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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41화 (14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41화

살짝 볼을 붉히며 경고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만 크게 웃어 버릴 뻔한 것을 꾹 참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내 손을 잡는 것을 주저한 것일 줄이야. 나는 나도 모르게 귀엽다고 말할 뻔한 것을 참으며 그녀의 손을 꽉 쥔 채 대답했다.

“그런 거라면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대로다. 그녀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발 몇 번 밟히는 것쯤이야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홀 중앙으로 이끈 후,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것은 첫 번째 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는 음악에 따라 춤을 추며, 내 앞에서 허둥지둥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따라 하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연신 눈으로 좇았다.

“꺅! 미안해요!”

그러던 중, 내 발끝을 밟아 버린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게 사과를 건넸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이끌어 내 몸 위에 올리고는 내 손 또한 그녀의 어깨에 얹은 뒤, 다정하게 속삭였다.

“다른 이들을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오로지 나만 보면서, 내 움직임에만 집중해서 움직이세요.”

“……네? 그, 그러다 또 공작님 발을 밟으면요?”

“조금 전 말했을 텐데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자.”

나는 또 내 밟을 밟을까 위축된 채 움직이는 그녀를 이끌며 춤을 추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춤에 익숙해질 때까지 박자에 맞춰 느린 춤을 추었다.

그 느린 춤사위에 악단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지금, 내 인생에서 다시 없을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그녀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점차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그녀의 해사한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 계속 춤을 추었다.

* * *

그녀와 즐겁게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한 곡이 끝나 있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춤추는 것을 즐겁다고 느끼며 내 앞에 서서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려 인사하는 그녀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자! 괜찮다면 한 곡 더 추지 않겠나? 이왕이면 조금 전과 같은 왈츠로!”

그때, 왕좌 근처에서 황후와 춤을 추고 있던 황제가 쾌활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한 곡 더 출 것을 권했다.

그 말에 나는 살짝 한 걸음 물러났다.

물론 그녀와 춤추는 건 더없이 즐거웠지만, 조금 전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던 그녀를 생각해 보면 더 춤을 추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나처럼 대열에서 물러난 신사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눈으로 그녀를 찾았다.

그런데, 분명 나처럼 대열을 이탈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그녀를 찾아헤맸다.

‘빌어먹을, 또!’

그녀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자, 들떠 있던 기분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한 연회장 안을 돌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벽에 붙어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전부 살폈지만, 넓고 시끄러운 연회장에서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 펠릭스 공작님! 오랜만이군요!”

“안녕하세요, 펠릭스 공작님.”

“……아, 오랜만입니다. 시루크 후작 부인, 힐데 영애. ……죄송하지만, 인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좀 급해서요.”

“……어머, 네. 그러세요.”

게다가 번번이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황족과 귀족들 때문에 괜히 그녀를 찾는 데 써야 할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조금 무례하다 싶을 만큼 대충 아는 척을 한 후, 연신 그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꺄아아악!”

그때였다. 내가 서 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당장 소리가 들려온 쪽을 따라 달려갔다. 그러자, 그 주변을 둥글게 둘러싼 사람들 사이로 쓰러진 그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을 밀치며 쓰러진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

그런데, 쓰러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정신을 잃은 그녀가 황태자의 품에 반쯤 안겨 있는 것을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외국에 나가 아카데미에서 수학 중일 황태자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이며, 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를 왜 안고 있는 걸까.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있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정중히 예를 표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펠릭스 공작.”

그러고는 곧장 몸을 굽혀 쓰러진 그녀의 앞에 주저앉아 그 앞으로 팔을 내밀었다.

“이제 제가 왔으니, 그 사람은 제가 돌보겠습니다. 그 사람을 제게 주십시오.”

나는 고집스럽게 두 팔을 뻗었다.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혼자 맹세했던, 그녀가 내게 걸린 저주를 받아 죽거나 미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겠다던 약속 따위는 잊어버린 듯 굴었다. 나는 간절히 그녀를 돌려받길 원했다.

그래, 지금 그녀는 쓰러져 있으니까. 그녀는 나의 아내이니, 쓰러진 그녀를 챙길 사람은 남편인 나니까. 그런 핑계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재촉하듯 더 가까이 팔을 뻗었다.

그런데, 황태자는 내게 그녀를 줄 수 없다는 듯 더욱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 모습에 꼴사납게 질투를 하며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그, 그래요. 전하! 어서 그 저주받은 여자를 괴물 공작에게 넘겨줘 버리세요!”

