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95)

<70화>

사고 직후 서한은 1,2분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아…….”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흘렀고, 전신을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직 잡혀서는 안 된다.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서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고 용을 썼다. 목을 우두둑 돌렸다. 근육이 놀란 탓에 굳어버린 어깨와 팔을 돌리면서 몸을 풀었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시야를 가렸다. 서한은 물티슈를 뽑아 피를 대충 닦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부앙~~~!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우중충한 날이 나쁘지 않았다. 강이준. 윤수아. 너희 둘 다 살아서 잘 먹고 잘 살게 놔둘 수는 없지. 반드시 둘 중에 하나는 저 세상으로 보내줄 거야……. 

살아남은 사람은 끔찍해 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가길 바라. 서한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면서 액셀을 힘껏 밟았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전투기 소리와 맞먹는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헬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구급차가 떨어진 언덕은 다행히도 편평한 구릉 지대였다. 헬기가 착륙할 공간도 충분했다. 

수간호사 은혜는 절뚝거리면서 구급차 밖으로 나와 있었다. 

“여기예요!”

두 손으로 조혈모 세포 운송박스를 껴안은 은혜가 힘껏 소리쳤다. 얼굴 여러 군데가 찢기고, 몸은 타박상이 심해서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은혜는 오직 조혈모 세포를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었다. 

무균실에 있는 모든 환자가 안쓰럽지만, 지안은 특히 눈이 가던 아이였다. 한 부모조차 없다는 사실에 의료진들 모두 마음 아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안은 밝았다. 인사도 잘하고, 말을 건네면 사람 끔뻑 넘어가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지안아. 그동안 머리카락 많이 자랐네?”

“이모. 저 엘라스틴 했어요~~! 언니가 좋은 샴푸 사줬어요~~!”

“윤지안 양.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또 다른 비결이 있다면요?”

“요플레 뚜껑을 안 버리고 핥아먹으면 저처럼 머리카락이 길어진답니다~~!”

“아하하. 지안이 너무 귀여워~~”

지안은 늘 혼자였다. 수혈을 받을 때도 혼자여서, 간호사들은 지안이 눈에 밟힌다고 했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지안과 말동무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지안은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며 선한 눈웃음을 지었다. 정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다. 

지안의 언니는 의료진들을 보면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병원비가 밀려있는 탓이었다. 그 모습이 짠해서 의료진들이 자발적으로 병원비를 모아 지안을 후원해주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해외에서 공여자를 찾았으니 그 치료비가 어마어마할 거다. 그런데 이 조혈모 세포를 써보지도 못하게 되면 지안도 잘못될 수 있겠지만, 언니야말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 이런 법은 없잖아.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은혜는 발이 절로 굴러졌다. 지안과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은혜는 제 일인 것처럼 애가 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여기요! 여기예요!”

익숙한 병원 헬기가 아니었기에, 자신을 지나쳐버릴까 봐 겁이 났다. 은혜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군용 헬기가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며 구릉 지대에 도착했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라도 할 듯 강력한 바람이었다. 

모래와 풀들이 허공에 휩쓸려 다녀서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잡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아픈 대원들이 실렸고, 은혜는 마지막으로 조혈모 세포 운송 박스를 안고 헬기에 올라탔다. 

헬기는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20분 안에 갈 수 있다. 헬기가 공중으로 힘차게 떠올랐다. 

***

수아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헬기가 늦지 않게 도착한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준이 쓰러질 것 같은 수아를 부축하며 곁에 있었다. 

의료진들 몇 명이 옥상으로 우르르 뛰어 올라갔고, 잠시 후 엄청난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곧 의사 선생님이 조혈모 세포 운송 박스를 들고 달려와 지안이 있는 무균실로 들어갔다. 

수아는 함께 뛴 것처럼 헉헉대며 심호흡을 했다. 눈가가 젖은 무균실 간호사가 같이 안도했다. 

