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스스로 죽으라는 말이었다. 에어타카 안에 든 못의 길이에 따라 갈비뼈를 뚫고 심장에 박힐 수도 있었다.
기겁한 수아가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겨우 혀를 움직였다.
“아, 안 돼요…….”
서한은 수아의 말을 무시했다. 서한이 이준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왜. 두려워? 대신 죽기는 싫은가 봐?”
이준이 단호한 음성과 비장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니. 수아는 안 돼.”
이준이 에어타카 총구를 왼쪽 가슴 방향으로 갖다 댔다. 수아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차라리 날 죽여요. 제발…….”
“강이준이 죽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백 번이든 천 번이든, 내가 죽을게요…….”
이준이 어루만지고 싶은 수아의 모습을 눈동자에 새기듯 담았다. 매일 아침 눈뜨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매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준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탁!
“…….”
“…….”
수아가 눈을 끔뻑이며 소리가 난 곳으로 눈동자만 살짝 굴렸다. 쓰러진 강이준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냉큼 돌릴 수가 없었다.
이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아가 아주 천천히, 애달프게 신을 찾으며 이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 하아…….”
이준이 타카를 떨어뜨리고 비틀거렸다. 다행히도, 못이 심장을 뚫지는 못했다. 못의 일부가 갈비뼈에 박혀 있었다.
이준이 피를 흘리며 상체를 숙이고 헉헉 숨을 내쉬었다. 휴대할 수 있는 충전용 타카라서, 그나마 위력이 덜했다. 에어 컴프레셔에 연결한 타카는 심장을 뚫어버리고도 남는다.
서한이 수아를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나 움직였다. 서한은 바닥에 떨어진 타카를 들고, 이준의 가슴에 또 다시 조준했다.
탁!
“으윽…….”
필사적으로 저항한 탓에 이준의 가슴 대신 왼팔에 박혔다. 못이 뼈에 박히면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한이 다시 타카를 쏘려고 손에 쥐었다. 이준이 잽싸게 발로 걷어찼고, 서한의 몸을 넘어뜨렸다.
“악.”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맞붙으면서 몸싸움이 격렬해졌다. 주먹으로 치고, 목을 조르고, 암바 기술을 사용하면서 죽기 살기로 서로를 공격했다.
서한은 피가 흐르는 이준의 다친 부위를 꾹 눌렀다. 피가 콸콸 쏟아졌다.
“하아…….”
이준은 건드릴 때마다 움찔거리는 서한의 발목을 확 꺾어버렸다.
“으으윽…….”
서한은 제대로 서 있지 못했고, 이준은 피를 흘리면서 비틀거렸다. 그러고도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다.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작동하던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계속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서한이 주먹을 뻗을 때 이준이 피하며 킥으로 허벅지 뒤쪽 햄스트링을 찼다. 서한은 무릎이 꺾이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힘이 빠진 서한이 중심을 잃었고, 한 발이 발판 구멍으로 빠졌다.
“!!!”
오래 되서 삭은 발판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훨씬 더 큰 구멍이 뚫렸다. 서한의 몸이 밑으로 확 빠졌다.
“하아, 하…….”
순식간이었다. 서한은 한 팔로 녹슨 발판을 겨우 붙잡고 있었고, 목 아래는 허공에 떠 있었다. 아파트로 치자면 10층은 훌쩍 넘어가는 높이였다.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는 서한이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 봤다. TV에서 본 장면처럼 현실성 없게 느껴졌다.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는 느낌은 짜릿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이제 마지막이다. 곧 죽는다. 아무리 힘이 좋다 해도 한 팔에 체중 전체를 실고 있으니, 버거웠다.
게다가 녹슨 발판은 끼익 소리를 내며 또 부서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을 때 인생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간다던가.
UFC 챔피언이 되었을 때 관중들의 환호…… 그리고 아버지의 웃던 얼굴. 가장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이었다. 손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눈앞에서 사라졌던 강이준이 나타났다. 이준은 바닥에 엎드린 상태였다.
“내 손 잡아, 빨리.”
“…….”
이준이 내민 손은 타카 못을 맞아서 아직도 피가 흐르는 팔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한은 그저 멍하게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빨리 내 손 잡으라고…….”
“…….”
이준은 서한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다만 다친 팔이 버틸 수 있을까 그게 문제였다.
