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순식간이었다. 서한이 수아의 치마를 들추었다. 억센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가 팬티를 쥐고, 끌어내리려 했다.
“악! 하지 마!”
수아가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수아는 사력을 다해 서한의 팔목을 물어뜯었다.
“윽! 이 년이!”
서한의 팔에 선명한 이빨자국과 함께 피가 배어났다. 서한은 인상을 된통 찌푸리며 한 손으로 수아의 목을 움켜쥐었다. 수아는 두 손으로 그의 팔목을 잡으며 가느다란 비명을 흘렸다.
“흐윽…….”
“까불지 마. 한 손으로도 널 죽일 수 있어.”
“하아…….”
숨이 통하지 않는 수아의 얼굴이 시뻘겠다.
“근데 아직은 안 돼. 씨발 새끼, 그 새끼가 이거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아읏!”
서한이 수아의 목을 삐딱하게 젖히고는, 있는 힘껏 빨았다. 뱀파이어처럼 목을 빨면서 사정없이 키스마크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90킬로그램이 넘는 근육질 남자의 몸을 떼어내기란 불가능한 것이어서, 수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이것 놔, 읏…….”
“하, 남자한테 목을 이렇게나 빨린 년을 누가 좋아하겠어.”
“으읍…….”
서한이 몇 번이고 흠씬 목을 빨았다. 입술이 닿는 것도, 살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그의 체향도 끔찍했다. 손톱을 세워서 그의 목과 가슴을 할퀴고 뜯었지만 바위에 흠집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한은 만족할 만큼 흉터를 만들고는 수아를 놓아주었다. 수아의 목은 온통 울긋불긋했다. 결과물이 흡족한 서한은 얄궂게 웃었다.
“누군지 데려와. 내 앞에서, 이 강서한 앞에서 빌라고 해. 그러면 놔줄게. 대신 그 새끼는 내 손에 죽어.”
“미쳤어…….”
서한을 째려보는 수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비참하고 굴욕적이었다. 돈 때문이었지만 애초에 이런 남자와 결혼할 생각을 했던 게 잘못이었다.
오기가 났다. 죽기 살기로 발버둥치고 싶었다. 수아는 이를 악물고 눈을 치켜떴다.
“당신은 쓰레기야. 날 놔줘.”
“하. 쓰레기?”
서한이 껄렁하게 웃으며 입꼬리를 간사하게 올렸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너는?”
“…….”
서한이 천천히 눈썹을 구부렸다. 조롱이 섞인 목소리는 잔인했다.
“윤수아. 엄마 죽일 때 어땠어?”
“…….”
어, 어떻게 강서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수아의 눈동자가 처참하게 흔들렸다.
경련하듯 몸이 덜덜 떨렸다. 서한은 수아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하게 찔렀다. 심장에 단단한 가시를 깊게 박아 넣은 것과 다름없었다.
몇 년 동안 심장에서 방울방울 새던 피가 주르륵, 그리고 왈칵 쏟아졌다. 수아는 가슴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오직 지안을 지키기 위해 견뎌왔던 심장이 찢기고, 불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수아는 눈꺼풀을 파들파들 떨며 잔뜩 겁먹은 눈으로 서한을 응시했다.
“네 손으로 엄마 호흡기를 떼어낼 때 어땠냐고.”
“…….”
“너희 엄마를 차로 친 건 나지만,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 건 너야. 그런데 내가 교통사고 가해자니까, 결국 내가 사람을 죽인 걸로 뒤집어쓰게 됐잖아. 이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 내가 그동안 입 다물고 있었으니까.”
“…….”
“우리는 한 배를 탄 거야. 근데 뒤늦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안 그래? 양심 있는 척, 깨끗한 척하지 마. 윤수아.”
“…….”
비웃음을 짓던 서한이 날카롭게 수아를 응시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경우는 전부 다 돈 때문이더라고. 동생은 희귀병 진단 받아서 돈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는데다, 너희 엄마가 살아날 가능성도 없으면서 인공호흡기 꽂고 돈만 까먹고 있으니까, 네가 엄마를 죽인 거잖아.”
“하아, 하…….”
수아는 칼에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런 수아의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던 서한은 이 상황을 좀 더 즐겨야겠다는 듯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띄웠다.
“그런데 말이지. 8살짜리 네 동생이, 언니가 엄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
이번에는 수아가 목을 밟힌 것처럼 컥, 짧은 비명을 흘렸다.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었다.
그것만은 안 돼……. 수아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눈망울에 넘칠 듯 담겨 있던 눈물이 굵은 물줄기가 되어 주르륵 흘렀다.
고개를 젓고, 또 저으며 수아가 그러지 말라고 눈으로 애원했다.
“과연 널 사람으로 볼까? 천만에. 8살이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야. 내가 쓰레기라면, 네 동생의 눈에는 네가 악마로 보일 거라고. 네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네 동생이 이젠 널 증오하겠지.”
