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95)

<75화>

수아는 이동 침상에 실려서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쇼크입니다! 혈압 60에 40! 더 떨어지고 있어요!”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며 침상을 힘껏 밀고 달렸다. 수아의 동공은 거의 반응이 없었다. 눈물과 땀에 젖은 속눈썹이 가끔 파르르 떨렸다. 

못이 박힌 자리가 좋지 않아 피를 많이 흘렸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수아는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던 엄마를 만났다. 

“어, 엄마…….”


엄마는 생전처럼 고운 모습이었다. 엄마라는 말을 힘겹게 내뱉은 수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미안해……. 내가 나빴어, 미안해…….”


미숙은 수아를 따뜻하게 안으며 등을 쓰다듬었다. 


“아니야. 수아야. 엄마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더 미안해. 아픈 지안이까지 맡겨놓고 먼저 떠나서 엄마가 미안해…….”


꿈속에서도 마음껏 부르지 못했던 엄마였다.


“엄마. 보고 싶었어……. 미안해서 자주 생각하지 못했어. 그것도 미안해, 엄마. 흑흑흑…….”

“수아야. 엄마는 너한테 너무 고마워. 열심히 버텨줘서, 지안이를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엄마…….”

“엄마도 사랑해. 너무 많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수아, 항상 지켜보고 있어. 곁에 있을게. 수아야…….”

***

다음 날. 지안은 여전히 무균실에 있었다. 골수이식이란, 공여자의 골수가 몸에 들어가기만 하면 낫는 마법의 치료가 아니다. 피검사 수치가 오르기를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 

간호사는 백혈구 촉진제를 놔주며 당부했다. 

“우리 지안이. 백혈구 수치 쑥쑥 올라야 해.”

“…….”

지안의 긴 눈이 축 처졌다.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했다.

“간호사 이모. 우리 언니 많이 아파요? 어제 면회 안 왔어요…….”

오늘 몇 번째 묻고 또 묻는 중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보호자의 소식에 지안은 애가 탔다. 간호사는 안쓰럽게 지안을 바라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안아. 언니가 조금 다치긴 했는데 수술은 아주 잘 됐어.”

“진짜요?”

“우리 병원에 장호식 의사 선생님. 지안이도 좋아하지?”

“네…….”

지안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 분이 수술해주셨거든.”

“…….”

실력이 좋기로 유명한 의사였고, 또 지안을 예뻐하는 분이었다. 

“지금은 회복 중이라서 언니가 쿨쿨 자고 있어. 아프면 많이 자야 되는 거 알지?”

“네…….”

“언니는 그동안 잠도 못 자고, 걱정이 많았거든. 이번에 한꺼번에 많은 잠을 자려나 봐.”

간호사가 나간 후에도 지안의 슬픔은 줄어들지 않았다. 깨지도 않고, 잠만 자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안다. 엄마도 수술하고 계속 잠만 잤는데……. 

5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이제 엄마는 조금씩 가물거리지만, 언니 없이는 못 산다. 혹시 모를 걱정과 불안함 때문에 지안의 작은 가슴은 멍이 들고 있었다. 

***

강 회장이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안치실로 들어갔다. 준비하고 있던 검시관이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냉장고로 다가갔다. 

검시관이 1번 냉장고 문을 열었고, 서한의 시신을 이동 침상에 옮겼다. 살았을 때 승리에 집착하던 서한이 제일 좋아하던 숫자가 1이었다. 

죽어서도 1번 자리에 누워 있으니, 이른 죽음이 제 팔자 속에 있었던 것 같아서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르륵, 바퀴 소리를 내며 서한의 시신이 강 회장 쪽으로 느리게 다가왔다.  

경찰들은 시신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꼭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자식은 죽은 부모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으나, 부모는 자식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고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어서일까. 생각했던 것보다, 서한의 얼굴은 흉측하지 않았다. 목 아래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특수 분장이라도 한 듯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강 회장의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아들의 죄는 부모의 죄였다.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한 죄, 부모가 부족하여 그 사랑을 삐딱하게 전달한 죄. 

그것들이 서한을 괴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뼈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 

***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이준은 발인을 하느라 소각장에 와 있었다. 장례식은 가족들끼리만 지냈다. 피의자가 죽었으니 수사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그 건물은 비행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힘없는 학생들을 불러와 폭행을 일삼다가 살인까지 일어났던 곳이었다. 

