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95)

<34화>

1년 전. 지안은 한국 대학병원 앞에서 수아의 손을 꽉 잡았다.

“언니. 나 떨린다…….”

“별 일 없을 거야. 이때까지 결과가 계속 좋았잖아.”

지안의 키는 수아의 허리춤 밖에 되지 않았다. 제법 자라난 머리카락에 샛노란 해바라기 핀을 꽂은 지안이 방긋 웃었다. 

“나 내년에 학교 갈 수 있겠지?”

“그럼. 건강해져서 초등학교 가야지.”

“엘사 가방 사줘야 돼. 응?”

“알았어. 요 귀염둥이.”

수아는 사랑스러운 지안의 뺨을 보드랍게 만졌다. 지안은 벌써부터 학교에 가고 싶다고 난리였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했다. 

건강한 아이들이라면 의무적으로 주어지는 일이지만, 5살 때부터 병원을 다녔던 지안에게는 커다란 바람이었다. 

제발 핏기 없는 얼굴로 쓰러지지 않기를.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다니면서 체육활동을 할 수 있기를. 

수아는 지안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들이 지안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어머. 지안아! 레이스 치마랑 분홍색 구두 너무 예쁘다. 엘사 공주 저리가라야~~~”

“아히히. 고맙습니다.”

인사 잘하는 지안이가 배꼽인사를 했다. 사이즈가 맞는 옷과 구두가 있어서 무료 나눔으로 얻어 입혔는데 발품팔기를 잘했다 싶었다. 

지나다니는 환자들도 지안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제 막 병을 이겨낸 아이로 보였다. 

“지안아. 머리카락 많이 자랐네. 이제 새우깡보다 길겠어.”

“이모. 저, 엘라스틴 했어요.”

“풉, 우리 지안이. 왜 이렇게 귀여워~~~”

지안은 엄지손가락보다 길어진 머리카락으로 재롱을 부렸다. 귀 뒤로 전혀 넘어가지 않는 머리카락을 넘기는 척하며 신종 개그를 선보였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말도 많고, 애교는 더 많은 아이였다. 

“큭큭. 역시 강아지보다 윤지안이야.”

“지안이 다시는 아프지 말자.”

“네!”

지안은 6개월 전, 조혈모세포 이식을 했다. 수아의 것이었다. 유전자가 절반 밖에 일치하지 않아서 리스크가 컸지만 더는 수혈도, 면역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이식 전 골수 검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엉덩이에 드릴 같은 것으로 골반뼈를 뚫어 골수를 채취했다. 

성인도 견뎌내기 힘든 것을 지안은 몇 번이나 했던가. 골수 검사 후 비틀거리며 병실을 나오니 지안이 수아 대신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이식을 위해 지안은 머리를 삭발하고 무균실에 들어갔다. 새로운 골수를 받아들이려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자신의 골수세포를 죽여야 한다. 

몸 안의 세균이나 미생물 때문에 감염이 올 수 있어서 몸을 무균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강력한 항암치료가 필요했다. 

그 과정을 견뎌낸 지안에게 수아의 건강한 골수가 몸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이식한 골수가 건강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여러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피가 모자라서 늘 하얗게 뜬 얼굴이었는데, 지안은 이제 혈색이 좋았다. 머리카락이 자라서 단발이 되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이미 수아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였다. 희망이 한 움큼씩 자라고 있었다. 길어지는 지안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빠르게.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수아와 지안은 진료실로 들어갔다. 주치의인 김 교수의 표정이 밝았다. 지안은 한껏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선생님. 저 혈액형 바뀌었어요?”

“응. B형에서 AB형으로 바뀌었어.”

“우와! 나 이제 언니 혈액형이다!”

지안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골수이식을 하면 공여자의 혈액형으로 바뀐다.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고, 서서히 바뀐다고 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수아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지안아. 수치도 다 좋아. 이제 가려야 될 음식도 없어.”

“이야! 아무거나 다 먹을 수 있다. 야호!”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아이가 건강을 되찾았다. 

“저번에도 말했지? 조혈모세포 이식 후 6개월이 되면 예방접종 새로 해야 된다고.”

“네. 아기처럼 새로 태어난 거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래서 아기 때 맞았던 주사들 전부 맞아야 된다고요.”

“그렇지. 우리 지안이는 똑똑하니까 다음에 의사 선생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의사가 될 것 같아.”

“아히히. 그럼 좋겠지만요. 언니가 저보고 입만 똑똑하다고 했어요.”

기분 좋게 진료실을 나왔다. 다시 간호사들의 축하를 받았고, 지안은 또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애교를 대방출했다. 

병원을 나오는데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울컥했다. 나는 살아있고, 지안은 살아남았다.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칫 사소하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이 실은 우리를 지탱시켜주고 있음을 몇 년에 걸쳐서 깨닫게 되었나. 

