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95)

<62화>

이준은 잠도 자지 않고 대정 중학교 일대를 돌아다니며 고민했다. 눈은 실핏줄이 서 있어서 벌겠다. 

강서한과 윤수아, 두 사람을 끊어낼 수 있는 강력한 사건이 필요한데, 이 사건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대정 중학교 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거기에 시체가 있을까. 많은 학생들이 등교하는 곳인데, 차로 태워서 외곽으로 나갔을 확률이 90프로 이상일 것 같다. 

일격을 가한 뒤 폰은 중학교 앞 하수구에 던져버렸을 수도 있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강서한이 치밀한 성격이 아닌데, 살인을 했다면 10년 동안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잘못 파고든 걸까. 살인은 없고, 단순실종인가…….

이준은 막 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빠져나오는 남학생들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얘들아. 혹시 이 근처에 사람이 가지 않는 무서운 곳이 있을까? 으슥한 데 말이야.”

중1쯤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손가락으로 학교 뒤를 가리켰다. 

“아, 우리 학교 뒷산이요.”

보통 학교 뒷산이나 야산은 비행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다. 담배 피우고 술도 마시고 하니 저런 곳에 시체를 유기할리는 없지 않을까. 

“우리 학교 뒷산에서 사람이 목을 맨 적이 있어요. 아주 오래 전에요. 그 후로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온대요.”

그 옆에 있던 남학생도 거들었다. 

“실제로 그걸 본 애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기는 안 가요. 해 지면 무조건 학교에서 빨리 벗어나요.”

이준은 미간을 슬며시 좁히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 학교 다닐 때 들었다. 그냥 소문이 아니고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학교 서무실 여자 직원이 목을 맸는데, 불륜에 관련된 일이라 했다. 서한이 대정 중학교를 다닐 때 벌어졌던 사건이었는데 그 소문은 발이 달린 것처럼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데 엄마 안나희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한이 출장인 거 아니? 아버지가 다음 주 주말에 저녁을 먹자고 하시는데.”

“네. 그럴게요.”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또 차를 바꿔준다고 하지 뭐니. 산지 1년도 안 된 차를. 5년 사이에 몇 대나 바꾸는 거야. 짜증나게…….”

“…….”

갑자기 둔기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했다. 뭔가가 떠올랐다. 5년 사이……. 맞다. 5년이다. 

***

무균실 3일 째. 수아는 지안의 면회를 왔다. 의료 방호복을 입은 모습이 비닐 인간 같다고나 할까. 한 시간 밖에 면회가 되지 않아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영양제와 수액이 충분히 들어가고 있지만, 잦은 설사와 구토, 발열 등으로 인해 지안의 얼굴은 더 마른 듯했다. 젖살로 예쁘장해야 할 나이인데, 하얗다 못해 관자놀이와 목의 핏줄이 너무도 선명했다. 

지안은 쇄골에 히크만 카테터라는 실리콘 튜브를 달았다. 저 곳으로 항암제도 넣고 채혈도 한다. 목부터 심장까지 연결되는 튜브를 넣은 건데, 어쨌든 목에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니 보고 있기만 해도 서글펐다. 

하지만 지안은 수아가 넣어준 책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언니가 넣어준 책 읽었는데 오늘 아픈 것도 몰랐다?”

“헬렌켈러 재밌었어?”

“헬렌켈러가 모든 것에 이름에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나 완전 소름 돋았어! 팔에 닭살이 엄청 많이 났었다니까?”

지안은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본 것처럼 흥분했다. 영화관은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니까 위험해서 가본 적도 없는데. 수아는 말이 하고 싶은 지안을 위해 최고의 리액션을 보여줬다. 

“물 맞으면서 water라는 걸 깨달을 때. 맞지?”

“어어! 나 정말 그때 속이 시원해서 날아갈 뻔했어! 물을 맞으면서 물을 알게 됐잖아!”

“언니도 그 장면에서 진짜 놀라고 감동 받았었는데. 그럼 헬렌켈러를 가르쳤던 위대한 선생님도 누군지 알겠네?”

“응! 걸리번 선생님!”

“……설리번인데?”

“아!”

지안은 눈밑 애교살을 접으며 무안한 웃음을 지었다. 

“걸리버 여행기랑 헷갈렸지?”

“응.”

수아가 지안을 따라 피식 웃었다. 우리 지안이, 공부는 영 꽝일 것 같은데……. 그래도 건강하기만 해 줘. 제발. 

간호사가 슬쩍 얼굴을 내보이며 면회 시간이 끝났다고 눈치를 줬다. 벌써 시간이 다 됐다. 수아는 안타까운 눈으로 곧 나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급한 수아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지안아. 언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응. 나도 엄청 사랑해.”

