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윤수아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이준은 머리를 골똘히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 하나로 강서한을 감방에 처넣기는 무리였다. 대부업법 형량이 지나치게 가벼운 탓이다.
미등록 대부업체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데, 실제로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5%미만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또는 한 가정을 박살내는 것이므로 강력하게 단속해서 죄다 감방으로 넣어야 되는데, 법이 저토록 관대하니 불법사채가 판을 치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엮어야 한다. 상당한 것을 숨기고 있을 거다. 미친 새끼…….
살면서 만난 최악의 인간이 이복형 강서한이라는 사실이 끔찍했다.
***
강이준에게서 수십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수아는 받지 않았다. 강서한과의 결혼만이 어떻게든 지안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그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고, 수아도 끈질기게 피했다. 밀대로 카페 바닥을 닦은 후 화장실에서 밀대를 빨고 있는데 지잉, 문자가 왔다.
[지금 카페로 가고 있어.]
전화를 받지 않으니 제멋대로 찾아오고 있었다.
“하, 미쳤어…….”
솜털마저 쫙 곤두섰다. 수아는 재빨리 이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그가 보란 듯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세 번 더 걸어 봐도 받지 않았다. 수아는 정신없이 문자를 보냈다.
[안 돼요. 오지 마세요.]
[오면 안 돼요!]
그는 문자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강서한이 카페에 왔다가 두 사람이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수아는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서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데, 서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간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이대로 카페에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카페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매니저님.”
-손님이 찾아 오셨어.
“……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수아는 카페로 돌아갔다. 강이준이 이렇게나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거의 다 와서 연락할 줄이야…….
수아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운터로 들어섰다. 이준은 직원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붙였다.
“주문 안 받습니까.”
“…….”
점원이기에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주문하세요.”
“차가운 연유라떼 한 잔이요.”
“……포장하실 거죠?”
“아니요. 마시고 갈 겁니다.”
“…….”
수아가 눈을 부릅뜨며 이준에게 진동벨을 내주었다. 이준은 아무렇지 않게 진동벨을 받은 후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수아가 음료를 만들고 있는데 강서한에게서 문자가 들어왔다.
[회의 중.]
아, 다행이다……. 수아는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아주 느긋하게 긴 다리를 꼰 상태였다. 그림을 감상하듯 대놓고 이쪽을 보고 있기까지.
수아는 음료를 다 만든 후 진동벨을 울렸다. 여러 번 진동벨이 울렸으나, 그는 이곳을 보고 있으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수아는 음료를 들고 움직였다.
“맛있게 드세요.”
쌀쌀맞은 음성으로 음료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거센 악력이 수아를 붙들었다. 화들짝 놀란 수아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왜 이러세요. 누가 봐요.”
“얘기 좀 하자고 했잖아.”
후, 답답한 숨을 터뜨리듯 뱉어내며 수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얼마나 더 곤란해지길 바라세요? 어!”
이준이 수아를 억지로 끌어당겨 맞은편에 앉게 했다. 모양 빠지게 털썩 앉아버린 수아가 이준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담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네가 쓴 사채, 그 사채업 대표가 강서한이야.”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수아의 눈동자가 처참하게 흔들렸다.
“사채빚 때문에 너 혼자 끙끙 앓고 있잖아. 강서한은 일부러 덫을 놓고,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즐기고 있었어.”
“…….”
마, 말도 안 돼……. 강서한이 사채회사 대표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귀가 멍멍해지면서 몸이 뻣뻣해졌다. 사채를 쓴 이후 밤낮으로 온갖 협박에 시달렸다.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됐지만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사람을 두렵게 했다.
무섭게 불어나는 이자는 수명을 단축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들의 폭언은 스스로를 인간 이하로 느끼게 만들었다. 자존감은 뭉개져서 가루가 되었고,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강서한이었다니…….
그때 타이밍도 께름칙하게 수아의 폰이 지잉, 울렸다. 앞치마 속에 손을 넣어 발신자를 확인하니 강서한이었다. 수아는 눈꺼풀만 파들파들 떨었다.
“네가 벗어날 수 없도록 옭아맨 거야. 네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 가시밭길로 가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라고.”
“…….”
“이자제한법이라는 게 있어. 2021년 7월 7일부터 이자율이 20%가 넘는 건 불법이야. 그 전에 계약된 건 최대 금리 24%이고. 이걸 넘으면 원금 상환한 걸로 계산 돼야 해. 내가 곧 그 사채회사 신고해서 무너뜨릴 거니까, 강서한과 헤어져.”
“…….”
“늪에서 발버둥 쳐봤자, 깊게 끌려들어가게 되어 있어. 손 내밀 때 나와. 그 후론 내가 도와줄 테니까. 동생 병원비도.”
“…….”
수아가 숨 쉬는 것도 잊고, 이준의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봤다.
“너도 아직 어려. 이제 스물둘이잖아. 너한테도 보호자가 필요해.”
“…….”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에게도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어린 동생을 오롯이 책임지기에는 힘들다고…….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이준의 말에 찢겨졌던 가슴이 봉합되면서 따뜻해지고 있었다. 수아는 울컥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온힘을 다해 턱을 꽉 물었다.
이준은 수아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준비해온 말을 덧붙였다.
“이걸 빌미로, 너한테 날 선택하라고 강요하진 않아. 일단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니까 도움부터 받아.”
“…….”
할 말을 마친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아는 물기 어린 눈으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작 3일을 만난 사람이 저 자신이 곤란해질 것을 각오하고, 도우려 한다.
강이준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하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을 그는 알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듯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라나고 있으니 신기하기만 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마음껏 껴안고, 웃으며 볼을 만지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싶다.
하지만…… 그건 이승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내 손으로 엄마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복형제라 하더라도 형제 사이를 오가는 미친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도움도 받을 생각하지 마, 윤수아. 네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
“꺄르르. 또봇 변신~~~!”
카페 홀에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뛰어다녔다.
“희준아! 이런데서 뛰면 안 돼! 이리 와!”
엄마는 아이를 나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아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남자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죄책감을 가진 자아와 행복해지고 싶은 또 다른 자아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지안을 떠올리지 않고, 지안 또래의 아이를 바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아는 남자 아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다. 저만한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러다가 퍽! 아이가 금방 나온 차가운 음료를 실수로 쳐서, 바닥에 다 쏟아버렸다.
“으이구! 그러니까 제발 까불지 말라고 했잖아!”
수아는 얼른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제가 닦을게요. 아이가 그럴 수도 있죠.”
“어머, 죄송합니다. 다 쏟아서 양이 너무 많은데 어쩌죠?”
“제가 밀대로 닦을 테니까, 아이 손만 닦이시면 될 것 같아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수아는 걸레와 밀대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어둡던 수아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는 중이었다.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움트면서 마음이 살랑살랑 바뀌고 있었다.
깨끗하게 바닥을 닦은 후 수아는 화장실로 가서 밀대를 빨았다. 오늘 밀대를 빠는 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더러운 물이 끝도 없이 나왔다. 힘차게 밀대를 씻던 수아의 어깨가 차츰차츰 떨렸다.
지안아. 언니……. 강서한에게서 벗어날래. 염치가 없지만 우선 강이준의 도움을 받을 거야. 정말 못됐지?
그런데 있잖아……. 하루라도 떨지 않고 살고 싶어. 누가 찾아올까, 누가 쫓아와 해코지 하지 않을까 조바심 내지 않고, 햇볕 속에서 당당하게 거닐고 싶어…….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더는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
결국 밀대를 움켜쥔 수아가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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