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말문이 턱 막혔다.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 거였다.
-실종된 지 10년이 채 안 됐답니다.
“10년?”
이준이 눈매를 찡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강서한이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운동을 그만둔 게 10년이 조금 넘었다. 그러면 그 후에 오기철이 실종됐다는 말이다.
-오기철 실종 당시, 가족이라고는 나이 많은 아버지 한 분 뿐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치매기가 심하셔서 오기철을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구요.
“…….”
성인의 실종은 범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어야 수사에 착수한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오기철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 비서. 수고했어. 근데 딱 하나만 더 부탁하자.”
-네. 말씀 하십시오.
“강서한 동창 중에 양민우 연락처 좀 알아봐 줘. 그 후론 내가 직접 알아볼게.”
-네. 알겠습니다.
싸늘한 분위기가 몸을 감쌌다. 사람이 실종된 지 10년이 넘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는데.
당연히 강서한이 보복을 해올 것이므로 오기철이 스스로 사라졌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살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자일까, 후자일까.
어쨌거나 강서한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강서한 그 성격에, 보복을 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두 발 뻗고 잘 살고 있을 리가 없다.
오기철은 강서한을 줄곧 따라다니던 동네 양아치였다. 동갑인데 친구 같지도 않았다. 늘 무시당하면서도 실실 웃기나 하던 놈이라,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었다.
기철은 서한에게 여자들을 종종 제공했고, 서한은 술을 거하게 사곤 했던 것 같다. 참 꼴불견이라 생각했는데…… 불안을 감지한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고 있었다.
***
서한은 홍콩 출장 중이었다.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중요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바쁜 와중에도 두 사람을 의심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눈알이 사납게 굴러갔다.
강이준은 윤수아를 형수라 부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윤수아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아! 그걸 조사해봐야겠네. Rrrrr~~~ 때마침 김 실장의 전화였다.
-아직 카페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와 20분 정도 얘기를 했고요.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동생 골수이식.
“김 실장. 3주 전 주말에 춘천 별장에 다 같이 갔었어. 별장 안에 있는 CCTV를 몽땅 조사해서 윤수아와 강이준, 두 사람의 의심스러운 정황을 찾아 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윤수아가 움직입니다.
“어디로?”
-병원 지하에 있는 미용실에 갔습니다.
하, 윤수아. 네가 진짜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서한의 입꼬리가 비틀어지면서 관자놀이에 퍼런 핏줄이 섰다. 커다란 주먹을 꽉 말아 쥔 서한이 말을 꾹꾹 눌러 뱉었다.
“이 와중에, 머리하러 다닌다고?”
-아니요. 동생과 함께 미용실에 들어갔는데요. 동생이 머리를 빡빡 깎고 있습니다. 동생은 울고 있고요, 언니도 뒤에서 훌쩍이는 것 같습니다.
***
훌쩍, 훌쩍, 훌쩍.
지안은 간만에 마스크를 벗었다. 머리를 깎기 위해서였다. 미용실 의자에 앉은 지안은 자꾸만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어쩐지…… 오늘 전부 다 잘해주더라…….”
닦아내도 주르륵 흐르고, 훔쳐도 눈물이 쉴 새 없이 굴러 떨어졌다. 언니처럼 풍성한 앞머리를 가지고 싶은데, 또 머리를 빡빡 깎게 됐다.
싹둑싹둑. 10센티미터가 넘은 머리카락이 가위질에 힘없이 잘려나갔다. 위잉, 미용사가 바리깡을 갖다 대자, 순식간에 어린 스님처럼 민머리가 되어버렸다.
“흑흑흑…….”
지안의 서러운 울음이 터져버렸다. 머리 감는 건 일도 아니었다. 미용사가 지안의 머리를 물로 한 번 헹구고 수건으로 슥슥 닦으니 끝이었다. 세수보다 쉬웠다.
머리는 반질반질 빛이 나는데, 지안은 계속 울고 있었다. 눈물을 몇 번 훔친 수아는 지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우리 지안이 머리통 너무 예쁘네.”
“…….”
“이제 마지막이야. 절대로 빡빡 깎는 일 없을 거야.”
“으응.”
지안이 끄덕이고는,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머리를 숨기려고 재빨리 비니를 썼다.
수아는 계산을 하고 지안과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 할 일이 많았다. 무균실에 들어가기 위해 짐을 싸야 했다.
