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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53/95)

<53화>

7동으로 들어선 주희는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어디 가십니까.”

“펜트하우스에 가는 데요.”

입구부터 화려해서 기가 죽었는데, 경비원이 주희를 아래위로 훑었다. 

“잠시만요. 연락은 하고 오신 거죠?”

“네.”

잡상인 취급하는 건가. 심기가 불편해졌다. 잠시 후 인터폰으로 연락을 받은 경비원이 뒤로 물러났다. 

“이쪽 출입구로 들어가시죠.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입니다.”

펜트하우스는 엘리베이터도 따로 쓰나 보네. 주희는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경비원이 안내한 펜트하우스 전용 출입구로 향했다. 

잠시 후 금으로 도배한 것 같은 화려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집안에 있는 어느 통로였다. 주희는 밝은 빛이 보이는 곳으로 움직였다. 

곧 축구를 해도 될 정도로 넓은 거실이 펼쳐졌다. 통유리로 된 창을 통해 반짝이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였고, 달빛이 포근하게 들어오는 집안은 달과 함께 머무르는 것만 같았다. 

“우와…….”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을 보던 주희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지금 살고 있는 투룸보다 천장이 다섯 배는 높았다. 

호화로운 공간에서 커다란 달을 보고 있자니,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주희는 집을 구경하느라 강서한을 부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이때까지 만났던 남자 중에 가장 나이 많은 남자는 63세였다. 물론 돈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 수 있다면, 90대 노인의 첩이 되어 아이를 낳는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주희가 넋이 나가서 눈을 멍하게 뜨고 있는데.

“왔어?”

“아, 네.”

그는 금방 씻고 나왔는지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몸에 딱 붙는 티셔츠는 한 때 링 위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군림했던 그의 몸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와인 마실래? 아님 위스키?”

“와인이요.”

서한은 와인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두 잔 따랐다. 주희는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으며 최고급 가죽소파를 한 번 쓰다듬었다. 와, 촉감이 최고네. 

“이거 얼마예요?”

“7천이던가.”

“…….”

소파가 7천만 원이라니……. 잠깐 놀라고 있는 사이, 그가 몸을 음흉한 시선으로 훑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주희는 서한의 눈빛을 은근히 즐기며 물었다. 

“집 더 구경해도 돼요?”

“얼마든지.”

주희는 통로를 다니며 방과 욕실을 구경했다.

“와. 방마다 욕실이 하나씩 있네…….”

5성급 호텔을 능가하는 인테리어였다. 다리를 쭉 뻗어도 발이 닿지 않을 것 같은 욕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꼭 반신욕을 해보고 싶었다. 

거실로 돌아온 주희가 와인 잔을 건네받았다. 주희는 서한의 잔에, 제 잔을 톡 부딪치며 새빨간 입술로 웃었다. 

부디 밤이 짧지 않기를. 와인을 입안에 머금은 주희는 천천히 혀를 굴리다가 와인을 삼켰다.

“어머. 풍부한 맛이 나네요. 이 와인. 블랙베리 향이 너무 좋아요. 산미가 적당하면서 시트러스 향도 상큼하구요.”

“정 비서 입이 고급인데? 한 병에 500만원 짜리를 알아보네.”

“헐.”

습관처럼 나온 감탄사였지만 약간 후회됐다. 싼티 나 보였으려나. 그래도 고급 와인의 맛을 감지해냈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다. 이런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거니까. 

신이 난 주희가 단숨에 와인을 비운 후 잔을 흔들었다. 

“한 잔 더 줄 거죠?”

“다 마셔도 돼.”

“정말이요?”

“어.”

“그렇다면…….”

주희는 서한의 손에서 와인을 빼앗아 왔다. 꼭 한 번쯤은 비싼 와인을 병째 마셔보고 싶었다. 주희는 빙긋 웃으며 와인 한 모금을 입안으로 삼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알콜이 싸하게 불을 질렀다. 돈을 마신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서한이 야릇하게 웃으며 와인 병에 입을 대서 마신 후 또 주희에게 건넸다. 

주희가 또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서한은 주희의 블라우스 가슴 부분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갑자기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터질 듯 담겨 있던 살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들이 쉽게 올 수 없는 펜트 하우스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상류층이 된 것 같았다. 주희는 키득거리다가 실수로 와인을 가슴에 주르륵 쏟아버렸다.

“아, 어떡해. 이 비싼 걸…….”

“어떡하긴.”

서한이 가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와인을 혀로 빨기 시작했다. 

“하아. 흐응…….”

