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6화>
곤히 자고 있는 수아의 잠옷 치마가 들춰졌다.
“하아…….”
일찍 일어난 이준이 수아의 허벅지를 입술로 급습했다. 매끈한 다리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나른하게 움찔거리던 수아는 금세 흥분됐다.
이 남자의 스킨십은 언제나 젖어버리게 만든다. 팬티가 어디론가 휙 날아갔고, 수아의 여린 살을 이준이 핥았다.
“으읍……. 하, 하응…….”
매일 아침마다 야릇한 알람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참지 못한 수아의 엉덩이가 콩콩콩 들썩였다.
“아, 그만. 그만…….”
“참아. 아직 멀었어.”
수아는 침대 시트를 붙잡고 몸을 흐느적거렸다. 수아는 이준의 머리카락을 뜯으면서 고문 아닌 고문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그만……. 하윽.”
금세 축축해졌는데도, 이 남자는 꿀을 채취하는 꿀벌처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혀로 살랑살랑 건드리고, 예민한 부분을 쪽 물었다가, 아예 얼굴을 들이박고 전체를 따뜻하게 머금었다.
골반까지 잡아서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벼르고 벼르던 사람처럼 작정하고 덤볐다.
“하, 하읏, 으읏…….”
수아의 입술에서 의미를 가지지 못한 언어들이 쏟아졌다. 결국 수아는 이준의 머리통을 껴안고 벌에 쏘인 것처럼 엉덩이를 퍼덕거렸다. 퍼덕퍼덕퍼덕퍼덕…….
그의 입술만으로 절정을 느껴버렸다. 세상에. 얼굴 전체가 번지르르해진 이준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벌써 끝?”
“하아…….”
“윤수아. 조루였어?”
“…….”
“…….”
“…….”
앗, 창피해.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할 때 그만 했었어야지……. 얼굴이 새빨개진 수아의 몸 위로 이준이 올라탔다.
“난 이제 시작인데.”
이준이 수아의 입술을 물었다.
“앗, 이상한 맛 나요…….”
“꿀맛인데 왜. 나눠 먹자.”
“난 싫은데…….”
입술이 진득하게 비벼졌고, 이준의 힘찬 허리짓이 시작됐다. 수아는 또 몽환적인 눈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
푹 자고 일어난 지안은 푸딩이의 눈곱을 떼어주고 있었다. 수아가 노크 후에 공주방의 문을 열었다.
“언니. 오늘 학예회 올 거지?”
“응.”
수아는 지안의 가방에서 알림장을 확인하며 넌지시 말을 붙였다.
“너 돌쇠 분장할 때 수염 조금만 붙여.”
씨알도 안 먹혔다.
“돌쇠는 소 같은 사람이라서 많이 붙여야 돼.”
“사람의 성격이 소 같다는 거잖아. 얼굴이 소 같다는 게 아니라. 수염은 입 주변에 조금만 붙이라고.”
“…….”
“많이 붙이면 얼굴도 못 알아보잖아. 수염 떼고 나서 피부 상할 수도 있어. 반점 같은 게 솟을 수도 있고.”
지안은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돌쇠는 꽃미남 스타일이 아니야. 산적같이 생겼단 말이야. 실감나게 하고 싶어.”
“…….”
수아는 예민하게 목소리를 올리고 말았다.
“기어이 원숭이가 되고 싶니?”
“…….”
“…….”
“…….”
지안은 수아의 손에서 알림장을 도로 들고 가더니, 수아를 등지고 가방을 챙겼다. 방에서 나가달라는 신호였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수아는 또 머리를 쿡 쥐어박고 싶은 걸 겨우 참고 방을 나왔다.
왜 이렇게 신경질이 날까. 마님인지 마늘인지 8번 부르고 내려올 건데, 한 달 가까이 대사 연습을 했다. 목이 살짝 쉬기도 했었다. 아니,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던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 시간쯤 뒤 수아와 이준은 지안을 보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이준은 윤돌쇠 씨에게 건넬 꽃다발도 샀다.
“큰 역할을 맡든 작은 역할을 맡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지. 시무룩한 표정 보이지 마. 응?”
“네…….”
곧 학예회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장기자랑이 지나간 후 연극 무대의 막이 올랐다.
“아, 아니…….”
수아는 지안이 등장하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원숭이 조상도 아니고, 조그만 얼굴 전체에 털을 붙인 꼴이었다.
참석한 학부모들도 지안의 첫 등장에 웃음을 터뜨렸다. 지안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일꾼처럼 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르고, 굽신거리며 굵은 목소리를 냈다.
수아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속이 상했다. 건강하게 자랐더라면, 아이의 변신을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할 텐데.
환자복만 입고 있었던 아이라서 어느 한 순간이라도 빛나기를 바랐던 거다. 이것마저 내 욕심인걸 알지만…….
수아의 기분을 눈치 챈 이준이 수아의 손을 꼭 잡았다. 지안의 첫 등장은 강렬한 웃음을 줬지만 두 번째부터 객석의 반응은 사뭇 달라졌다.
애가 너무 몰입해서 마님을 부르짖다 보니, 사람들도 이내 진지해졌다. 지안은 대사가 없어서 서 있을 때마저 철저하게 돌쇠가 되어 있었다. 저 돌쇠는 진짜 꼬마 연극배우 같다고 칭찬하는 소리가 소곤소곤 들렸다.
