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95)

<외전10화>

“버, 벌써 왔대?”

“응. 오빠는 친구들이랑 바다 보러 간다고 했었거든. 이번에 수찬이 오빠가 캠핑 장비를 풀세트로 샀어. 근데 오늘 밤에 비가 너무 온대서 안 가기로 했대.”

“그래서 여기로 온다고?”

“응. 친구들이랑. 거의 다 왔다는데.”

민정은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태준이 오빠 본지 너무 오래 됐는데. 길용이 오빠랑 수찬이 오빠도 오는 거야?”

“응.”

“우리 오빠랑 친구들 와도 괜찮지?”

“그럼 괜찮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예정인데 어딜 가니. 집에 계셔야지.”

“지안이는?”

“…….”

지안은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뭐, 집주인이시니까 내가 뭐라 그러겠어…….”

“그럼 오키. 음식이 충분하려나? 치킨이라도 시킬까?”

민정은 틴트를 꺼내 발랐다. 음파음파 입술을 붙였다 떼어내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그건 좀 이따 고민해도 되지 않겠어?”

소희는 냉장고를 열어서 술이 있는지 확인했다. 

“너희들 맥주 한 잔씩 할 거지?”

“당근.”

“지안이는?”

“분위기 봐서…….”

“상 하나 더 꺼내야겠다. 베란다 창고에 있을 건데.”

소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민정은 파우치에서 파우더를 꺼내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지안은 배가 살짝 아픈 느낌이 들어서, 그때까지도 집에 갈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민정이 그 오빠를 두뇌 천재, 외모 천재라고 두둔해도 지안의 눈에는 변태작가였다. 

지안은 18살 때 언니 책장에서 몰래 한태준의 19금 소설을 훔쳐보고는 핵폭탄급 충격을 먹었다. 제목도 망측하게……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빨아라.’였다. 줄여서 오죽빨. 

그 소설은 이전의 판매량을 모두 갈아치우며 19금의 전설로 남아 있는 책인데, 두고두고 회자될 경도로 야했다. 순진했던 지안은 오죽빨을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시험시간에도 너무 심하게 잠이 와서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껌 씹으면서 시험 치면 안 돼요?’ 했다가, 진짜 복도에 쫓겨나서 무릎을 꿇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모의고사를 쳤던 지안이었다. 

집중력이라고는 붕어싸만코였는데, 오죽빨은 한 글자도 흘려 읽을 수가 없었다. 밤새 입을 틀어막고, 이상한 느낌으로 더워지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울고 싶어지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엉덩이와 그 안쪽이 사람 죽으라는 듯 간질간질하면서 달아오르는데…….

시골집 체험하던 날,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피우면서 느꼈던 뜨거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죽빨은 혀의 기술이 아주 뛰어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의 혀 아래에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기다린 촉수가 숨어 있었다. 아주 무시무시하지 않음? 나만 무서운 거임?

이 남자는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혀를 사용하여 여자를 애무하는 방법으로 우울증을 앓는 여자들을 치료해나갔다. 

망측하게도 벗은 여자들을 아주 뜨겁게 달군 다음, 촉수가 여자의 아래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 헤집는데…….

여자들은 죽을 것 같다, 죽어도 좋다고 울부짖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그 생생하고 수위 높은 표현들은…… 그 행위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책을 본 후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진 느낌이었다. 

닭꼬치를 봐도 야하고, 빨간 김치를 봐도 야하고, 핫도그는 심각하게 야해서 설탕을 안 뿌리고는 제정신으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미치게 야했다. 

머리가 어떻게 됐나 싶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밤에 언니와 형부의 침실에 귀를 갖다 댔다가 상상하던 소리를 들었을 때……. 

오 마이 갓. 우리 언니와 형부도 미쳤네, 미쳤어……. 우리 언니 완전 자지러지네. 설마 우리 형부도 촉수가 있나? 아니야, 아닐 거야……. 

근데 우리 언니가 왜 죽는 소리를……. 그렇게 좋은 거야? 죽을 만큼? 우리 언니도 여성 변태네, 변태……. 

어쨌든 한동안 귀에서는 색정적인 남녀의 신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버스가 덜컹거리면서 내 블라우스 안에 굴곡들이 덜렁거리는 것도 야하고, 보름달이 꽉 찬 것도 야하고.

“욱, 우웩, 우웨에엑~~~”

급기야 한 달쯤 토를 달고 살았다. 스키니진이 유행할 때였는데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바지가 꽉 끼어서 똥꼬가 오롯이 드러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토가 쏠렸다. 