사람을 끌어당기려면 다른 한 손은 충분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굵은 줄을 매듭을 엮어 튀어나온 곳에 걸어두었다.
그 줄을 잡고, 이준이 서한에게 손을 내민 거였다. 여전히 서한은 어리둥절한 눈이었다. 이준이 버럭 소리쳤다.
“내 손 잡고 올라 와 쫌!”
“…….”
참 이상한 감정이었다. 서한은 목안이 뜨거워졌다. 죽음이 가까이 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금방까지 죽도록 싸워놓고 왜 나를 구하려는 건가.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 싸웠는데……. 나혼자만 싸운 거였나? 혼자만의 경기였어? 그럼 재미없잖아.
힘이 쫙 빠지는데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너희들만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는 것 같더니, 왜 나까지…….
누군가에게 이해를 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아주 편안한 꿈을 꾸는 것처럼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졌다.
이준의 팔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손끝에 대롱대롱 맺혔다. 그것이 마치 제 모습인 듯했다. 그 핏방울이 길게 늘어지더니 툭 아래로 떨어졌다. 이준이 손을 더 아래로 뻗었다.
“이 팔로 얼마 못 버텨. 그러니까 빨리 내 손 잡아…….”
“…….”
우지끈, 소리가 나며 바닥 철판이 휘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서한의 몸이 손바닥 한 뼘 정도 더 아래로 내려갔다.
만약 이준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간다면 더 싸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구속되는 일만 남은 건데, 30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재판을 받는 내내 욕이란 욕은 다 먹을 것이고.
결정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서한은 생뚱맞게 아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나한테 형이라고 안 불렀어?”
“…….”
“둘이 있을 때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 없잖아. 어릴 때부터.”
“…….”
이준은 서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불안했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죽게 놔둘 수가 없었다. 이준이 언성을 높였다.
“빨리 손 안 잡아?”
“…….”
이준이 채근해 봐도, 서한은 허공에 있는 다른 손을 위로 올리지 않았다. 이준이 상체를 더 아래로 숙여서, 발판을 잡고 있는 서한의 손목을 붙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달되면서, 서한의 눈동자에 회한의 감정이 서렸다.
3년 전, 수아는 제 엄마의 호흡기를 떼어내지 못했다. 서한이 수아를 밤늦게 찾아왔을 때, 수아는 창가에서 엄마의 호흡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불어나는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동생마저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으면서 고통은 이중으로 가해지고 있었다.
엄마가 죽었으면. 어차피 깨어나지 못할 거라면, 동생을 살려야 해. 서한은 흔들리는 수아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태풍 속에 서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결국 수아는 호흡기를 떼어내지 못했다. 수아가 나간 후 서한이 병실에 들어갔을 때, 수아의 엄마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호흡기를 떼어낸 건 서한이었다.
수아는 아직도 자신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니.
극심하게 두려워했던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기억조차 왜곡되는 법이다. 서한은 수아를 협박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니, 조커가 그려진 카드 한 장을 가지게 된 것과 같았다.
죽어도 넌 내 곁을 못 벗어나. 죽어도……. 그런 수아가 딱 한 번 쥐구멍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강이준을 만나 사랑을 느낀 거였다.
서한이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이 서한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지만 손아귀의 힘이 점점 빠졌다. 서한은 늦기 전에 진실을 말했다.
“하, 수아 엄마 죽인 거 나야.”
“…….”
소스라치게 놀란 이준의 동공이 확대됐다.
“윤수아가 자기 엄마 죽인 거 아니라고. 4월 19일 11시 28분. 내가 그랬어…….”
“…….”
“내가 한 건데, 저 착한 기집애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자기 동생도 마찬가지고.”
“…….”
이준은 조금씩 미끄러지고 있는 서한의 손을 놓칠까 봐 온힘을 다하고 있었다. 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손잡아, 빨리. 하, 다른 손 뻗으란 말이야, 할 수 있잖아…….”
“…….”
서한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준의 모습을 눈에 새기고 또 새겼다. 미워했던 모든 순간들이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을…….
서한은 잡고 있던 발판에서 손을 놓았다. 이준이 발악하며 어떻게든 서한을 붙잡아보려 했지만 이미 놓친 뒤였다.
서한은 이준을 오롯이 응시하며 멀어져 갔다. 잠시 후. 퍽! 바닥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