으으, 아아악, 쥐 대가리를 밟았어요……. 쥐 눈알이랑 마주쳤어요. 어, 어떡해……. 아으으윽.”
태준은 지안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받쳐주었다. 하지만 지안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음 약한 지안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다.
“무, 물커덩 하다가 뿌지직 했어요……. 나, 어떡해. 혹시 나 때문에 죽은 거예요? 주, 죽어 있었던 거 맞죠? 오른쪽 신발에 피 묻어 있어요? 살점은요? 내장이 다 튀어 나왔다구요. 으으으. 아으으윽.”
“가만히 있어 봐. 내가 떼 줄게.”
태준은 돌멩이를 주워서 지안의 신발에 붙어 있던 것을 제거했다.
“이제 됐어.”
그래도 지안은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쥐를 밟던 기분 나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벽에 두 손을 짚고 눈을 꼭 감은 채로 오른발을 달달달 떨었다.
“나 때문에 눈알이 다 튀어나왔어요. 아아악.”
“집에 안 갈 거냐.”
“이제 오른발 못 써요. 저 죽을 것 같아요. 으으윽.”
“이제 괜찮아. 정신 차려.”
“안 괜찮아요. 저는 심장이 폭발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으으으윽.”
“죽으면 안 돼, 풋사과.”
“내장이 다 튀어 나왔단 말이에요. 으으윽, 저 진짜로 죽을 것 같아요. 아아아악.”
“오빠, 아직 장가도 못 가봤다.”
“저 때문에 눈알이 와장창 튀어 나왔어요. 으으윽. 죽겠어요, 진짜. 으으윽.”
“진짜 죽을 것 같다고?”
“진짜,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이에요. 아아아악.”
“어쩔 수 없네.”
“뿌지직 하면서 다 튀어 나왔다구요. 으으윽. 끔찍해서 죽겠어요. 진짜, 아으으윽.”
“일단 죽으면 안 되니까, 인공호흡을 해보는 수밖에.”
“으으으윽?”
“대신, 북반구 강냉이들 안전은 책임 못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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