수아도 연극을 집중해서 보게 됐다. 돌쇠는 항상 뒤에서 마님을 애틋하게 바라봤다. 돌쇠의 아픈 사랑은 후반부에 절절하게 드러났다.
돌쇠는 마님을 구하기 위해 마님 대신 화살을 맞았다. 가슴을 움켜쥐며 뒷걸음질 치던 돌쇠가 몸을 사리지 않고 뒤로 푹 넘어지는데, 수아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돌쇠의 열연을 지켜보던 다른 학부모들도 가슴을 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쇠는 숨을 격하게 쉬며 끝까지 마님을 읊조렸다. 눈물을 글썽이던 돌쇠는 마님을 애끓는 눈빛으로 응시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수아는 울컥했다. 참으려 했지만 눈가가 젖어들었다. 엄마. 우리 지안이 좀 봐……. 연극을 저렇게 진심을 다해서 하고 있어……. 내가 왜 그동안 못된 말을 했을까.
지안은 또 이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빛이 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연극이 끝난 후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이라며 다들 돌쇠를 칭찬했다. 어깨가 으쓱해진 수아는 지안을 만나러 갔다. 지안은 수염이 잘 뜯어지지 않아서 난감해 하다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언니! 나 봤어?”
수아는 울먹이며 지안을 꼭 껴안았다.
“너무 잘해서 눈물 났어. 지안아. 진짜 멋있었어.”
“히히. 형부는요?”
이준은 꽃다발을 안겨주며 지안의 어깨를 토닥였다.
“지안이 최고였어. 주연보다 훨씬 잘했어.”
“이야. 꽃이다~~~! 우리 형부 최고야! 최고!”
걸레쪼가리를 입고 있는 지안이 활짝 웃었다. 얼굴은 원숭이 꼴인데 눈동자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지안은 그 다음 주 수학 쪽지시험에서 다시 20점으로 미끄러졌다. 그래서 수아의 감동은 일찍 파괴되었다. 지극히 보통의 일상이 펼쳐졌고, 보통의 날들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집 앞 마당에서 소규모로 사람들을 초대해놓고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이준은 아침부터 애를 태웠다.
“왜 안 보여 줘, 왜.”
“좀 이따 보면 되잖아요…….”
이준이 너무 기대를 하는 것 같아서, 수아는 드레스 입은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그러다가 아침부터 신이 나 있는 지안이가 눈에 띄었다.
“윤지안. 어제 숙제 한 거 보자.”
“오구오구 우리 푸딩이 개껌 뜯을 거예요? 개껌도 너무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아요. 이러다 턱 관절 나가겠어요. 누나랑 개껌은 하루에 두 개만 먹기로 약속해요. 그리고 의자에서 자꾸 점프하면 안 돼요. 점프는 망아지들이나 하는 거예요.”
“또 못 들은 척 할래?”
“…….”
언니가 결혼식 날에도 숙제 검사를 할 줄이야. 지안은 풀이 죽은 얼굴로 푸딩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이실직고 했다.
“숙제 안 했어…….”
“…….”
수아의 싸늘한 눈빛이 지안에게 와 닿았다. 혼을 낼 시간이 없어서 봐주기로 했다.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저녁에는 꼭 해야 돼. 알았지?”
“알았어.”
잠시 후 결혼식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정희 이모는 수아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보였다.
“수아야. 네가 행복한 걸 보니까 이모는 너무 좋다. 정말 좋아. 널 못 도와줘서 늘 마음이 아팠는데…….”
“아니에요. 이모가 얼마나 많이 도와주셨는데요. 의지도 많이 됐고요. 정말 고마워요. 이모.”
“잘 살아야 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고맙습니다. 이모.”
웨딩드레스를 입은 수아가 정희 이모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이준이 수아를 보더니 호흡을 멈췄다. 흔들렸던 동공이 이내 붙박이가 된 듯 수아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여자가 되어 내게로 걸어오는 모습을. 참았던 숨을 훅 내려놓은 이준이 수아에게 다가갔다.
“너무 예뻐. 우와. 심장 뛰어…….”
이준이 수아의 이마에 저도 모르게 입을 맞췄다.
“앗, 키스 타임 아닌데.”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린 것을 보니, 수아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신 비서와 그의 외국인 여자 친구가 함께 참석했고, 이준과 수아의 회사 사람 몇 명, 정희 이모와 사촌 혜정이 참석했다.
소박하고 따스한 결혼식이었다. 능력 있는 셰프를 모셔와 좋은 음식을 대접하면서 와인도 곁들였다.
“오구오구 동네 고양이님들은 어서 차례대로 입장하셔요. 소고기를 구워서 양껏 대접해드릴게요. 맨발 손님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슬리퍼를 미처 구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어요.”
철없는 지안은 최고급 한우 투쁠 소고기가 구워지는 대로 길냥이들에게 갖다 바쳤다.
“얘들아. 우리 언니 예쁘지? 다음에 나도 형부랑 결혼할 거야. 저 드레스 입고. 아하하하.”
지안의 낭랑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지안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돌쇠처럼 아픈 짝사랑을 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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