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95)

<66화>

“너도 지옥을 맛 봐야지. 나만 이럴 순 없으니까.”

“이거 안 놔? 이 미친놈아!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고!”

서한은 수아의 팔을 질질 끌고, 한국 병원 혈액병동 3층 출입통제구역까지 들어왔다. 

늦은 시각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의료진들만 다니는 엘리베이터가 비어 있었다. 무균실이 몇 층이라고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서한은 용케도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여긴 절대로 안 돼요! 제발! 제발이요! 이러지 마! 흐윽…….”

수아가 미친 여자처럼 울었다. 서한의 팔을 물어뜯고 주먹질을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언제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에게서 무참히 짓밟히고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녔던 것처럼. 

의료 방호복을 입고 무균실 안에 있던 간호사들이 기겁했다. 

“누구세요?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당장 나가주세요!”

“여기는 출입 통제 구역입니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치료받는 곳이에요! 나가 주십시오! 어서요!”

서한이 힘으로 간호사 둘을 밀쳐내고, 무균실 문을 안에서 잠가버렸다. 쫓겨난 간호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보안요원을 부르러 달려갔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총과 칼을 들이대지 않아도, 세균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환자들이었다. 신생아들보다 면역력이 더 약했다. 

수아도 들어올 때 방호복을 입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데,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린 서한이 막무가내로 수아를 끌고 이리로 온 거였다. 

수아는 흡사 정신이 나간 여자처럼 보였다. 흰색 티셔츠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다리를 절뚝이며 끌려 다녔다. 

“이 미친 새끼야!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고! 당신 돌았어?”

조용하던 무균실이 소란스러우니 환자들은 전부 잠에서 깨어나 불을 켰다. 서한은 무균실 앞에 적힌 환자의 이름을 보며 지안을 찾아다녔다. 부리부리하게 뜬 눈이 마약이라도 한 듯 정신없이 굴러다녔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를 지나려다가, ‘윤지안’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죽어! 죽어버리라고! 안 돼! 열면 안 돼…….”

수아가 서한의 목을 조르려고 달려들었다. 서한은 가볍게 제지시키며 세 번째 무균실 문을 열었다. 서한이 병실 안 비닐 장막을 확 걷었다. 지안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언니……. 다쳤어?”

수아의 몰골이 기괴한 탓에 곧바로 지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지안아! 마스크 써, 얼른!”

“알았어.”

정신을 차린 지안은 더듬더듬 팔을 뻗어 베개 위에 있던 마스크를 잡았다. 머리카락 없이 반질반질한 머리는 파란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지안은 재빨리 마스크를 썼다. 

“내 동생 큰일난단 말이야! 이 미친 새끼야! 이건 살인이라고!”

수아가 다시 서한의 팔을 물어뜯자, 서한이 수아의 목덜미를 붙잡아서 홱 벽으로 밀쳐버렸다. 

“윽.”

벽에 부딪친 수아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있는 대로 악을 써서 힘겨웠다. 

지안을 지켜야 하는데……. 의식이 자꾸만 멀어지려 했다. 수아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제 팔에 손톱을 꽉 박아 넣었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견뎌왔던 것들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제발……. 의식은 실낱같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저씨. 누구예요……. 왜 우리 언니 때려요……. 흑흑흑…….”

수아를 닮아 맑고 깊은 지안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스크가 이내 젖어들었다. 

서한은 비웃으며 지안을 바라봤다. 꼴에 언니를 걱정하고 있다. 기가 막히게도, 수아와 똑같이 생긴 아이였다. 

“야, 꼬맹이. 네가 알아야 될 게 있어. 너희 엄마 죽인 사람이 누군지 알아?”

“…….”

지안이 서한을 빤히 바라봤다. 서한은 냉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엄마가 숨을 못 쉬어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그걸 억지로 떼어내서 숨을 못 쉬게 만든 사람이 바로 너희 언니야. 쉽게 말하면, 너희 언니가 엄마를 죽인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

지안의 커다란 눈이 느리게 끔뻑끔뻑 움직이다가, 벽에 고꾸라져 있는 수아를 향했다. 수아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 또한 구차했다. 

수아는 살면서 가장 아픈 두 번째 시간을 겪고 있었다. 첫 번째는 엄마가 죽던 날. 두 번째는 동생 앞에서 심판을 받는 지금. 