“…….”
“그러니까 내 입을 조심시키려면, 네 입도 조심해야 될 거야. 윤수아.”
“…….”
어떤 협박보다도 강했다. 눈물이 수아의 턱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졌다. 서한은 수아의 상처에 칼을 깊숙하게 꽂아 한바탕 휘저었다.
결국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수아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차문을 열고 나왔다. 세상은 암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수아는 휘청거리며 병원을 향해 걸었다. 이제는 죽더라도 강서한 옆에서 죽어야 했다. 병원 샤워실로 들어온 수아는 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
“언니. 목이 왜 그래?”
수아는 텅 빈 눈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벌레에 물렸어.”
“벌레? 목을 그렇게 만드는 벌레도 있어? 아참, 그거 속상하네…….”
“…….”
지안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응급상자를 열어 상처를 빨리 낫게 하는 연고를 꺼냈다.
“여기 앉아 봐. 내가 연고 발라줄게.”
“…….”
지안이 수아의 손을 잡아서 침대에 앉게 했다. 그리고 연고를 목에 발라주며 호, 호, 하고 불었다.
수아는 영혼이 떠나버린 후 몸만 남은 사람처럼 생기라고는 없었다. 지안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안의 눈에, 수아는 한겨울에 몸통을 짓밟힌 작은 꽃 같았다. 일찍 피어나 소생하지 못할 봄꽃……. 덜컥 겁이 났다.
지안은 말없이 수아를 꼭 안고, 토닥였다. 수아는 나무토막처럼 버석 말라버린 몸을 지안에게 맡기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
8년 전, 수아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후 엄마의 임신을 알게 됐다. 태어난다면 14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었다.
아빠는 꽤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떨어져 몸을 다친 후 일상생활은 겨우 할 수 있었지만 노동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엄마가 밤낮으로 일을 하는 동안 아빠는 밤낮으로 술을 마셨다. 퍼부을 곳 없는 원망을 어린 수아에게 쏟아내고,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가 급성간경화를 앓게 됐는데, 죽기 직전 엄마 몸속에 생명을 잉태시킨 거였다. 기가 막혔다.
“엄마. 낳지 마. 나 동생 필요 없어. 낙태해.”
“수아야. 저도 살려고 생긴 생명인데 어떻게 아이를 지워…….”
“난 학교 다녀야 되는데, 애는 누가 보고, 돈은 누가 벌어와? 애기 태어나면 우린 더 힘들어질 거야. 난 싫어! 가난한 거, 치가 떨린단 말이야!”
“사망보험금이 조금 나와서 얼마간은 견딜 수 있어. 애기 낳고, 엄마가 바로 일하러 갈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좀 해! 동정심만 가지고 되는 게 있는 줄 알아? 우리 다 굶어 죽는다고! 아기 낳기만 해 봐! 보육원에 갖다 버릴 거니까!”
“이 기집애가!”
찰싹! 수아는 처음으로 엄마한테 뺨을 맞았다. 고작 중1이었지만, 그 후로도 수아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난에서 벗어난 적이 없건만, 앞으로 더한 가난이 겹쳐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기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할 존재가 확실했다.
수아는 엄마가 만삭이 되었어도 아기를 지우자고 졸랐고, 엄마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이듬해 겨울, 열 달 가까이 미워하던 동생이 밖으로 나오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엄마의 출산의 고통을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수아는 그 순간까지도 뱃속에 있는 동생이 미웠다. 자신도 그렇게 세상에 나온 줄은 모르고.
몇 시간의 진통 후 응애, 응애,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보고 싶지 않은데 절로 눈이 갔다. 그렇게 동생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자기도 힘들었는지 얼굴이 아주 빨개져서는, 바들바들 떨며 가쁜 숨을 쌕쌕 내쉬었다. 막상 태어난 동생을 보자마자 수아는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아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아기의 손을 꼭 잡아주니, 눈도 못 뜨면서 방긋 웃었다. 뱃속에서 하던 행동이라는데 언니의 뾰족한 말들이 밉지도 않았을까.
아기는 태어난 게 미안했는지 울음소리도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작았고, 잘 울지도 않았다. 아기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수아는 동생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며칠 골똘히 생각했다.
“엄마. 아기 이름. 지안이 어때? 예쁘지 않아?”
“윤지안. 너무 예쁜데?”
지안은 자라면서 ‘엄마’라는 말보다 ‘언니’라는 말을 더 빨리 배웠다. 언니만 따라다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동생이었다.
그런데 5살 무렵부터는 픽픽 쓰러지곤 했다. 역시 불행은 혼자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윤수아 양이죠?
“네. 맞는데요.”
-한국 병원입니다. 지금 어머니가 차에 치여서 병원에 실려 오셨어요. 빨리 병원으로 와 주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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