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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69/95)

<69화>

수아는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늘은 지안의 골수이식 예정일이었다. 

오전 11시에 특별 항공편으로 독일인 공여자의 골수가 도착한다고 했다. 앰뷸런스가 그것을 싣고 오면 12시 반부터 지안의 몸속으로 새로운 골수가 들어간다. 

피검사 수치가 거의 0에 가까워졌다. 아주 좋은 신호였다. 유전자가 99.9% 일치한다고 했으니 충분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희망이 새록새록 차올랐다. 

도주한 강서한 때문에 겁이 났지만 오늘은 지안의 스케줄이 훨씬 더 중요했다. 수아는 무균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지금 지안이는 어때요?”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요. 근데 어젯밤에는 실패할까 봐 걱정이 돼서 잠을 잘 못 잤던가 봐요. 그래서 지금 곤히 잠들었어요.”

“…….”

안쓰러웠다.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등을 토닥이면 강아지처럼 잘도 자는 아이다. 

자기 딴에도 얼마나 걱정이 많을까. 지안아. 다 잘 될 거야. 언니가 부족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널 지켜줄게. 미안하고, 고마워…….

무균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수아는 통제구역 안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봤다. 

***

부아앙~~~! 핸들을 잡은 서한은 앞 차를 보며 흰자위를 번뜩였다. 며칠 전에 수아에게서 골수이식 스케줄을 들었다. 지금은 공항에서 출발한 앰뷸런스를 쫓아가는 중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변했다. 뉴스에서 자신은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인생은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았던가.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격투기의 제왕이라는 말을 듣고 살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화려한 시절을 잊지 못해서 빈껍데기로 살고 있다.

나의 노쇠함으로 인해 정상에서 내려올 준비를 했다면 이렇게 세상을, 오기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바닥까지 내려왔을 때. 그 분노와 증오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통제가 안 됐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 해도, 오기철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니 오기철이 잘못한 거다. 내 다리를 망가뜨려서는 안 됐다. 

서한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뭐, 대단히 슬프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끝끝내 속만 썩이고, 실망을 시켜드리는 꼴이었다. 

처음으로 챔피언 벨트를 따던 날. 관중들의 환희……. 몸 안에서 터져 나오던 전율…….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길이 크게 구부러지는 도로였다. 서한이 맹렬하게 액셀을 밟았다. 순식간에 앰뷸런스 앞으로 끼어든 서한이 이번에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미처 피하지 못한 구급차가 서한의 차 뒤를 들이받았다. 퍽! 

서한의 차는 가까스로 안전 펜스를 들이받고 멈췄다. 하지만 앰뷸런스는 중심을 잃고 펜스를 넘어가 고속도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쿠당탕~~~!

30여 미터 아래로 추락한 구급차 안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악! 으윽…….”

두 명의 구급 대원과 수간호사 한 명, 총 세 명이 타고 있었다. 치익, 치익, 치익~~~

충격으로 무전기가 부서졌는지 소음만 냈다. 박은혜 수간호사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안전벨트를 했지만 차가 구르면서 이곳저곳을 강하게 부딪쳤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조혈모세포 전용 운송 용기가 깨질까 봐 은혜는 그것을 목숨처럼 안고 있었다. 턱과 얼굴을 몇 번이나 부딪쳤는지 모른다. 

은혜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손등으로 대충 닦았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돌려 구급차 안 상황을 살피고는, 운전석을 향해 물었다. 

“하……. 송 팀장님. 괜찮으세요? 민규 씨는요?”

앞쪽에서도 비명이 섞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윽, 저는 다리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송 팀장님. 그 외는 괜찮으시고요?”

“모르겠습니다. 상체는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네요.”

“민규 씨는요?”

“의식이 없는 것 같은데요…….”

송 팀장이 옆에서 정신을 잃은 구급대원 이민규의 뺨을 때렸다. 탁탁, 두 번 때리자 민규가 깨어났다.

“하윽…….”

“정신 들어? 괜찮아?”

“후, 후, 핸들에 부딪쳐서 갈비뼈가 부러졌나 봐요. 하, 숨 쉬기가 힘들어요…….”

Rrrrr~~~ 무전기로 연락이 되지 않으니, 은혜의 핸드폰으로 병원 측 전화가 걸려왔다. 은혜가 겨우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네…….”

-왜 무전기가 안 됩니까?

“사고 났어요……. 고속도로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하, 어디 지점이죠?

