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0화 (80/95)

<외전3화>

“뭐, 뭐예요…….”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그가 예약해놓은 호텔 스위트룸으로 들어서자마자 수아는 눈물을 글썽였다. 

바닥에 흩뿌려진 장미꽃잎들만 봐도 환상적이었다. 캔들이 길을 만들어 놓은 틈새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둥둥 떠 있는 풍선들이 보였다. 

“아, 예뻐…….”

그리고 탁자 위에는 저번에 수아를 놀라게 했던 미니어처 하우스가 있었다. 못 보던 거였다. 

화려한 꽃밭에서 소, 돼지, 개, 고양이, 말들이 서로 앞발을 잡고 동그랗게 서 있었다. 이 작은 것들을 어떻게 이리도 섬세하게 만들었을까. 

털이 긴 개는 바람에 날려서 한쪽 눈이 가려져 있고, 토실토실한 고양이는 꼬리가 우아하게 올라가 있었다. 

말은 매일 신나게 달리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놀이에 제대로 빠진 듯했다. 붉은 잇몸을 만개하며 웃고 있는데, 히이잉 하는 표정까지 실감났다. 돼지는 돼지대로, 소는 소대로 저세상 텐션이였다. 

“새로 만든 거예요?”

“응. 비행기 타고 오면서 이게 말썽이 생겼어. 고치느라 거의 밤 샜지.”

이 남자가 또 무슨 마법을 부렸을까. 수아가 손을 척 내밀었다. 

“리모콘 주세요!”

이준이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리모콘과 바늘 같은 펜을 내밀었다. 그것들을 받아든 수아가 첫 번째 분홍색 버튼을 눌렀다. 음악이 나오면서 손잡은 동물들이 웽웽 돌아갔다. 

“어머나~~~”

저들끼리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거였다. 너무 귀여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아하하, 동물들도 신나고 수아도 신났다. 

한참 웃다가 두 번째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강강술래를 멈춘 녀석들이 몸을 뒤로 돌려서 엉덩이를 내밀었다. 음? 왠지 익숙한 동작인데. 

그럼 그렇지. 뿌지직, 뿌지직. 이 남자가 이런 걸 되게 좋아하네. 우리 지안이가 이런 걸 참 좋아하는데……. 냄새까지 난다. 어디서 나는 거지?

“도대체 이 냄새는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향수랑 방귀는 같은 성분이잖아.”

녀석들은 한 덩어리씩 잘도 쌌다. 너희들이 잘 먹고 잘 싸니 나도 좋아. 수아는 다음 파란색 버튼을 눌렀다. 역시나 똥들이 굴러서 한 군데로 모이더니 배변처리가 됐다. 

“강이준 씨. 이거 만들 때 무슨 생각이에요? 혼자 엄청 키득거리죠?”

“난 항상 진지해.”

“정말 천재야, 천재.”

수아는 엄지를 척 내보이며 마지막 노란색 버튼을 눌렀다. 강강술래에 끼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 있던 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강술래를 하려면 앞발을 서로 잡고, 뒷발로 돌아야 하는데. 발이 두 개인 닭은 멀뚱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던 거다. 퇴화한 조류의 슬픔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닭이 주인공이었다. 닭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며 알을 낳으려고 했다. 유난히 살이 쪄서 돼지만큼이나 큰 닭이었다. 

닭 덩치가 충격적으로 커서, 닭이 돼지를 낳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그런데 세상에. 수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반지다.”

닭이 알이 아닌, 돼지도 아닌, 반지를 낳았다. 그래서 닭은 돼지만큼 뚱뚱했던 거다. 반지를 숨기고 있었던 닭이었어……. 

반지에 박혀 있는 투명한 보석이 반짝였다. 수아는 홀린 듯한 눈으로 그것을 꺼냈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 또 많은 시간 공을 들였을 게 분명했다. 수아가 반지에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이걸 만들었어요?”

“6개월 걸렸나. 낮에는 바빠서 밤에만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거든.”

“…….”

이 남자는 프러포즈를 6개월 동안 준비한 거다. 울컥하면서 목안이 꽉 메었다. 

“보고 싶었어. 수아야.”

이준이 뒤에서 수아를 꽉 안았다. 

“너무 행복하잖아요…….”

그리고 이준이 수아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널 처음 봤을 때부터였어. 너 아니면 안 되겠더라.”

“…….”

