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42화
내가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를 죽음으로 모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붙잡아 주는 것이 기뻤다. 나는 내 끔찍한 욕심에 치를 떨었다. 나는 내 마음이 그녀를 파멸로 이끄리라는 걸 뼈저리게 알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또 비웃으며, 그녀에게 거칠게 소리쳤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왜 안 놓겠다는 거죠? 그 이유가 뭡니까?”
“……네?”
“저주받은 괴물이 알아서 떨어져 주겠다는데 왜 싫다는 겁니까? 오히려 매달리고, 애정을 구걸하면 그것이 더 곤란한 거 아닙니까?”
내 말에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싸늘한 웃음을 터트렸다.
거봐. 당신도 죽음이 무섭잖아. 그러니, 내가 밀어낼 때 순순히 멀어져 주었으면 좋았잖아.
나는 그녀를 일부러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덜덜 떨며 또다시 나를 붙잡더니 말했다.
“……몰라요. 모르겠어요.”
“하. 모르겠다고요?
“그래도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당신을 놓기 싫은데 어떡해요.”
그 말에 내 결심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제기랄!”
나는 외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거칠게, 그녀를 향해 고백을 쏟아 냈다.
“욕심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나 같은 괴물 따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갖고 싶지 않다고. 나는 당신을 원하는 게 아니라 긴 외로움에 지쳐 착각하는 것뿐이라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랬는데,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습니다. 참고 억누를수록 하루가 다르게 당신을 향한 마음이 커지기만 합니다.”
“……나를 향한, 마음…….”
“……이제 어느 정도 눈치채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나는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감히 사랑을 탐내서도, 욕심내서도 안 되는 괴물인 주제에 당신을 마음에 담았단 말입니다.”
나는 꼴사납게 울며 내 마음을 전부 토해 냈다.
내 고백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내 얼굴로 살며시 손을 뻗어 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손길을 거부했다.
그 어떤 단단한 결심일지라도 그녀의 손길 한 번에 또다시 맥없이 무너지고 말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이제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마음에 일말의 희망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거칠게 훔치곤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죽을 만큼 노력해서 당신에게서 도망칠 작정입니다.”
“……어째서, 말이 그렇게 되나요? 왜 공작님이 내게서 도망쳐야 하는데요?”
나는 한심한 내 모습에 답답한지 언성을 높이는 그녀에게, 또다시 비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내가 멀어지지 않으면 점점 당신에게 씌인 저주가 강해질 테고, 그럼 나는 천천히 죽어 가는 당신을 보며 괴로움에 죽어 갈 거라고.
나는 절규하듯 외치며 그녀의 손을 매정하게 떼어 냈다.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소리쳤다.
“……그럼요? 어떻게 도망치실 작정이신데요? ……날 버리기라도 하려고요?”
나는 그녀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감히 당신을 버린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자는 한심한 말만 내뱉은 채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홀로 마차를 나와 무작정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레온을 향해 웃어 주는 그녀의 미소가 언젠가는 나에게도 향할 수 있지 않을까, 욕심내서는 안 됐다.
그랬는데, 어리석은 나는 그녀의 미소를 욕심냈고, 그녀의 시선이 내게 닿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는 저주로 돌아왔다.
‘……빌어먹을.’
사랑하니까, 사랑해서는 안 된다.
함께 있고 싶으니까, 멀어져야만 한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오로지 그녀를 아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뿐, 사랑해서도 사랑 받아서도 안 된다.
나는 그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며, 끊임없이 나에게 이런 운명을 내린 신을 원망했다.
* * *
그 후, 펠릭스 성으로 돌아온 나는 집무실에 틀어박혔다. 훈련장에도 나가지 않고, 시찰도 그만둔 채 일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정원 쪽으로 난 큰 창에는 두꺼운 커튼을 매달고 덧창을 달아 바깥의 소리가 집무실 안으로 들려오지 않게 만들었다.
혹여 창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면,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면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저주받은 나를 집무실 안에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후, 줄곧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음에도 나는 그날도 집무실 책상에 앉아 기사들이 가져온 고대 마법과 저주술에 관한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사가 아닌 자에게는 책을 팔지 않겠다며 버티는 통에 구하는 데 제법 많은 품을 들인 이 책은 누구나 함부로 읽지 못하도록 마법 언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만질수록 꺼림칙한 기분만 들 뿐,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책들을 만지다 한숨을 내쉬며 책상 구석에 내려놓았다.
이대로 가다간 저주를 풀거나 늦추는 방법은커녕 애꿎은 시간만 보내게 생겼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연신 무거운 한숨을 토해 내며 닫힌 창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 앞에서 창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창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 답답함을 해소해 줄 차가운 공기가 필요했다. 나는 꽉 닫힌 덧창을 열어젖혔다.
사박, 사박.
그때, 희미하게 성에가 낀 창밖으로 누군가가 눈 덮인 정원을 지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나는 무심코 창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작은 등조차 없이 두꺼운 후드를 뒤집어쓴 채 걷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저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심장이 바닥까지 처박히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지?’
게다가 그녀가 걸어가는 방향은 저택의 북쪽 숲으로 향하는 문이 있는 쪽이었다.
혹시, 이 시간에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나? 하지만, 그녀는 펠릭스 성에 연고가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이대로 영영 펠릭스 성을, 내 곁을 떠날 생각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조급함과 두려움으로 미쳐 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 당장 동쪽 탑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낡고 허름한 쪽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붙잡고 거칠게 소리쳤다.
