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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39화 (13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39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깊은 잠에 빠진 그녀의 자세를 고쳐 주려다 그만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 위로 닿았다.

“…….”

그 순간 나는 감히 숨조차 함부로 들이쉬지 못할 만큼 놀랐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나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그녀인데, 이렇게 내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는 걸 알면 기분 나빠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녀를 깨워야 하나, 하는 고민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가만히 어깨를 늘어뜨렸다. 평온하게 잠든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깨어 있을 땐 내 저주가 미치는 것이 두려워 감히 드러내지 못한 욕심이 터져 나온 것이다.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또 내면에서 속삭이는 욕심에 져 버리고 말았다.

* * *

나와 그녀를 태운 마차는 꼬박 반나절을 달려 황궁에 도착했다.

황궁의 정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것보다 내 어깨에 화장품이 묻은 것이 더 신경 쓰인다는 듯 연신 허둥댔다.

“미, 미, 미안해요! 어머, 어떡해! 하필 남색 제복에! 이를 어쩌면 좋아!”

나는 작은 손으로 내 어깨 부분을 연신 털어 내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막아 세웠다. 고작 제복이 화장품이 묻은 것 때문에 그녀가 이렇게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보다 나는 아름답게 치장한 그녀의 얼굴이 얼룩덜룩해진 것이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장이 지워진 그녀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에 그녀가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나는 황급히 내 손을 거두었다.

‘……아.’

순간, 잊었다.

나는 그녀에게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나는 자꾸만 내 시선을 사로잡는 그녀에게서 억지로 눈을 뗀 후, 샐리를 부르겠다는 핑계로 화제를 돌렸다.

* * *

잠시 후, 나는 그녀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황실 근위대장인 트리스탄 경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서야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에스코트한다는 핑계로 그녀의 곁을 걸으며 그녀를 살폈다. 화려한 황궁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된 듯 연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샹들리에와 천장, 조각들을 구경하며 맑은 녹색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가 못내 사랑스러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게 있어 그녀보다 더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없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트리스탄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천 개의 촛불과 반짝이는 수정들이 박힌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연회장은 밤임에도 낮처럼 밝았다. 나는 들뜬 그녀를 붙잡고 연회장의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 저분이 그 새로운 펠릭스 공작 부인이로군요.”

“그래 보이네요.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려나요?”

그러자마자 나와 그녀를 발견한 이들이 연신 조롱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아한 표정으로 칼날 같은 말들을 쏟아 내며 그녀를 향해 잔인한 호기심과 근거 없는 추측들을 배설하듯 토해 냈다.

그들은 그녀가 앨버튼 가의 사람임에도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해 괴물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둥, 곧 펠릭스 공작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될 거라는 등의 말들을 퍼부으며 연신 그녀를 모욕했다.

“…….”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게 반짝이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 나는 그렇다 쳐도 그녀와 레온을 함부로 비웃고 깔보는 그들의 작태는 도저히 참아 주기 힘들 만큼 역겨웠다.

나는 내 팔을 꽉 붙잡은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못 들은 척하십시오.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말들뿐입니다.”

“……공작님.”

“나 때문에 이런 말을 듣게 해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과를 건넸다.

나에게 쏟아지는 모욕과 조롱은 이제 견딜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 때문에 이런 모욕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마음 아팠다.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자리에 나올 일도,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었을 텐데.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기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그녀에게 아픈 소리를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가장해야 했다.

그때, 황실 근위대 소속 기사가 나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펠릭스 공작 각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나는 기사에게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조금 머뭇거렸다. 온통 나와 그녀를 조롱하는 사람뿐인 이곳에 그녀를 홀로 두기가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나의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다정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따라 연회장 옆에 딸린 내실로 갔다. 이어, 기사가 열어 준 문을 통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두운 휘장을 친 방 안에 있는 황제와 그 곁에 서 있는 앨버튼 공작이 보였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신 아서 펠릭스 공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펠릭스 공작.”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짐이야 늘 그대 덕분에 평안하지. 그대가 국경 지대를 든든히 지켜 주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나를 친근하게 맞이하는 황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크흠.”

