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검은 모자를 쓴 서한은 병원에서 수아를 찾아다녔다. 무균실이 있는 3층 어디쯤에 있을 거였다.
의료진들은 바빴다. 서한이 이곳으로 올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기에 제법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수아를 보호하고 있던 경찰이 화장실로 갔을 때 서한은 그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경찰은 무방비 상태였다. 서한은 뒤에서 길로틴 초크를 걸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목을 끼우고 졸라서 경동맥을 압박했다.
“으악…….”
격투기 기술은 링 밖에서도 늘 위협적이다. 프로 선수가 아니라면 길로틴 초크 탈출 기술을 실전에서 써먹기가 힘들다.
“하윽…….”
“버티지 마. 씨발 새끼야……. 목에 체중 다 실으면 진짜 죽으니까.”
곧 경찰의 의식이 흐릿해졌고, 서한은 마지막 개인칸에 그를 짐짝처럼 처넣었다. 아까 사고 때 발목에 이상이 생겼는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절뚝이면 시선을 받을 수 있으므로 최대한 멀쩡하게 걸으려 애썼다. 서한은 복도 끝에 혼자 서 있는 수아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안녕.”
“!!!”
오싹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린 수아의 동공이 일렁거렸다. 눈썹을 치켜세운 서한이 눈앞에 서 있었다. 수아는 또 다시 쥐구멍에 갇힌 쥐새끼가 되고 말았다.
지안의 골수가 잘 도착해서 겨우 숨을 돌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강서한을 만나게 될 줄은…….
광기에 사로잡힌 벌건 눈과 이마에 말라붙은 핏줄기를 보니 저승사자보다 끔찍했다. 수아는 자신을 지켜주던 경찰을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뭘 그리 놀라. 또 볼 거라는 생각 안 했어?”
서한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저리 가, 윽…….”
서한이 팔을 뻗어 수아의 목 뒤 급소를 탁 쳤다. 수아의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몸이 축 늘어졌다.
“죽진 않을 거야. 걱정 마. 강이준이 오기 전에 죽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서한이 뻗어버린 수아를 등에 업고는, 응급실로 달리는 척했다.
“비켜주세요! 환잡니다!”
서한은 지하에 주차된 차 보조석에 수아를 구겨 넣고, 차를 거칠게 몰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동물병원에서 약물도 훔쳤다.
어제부터 몇 가지의 죄를 추가로 저질렀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감방에 들어갔다가 일흔 살이 되어 나오느니, 두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성격 상 맞았다.
수아는 한참 후 차안에서 눈을 떴다. 급소를 맞아서인지, 몸은 물을 머금은 솜이불처럼 축 처지기만 했다.
정신을 차려보려고 두 주먹에 힘을 줘 보고, 고개라도 뻣뻣하게 들어보려 했지만 몸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서한의 차는 어느 폐건물에 도착했다.
오래 전에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게 내리고 있었다.
서한은 수아를 끌어 내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수아는 질질 끌려갔다. 팔이라도 물어뜯고 저항하고 싶은데,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몸이 제멋대로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입구에는 ‘출입금지’라고 쓰인 폴리스 라인 노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서한은 그것을 홱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잉, 철골 형태로 바깥이 휑하게 드러난 엘리베이터가 작동했다.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서 위로 올라가니 아래가 훤히 보였다. 끼잉 하는 소리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발판이 엉성하게 덧대어져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릴 즈음 발판의 구멍을 발견한 수아는 기겁했다. 잘못하면 추락하기 딱 좋은 엘리베이터였다.
끼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는 고막이 따가울 정도로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 꼭대기층은 벽돌, 모래, 못, 비닐 등의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먼지가 수북했다.
사람이 하나쯤 죽어서 몇 년 후에 다 썩어 발견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건물이었다.
그때 서한이 수아의 주머니에서 폰을 빼앗아갔다. 강이준을 부르려고 그러는 것이다.
수아가 폰을 빼앗아서 박살내려고 했지만 팔은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여유 있게 수아의 팔목을 잡은 서한이 비웃었다.
“패턴은 안 바꿨겠지?”
서한은 수아의 팔목을 벽 쪽으로 밀어버렸다. 수아는 풀썩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아…….”
“강이준은 널 구하러 올 거야. 너희 둘이 내연관계니까. 그지?”
“…….”
