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그와 손을 잡고 빗속을 함께 뛰었다. 꽉 잡은 커다란 손 때문에 차가운 비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수아가 조금 쌕쌕거리자, 이준이 뜀박질을 늦췄다.
처음으로 남자의 손을 잡은 게 왜 이렇게 울컥할까. 나이차가 열 살이어서 그가 보호자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의지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 말이다. 엄마가 죽은 후 나의 보호자는 없었으니까.
가슴 속에 뜨거운 물기가 자꾸만 맺혔다. 주책맞은 감정이 올라올까 봐 목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이 미치게 설레었다. 1분 1초가 흐르는 게 아까웠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죄책감에 절은 윤수아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니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었다.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심장이 뛰고 있는 지금, 파리에서, 하고 있는 거다.
눈시울이 젖었지만 비가 와서 괜찮았다. 호텔로 거의 다 왔을 때쯤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기분이 좋은지 싱긋 웃으며 묻는다.
“내가 네 첫 남자이고, 또 첫사랑. 맞지?”
“…….”
이봐요! 왠지 그 말에 오기가 생겼다. 분명히 그는 첫 경험이 아닐 텐데. 수아는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첫사랑은 아니에요.”
“…….”
그의 눈썹이 단번에 삐뚜름해졌다.
“첫사랑이 아니라고?”
“아니에요.”
“그럼 바꿔. 내가 첫사랑인 걸로.”
“절대 인정 못함.”
수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했다.
“이준 씨는 누구랑 제일 처음 잤는데요?”
“이준 씨가 뭐야…….”
오빠는 있어 본 적도 없고, 일할 때 동료들을 그렇게 부르다 보니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게 편했다. 딱딱하긴 하지만.
호칭에 불만이던 그는 갑자기 살짝 비굴한 웃음을 띄웠다.
“근데 난 마음은 준 적 없어.”
“참나. 마음 안 주고 몸만 주는 건 뭐야…….”
팬티 입고 비비기만 하셨나요. 라고 말할 뻔했다. 예전에 엄마가 불륜 소재의 드라마를 볼 때 자주 하던 말이었다.
수아가 아니꼽다는 듯 눈을 흘기자, 이준이 가슴 설레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화해하자. 난 네가 첫사랑이야.”
“…….”
몸은 딴 데 주고, 마음만 가져 왔다고 말하는데도,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연애를 안 해봐서? 이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에?
그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는, 강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심장에 걸고 맹세해.”
“…….”
그런데 분명 호텔 앞이었다. 수아는 웃음이 났다.
“타이밍이 왜 이래요? 호텔 앞이잖아요. 사기꾼 같아요.”
“…….”
피식거리던 그가 부드러운 눈매를 만들었다. 짙은 속눈썹 아래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수아를 응시했다.
“네 첫 경험이 평생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해서.”
“…….”
“마음이 먼저 시작된 거라고 알려주고 있는 거야, 지금.”
“…….”
또 그 순간 마법처럼 빗방울이 따스해졌다. 가슴속에는 잔잔하고 따스한 물결이 퍼져 나갔다.
당신도 내 첫사랑이에요……. 목안이 뜨거워져서, 수아는 말을 삼키고 눈으로 그를 쓰다듬었다.
잠시 후 5성급 호텔 룸 안으로 들어왔다. 감탄하며 호텔 방안을 구경할 새도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준이 수아를 문에 밀어붙였다.
촉. 그의 향기가 진하게 다가왔고, 입술이 짧게 만났다가 떨어졌다. 말랑거리던 감촉이 너무 좋아서 전율이 일었는데, 아쉬웠다.
또 그의 입술이 다가와서 쪼옥,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떠나버렸다. 그 다음 번에도 쪼옥, 쪼옥했다가 떨어졌다.
가지 마. 가지 말라고……. 그는 놀리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더 하고 싶지?”
“…….”
자존심도 없이 안달이 나버린 수아가 이준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이렇게 스킨십에 목이 마르긴 난생 처음이었다.
이준이 수아의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눈동자 속에 서로의 모습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입술을 빨아들일 듯하더니, 눈앞에서 속삭였다.
“한국에 가면 같이 살자, 우리.”
“…….”
“같이 살면서 연애하자. 매일매일.”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수아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왜 놀라.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잖아. 네가 날 미치게 만들었다고.”
“…….”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러고 싶어요. 매일 보면 좋겠어. 벌써부터 못 보면 어떨지 가슴이 저릿해요.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이런 적 처음이야. 대신 오늘 나쁜 놈이어도 이해해.”
“…….”
협박인지 부탁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이준이 수아의 입술을 부드럽게 덮었다. 입술 겉면에서 파르르 약한 전기가 일어났다.
그가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더니 고개를 조금 비틀어 입안으로 혀를 밀고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을 핥는 것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혀끝을 세워 점막을 건드리는 속살의 느낌이 아찔했다. 수아는 입을 벌려 그의 혀에 제 것을 감았다. 타액을 주고받는 소리는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 같았다.