이제 병원비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만 갚으면 될 일이었다. 더욱 열심히 일해야 했고,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희망이 우리들 곁에 머물러주고 있으니까. 

Rrrrr~~~ 벨이 울렸다. 수아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윤수아 씨 되시죠?

“네. 맞는데요.”

-안녕하세요. 출판사 드림입니다. 빛나는 프랑스를 읽고 리뷰 써주셨잖아요. 1등으로 뽑히셨어요. 그래서 프랑스행 왕복 비행기 티켓을 받으시게 됐어요.

“저, 정말요?”

-네.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고, 의문사항 있으면 문의주세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수아는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세상이 갑자기 손을 내미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 연거푸 생겨서 두려워질 정도였다. 

수아는 간간이 여행서적을 읽는 게 취미였다. 돈을 벌기 위해 최대한 많이 일해야 했지만 피곤한 와중에도 가끔 책을 읽었다. 

그것은 탈출구였다. 숨통을 조여 오는 현실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으니.

언제부턴가 파리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됐다. 석 달 전쯤 읽었던 책은 ‘빛나는 프랑스’였다. 

100만부를 찍은 초대박 베스트셀러였는데, 재출간을 앞둔 책이었다. 읽고 2천자 내외의 독후감 같은 리뷰를 작성하면 1등에게는 프랑스행 왕복 비행기 티켓을 준다나. 

출판사에서 이렇게 큰 이벤트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드물게도 큰 이벤트였다. 수아는 정성껏 리뷰를 썼고, 그것이 1등으로 뽑힌 거였다.

“언니. 무슨 전화야? 왜 그렇게 놀라?”

“……아니야.”

“뭔데. 왜 그래.”

수아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비행기 표를 팔아서 빚을 갚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었기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온 후에도 멍해져 있는데, 지안이 꾸물거리며 다가왔다. 

“가, 언니.”

“내가 어떻게 가. 너 두고.”

“이모 집에 잘 있을게.”

“됐어. 언니 돈도 없어.”

지안이 주머니 안에 든 엘사 동전지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병원 쓰레기통에서 주운 거였다. 생각보다 깨끗한 상태로 버려진 거라 빨아 쓰고 있는데 지안은 무척이나 아꼈다. 

지안은 동전지갑을 밖으로 꺼내며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이거 보태.”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귀여운 아이 같으니라구. 

“동전으로는 못 가.”

“큰돈도 있어.”

“정말?”

수아는 궁금해서 냉큼 동전지갑을 열었다. 꼬깃꼬깃한 지폐 이만 육천 원이 들어 있었다. 지안에게는 평생을 모은 전재산이었다. 

“내가 해준 게 없어서 그래.”

“…….”

조그만 아이가 갑자기 엄마 같은 소리를 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눈물이 핑 돌아서 수아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지안이 조그마한 입술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내가 계속 아파서 언니 고생만 했잖아. 이번에도 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면 나도 엄청 슬플 것 같거든.”

“…….”

병원에서 이모들이 천 원, 오천 원씩 주는 것을 모았을 거다. 말만이라도 고맙고, 참 예뻤다. 그래도 갚아나가야 될 빚을 생각하면 한 푼도 딴 곳에 쓸 수가 없었다. 

대답 대신, 수아는 지안을 가슴에 꼭 안았다. 눈물겹게 행복했다. 

***

다음 날. 수아는 카페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제가 버리고 올게요.”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곳이 멀어서 아무도 내켜하지 않는 일인데, 수아는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끙끙 대며 쓰레기장에 다녀오는 길에 진동이 왔다. 병원 전화번호인데? 독촉 전화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보세요.”

-한국 병원 원무과예요.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어린이날을 맞아서 병원에 기부금이 들어왔어요. 지안이도 혜택 대상자가 되는데요, 연체되어 있는 병원비 절반 정도 면제되실 거예요.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어머,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지안이 치료도 잘 해주시고, 병원비까지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마구 쿵쾅댔다. 병원비 절반이 사라졌으니 아주 잠깐 숨통이 트이게 된다. 그래도 제 2,3금융권의 빚이 많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왜 자꾸 좋은 일이 생기지? 왜? 나쁜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건가? 아니야. 여태껏 힘든 일만 있었잖아…….

이게 평범한 삶인지도 몰랐다. 가끔은 크고 작은 행운이 톡톡 튀어나오기도 하는 삶. 

오늘은 일기장에 감사한 일에 대해 빼곡하게 쓸 수 있겠다. 그런데 정말 프랑스에 갈 수 있을까? 막연했던 바람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간절했다. 

수아의 청초한 눈동자가 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꼭 프랑스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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