“조금만 더 힘내서 버텨 줘. 다음에 영화관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고, 애견카페도 가자.”

“알았어. 매일 매일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일 또 와야 해.”

“그럼. 당연하지.”

수아는 도장을 찍듯이, 지안의 모습을 눈 속에 새겼다.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있는 지안의 팔과 민머리가 안쓰러웠다. 내일은 널 볼 수 없을까 봐 겁이 나. 지안아…….

***

이준은 대정 중학교 뒷산을 뒤지고 있었다. 강서한은 어릴 때부터 사고를 달고 살았다. 18살 때는 아버지 차를 몰래 타고 나가 친구 세 명과 드라이브를 하다가 큰 사고를 냈다. 

그러다가 친구 두 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그 충격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운전을 하지 못했다. 늘 기사를 데리고 다니다가, 불과 5년 전쯤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남들 눈에 세계 최고의 싸움꾼이었어도, 속으로는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거다. 

그러니 십년 전, ‘넌 곧 내 손에 죽는다’라는 문자를 보낸 게 강서한이라면, 오기철을 죽이겠다고 작정했다면, 그 당시에는 운전을 할 줄 몰랐을 것이고, 대정 중학교에서 끝을 보려고 작정했을 거다. 

물론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매우 낮다. 공범은 같은 목적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이건 강서한의 개인 보복이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그 일을 당했으므로 그 후 강서한은 철저하게 사람을 믿지 않았다. 

살인을 저질렀다면, 단독범행이 확실하다. 여기까지 인과관계가 딱 맞아 떨어진다. 이제 살인의 증거만 찾으면 되는데…….

이준은 며칠 째 밤낮으로 랜턴, 목장갑, 삽, 낫 등을 가방에 넣고 야산에 올랐다. 시체를 묻었다면 십년 전이므로, 이미 흙 색깔이 주변의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혼자 산을 거의 다 파헤쳐야 했다. 

생각보다 해가 빨리 졌다. 어두워서 당최 뭐가 보이지 않는다. 부엉이인지 뻐꾸기인지 낮에 들었으면 괜찮았을 새소리가 기괴하게 들렸다. 

삭삭삭 움직이는 날짐승들의 소리도 음산했다. 가끔 뭔가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스치는 기분도 든다. 아직까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을 만도 했다. 

오직 오기철의 시체를 찾아 강서한을 감방에 집어넣고 윤수아를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아가 불행해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

서한이 캐리어를 끌고 공항 출입문을 나왔다. 마중 나와 있던 김 실장은 대신 캐리어를 끌고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하면서 보고했다. 

“오늘도 만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

이것들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할까. 글쎄. 

“왜. 그 여자가 결혼이라도 앞두고 있어?”

라고 떠봤을 때 강이준이 흠칫 놀랐던 것 같기도 하다. 남자가 있어도 빼앗겠다고 했던 놈인데……. 

윤수아는 언제나 죄인 마냥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고. 왜 진즉에 의심하지 않았냔 말이야. 전부 다 이상하다. 내가 왜 등신처럼 히죽거리면서 강이준을 놀리고만 있었지?

옆에 있는 김 실장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사장님.”

“왜.”

“두바이 입찰 결과가 샌 듯합니다…….”

서한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내일 나오는 거 아니야? 어디서 샜어? 어떻게 된대?”

-스페인의 ACS가 입찰에 성공할 거라고…….

“씨발!”

서한이 공항 안에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욕지거리를 연거푸 뱉어냈다. 김 실장은 그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하고, 겨우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건넸다. 

“사장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씨발! 진짜 돌겠네…….”

입찰에만 성공하면 회사 문제는 다 해결될 거였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장 자리는 다음 해에 내놓아야 될 처지였다. 아버지 얼굴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한참 동안 화풀이를 한 서한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차에 억지로 올라탔다. 한숨을 있는 대로 내쉬고 있었기에, 김 실장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 보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십 분간 한숨만 뿜어내던 서한이 백미러로 김 실장을 바라봤다.

“춘천별장 CCTV 복구 됐어?”

CCTV 영상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업체에 맡기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네. 몇 시간 전에 복구 됐고요, 제가 하나하나 다 훑어 봤습니다…….”

“뭐야? 두 사람, 뭐가 있어?”

김 실장이 백미러로 사나워진 서한의 눈을 흘긋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이상한 부분을 찾았습니다…….”

서한의 목소리가 폭발물처럼 터져 나왔다. 

“당장 차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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