“지금 어딜 가려는 겁니까!”
나는 그녀를 무섭게 다그치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사람들 몰래 급히 야반도주하는 사람이 행선지를 정하고 도망치나요?”
그 말에 마음속에서 거친 파도처럼 일렁이던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른다. 이 시간에, 아무런 재산도 무기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저 위험한 숲을 지나겠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도망치는 것이 맞다며 대답했고, 나는 또다시 꼴사나운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저주가 자신에게 향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바라만 보겠다는 나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공작님은 내가 그리 차갑고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어딜 가든 공작님의 그 시선이 내게 닿고 있다는 걸 느낄 텐데, 공작님께서 어떤 얼굴로 나를 보는지 보지 않아도 느낄 텐데 날더러 그걸 그냥 모른 척하라고요? 난 그렇게는 못 해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더러 당신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마저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나는 그 말에 또다시 무너졌다. 이제 그녀는 내가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그럼, 이 갈 곳 잃은 마음은 어떡하면 좋을까.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이미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깊어져 버렸건만 그것을 전할 수도, 멀리서 바라볼 수도 없다니. 그 순간, 나는 그야말로 세상이 끝나 버린 것 같은 절망과 슬픔을 맛보았다.
“아니요. 계속 날 바라봐 주세요. 딱 이 정도, 서로의 손이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서요.”
“……!”
“그리고 내게 가지 말라고, 멀어지지 말라고. 앞으로 힘들지도 모르지만 내 곁을 떠나지 말라고. 그렇게 한마디만 해 주세요. ……그러면 가지 않을게요.”
“……부인.”
“이렇게까지 말해도 모르겠어요? 나도 당신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잡아 주길 바란다고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공작님 집무실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원을 일부러 지나치는 수고스러운 일을 했겠어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내게 선사한 그 기적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덜덜 떨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조금 전 내가 들은 말이 다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때의 그 행복을, 그 충만한 감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수줍은 얼굴로 내 품에 안겨 오는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또다시 꼴사납게 눈물을 쏟아 냈다.
처음이었다. 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저주도 두렵지 않다고 말해 준 사람은. 그리고, 무서운 집착과 문제만 불러오는 나의 가면 아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해 준 사람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는 신조차 내게 주지 못한 희망을, 사랑을 준 그녀의 몸을 매달리듯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반드시 내게 걸린 저주를 풀고야 말겠다고, 그리고 그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거듭 다짐하고 또 맹세했다.
* * *
“……폐하. 이만 일어나셔야죠. 폐하!”
다정한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나를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슬며시 미소 지으며 내 손을 흔드는 곱고 부드러운 손을 꽉 깍지 껴 잡았다. 이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따라 고개를 돌린 후, 슬그머니 눈을 떴다.
눈부신 은발에 걸맞은 연하늘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그녀, 그레이스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는 평생 바라만 보아도 행복할 것 같은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내게 잡히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얼른 일어나세요. 오늘 아침에 레온, 아니지. 황자와 조회에 참석한다고 하셨다면서요.”
“…….”
나는 과거의 꿈에서 채 벗어나지 못해 몽롱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와 가만히 시선을 맞추었다.
처음 만났던 그때와 차림과 지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고 선한 그녀의 모습에 새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벅찰 정도로 행복하면서도 문득 이런 의심에 빠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닐까.’
사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신부들을 죽거나 미치게 만드는 저주받은 괴물 공작이고, 그녀는 내 꿈에 찾아온 환상일 뿐인 건 아닐까. 그래서 이 행복이 어느 날 갑자기 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는 혹여 눈을 뗐다가 그녀가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참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자 그녀가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왜 대답을 안 해요?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살피는 그녀의 손에 내 볼을 바싹 붙이며 말했다.
“난 괜찮습니다, 황후.”
“정말요?”
“어젯밤에 아주 긴 꿈을 꿔서 그런가, 아직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조금 멍했던 것뿐입니다.”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곧 작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요? 대체 어떤 꿈을 꾸셨기에요?”
“……내가 황후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그때의 꿈을 꾸었습니다.”
“어머!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요? 사실 나, 처음엔 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노려보기에 당신이 성혼 축하 파티날 고백했을 때 좀 당황했었어요.”
“그랬습니까?”
“당연하죠. 솔직히 그전까진 당신이 날 좋아하는 줄 몰랐거든요.”
“……그땐 당신을 향한 마음을 감추기에 급급했으니까요.”
“그럼 그때 그 무뚝뚝한 행동들이 날 싫어해서가 아니라, 날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요? 대체 당신은 언제부터 날 좋아한 거예요? 혹시, 첫눈에 반했어요? 아, 얼른 대답해 줘요! 이젠 말해 줄 수 있잖아요!”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에메랄드 같은 투명한 녹색 눈을 반짝이며 물어 왔다.
나는 내가 누워 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그녀를 내 품으로 끌어와 눕힌 후,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살짝 붉어진 그녀의 얼굴에 짧게 입맞춤한 다음에야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부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저주를 무사히 풀고, 그녀가 내 곁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지금이라면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꺼내지 못했던 이 마음을 드러내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내게 기댄 채 장밋빛으로 볼을 물들인 그녀에게, 오직 그녀에게만 말할 수 있는 그때의 내 마음을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가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저주받은 괴물 공작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때처럼, 다정하게.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외전> 마침
By.[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