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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61/95)

<61화>

“그러니까 그 말은, 이 사건이 강서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네요.”

“…….”

민우의 눈동자가 조심스레 흔들렸다. 제 스스로 말의 발목이 잡혀버린 민우가 시선을 회피하며 인상을 구겼다. 이준이 강한 어투로 밀어붙였다. 

“아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난 할 말 없어. 아무것도 모르니까.”

민우는 이준을 싸늘하게 노려봤다. 

“남의 가게에 와서 업무 방해할 거야? 그만 나가. 찾아오지 마.”

이준은 자신의 명함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나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내야 될 거 아닙니까.”

“…….”

시체라는 말에, 민우의 숨이 흐트러졌다. 이준은 민우의 표정을 낱낱이 관찰하며 말을 이었다. 

“화장이라도 해서 제대로 보내줘야죠. 친구로서 그 정도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

이준이 섬뜩한 추측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민우는 탁자 위에 놓인 명함을 흘긋거리더니, 상대하기 싫다는 듯 오토바이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이준은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나왔다. Rrrrr~~~ 신 비서였다. 

“어. 신 비서.”

-로건이 우리 쪽 미국 사무실 오픈에 대해서 물어보는데요.

“…….”

원래부터 세계로 진출하는 게 목표였고, 뉴욕에 사무실과 오피스텔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최소 1년은 미국에 가 있어야 한다. 

-대표님. 2주 밖에 안 남았는데 도통 말씀이 없으셔서요. 가는 거 맞죠?

씁쓸하게 먼 산을 보던 이준의 대답이 늦었다. 

“……가야지.”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급한데, 이것도 저것도 풀리지 않았다. 이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으며 액셀을 밟았다. 

***

지안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있었다. 

“입안에 세균이 남거나 염증이 생기면 큰일 나. 양치와 가글은 바로 해야 되는 거 알지? 항문이 좀 따갑다 싶으면 간호사 이모한테 바로 말하고.”

“흑, 흐윽…… 무서워…….”

“언니는 너 하루에 한 번 밖에 못 보니까, 네 상태를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해.”

“알아…….”

수아는 같이 훌쩍거릴 여유가 없었다. 칫솔, 치약, 로션, 물비누, 죄다 새것으로 챙기고, 책도 새 책으로 두 권 챙겼다. 물건들을 무균실로 보내려는데 옆 병실 하윤이 엄마를 복도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하윤이 어머니.”

“네. 지안이 내일 무균실에 들어간다면서요?”

“네. 걱정이 되네요…….”

“잘 되길 빌어요, 진짜.”

“고맙습니다. 하윤이도 이번에 신약이 너무 잘 듣는다면서요? 정말 다행이에요.”

“네.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는데, 좋아지고 있는 게 확 보여요.”

“우와. 정말 잘 됐어요. 하윤이가 빨리 학교에 가면 좋겠네요.”

“고마워요. 아, 이거 하나 새것으로 드릴게요. 지안이 무균실에 들어갈 때 도움될 지도 모르겠어요.”

“물티슈예요?”

“네, 이건 변기에 넣어도 되는 물티슈예요. 분해되거든요.”

“어머. 이런 게 있는지 몰랐네요. 진짜 편하겠어요. 잘 쓸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설사를 많이 하게 되면 항문도 헐기 때문에 물티슈가 훨씬 낫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물티슈를 손에 쥔 수아는 저만치 걸어가는 하윤이 엄마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병원이야말로 빈부의 격차를 극심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백혈병인 하윤이는 신약 투여에 성공하면서 퇴원을 앞두고 있다. 

신약들은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데, 혹시라도 환자의 몸에 맞다면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으니 돈만 있으면 뭐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하윤이가 시도한 신약은 꿈의 항암제라 불리고 있는 ‘킴니아’였다. 미국 FDA에서 승인이 난 약인데 일반 암 말고, 말기 혈액암 환자들에게서 아주 뛰어난 효과를 낸다고 들었다. 

주사 한 번으로 해결되는 데다, 암만 공격하는 매우 똑똑한 녀석이다. 지안이는 암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지만, 그 주사는 무려 5억원이 넘는다. 2022년 하반기에 의료보험 적용이 되면 몇 백만 원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주치의 선생님은 하윤이의 생명이 몇 달 안에 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매우 급한 상황이었으므로, 하윤이네는 신약 투여를 결정했다. 

킴니아는 환자 맞춤형 약물이었다. 하윤이의 피를 뽑아 미국에 보내고, 하윤이에 맞게 제작한 주사가 도착하기까지 한 달 반이나 걸려서 하윤이 엄마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항암주사는 하윤이의 암세포만 표적 공격했다. 기적처럼 암을 사멸시켰다. 

