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95)

<외전9화>

몇 개월 후 수아는 3.1킬로그램의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지안은 자기가 낳은 아이마냥 조카를 예뻐했다. 

“우쭈쭈쭈~~~ 우리 민준이 이모 얼굴에 쉬야 했쪄요? 짭짤해서 일주일 동안 염분 섭취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앗.”

“멍멍멍!”

“오구오구 우리 푸딩이는 왜 갑자기 누나 허벅지에 쉬야를 했쪄요? 민준이 따라 한 것이어요? 질투라면 지금은 참아주셔요. 원래 아기는 갓난쟁이일 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너그러운 맨발 가족님이 이해해주셔야 해요. 네?”

“멍멍!”

“지안아. 민준이 씻겨야 해. 좀 도와 줘.”

“알았어, 언니.”

민준은 무럭무럭 자랐다. 부티나는 민준의 이목구비는 이준을 쏙 빼닮았으나, 지안이 민준을 데리고 다니면 전부 친동생이라고 믿을 정도로 지안을 닮기도 했었다. 

***

5년 후. 지안은 스무 살이 됐다. 공부는 주구장창 잘 하지 못해서 일찍 예체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지안은 실용미술과로 진학했다. 

이준의 건축 사무소는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수아는 능력 있는 편집장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번에 드림 출판사 창립 30주년을 맞이해서, 그동안 역량을 발휘했던 내부자들의 인터뷰를 특집으로 마련했다. 수아도 그 대상 중에 한 명이었다. 

이준은 꽃을 사들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스튜디오로 향하는 중이었다. Rrrrr~~~ 이준이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지안아.”

-형부.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수업 휴강 됐어요!

“그럼 학교 앞에서 기다려. 근처야. 10분 안에 도착.”

-네! 형부!

곧 지안이 이준의 차에 탔다. 스무 살이 된 미대생 윤지안 씨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피어나는 백합처럼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이준은 지안의 옷차림을 흘긋거렸다.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아니거든요? 이 정도면 완전 양호한 거거든요!”

“남자 앞에서는 특히 조심해. 남자들은 다 늑대야. 술 먹고 늦게 다니지 말고.”

“또 잔소리.”

“잔소리 안할 수가 없어. 여자들한테는 세상이 하도 위험해서. 10시 이후에 다닐 생각하지 마.”

“10시면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통금시간 문제로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터뷰는 한참 진행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조용히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에 단발머리를 한 수아는 아나운서처럼 지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와. 언니 진짜 예쁘다…….”

지안이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이준은 수아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지안은 그런 이준의 모습을 흘긋거렸다. 가슴에 시린 바람이 부는 듯했다. 

형부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거다. 언니 외에는. 인간은 사소한 문제에도 하루에 수십 번 갈등하고 마음이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한가. 

저렇게 늘 똑같은 눈빛으로 언니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사랑을 할 줄 아는 형부는 천연기념물인 셈이다. 

슬프게도, 윤지안 주연의 드라마 <눈사람>은 계속 되고 있었다. 10여분 후 잠시 쉬기로 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을 발견한 수아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머. 말도 없이 어떻게 왔어요?”

이준이 다가가 달큰한 음성과 함께 꽃을 전했다. 

“너 보러 왔지.”

“…….”

너 보러 왔지. 너 보러. 

그 말이 왜 이렇게 로맨틱하게 들리는 걸까. 함께 산지 10년이 넘었으면서 저렇게 설레는 멘트를…….

“풉, 너무 예쁘다. 꽃도 당신도. 우리 지안이도.”

“…….”

지안은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려고 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그래왔다. 

형부는 너무 잘생기고 몸도 좋다. 인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능력은 끝내준다. 밖에서 슈트를 입은 모습을 보면 어느 영화배우보다 멋졌다. 

스무 살 이상 어린 내 또래 남자들과 비교해도, 간지 작살에 모델 포스가 철철 흐른다. 흰 셔츠 하나만 입어도 셔츠를 다 잡아먹는 팔뚝하며 태평양 같은 어깨……. 

왜 형부는 늙지를 않나. 우리 언니도 예쁜데.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내가 왜 또 두 사람을 질투하고 있을까……. 

이준은 수아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끼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아만 바라봤다.  

“오늘 너무 예쁘다…….”

“눈빛이 왜 그래요?”

“내가 뭘.”

“벌써부터 응큼해.”

“그게 보여?”

오늘 밤 잡아먹겠다는 눈빛이었다. 아주 맛있게, 뜨겁게, 날름날름. 앞으로, 뒤로, 측면으로 야무지게 굴려 먹으려는 눈빛이 진동했다. 

“나오면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말라구요…….”

“내가 뭘 어쨌다고.”

이준과 수아는 손가락으로 서로를 톡톡 건드리고 찌르면서 장난을 쳤다. 금세 꺄르르 웃음이 터졌다. 지안은 어정쩡하게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봤다. 

매일 같이 자고, 눈뜨고, 생활하면서 밖에 나와서까지 손을 못 잡아 안달하고 장난을 칠 일인가. 보기만 해도 덥고, 짜증이 슬며시 올라왔다. 

혼자 편의점에서 짜파게티를 스무 개 끓여먹고 배가 터져 죽는 게 낫지…….

“언니. 난 저녁은 친구랑 먹을게.”