“산포 톨게이트 들어가기 1킬로미터 전, 급커브 구간입니다…….”

-얼마나 다치셨어요? 다들 의식은 있어요?

“네. 저희 세 명 모두 의식은 있고요. 송 팀장님은 다리 골절, 민규 씨는 갈비뼈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조혈모 세포는 이상 없습니까?

은혜는 조혈모 세포 운송박스를 더듬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금 구급차 안 보조 동력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조혈모 세포 온도 유지가 힘들 것 같습니다…….”

조혈모 세포는 특수 용액에 담겨, 세포가 정지 상태가 되는 영하 70도로 냉동되어 있었다. 조혈모 세포는 해동하는 순간 죽어버린다. 환자의 몸에 주입할 때는 급속해동하면서 몸에 차가운 상태로 넣어야 한다. 

-최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1시간 채 안 될 거예요.”

-방법을 논의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제발 빨리 와 주세요…….”

은혜는 오며가며 만나던 지안을 특히나 예뻐했었다. 다친 자신보다 꺼져가는 아이의 생명이 훨씬 더 안타까웠다. 

지안은 두 번째 이식인데다, 골수 이식이 유일한 희망이다. 피가 맺힌 은혜의 입술에서 간절한 기도가 흘러나왔다. 

“제발 누구라도 도와주세요……. 제발요…….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요…….”

***

“뭐, 뭐라구요? 사고가 났다구요? 하, 하…….”

담당 간호사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수아가 복도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지안은 면역력이 0인 상태로 공여자의 골수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지안이 어떡해……. 

하늘이 무너져도 왜 이런 식으로 무너진단 말인가.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수아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흑흑흑…….”

경찰서에 다녀온 이준이 병원으로 뛰어 들어오며 상황을 전해 들었다. 수아는 복도에서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이준이 병원 이식팀 간호사를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헬기를 띄우면 안 됩니까?”

“병원 헬기는 독도에서 해군과 훈련 중이에요. 지금 바로 사고 현장으로 갔다가 이리로 온다고 해도, 2시간은 훌쩍 넘어가요…….”

“이런…….”

입안이 바짝 마른 이준은 손바닥으로 입술을 쓸었다. 강서한의 짓인가. 이 미친 새끼를……. 내가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어떻게 아이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칠 생각을 했을까. 

하, 어떡해야 되지. 헬기가 아니면 도저히 골수를 1시간 만에 가져올 수가 없다. 

이준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수차례 흩날렸다. 그러다가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준이 바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국 건축 박람회에 진출할 10개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시장님과의 만찬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도서관 건립 문제와 생태 공원 활성화 때문에 한 번을 더 만났고,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혹시 가능할까. 반드시 살려야 한다……. 신호가 오래 갔지만 받지 않아서 끊으려는 찰나. 

“여보세요.”

숨이 넘어갈 뻔했다. 이준이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시장님. 아우름 건축사무소 대표 강이준입니다.

“오, 강이준 씨. 오랜만이라 더 반갑네요.”

-시장님. 정말 급합니다. 혹시 지금 당장 헬기를 동원할 수 있습니까.

“헬기요?”

-네. 비용이 얼마건 상관없습니다. 산포 고속도로에서 구급차가 언덕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간호사와 구급 대원 3명이 중경상을 입었고요, 그 안에 8살짜리 아이가 이식 받아야 할 조혈모 세포도 실려 있습니다. 1시간 안에 병원으로 싣고 오지 못하면, 독일에서 운송해온 조혈모 세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입니다. 

“아, 위급한 상황이네요. 잠시만요.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기다리는 몇 분간 피가 말랐다. 이준은 벽에 등을 기대고 스르르 주저앉았다. 

수아는 차가운 복도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옅은 흐느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엄마. 제발 우리 지안이 좀 살려 줘……. 제발……. 

이준은 수아가 떨지 않도록 한 팔로 감싸 안아 주고 싶었지만, 손을 뻗지 못했다. 

수아를 탐냈던 마음, 그것이 결국 나쁜 일들을 연속해서 만들어낸 게 아닐까.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와 강서한, 두 남자 사이에서 수아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이 사랑이, 결국 수아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아를 구하려 했으나 더욱 절벽으로 내몬 셈이었다. 

너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너를……. 이준은 턱을 아프도록 물고,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았다. 

그때 시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준이 손을 떨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시장님.”

-가능합니다. 지금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시면 헬기가 당장 출동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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