물건에 어떠한 세균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삶을 수 있는 건 죄다 삶고 세척을 해야 했다. 수아는 탕비실에서 지안의 수건과 속옷, 양말 등을 삶았다.
전처치. 골수이식 전에 무균실에서 해야 하는 치료가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한다.
강력한 항암제를 맞아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골수 세포를 모조리 죽여야 하는 일이다. 몸의 면역력을 0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니, 일반 항암치료의 10배로 힘든 과정이다.
힘들게 골수이식을 한 후에도 숙주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지켜봐야 한다. 숙주란, 몸속에 새롭게 들어온 타인의 항원이 환자의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숙주반응으로 폐, 간 등의 장기가 공격당해 망가질 수도 있고, 관절, 근육, 눈, 피부 등이 손상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식 받은 환자들은 평생 숙주를 두려워한다.
내일부터 아이를 무균실에 넣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한 번 해본 일이라 진절머리가 났다. 지안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억장이 무너진다. 왜 이렇게 나는 무능력한 건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늘 혼자였다.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
양민우는 수도권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에서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준은 그의 가게로 오기 전 양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민우 씨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강서한 씨 아시죠.”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어쩔 수 없이 가게로 찾아와 얼굴을 들이밀어야 했다. 폰으로 TV를 시청하던 민우는 배를 들썩이며 킥킥 웃고 있었다. 이준이 가게로 들어서자.
“어서오…….”
민우가 끝말을 맺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당황한 그의 얼굴에 두려움이 스치는 것을, 이준은 똑똑히 읽었다.
이준도 민우와 같이 대정중학교를 나왔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강서한의 친구라서 오가며 스친 적이 많았다.
인사 정도는 했던 사이였으므로, 얼굴을 모를 리는 없었다. 이준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눈도장을 찍었다.
“저 기억하시죠? 강이준입니다.”
“……어쩐 일로 여길.”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민우는 이준을 피하려 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민우는 육각렌치를 손에 쥔 채 맡겨진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갔다.
“뭘 물어보려고?”
이준이 말에 힘을 줬다.
“오기철. 지금 어딨습니까.”
“…….”
민우는 이준을 등지고 대답했다.
“오기철? 글쎄. 지금은 뭐하는지 나도 모르는데.”
“절친이었던 걸로 아는데요.”
“절친?”
민우가 억지로 피식거리며 말을 이었다.
“절친까진 아니고. 하여튼 지금은 뭐하는지 몰라.”
“십년 전까지만 해도 늘 붙어 다니면서 술 마시고 놀았던 걸로 압니다.”
“그랬지. 그랬었어. 근데 그건 십년 전이잖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 마음이 안 바뀌겠어? 이젠 중학교 친구들 중에 만나는 놈이 없어. 보시다시피, 나도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민우가 성가시다는 투로 말했다.
“도통 중학교 친구들 일은 아는 게 없어. 그리고 나 일이 좀 쌓였는데.”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재촉하는 거였다. 이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기철 형님과 연락한지 십년 되셨죠?”
“그랬나…….”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젭니까.”
민우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십년도 지난 일을 내가 어떻게 기억해? 별로 특별한 일도 없었어. 그냥 그즈음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했지. 그러다가 노는 것도 지겨워서 연락하지 않았을 거야.”
이준이 속을 들여다보려 애쓰며 민우의 눈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오기철 실종됐습니다.”
“…….”
순간 민우의 말이 끊겼다. 이준의 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적절할지 머리를 굴리는 타이밍인 듯했다.
“놀라지 않으시는 걸 보니, 역시 알고 계시네요.”
“듣기는 들었어.”
“언제쯤요.”
“경찰이야 뭐야. 취조 받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없어졌는데 왜 아무도 찾지 않았는지 궁금해서요.”
“…….”
민우가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이제 와서 오기철을 찾는지 그게 더 궁금한데. 네가 이러고 다니는 거, 강서한이 알고 있어?”
“아니오. 모릅니다.”
“여전하네. 강서한 싫어하는 거.”
빈정거리는 말이었지만, 오묘한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준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 왜 아직도 싫어할 거라 생각하세요?”
민우가 당연하다는 듯 까칠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네가 강서한 뒤를 캐고 다니는 거잖아.”
걸려들었다. 이준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 사건이 강서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