“맞아요! 그러다가 그 끔찍한 저주가 전하께 향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나와 황태자가 기묘한 대치를 벌이고 있던 그때,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뭐?”

“……로렌 영애, 레베카 영애. 무례한 말을 삼가시오.”

“전하! 제발 소녀의 간언을 귀담아들어 주세요! 조금 전 그 반응, 행동! 저주가 깃든 거라고요! 틀림없어요!”

“맞아요, 전하! 가, 갑자기 허공을 보며 비명을 지르더니 갑자기 쓰러졌잖아요? 그게 저주가 아니면 뭐겠어요?”

황태자는 그런 그녀들을 향해 싸늘하게 일갈했지만, 이미 잔뜩 겁에 질려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었다.

한편, 나는 그 말들을 들은 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허공을 보며 비명을 지르다가 쓰러져 버렸다고?’

그렇다면, 이미 그녀에게 내 저주가 깃들었다는 건가? 그토록 이번만큼은, 그녀에게만큼은 내 저주가 미치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를 멀리했던 것들은 다 허사였나?

그렇게 허망해하던 내게, 내 마음속에 숨어 있던 이성이 잔인하게 나를 비웃었다.

―웃기는군. 네가 언제 그녀를 멀리했어?

줄곧 동쪽 탑 창가에서 그녀를 훔쳐보면서 그녀의 일상에 간섭했잖아.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그녀의 곁에 있으려 했고, 한동안 그녀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자 거리낌 없이 다가갔잖아.

조금 전까진 한껏 부풀어 오른 네 음흉한 욕심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지. 그 덕분에 그녀는 훌륭하게 네 저주에 걸려든 거야.

잘 봐, 결국 네 욕심 때문에 그녀는 저렇게 되고 말았어. 전부 다 네 욕심 때문이라고!?

나는 그 잔인한 비난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대로 내 욕심이 결국 그녀를 저주에 이르게 하고 만 것이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은 황태자에게 그녀를 놓으라고 소리치며 붙드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또다시 내 저주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지금껏 나를 스쳐 지나갔던 다른 영애들이 그러했듯, 그녀 또한 온갖 헛된 환상을 보며 천천히 미쳐 가리라.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허망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겠지.

‘……안 돼. 그것만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저주는 아직 그녀를 전부 집어삼키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은 시간이 있을 터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점점 그녀를 안은 황태자의 팔이 억센 사람들의 힘에 벌어지는 것을 눈으로 좇았다.

그러던 중 황태자가 그녀를 놓친 순간, 나는 얼른 쓰러진 그녀를 내 품에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어정쩡하게 주저앉아 있는 황태자를 노려보며 그에게 짧게 목례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폐하께는 먼저 돌아가게 되어 송구하다 전해 주십시오.”

그래. 돌아가자. 더 이곳에 머무르며 그녀를 손가락질 받게 하지 말고.

그리고, 방법을 찾자. 내가 가진 모든 걸 이용하여 저주를 해제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자.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곁에 다가가려 욕심내지 말자. 눈도 마주치지 말고, 마음도 주려 하지 말고, 내 더러운 눈과 손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자.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연회장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 내 등 뒤로, 황태자가 한없이 잔인한 말을 비수처럼 내리꽂았다.

“이번 신부는 참으로 괜찮은 사람이더군. 경의 신부가 된 것이 아깝다고 생각될 만큼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대답했다.

“소신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녀가 나 같은 괴물에게 아까운 사람이라는 걸, 감히 더러운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굳이 당신이 확인시켜 주지 않아도 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연회장을 나와 마차를 향해 걸었다. 어리석게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 * *

쓰러진 그녀를 마차에 눕힌 나는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며 창백한 뺨을 연신 쓰다듬었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영원히 그녀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깨어났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광기가 깃들어 있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럼 부인께서 깨어나셨으니 나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마차를 떠나려는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혼자 있기 무섭다며 나를 놓지 않으려는 그녀의 손을 억지로 떼어 낸 후, 매정히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네? 왜요?”

“그리고 이제 앞으로 다시는 부인과 단둘이 있지 않으려 합니다. ……이리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내 단언에 그녀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냐고, 무엇 때문이냐고.

그렇게 물으며 다시 내 옷자락을 붙잡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감히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애틋함과 딱 그만큼의 괴로움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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