그때, 황제의 옆에 서 있던 앨버튼 공작이 짧게 헛기침을 했다. 다소 무례한 행동에 내가 슬쩍 인상을 찡그리자, 황제가 넉살 좋게 웃더니 앨버튼 공작과 나에게 말했다.

“아, 그대와 담소를 나누느라 그만 그대가 장인에게 인사를 나눌 시간을 빼앗아 버렸군그래. 미안하네, 앨버튼 공작.”

“아닙니다, 폐하. 오랜만이오, 펠릭스 공작.”

“오랜만입니다. 결혼식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나는 앨버튼 공작에게 형식적이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로 내 인사를 받았다.

그것이 못내 거슬렸다. 아무리 그녀의 아버지이자 나의 장인이고, 장차 황태자비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라고는 해도 그의 태도는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황제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나를 바라보는 앨버튼 공작을 슬며시 노려본 후, 황제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폐하, 소신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한시라도 빨리 그녀에게 돌아가 그 곁을 지키고 싶었기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황제에게 부른 이유를 물었다.

그 다소 무례한 물음에 황제는 불쾌함을 느낀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되물었다.

“이런, 급하기도 하군. 왜, 짐과는 단 몇 분도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건가?”

“……그것이 아니라, 파티장에 홀로 있을 아내가 신경이 쓰여서요.”

그 물음에 나는 솔직하게 실토했다.

황제도 앨버튼 공작도 지금 연회장에서 그녀가 홀로 남겨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 모르지 않을 테니 지금 나의 조급한 마음을 십분 이해하리라는 계산에서였다.

다행히도 나의 말을 들은 황제와 앨버튼 공작의 표정이 묘하게 밝아졌다. 특히 황제는 만족스럽기까지 한 양 껄껄 너털웃음까지 터트렸다.

“하하! 그래, 그럴 수 있지! 지금이라면 떨어지면 못 견디게 보고 싶을 때이니 말이야. 미안하네, 펠릭스 공작.”

그러더니 황제는 지난번 내가 출정했던 전쟁과 최근 북쪽 영지를 넘어 들어오는 마물들의 처리 문제에 대해 세세히 명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굳이 나를 부르기보다 펠릭스 성으로 서신을 한 통 보내는 게 더 나았을 이야기였기에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일단 별다른 대꾸 없이 그 말들을 귀담아들었다.

빨리 황제의 말이 끝나야, 그녀의 곁에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 * *

알현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인파를 해치며 곧장 그녀와 헤어졌던 곳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젠장!”

나는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연회장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때, 황족과 귀족들이 둥글게 모여선 곳에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구나, 그레이스. 잊었니? 펠릭스 공작의 저주를 이겨 낸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너라고 그 괴물 같은 오드아이에 담긴 저주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게다가 공작 하나도 아니고, 그 동생의 몫까지. 저주가 두 배잖아?”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표정을 굳힌 채 곧장 그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들었음에도 말속에 담긴 지독한 멸시와 노골적인 비웃음에 치가 떨리는데, 직접 눈앞에서 저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온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기사가 아닌 것에, 그리고 내가 지금 검을 지니지 않은 것에 고마워해야 하리라고 생각하며 내가 인파 사이를 파고들던 그때였다.

“못 이겨 낼 건 또 뭔가요?”

그녀가 너무나도 태연한 목소리로 자신을 향한 싸늘한 비난을 맞받아친 것이다.

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의 의연한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여왕처럼 당당했다.

나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녀와 그녀에게 비난을 퍼붓는 영애를 살폈다.

“……뭐?”

“그 붉고 푸른 눈을 보면 그 순간 당장 타 죽거나 익사하게 되기라도 하나요?”

“너……!”

“난 오히려 왜 사람들이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어요. 정작 난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미소로 자신을 비난한 영애와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

나는 여왕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천사와도 같은 말을 하는 그녀를 멍청히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당신이 한 그 말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았는지 안다면, 아마 당신은 그런 말을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별 뜻 없이 내뱉었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내가 어떤 구원을 받았는지, 그리고 자꾸만 당신을 욕심내고 싶어지는 이 어리석은 마음을 그녀가 알았다면 말이다.

나는 당당히 웃으며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와 파티장 구석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 곧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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