키스가 이렇게 황홀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핥고, 물고, 빨고, 수아의 입술이 눌려지고 삼켜졌다. 숨이 가빠지면서 더욱 갈증이 일었다.
뺨을 감싸 쥐고 있던 그의 커다란 손이 목덜미 뒤를 받치며 키스의 강도가 농밀해졌다. 입안을 꽉 채운 그가 본능을 드러내며 사납게 휩쓸었다.
잡아먹히는 것 같아서 호흡이 달리는데도, 행복하게, 아주 기꺼이 잡아먹히고 싶었다.
이준의 오른팔이 수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왼손이 수아의 티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매끈한 피부를 더듬는 손의 움직임에, 수아의 신경이 곤두섰다.
어쩌면 기다려진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몰랐다. 이준의 왼손이 수아의 브래지어 안에 들어와 가슴을 움켜쥐자마자.
“흐응…….”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수아가 움찔하며 신음을 터뜨렸다. 이상한 느낌이 가슴에 고여 들면서 흥분된 소름이 촤르르 올라왔다.
이준이 가슴 전체를 마사지 하듯 만지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수아가 눈을 질끈 감고 이준의 입술을 강하게 빨아 당겼다.
이번에는 이준이 수아의 분홍색 돌기를 엄지로 부드럽게 쓸었다. 수아는 이준의 등에 손톱을 콱 박아 넣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준이 입술을 떼어내며 눈앞에서 짓궂게 웃었다.
“몸이 너무 솔직한데.”
“…….”
“그래서 더 좋다고.”
“…….”
이준이 급하게 수아의 티셔츠를 벗겨냈다. 브래지어 후크는 한 번 만에 툭 풀어져버렸다. 얼굴보다 더 뽀얀 맨가슴이 드러나 버렸다.
눈이 게슴츠레해진 그가 예고도 없이 가슴을 덥석 물었다.
“어, 으읍…….”
손으로 가슴을 만질 때와 또 다른 감각이 찾아왔다. 찌릿, 찌릿, 약간의 통증을 동반한 쾌감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가 노골적으로 혀끝을 세워 분홍색 돌기를 가지고 놀았다. 허벅지 사이에 뜨끈한 뭔가가 몰려들고 있었다. 어떻게 견뎌야 될지 몰라서 수아가 이준의 머리를 꽉 끌어안았다.
“이런 자세 좋아. 참기 힘들 때마다 밀어내지 말고, 끌어 당겨.”
“하아…….”
수아는 이준의 머리를 끌어안고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하. 내가 처음인 앨 데리고 서서할 뻔했네. 급했다…….”
이준은 수아를 번쩍 안아서 침대로 데리고 가 눕혔다. 그리고 그가 옷을 훌렁 벗었는데, 남자의 나체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역삼각형의 몸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어떤 조각상보다 훌륭했다. 얼마나 운동을 했기에 저렇게 역동적이고 탄탄할까.
근육질의 몸이 아찔한 비율까지 자랑하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에펠탑이 크게 보였는데, 그 에펠탑만큼이나 중심부는 우뚝 솟아 있었다.
그가 수아의 팬티를 단숨에 벗겼다. 뜨거운 시선이 은밀한 곳에 와 닿았다. 이준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걸렸다.
“뭐가 이렇게 다 예뻐.”
어느새 다가온 이준이 수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처음이라 많이 아플 건데, 좀 참아.”
“…….”
“다음번에는 이 짓이 좋아서 미치게 만들어 줄게.”
“…….”
그는 온몸에 축복을 내리듯 수아의 몸에 입을 맞췄다. 야릇한 느낌이 폭격을 퍼붓는 것만 같았다.
수아는 침대 시트를 꽉 붙잡고 가느다란 신음을 내질렀다. 이를 악 물어도 참아지지 않았다.
한참 만에 애무를 끝낸 그가 본격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무릎을 굽혀 앉았다.
수아의 몸은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져 있었고, 그가 몸을 겹치며 제 것을 밀어 넣으려 했다.
“흐읏! 아앗…….”
수아는 너무 아파서 온몸에 힘을 줬다. 긴장한 다리는 계속 오므려졌다. 이준이 수아의 다리를 다시 벌렸고, 수아의 입술에서 둔탁한 신음이 연거푸 터졌다.
결국 여러 번 시도 끝에, 수아의 눈에 에펠탑이 갸우뚱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이준의 몸이 수아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뭔가가 빡빡하게 꽉 찼다. 수아는 큰일을 해낸 듯 쌕쌕거리며 숨을 토해냈다.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허벅지 사이가 찢어지고 불이 나는 듯했다.
“힘 빼.”
이준이 위로하듯 부드럽게 수아의 입술을 물었다. 매달려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며 수아가 몸에 약간 긴장을 놓는 순간, 이번에는 천장이 갸우뚱 크게 흔들렸다.
“하윽!”
이준이 수아의 골반을 붙잡고 끝의 끝까지 제 몸을 박아 넣은 거였다. 수아의 등이 휘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기나긴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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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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