몇 년 만에 중단됐던 공사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건설사에서 CCTV를 설치했었다. 덕분에 이준은 자신의 무죄를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금 전 강서한이 소각장 화로로 들어갔다. 이준은 침울했다. 좋거나 밉거나 간에, 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기분이 들 줄이야…….

강 회장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자식이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고 죽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마당에, 비통한 마음을 내보이는 것도 욕먹을 짓이었다. 

강 회장은 이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얕은 숨을 내뱉었다. 

“원래대로 미국으로 떠나. 애비 신경 쓰지 말고.”

“…….”

“내가 뭐 잘한 게 있어서, 너한테 그룹을 맡아달라고 하겠느냐. 이제 난 미련 없다. 다 손 놓을 거야. 부질없어. 그러니까 너는 미국으로 가서 네 꿈을 펼쳐.”

“…….”

나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으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보내는 게 맞았다. 사람들이 이 일을 잊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나희가 이준을 꼭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언제 안아봤는지 모르겠네……. 이준아. 미국 가서도 끝까지 치료 잘 받아야 해…….”

못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이준은 가슴과 팔에 붕대를 둥둥 감은 상태였다. 이준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소 1년이라고 계획을 잡고 있지만 몇 년이 될지도 몰랐다. 발인이 끝난 후 이준은 한국병원으로 왔다. 수아의 주치의부터 만났다. 

“교수님. 윤수아 환자 수술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런데 몸이 그동안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만신창이입니다. 극심한 수면부족으로 피로가 누적되었고요, 영양부족에 스트레스까지. 에너지를 전부 소진했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잠을 자면서 체력을 축척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아의 깨어 있는 얼굴을 보지 못했기에, 이준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동생 지안이가 더 문제예요.”

“골수이식이 잘못 됐습니까?”

“아니요. 그건 지켜봐야 알겠지만 아직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족이라고는 언니 밖에 없는데, 언니가 다쳐서 3일 동안 면회를 오지 않으니까 지안이가 울상이에요. 면회는 하루에 한 번, 한 시간 허용되거든요. 환자가 즐겁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멘탈 관리를 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

마음이 짠했다. 무균실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아이가 제 언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얼마나 걱정할까. 

“면회 시간 지났습니까?”

“아직요. 면회 신청 하실 수 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준은 3층 무균실 앞으로 가서 면회 신청을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준은 주머니에서 기도하고 있는 천사 모양의 열쇠고리를 꺼냈다. 수아를 생각할 때 언제나 이것을 만지게 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에 수천 번씩 마음이 바뀌었다. 이복형 강서한이 죽어도, 수아에 대한 마음은 간절하기만 했다. 

자신이야말로, 제 형을 죽인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싸다. 어쩌면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틀어지게 됐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아는 당할 수 있는 나쁜 일들을 모두 겪었다. 트라우마가 남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떠나는 게 맞지 않을까. 강서한과의 연결고리는 전부 끊고 싶을 테니.

무엇이 그녀를 위한 것인지 숱하게 고민해 봐도 정답은 없었다. 창백한 수아의 얼굴이 떠올라 이준도 죄책감에 짓눌렸다. 

그런데…… 사랑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되돌릴 수 있나. 평생 수아를 보지 않고, 내가 살 수 있을까……. 자신 없다. 정말 자신이 없다. 

“강이준 님!”

그때 무균실 밖으로 간호사가 나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를 따라 들어갔다. 서한은 죽기 전에 다급하게 이 말을 남겼다. 

“윤수아가 자기 엄마 죽인 거 아니야. 내가 한 건데, 저 착한 기집애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자기 동생도 마찬가지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8살짜리 꼬마가 그걸 알고 있었다고? 언니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철저하게 소독을 하고 방호복을 입으면서도, 이준은 곧 만날 아이의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준이 무균실 안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수아와 똑같이 생긴 민머리의 아이가 앉아 있었다. 햇병아리 같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세요?”

“아저씨는 언니 친구.”

“…….”

갑자기 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그만 입술이 삐죽삐죽 튀어나오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우리 언니……. 엄마처럼 죽은 거 아니죠? 흐윽흐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