그렇게 하윤이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혈액병동에 있는 나머지 환자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가지게 됐다. 

기대 수명이 서너 달이라고 선고 받은 말기 혈액암 환자들 중에 5억원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려나. 

사람의 목숨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배웠으나, 사람의 목숨 값이 동일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과연 우리의 목숨 값은 얼마나 될까. 

***

부앙~~~!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소음이 요란했다. 

“우리 앞으로 뭐해 먹고 살까.”

“난 기술이라도 배우고 있잖아.”

“그래. 내가 문제네. 아버지가 술을 하도 먹어서 치매가 심해져. 집구석에 돈이 없어서 요양원도 못 보내고.”

“그래도 집에는 좀 들어가라.”

“재워주기 싫으냐?”

“그건 아닌데, 아버지를 방치하는 거잖아.”

“벌 받은 거지 뭐. 술 먹고 사람 패고 그러니까 엄마도 집 나갔고. 아, 나 로또 샀는데.”

“사면 뭐해. 우리한테는 그런 행운 없다.”

“임마. 내가 로또 사면 너한테 외제차 한 대는 뽑아준다.”

“웃기고 있네. 나한테 얹혀살지나 마.”

“이씨.”

기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탁 트인 강가에 도착한 민우는 헬멧을 벗고 담배를 물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오는 곳이었다. 민우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폰에 저장된 기철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이것만은 지우지 못해서 가지고 있다. 

뭐가 좋다고 이렇게 웃고 있을까. 죽기 한 달 전 사진인데, 이 날은 기철의 생일이었다. 친구들이 장난친답시고 기철의 얼굴에 생크림을 발랐었고, 기철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케이크 위에 있는 촛불처럼 제 목숨도 타들어가고 있다는 걸 몰랐겠지. 사람은 이렇듯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미안하다. 기철아……. 나도 너처럼 겁이 났어. 강서한을 겁내지 않는 놈이 누가 있겠냐. 

사람이 사라졌는데 쉬쉬하며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못한 것. 그 죄책감은 해마다 갈비뼈를 깊게 찔러 왔다. 

십년이 지난 지금, 강이준이 이 사건을 들쑤시는 이유가 뭘까…….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집요한 성격은 어느 형사보다도 나을 것 같았다. 

어쩌면 강서한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강서한이 자신의 이복동생에게만은 질투를 하는 듯했다. 그 비틀린 감정이 참 희한했는데……. 

민우는 결국 지갑 속에서 이준의 명함을 꺼냈다.

***

한 시간 후. 민우는 집 앞 공원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오늘 벌써 두 갑째였다. 초조한 숨으로 빨아들인 뽀얀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기철이 살아 있을 확률이 있을까. 그랬다면 어떻게든 연락이 왔겠지.

필터 끝까지 다 피운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있는데, 이준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저 녀석에게 강서한의 피가 절반은 섞여 있을 텐데 어쩜 저렇게 다를까. 키와 체격만 얼추 비슷하다. 가로등 밑으로 다가온 이준이 물었다. 

“실종되기 전, 만나신 거죠?”

“어. 실종되기 전날 만났어.”

“무슨 말을 하던가요?”

“며칠 전부터 강서한이 주변을 맴도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기랑 제일 친한 게 나니까, 혹시 만약을 대비해서 서로 위치추적을 할 수 있게 어플을 깔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깔았어요?”

“어. 그렇게 했어. 애가 유독 떨고, 내가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그런 말도 하더라고.”

오기철은 바람만 불어도 간이 철렁했을 것이다. 

“또 있어. ‘넌 곧 나한테 죽는다’라는 문자가 자꾸 온다는데, 그 번호로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라는 거야. 그래서 번호를 바꿨는데도, 똑같은 문자가 들어온댔어.”

“…….”

“그러고 나서 며칠 후에 술 한 잔 하자 했더니, 약속 있다더라. 그때 기철이가 일수를 하고 있었는데, 돈 받으러 대정 중학교에 간다고 하더라고.”

이준이 눈썹을 구부렸다. 

“대정 중학교요?”

“응. 우리가 활동하는 곳이 대정 중학교 근처라서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래서요?”

“그날부터 실종이야. 어플에는 대정 중학교에서 사라진 걸로 나오고.”

“…….”

느낌이 아주 싸했다. 모두 대정 중학교 출신이다. 

“신고는 아예 안 하셨어요?”

“아니. 했어. 근데 성인들은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없으면 단순 실종으로 본다던데. 어플을 보여주면서 대정 중학교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그게 범죄와의 가능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더라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럴 것 같아.”

이준은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요, 시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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