힘이 좋은 남자는 흡입력도 남다른 건가. 빠는 힘도, 가슴을 주무르는 손도,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주희가 몸을 배배 꼬자, 큰 엉덩이와 가슴이 움찔 흔들렸다.

“흥분은 잘 하네. 나랑 하고 싶었지?”

“…….”

대답 대신 서한의 어깨에 손톱을 꽉 박아 넣으니, 서한은 응답이라도 하듯 커다란 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악력이 세서 주희가 볼멘소리를 했다. 

“아, 아파요.”

“뭐가 아파. 너 아픈 거 잘 참을 거 아니야.”

“그건 맞지만……. 흐읏, 윽.”

순식간에 손가락이 팬티 사이로 들어오고, 가슴은 그의 입안에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남자와 스치기만 해도 흥분하는 날인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팬티는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주희는 서한의 티셔츠를 위로 벗기며 앙탈을 부렸다. 

“빨리 넣어줘요. 빨리…….”

“네가 더 급했구나. 너 오늘 못 잘 줄 알아.”

주희는 그의 협박이 좋아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웃었다. 곧 알몸이 되었고, 선 채로 그의 것이 몸에 들어와 박혔다. 

“으읍!”

하체를 부서뜨릴 듯한 힘이었다. 너무 짐승 같아서, 그는 통제가 안 됐다. 경험이 별로 없는 여자들이 이 남자와 하다가는 죽을지도 몰랐다. 

너무 일방적이라 강간 같은 섹스였다. 목을 물어뜯고, 욕을 해대고, 찰싹찰싹 때리고, 뽑아낼 듯이 가슴을 빨아들이는데……. 여자의 몸을 식육점에 걸려 있는 고기 덩어리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그의 행동이 비정상적이어서 거부하려하면 폭압적으로 변했기에, 몸을 완전히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자 경험이 많아서일까. 주희도 고통에 익숙해지면서 짐승이 되어 갔다. 어릴 때부터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즐겼는데, 이제 웬만해서는 만족이 안 됐다. 

돈을 주는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력이 형편없었다. 체력이 달리면서도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들의 요구에 맞춰주다 보면 그들은 빨리 절정에 올랐고, 주희는 문턱에 오르지도 못했다. 

강서한은 여자의 몸을, 성욕을 푸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남자였다. 배려라곤 하나도 없이 몸은 울긋불긋 엉망이 되어갔다. 그런데도 주희는 좋았다. 

역대급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쾌락 때문에 몸 안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허벅지 사이가 제멋대로 퍼덕거렸다. 느끼고, 또 느끼고, 울고, 또 울부짖었다. 

주희는 몇 시간 동안 그 짓거리를 받아내다가 동이 틀 무렵 뻗어버렸다. 육신이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데도 너무나 개운했다. 

거칠고, 사납고, 무례하고, 어쩌면 미치광이 같은 그와의 섹스가 기절할 정도로 좋았다.

***

이준은 밤까지 체육관에서 정신없이 샌드백을 두드렸다. 헤어졌을까……. 헤어졌겠지? 구슬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준은 가빠진 숨을 고르며 폰을 확인했다. 

[증거자료가 필요해. 사채 업체로 돈을 보낸 내역이 있어야 하니까 준비해 둬.]

수아는 이준이 오후에 보낸 문자를 아직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초조해서 샌드백을 두드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파혼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엄마 안나희에게서 전화가 와야 하는데……. 

이준은 쓰러지고 싶어 병이 난 사람처럼 몇 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탈의실에 들어와 차가운 벽에 기대 숨을 씩씩 내뱉는데,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눈을 떠도, 감아도 수아가 아른거렸다. 너 아니고는 내 삶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네가 불행해지는 걸 본다면 난 강서한과 끝장을 볼 것이다. 

때마침 나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준아. 내일 저녁 약속 기억하지?

나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상했다. 

“……내일 강서한이 온대요?”

-그럼. 신혼집 문제 때문에 급해서 아버지랑 의논할 게 있나 봐. 좀 전에 전화 왔던데?

“…….”

-너도 내일 오는 거 맞지?

“……네.”

이준은 신음하듯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윤수아.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흩날리던 이준이 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고민 끝에 전화를 받은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여보세요.

잠겨 있는 수아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왜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돼?”

-…….

수아의 침묵이 불안해서 이준은 입안이 바짝 말랐다. 수아의 숨소리에서라도 뭔가를 읽으려고 이준은 숨을 죽였다. 기다리다 못한 이준이 예민한 목소리를 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파혼은?”

결심한 듯 수아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 그 사람이랑 안 헤어질 거예요. 

“뭐?”

-제발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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