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95)

<72화>

“하.”

수아는 짧게 신음했다. 주사바늘은 불쾌하게도 목을 깊게 찌르고 있었다. 서한은 손가락 받침대에 검지와 중지를 올린 후 주사기 뒷부분에 엄지를 올렸다. 

광기에 사로잡힌 눈알이 제멋대로 굴러갔다. 서한의 거친 호흡이 수아의 고막을 자극했다. 수아는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멈췄다. 

수아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뺨을 타고 턱 끝에 매달렸다. 소름 돋는 정적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엄마가 죽은 후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간절했는지 알 수 없다. 지안을 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버티면서, 제발 우리들을 살려달라고 신께 기도할수록 죄책감은 더욱 깊어졌다. 

엄마를 죽게 해놓고, 나는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건 치졸하고도 구차한 연명이 아니던가. 내 안의 이중적인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그러니 강이준, 그가 다치는 것보다는 내가 잘못되는 게 낫다. 수아의 음성은 단호했다. 

“죽이려면 빨리 죽여요.”

서한이 뺨을 씰룩이면서 대꾸했다. 

“누구 좋으라고 지금 널 죽여?”

서한이 굶은 짐승처럼 수아의 목을 핥았다. 미끈하고 뜨거운 혀가 더러웠다. 서한이 수아를 눕히고 티셔츠를 벗기려는 순간.

“퉤!”

수아가 서한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 쌍년이!”

서한이 미간을 사납게 구겼다. 손등으로 침을 닦은 서한이 수아의 뺨을 때렸다. 철썩!

“악.”

수아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갔다.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본데. 그럼 죽여줄게.”

“…….”

서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에서 가지고 내린 공구 상자를 열었다. 훔친 차 안에 공구 상자가 들어 있었는데 꽤 유용할 것 같아서 가지고 내렸다. 

그 안에는 성능 좋은 충전용 에어타카가 들어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공기의 압력으로, 못을 총처럼 박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눈이 뒤집어진 서한이 에어타카를 가지고 다가왔다. 수아는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절로 뒷걸음질 쳐졌다.

하지만 서한은 너무나 빨리 눈앞으로 다가왔다. 서한이 수아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윽!”

“강이준이랑 자니까 좋았어?”

“으윽…….”

“언제 처음 만났어? 어? 대답 안 해?”

퍽! 에어타카의 총구 부분으로 서한이 수아의 머리를 때렸다. 

“하아.”

찢어진 수아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수아는 머리채가 붙잡힌 채로 서한을 노려봤다. 

“어쭈. 죽을 때가 되어서 간땡이가 배 밖으로 튀어 나왔네. 그럼 말해 봐. 강이준 어디가 좋았어?”

“…….”

퍽! 서한이 에어타카 총구로 또 수아의 얼굴을 때렸다. 뺨이 찢어져서 길게 핏방울이 맺혔다. 

“강이준 어디가 좋았냐고, 이 쌍년아.”

“…….”

그래도 기를 쓰고 서한을 째려보던 수아가 입술을 떼어냈다. 

“전부 다.”

“하하하하.”

서한이 껄껄껄 웃었다. 휑하게 텅 빈 공간에 악랄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금세 서한은 가면을 쓴 듯 차가운 얼굴로 돌아왔다. 눈동자에 미치광이 같은 극렬한 빛이 감도는 순간.

탕! 서한이 수아의 팔에 대고 에어타카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으으윽…….”

콘크리트용 못이 박혔다. 수아는 팔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어도 비명이 새어나왔다. 

“다시 말해 봐.”

이번에는 이마였다. 서한이 목에 시퍼런 핏대를 세우며 수아의 이마에 에어타카를 겨누었다. 

눈물이 그렁했지만 수아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눈으로 서한을 노려봤다. 수아가 한맺힌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살아서는 날 건드리지 못할 거야……. 당하기 전에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 거니까…….”

“…….”

“당신이 날 엉망으로 만들고 죽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못 가져.”

“…….”

처음 보는 수아의 오기였다. 그 눈을 응시하고 있자니, 서한은 속이 뒤틀려서 오장육부가 쏟아질 것 같았다. 

“하아. 이제 죽을 거니까 마음대로 지껄여보겠다 이거야?”

“겁 안 나. 죽는 거. 엄마를 죽였을 때, 그때 나도 죽었어. 그 후로 계속 죽고 싶었지만 동생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

수아의 두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래, 곧 죽여줄 테니까 기다려. 강이준을 죽인 다음에 말이야.”