그토록 숨기고 싶어 강서한과의 결혼을 감행할 정도였는데.

“꼬맹이. 이해했냐고.”

“…….”

애잔한 눈빛으로 수아를 응시하던 지안이 서한을 바라봤다. 지안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알고 있어요.”

“……뭐라고?”

서한이 눈썹을 구부렸다. 지안의 심판이 두려워 숨을 멈췄던 수아는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지안에게로 돌렸다. 지안은 수아를 다시 한 번 눈동자에 꾹꾹 담았다. 

거짓말 아니야, 언니. 그런 눈빛을 보낸 후에 지안이 서한을 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 일기장 봐서 알고 있어요. 학교에서 글자를 배웠거든요.”

“…….”

서한은 답답해서 조금 전의 말을 되풀이하며 흥분했다. 

“꼬맹이. 잘 못 알아들었나본데, 언니가 엄마를 죽였다니까? 너희 언니는 살인자야! 사람을 죽였어! 그것도 너희 엄마를! 아주 못돼 처먹은 악마야! 끔찍한 괴물이라고!”

“아니에요! 우리 언니는 괴물이 아니에요!”

“…….”

발끈하며 대들던 지안은 곧 눈물을 뚝뚝 흘렸다. 기어이 서러운 그 말을 꺼냈다. 

“제가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서 그래요…….”

“…….”

정적 속에 지안의 훌쩍거림이 섞여 들었다. 

“병원에 있는 애들은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했어요…….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우리 언니가 그랬을 거예요……. 흑흑흑…….”

“…….”

8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언니의 일기장을 보고 많이 놀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는 아픈 자신 때문에 그런 거였다. 

혈액병동에 있는 애들은 돈 잡아먹는 귀신이라고 했다. 보호자 등에 빨대를 꽂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엄마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누가 공짜로 치료를 시켜주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언니가 밤낮으로 일하는 게 병원비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너무 고단한 날 끙끙 앓으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도. 그게 전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언니를 이해하는 일 뿐이었다. 조그만 머리로, 또 가슴으로 이해하는 일. 

“언니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거예요…….”

“…….”

병원에 있는 아이는 이토록 빨리 커 버렸다. 돈에 찌들려 있는 병원 사람들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애어른이 되어 있었다. 

서한은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는 지안을 보면서, 극심하게 소외되는 기분이었다. 괘씸했다. 똑같은 족속들이었다. 

한 번도 이런 식의 이해는 받아본 적이 없다. 언제나 회사에 먹칠할까 봐 돈으로 무마시키기 바쁜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서한은 빗나가고, 또 삐뚤어졌었다. 

하지만 지안은 고슴도치처럼 제 언니를 두둔했다. 지안은 언제나 언니 편이었다. 

“언니는 나쁜 행동을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이걸로 우리 언니를 괴롭히는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에요……. 흑흑흑…….”

“…….”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뱉어내는 말들은 한결같았다. 

“아무도 언니한테 나쁘다고 말하면 안 돼요. 아무도 우리 언니한테 손가락질 하면 안 돼요……. 내가 가만 안 둘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나쁜 사람이에요……. 우리 언니 때리지 마세요…….”

“…….”

마스크가 흠뻑 젖도록 지안이 울었다. 무균실에 있는 동안 창문 한 짝이 지안의 유일한 친구였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꼭 건강해져서 나갈 거야. 그리고 언니를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할 거야. 학교에 갈 거야. 창문 앞에서 수없이 하던 다짐. 

그 무균실 창문을 통해 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초승달의 빛이 구름을 뚫고 나왔다. 그 달빛이 수아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수아는 등을 기댄 차가운 벽에서 온기를 느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울컥, 뜨거운 것이 목안에서 차올랐다. 

“흐윽흐윽…….”

수아가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엄마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못했던 수아가, ‘언니도 죽어’ 그 꿈에서조차 변명 한 번 하지 못했던 수아가, 누구보다 서럽고 아프게 오열했다. 

가슴 속을 짓누르던 바위 같던 그것을 뚫고, 울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질식할 것처럼 수아를 옥죄던 죄의식이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상태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삶이 수렁에서 건져 올려지는 듯한 느낌은 바로, 구원이었다. 

그 순간 수아는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신은 죽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를 진정으로 구원할 수 있는 건 그토록 찾았던 신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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