“나랑 결혼해 줘.”

수아는 반지를 낀 손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눈에는 투명한 이슬이 맺혔다. 수아는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봤다. 이준의 목에 제 팔을 두르며 대답했다. 

“좋아요. 결혼해요.”

이준이 수아의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 표면에서 파르르 전기가 일었다. 그와의 스킨십은 이렇게나 전율이 인다. 이 순간이 완벽해진다. 

이준이 수아의 아랫입술을 살그머니 물었다가 놓고, 조금 더 압력을 가하여 빨았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입안으로 말캉한 혀를 들이밀었다. 비벼진 혀가 서로의 것을 탐하며 욕망을 드러냈다. 그가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자, 안달이 나서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흥분됐다. 떨리고, 또 떨렸다. 

적나라하지만 몸은 굶주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이준의 손끝이 수아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쥐었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자, 눈을 뜬 수아는 숨을 안으로 삼켰다. 

이준의 입술이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수아의 살결을 애태웠다. 몸은 더한 것을 기다렸다는 듯 야릇한 기분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가 쇄골 앞에서 뜨끈한 숨을 뿜어낼 뿐인데 가슴 끝이 간지러웠다. 가슴을 빨리고 싶은 욕구가 아랫배 안쪽을 데우고 있었다. 허벅지 사이가 미끈하게 달아오르며 입술 사이에서 절로 흐트러진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응…….”

이준이 수아를 뒤로 밀고 가 침대에 눕혔다. 수아의 양 손목을 잡은 이준의 눈빛이 강렬했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아무도 몰라. 아무도.”

“…….”

“윤수아는 이제 내 거야. 안 참아.”

“…….”

이준이 수아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새빨간 브래지어가 보였다. 속옷을 사 입은 수아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준이 등 뒤로 손을 넣어 브래지어를 탁 풀었다. 뽀얀 가슴이 탐스럽게 드러났다. 봉인되어 있던 속살이 수아의 호흡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준이 황홀한 눈으로 가슴을 바라보다가 혀끝을 세워 살짝 건드렸다. 

“하아…….”

수아가 바르르 떨자, 가슴도 바르르 흔들렸다. 그를 안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는지 모른다. 남자를 안아 본 젊은 몸은 그의 눈빛만 떠올려도 달아올랐었다. 나도 이제 참지 않을 거야. 

이준이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려 가슴을 물었다. 

“흐응…….”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보드라운 살결을 감쌌다. 가슴은 그의 입속에서 흠뻑 적셔졌다. 찌릿, 찌릿, 발끝까지 뻗치는 쾌락 때문에 목덜미에 소름이 오소소 올라왔다. 

몸은 2년 전의 행위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가슴 예민한 부분을 살살 돌려가며 세웠다. 숨을 들이마실 수도, 내쉴 수도 없었다. 

이준이 수아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엉덩이에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움찔거렸다. 다시 한 번 짜릿한 소름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이준이 수아의 원피스 안으로 손을 넣었다. 축축해진 팬티는 단숨에 벗겨졌다. 몸은 창피할 정도로 진실하게 반응했다.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어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그가 빠르게 옷을 벗어젖혔다. 

“죽을 때까지 나랑만 해.”

“당신이 내 첫 남자이고, 또 마지막 남자예요.”

두 사람은 완전한 알몸이었다. 이준이 제 몸을 수아에게 겹쳤다. 

“으윽…….”

오랫동안 관계를 맺지 않았던 몸이라, 수아는 통증을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수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허벅지 사이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견뎠다. 

“사랑해, 수아야…….”

이준이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며 입을 맞춰왔다. 그의 허리짓에 수아의 몸이 조금씩 위로 솟아올랐다. 

슥, 퐁, 슥, 퐁, 슥, 퐁, 슥, 퐁.

그런데 예전과 좀 다른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듣기에 살짝 민망했다. 들을수록 적응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소리가 거슬려서 집중도 되지 않았다. 수아가 살짝 당황한 눈을 굴리고 있는데 이준이 밭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기 좀 빼자.”

“…….”

“…….”

“…….”

수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그랬구나……. 공기가 들어간 거였어……. 

너무 오랜만에 만난 몸은 약간의 틈이 생겨서 처음부터 잘 맞진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빈틈없이 공기를 빼고 몸의 결합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찰싹찰싹 맞아 들어갔다. 분명히 떡메로 떡을 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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