“너 이제 스무 살이라고 계속 밖으로 나돈다? 친구가 그렇게 좋아? 뭐 맛있는 거 먹으려고?”

“몰라. 뭐 먹을지는.”

“그래. 알았어. 늦지 말고.”

지안은 스튜디오를 빠져 나왔다. 구름에 손가락을 꾹 찌르면 비가 후드득 쏟아질 것처럼 하늘은 흐렸다. 정처 없이 걷고 있으니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때마침 초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한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소희야.”

-이사 기념으로 우리 집에 놀러 와. 민정이도 오라 그랬어. 

지안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오빠 어디 갔어?”

-어. 우리 오빤 친구들이랑 놀러 갔어. 오늘 안 들어온대.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

갈 곳이 생겨서 천만다행이었다. 지안은 밝아진 표정으로 버스를 타러 갔다. 

사실, 소희에게 8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지안은 그 오빠를 멀리서라도 보면 기함하며 멀리 뺑 돌아갔다. 잠깐이라도 스치고 싶지 않은 강렬한 이상함이랄까. 아니다, 이상한 강렬함이랄까. 하여튼 그런 게 있었다. 

잠시 후 지안은 과일 가게에 들러 딸기와 청사과를 사 들고 소희네 집에 왔다. 민정은 이미 와 있었다. 

“오오~~ 윤지안. 친구 집에 올 때 양 손 무겁게~ 역시 센스쟁이. 난 빈손으로 왔다.”

“넌 저번 주에 알바비 타서 맛있는 거 사줬잖아. 근데 소희야. 너 어떻게 해서 우리 동네로 이사 오게 된 거야?”

“우리 오빠 말로, 친한 형님이 이쪽 동네에 사시는데. 살기가 아주 좋다고 하시더래.”

“아하.”

“건축 쪽에 일 하시는 분이라던데. 너희 형부도 건축 사무소 하신다고 했나?”

“응.”

민정은 집주인 대신 거실에 상을 펴면서 소희에게 물었다. 

“작가님 어디 가신 거야?”

소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야, 우리 오빠한테 작가님이라고 좀 하지 말래?”

“작가님을 작가님이라고 하지 뭐라 불러? 난 천재 작가님이라고 불러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큭큭. 됐고. 요 앞 상가에 보쌈이랑 골뱅이 무침 가지러 간다고 주문해 놨거든. 갔다 올게.”

“내가 갈게.”

“아니. 생필품 살 것도 있고 해서 나가야 해.”

소희가 나갔고, 민정과 지안은 TV를 보며 소희를 기다렸다. 

“난 태준이 오빠가 이상형이야. 진짜, 너무,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

“…….”

민정의 말에 지안은 한참 동안 대꾸하지 않았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지안이 물었다. 

“태준이 오빠, 신작은 어떤 거래?”

정확하게 말하면 19금인지 아닌지 물어보고 싶지만.

“법의학에 관련된 거라던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주구장창 드나든대. 태준이 오빠는 내가 장담하는데 10년 안에 노벨문학상 탈거야.”

흥, 지안은 아주 작게 콧방귀를 뀐 후 대답했다.

“19금 쓴 거 보니까 좀 이상하던데…….”

민정은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야! 19금이 나빠? 너, 19금 우습게 보냐?”

“아니. 19금이 나쁜 게 아니고, 그 오빠가 쓴 19금은 충격적으로 이상했다니까…….”

“태준이 오빠 19금은 하나 밖에 안 썼거든? 그 오빠가 10대 때부터 글을 써서, 책을 30권은 썼지, 아마? 의사 따라 다니면서 6개월간 대학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썼던 의학소설. 그건 드라마 원작 됐잖아. 시청률 기록 세운 거 몰라?”

“…….”

“무협소설은 영화로 나와서 천만 기록 세웠고, 추리 소설은 OCM 띵작이었어. 그 오빠는 천재야, 천재! 절대 까면 안 돼!”

“…….”

민정은 언제나 소희의 오빠 한태준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태준이 오빠는 멘사 회원 시험칠 때 만점 받았다니까? 공식 아이큐는 163이야.”

“…….”

특히 이 부분은 지겨울 정도인데 백 번쯤은 들은 것 같다. 그의 아이큐는, 딱 지안의 키였다. 

“태준이 오빠 TVM 작가 스페셜 한다고 방송 출연했을 때, 배우 신유리가 태준이 오빠한테 연락처 좀 달라고 했었대.”

지안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헐. 톱스타 신유리가 먼저 꼬리 치다니……. 그래서 썸이라도 탔대?”

“아니. 우리 태준이 오빠는 아예 관심 없다고 번호 안 줬대. 하여튼 연예인한테도 꽂히는 분이야. 대단하지 않냐?”

“…….”

지안이 또 침묵하고 있는데 소희가 포장된 음식을 들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소희는 통화 중이었다.

“뭐라고? 오빠 지금 온다고? 아니, 놀러 간다며? 뭐? 거의 다 왔다고? 헐…….”

소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통화를 들은 민정은 입이 귀에까지 걸리고 있었다. 지안은 집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하는 중이었다. 똥 됐다, 똥 됐어. 어떡하지?

그 오빠는 희대의 개소리에 맥락을 부여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큐가 무려 163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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