“보호자님. 이런 일은 저도 살다 처음이에요. 정말 다행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박은혜 수간호사님이 구급차 안에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질 때 운송 박스 지키시려고 끝까지 안고 있으셨대요.”

“정말요? 지금 그 분은 어디 계세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셨어요.”

“아, 어떡해…….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고요?”

“검사해봐야 알겠지만요, 박 간호사님은 양호한 편일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다행이에요, 정말…….”

죄송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정말 고맙고, 죄송해요. 수간호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안아. 널 살리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셨어. 힘내야 해…….

그 시간 지안은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 재잘거리는 사이, 링거를 통해 독일인 공여자의 조혈모 세포가 지안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주희는 오늘 이른 아침 김 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 비서. 당분간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장님이 대정산에서 나온 시신의 살인 용의자라는 거, 진짜예요?”

-자세한 건 나도 모릅니다. 사장님과 연락이 안 돼서요. 경찰이 어제 밤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회사로 들이닥쳤습니다.

“하…….”

퍽, 주희는 손에 쥐었던 물 잔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쏟아진 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희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물에도 비릿한 냄새가 나서 마시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살인자의 아이를 임신한 거야? 

인정할 수 없었다. 주희는 냉큼 약국에 다녀왔다. 어제 워낙 흐릿하게 두 줄이 나왔으니 잘못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소변을 묻히고, 한 줄이 나오기만을 바랐다. 이번에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어김없이 두 줄이었다. 

“악!”

주희는 임신테스트기를 변기에 집어던졌다. 

***

한숨을 돌린 이준은 복도에서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도울 수 있어서 저도 기쁩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더군요.

“네. 헬기가 아니고는 방법이 없었는데요, 이번에 큰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도서관 건립과 생태 공원 조성에 힘써주셔서 제가 더 고마운 일이죠. 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통화는 끝이 났다. 복도 창문 밖으로 짙은 회색 구름이 보였다. 문득 오싹한 느낌이 스쳤다. 

사고를 낸 사람이 강서한이라면 경찰에 잡혔을 것이다. 그러면 조 형사로부터 범인을 검거했다는 전화가 걸려올 텐데.

이준은 조 형사에게 퍼뜩 전화를 걸었다. 

“형사님. 산포 고속도로 교통사고 보셨습니까?”

-네. 강서한의 짓이 맞습니다. 차 번호 확인했습니다. 일부러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이고요. 그 후 도주했습니다.

“네? 도주했다구요?”

이준의 등줄기에서 소름이 번졌다. 

-네. 그 차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왔는데요. 시내로 들어와서 다른 사람의 차를 훔쳐서 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량 도난 사고 신고가 접수 됐습니다.

“그 차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까?”

-도난 신고는 좀 전에 들어와서 이제 파악하고 있습니다.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려 있는 차가 아니라면, 위치를 바로 알 수는 없어서요.

“…….”

강서한은 정말 악마가 되어버렸다.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 같은데……. 이준은 정신없이 뛰어서 3층 휴게실로 왔다. 아까 수아가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이준은 간호사를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윤지안 환자 보호자 어디 갔습니까?”

“좀 전에 여기 있으셨어요. 화장실 간 거 아니에요?”

이준은 여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윤수아! 수아야! 윤수아!”

없다. 개인칸을 열어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빌어먹을…….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이준은 병원 복도를 뛰어 다니며 수아를 찾아다녔다. 보이지 않았다. 이준이 폰을 꺼내 수아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발신자는 윤수아였다. 

[보고 싶어요. 강이준 씨^^]

수아의 번호로 문자가 왔으나, 수아가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강서한이 비열하게 씩 웃고 있는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이준이 폰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굵은 팔뚝에 퍼런 핏줄이 불거지고, 관자놀이가 씰룩댔다. 강서한, 이 놈과 끝장을 봐야 했다. 

눈빛이 짐승처럼 사나워진 이준이 수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서한이 걸걸한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아이고. 윤수아 씨 핸드폰입니다. 

“씨발, 너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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