서한은 가지고 온 공구 가방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 좀 위험한 건데 말이야.”
“…….”
수아가 의아한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 서한은 자랑하듯 주사기를 들어보였다.
“심정지 약.”
“…….”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수아의 속눈썹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동물들 안락사할 때 쓰는 약인데, 내가 어렵게 구해왔지. 대용량으로. 이걸 너한테 놓을까, 강이준한테 놓을까.”
“…….”
수아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서한은 아주 흥미로운 게임을 만난 것처럼 눈이 번뜩였다.
“네가 죽어가는 모습을 강이준이 보고 있는 게 나을까. 강이준이 죽어가는 걸 네가 보는 게 나을까. 윤수아. 뭐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어. 너희 두 연놈이 날 가지고 논 대가를 어떻게 치르게 해야 좀 더 비극적일지.”
“그, 그냥 날 죽여요…….”
“아니. 그건 내가 선택할 거야. 너한텐 선택권이 없어.”
수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흑흑흑…….”
“강이준한테 뭐라고 문자를 보낼까. 내가 문자 보내는 건 귀찮아서 질색하는데……. 하, 그래도 정성을 들여서 보내야겠지? 보고 싶다고 전해줄까?”
“…….”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서한은 수아의 폰으로 이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고 싶어요. 강이준 씨^^]
곧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고. 윤수아 씨 핸드폰입니다.”
이준의 단단한 음성이 부서졌다.
-씨발, 너 어디야…….
“윤수아랑 붙어먹는 중입니다. 이년이 너무 흥분해서 찍찍 싸고 있네요. 이 씨발놈아.”
-야이 개새끼야! 어딘지 빨리 말 안 해?
“큭큭. 성질머리하곤. 혼자 와야 될 거야. 혼자가 아니면, 네 눈앞에서 윤수아가 추락할 테니까. 아파트 10층 높이는 넘을 것 같은데.”
-……혼자 갈 거야. 제발 수아 건들지 마.
“내가 조금만 더 예뻐하고 있을게. 난 처음 먹는 거라서 말이야.”
-개새끼야!
전화를 끊은 후 서한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가셨다. 서한은 이준에게 주소를 전송했다. 그리고 수아를 괘씸하게 바라봤다.
“아무래도 억울하단 말이지……. 내가 너 열아홉 살 때부터 아꼈다가 똥 됐잖아. 이 쌍년아.”
“…….”
서한의 희번덕한 눈에 탐욕과 증오가 들끓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몸 안쪽이 살벌하게 떨렸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수아는 숨을 쌕쌕거리며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서한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리고 수아의 티셔츠를 찢을 기세로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수아는 손에 쥐고 있던 모래를 서한의 얼굴에 뿌렸다.
“앗, 씨…….”
발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이것 밖에 없었다. 서한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수아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몸뚱이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처럼 무거웠고, 내내 식은땀이 흘러서 몸은 젖어 있었다. 겨우 두 팔로 1미터쯤 기어간 수아는 서한에게 머리채를 홱 붙잡혔다. 피부가 뜯기는 것처럼 아팠다.
“으윽…….”
“강이준이랑 잤지?”
서한이 부리부리한 눈을 들이댔다. 수아는 강서한 몰래 심정지 약이 든 주사기를 주우려고 손을 뒤로 뻗었다. 손끝에 주사기가 걸리기를 바랐다. 애타게 바닥을 더듬었다.
“강이준이랑 잔 거 맞지? 맞잖아, 이년아. 대답 안 해?”
“…….”
수아가 대답하지 않자, 서한이 강한 힘으로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머리 밑을 불로 지지는 듯했다.
“아윽…….”
수아는 턱을 꽉 물고 뒤로 뻗은 손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이리저리 더듬었다. 여기 어디쯤 있었던 것 같은데. 제발……. 그러다가 손끝으로 주사기를 찾았다.
그것을 제대로 손에 쥔 수아가 서한의 목에 주사기를 찌르려고 팔을 들었다.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마음만 급했지, 팔은 더디기만 했다.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안 당해.”
“…….”
수아의 팔은 너무나 쉽게 붙잡혔다. 핏발이 선 서한의 눈이 오싹하게 빛났다. 서한이 주사기를 빼앗았다. 뾰족한 바늘이 거꾸로 수아의 목에 꾹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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