하여튼 한태준, 그 오빠는 위험한 사람이다. 도리도리. 불안한 지안이 켜져 있지도 않은 TV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딩똥.

초인종 소리에, 지안은 인터폰을 봤다. 태준 오빠와 그 친구들이 한꺼번에 보이기를 바랐는데 안타깝게도…… 보기만 해도 이상한 느낌으로 긴장되는 남자, 한태준이 혼자 덜렁 서 있었다.

신이시여. 어찌 이런 일이……. 소희는 베란다에 있었고, 민정은 화장실에 있었기에 직접 문을 열어줘야 했다. 

집은 따뜻한데도, 지안은 약간 냉랭한 기운을 느꼈다. 지안은 불안해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문을 열었다.

“…….”

“…….”

서늘한 눈빛을 가진 문제적 남자가 떡하니 서 있었다. 언젠가 영화에서 봤던 섹시하고 잘생긴 뱀파이어 느낌이다. 

이 오빠는 키가 185는 넘는 것 같은데, 누굴 때리려고 그러는지 어깨도 수영선수보다 넓고, 얼굴만 보면 연예인 중에서도 탑클래스가 맞다. 

하지만 지안은 실어증이 올 뻔했던 그의 19금 소설을 본 적이 있기에 이 오빠만 보면 특히나 말이 잘 안 나왔다. 상당히 어지럽고 불편하며 호흡이 달렸다. 

그와 마주 선 지안은 화면 속에 빨려 들어가 신비로운 외계 생명체와 만난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유난히 또렷한 까만 눈동자가 사람의 마음을 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리게 감았다가 뜬 그의 눈에 힘이 또렷하게 들어갔다. 혹시라도 오빠가 초능력을 발휘할까 봐 지안의 몸이 북어 대가리처럼 뻣뻣해졌다. 

순간 지안이 심하게 야하다고 느끼는 오빠의 입술이 슬며시 벌어졌고, 아찔한 중저음이 물밀 듯 터져 나왔다.

“지안아.”

“…….”

지안아, 하고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지안에게 고정된 눈빛은 찰거머리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뱀파이어 특유의 사람을 꼬나보는 눈빛 같기도 했다. 지금은 드라마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대사를 칠 것 같은 순간이지만.

“오랜만이다.”

“…….”

‘지안아, 오랜만이다.’라고 말하는 데까지 무려 10초는 걸렸다. 지안아, 하고 한 템포 쉬고, 오랜만이다 할 때도 ‘오랜, 만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만이다. 그 사이에 침묵을 거대하게 쑤셔 박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지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말을 듣는 것도 숨이 막혔다.

“드, 들어오세요…….”

“…….”

“아, 안 들어오세요?”

“…….”

들어오라는데도 안 들어오고 서 있기만 해서, 매우 난감했다. 그런데 오빠는.

“비 온다.”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오빠는 입고 있는 티셔츠와 머리카락이 꽤 젖어 있었다. 이 오빠만 보면 뇌혈관이 몇 가닥 막히는 건지 머리가 멍해져서 그것을 살피지 못한 거다. 어쩌라는 거지?

지안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사이 스읍, 하는 오빠의 호흡이 두 번쯤 이어졌고.

“아주 질펀하게, 비가 와.”

“아, 네…….”

질펀, 이라는 단어가 또 이상하게 들렸다. 그는 특정 단어를 세게 발음하거나 말과 말 사이에 침묵을 때려 박는 습관이 있었다. 

아니아니, 그냥 그의 모든 말이 야하게 들렸다. 이상하게 저 오빠만 보면 세상이 야릇해진다. 

밖에는 찰랑거리는 비가 아니라, 달팽이의 끈끈한 점액 같은 비가 오고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달팽이들이 서로의 몸을 올라타고 있는 와중에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들은 큰 대가리를 반대로 해서 붙었다가, 때론 도덕성을 상실한 빌어먹을 네 마리가 교차해서 붙어먹으면서 미끈둥한 것들을 줄줄 싸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오빠가 미친 건가. 내가 미친 건가…….

그는 시크하게 머리를 탁 털었는데, 젖어 있던 머리카락이 도도하게 촤르르 내려왔다. 동시에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타고 난 색기 있는 눈빛에 순수함이 살짝 더해졌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최절정의 꽃미모를 자랑하던 시절.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수족관 사이로 줄리엣을 눈으로 쫓던 장면. 

사람 홀리는 그 역대급 미소를 머금으며 그는 나른한 음성을 흘렸다. 

“지안아……. 오빠, 수건 좀 주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