서한은 타카 총구로 수아의 머리를 한 대 더 내리쳤다. 

“하윽.”

수아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서한은 씩씩대며 일어섰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어서 죽기에는 딱 좋은 날이었다. 너무 쨍쨍한 날에 죽으면 섭섭하지 않은가. 

“강이준 어디가 좋았어?”

“전부 다.”

조금 전에 들었던 수아의 말 때문에 기분이 엿 같았다. 서한의 얼굴이 된통 구겨져 있었다. 멍청하고 가엾은 년. 아직도 자기가 엄마를 죽인 걸로 착각하고 있다……. 

하, 말 해주지 않을 거다. 끝까지 그렇게 살아. 지옥 속에서. 널 돌봐준 날 배신한 대가야. 

***

이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액셀을 힘껏 밟았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강서한, 이 미친 놈…….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수아와 함께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 올랐을 때. 타로 점을 보는 한국인 타로 마스터가 애정운이 궁금하지 않느냐며 두 사람을 붙잡았다. 

심심풀이로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수아와 이준은 타로 마스터가 시키는 대로 타로 카드를 몇 장 뽑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셨다구요?

“네.”

타로 마스터가 카드를 하나씩 뒤집으면서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너무 강렬하네요. 만남은 예정되어 있었어요. 아, 이 카드가 나왔구나…….”

타로 마스터가 작게 탄식하기에, 타로와 사주를 믿지 않는 이준도 조바심이 일었다.

“이 카드는 무슨 뜻이에요?”

타로 카드는 직관으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딱 보기에도 좋은 느낌의 카드가 아니었다. 수아가 처음부터 뽑은 것이었다. 

“8개의 칼에 둘러싸여 있죠? 그녀의 몸이 묶여 있고, 눈도 가려져 있고요.”

“…….”

“누가 그녀를 묶었는가.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묶은 거예요. 카드 속에 다른 인물이 없으니까요. 그녀는 아주 외로운 상태로, 자기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어요.”

수아가 머뭇거리다가 질문했다.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끈기를 가지고 버텨야 해요. 현재의 상황에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하구요. 애정운으로 해석하자면 앞으로 두 사람에게 이별이 있을 예정이에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가 힘들다는 뜻이거든요. 재회의 가능성은 어떨까요…….”

“…….”

타로 마스터가 또 한 장의 카드를 뒤집었다. 이준이 뽑은 카드였고, 이번에는 죽은 사람 몸에 열 개의 칼이 꽂혀 있었다. 바닷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 같은데, 해석이 더 나쁠 것 같았다. 

“온힘을 다해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네요. 몸에 칼 10개가 꽂혀 있죠? 타로 카드에서 칼 10개가 가장 많은 숫자예요. 마음의 상처가 매우 크고, 극한의 패배감을 맛본다는 거죠.”

심심풀이로 보고 있는데, 찝찝한 결과만 나왔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 이별이 있을 예정이라더니 재회하지도 못하는 건가. 이준은 눈썹을 구부리며 되물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뜻입니까.”

“끝까지 보셔야죠. 칼이 하나가 아니라 10개예요.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열렬하게 싸운 거예요. 위를 보시면 새까만 밤이죠. 그런데 바다 건너편에 동이 터오는 거 보이시죠?”

“…….”

칼에 꽂혀 죽은 사람 옆에 노란 빛이 보였다.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상황은 아주 비극적이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 어떤 어려움을 뚫고도 재회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별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별을 피할 수는 없어요. 기도하셔야 해요. 아주 간절하게요.”

“…….”

이준은 씁쓸하게 돌아섰었다. 그때의 타로카드 점이 영 꽝은 아니었던 걸까. 

이래서 사주나 타로는 질색이다. 해석에 여운이 남아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얘기를 들으면, 무시하는 것도 잘 되지 않으니까. 

곧 이준의 차가 폐건물 앞에 다다랐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은 없을 테니, 강서한이 장소를 꽤 잘 고른 셈이었다. 

“윤수아! 수아야!”

차에서 내린 이준이 소리 쳤다. 텅 빈 건물이라, 1층에서의 소리가 10층에서도 들렸다. 

강이준이 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해 있던 수아가 눈을 떴다.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정말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게 될 거였다. 

“강서한! 어디 있어!”

서한은 이제 막 도착한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씨발. 형인데 이제는 이름을 막 부르네? 죽을라고…….”

서한은 에어타카를 총처럼 손에 쥐고, 잠을 못 자 움푹 패인 눈을 부라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