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38화
그 후, 나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올리버 경과 샐리에게 성혼 축하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만 그 파티에 참석할 수는 없는 걸까.
그녀가 사람들의 잔인한 호기심에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성혼 축하 파티에 참석한 이후 하나같이 이상해졌던 영애들처럼 그녀 또한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참석하겠다고 했고, 그런 내 말에 내 말에 놀라 되묻는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과연 이번 신부는 얼마나 미치지 않고 버틸까, 이번 펠릭스 공작 부인은 언제, 어떻게 죽게 될까.”
“……!”
“대놓고 입 밖에 내진 않겠지만, 아마 모두 부인을 저런 잔인한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볼 겁니다. 그 시선들을 감당할 자신 있으십니까.”
“……아.”
“게다가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는 사람이 앨버튼 공작이라는 걸, 이미 들어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전해 듣기로 부인께서는 앨버튼 공작은 물론이고 그 일족들과 불편한 관계라 들었습니다만.”
이어진 말에 그녀는 희미하게 얼굴을 붉히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나는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으나 나에게는 그것을 알 권리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나와 함께 파티에 참석할 것을 결정했다. 덧붙여 사람들의 잔인한 호기심에는 이미 익숙하다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 말에 나는 지금껏 그녀가 앨버튼 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행동하지만 얼굴에는 희미한 두려움을 담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짧게 혀를 찼다.
‘내가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지켜 주기는커녕 그녀를 더욱 손가락질 받게 만들 존재일 뿐이기에 그녀에게 안긴 레온에게 말했다.
“레온, 이제 그만 부인의 품에서 나오렴. 부인께서 팔이 아프시겠구나.”
나는 군말 없이 그녀의 품에서 내려와 내게로 걸어온 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이어 어색하게 내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곤 빠르게 동쪽 탑으로 향했다. 파티 참석을 위해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레온의 손을 잡고 내 뒤를 따르는 올리버 경을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지금 당장 내로라하는 보석상과 직인들을 전부 불러 내 앞으로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각하.”
어쩔 수 없이 파티에 참석해야만 한다면 감히 그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조롱할 수 없도록, 그녀가 이 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에 모두가 경탄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내가 가진 전부를 내놓을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따위 것뿐이었으므로.
나는 한없이 무력하고 한심한 자신을 비웃었다.
* * *
시간은 또다시 흘러, 어느새 성혼 축하 파티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이른 새벽부터 나를 수행할 기사들과 시종, 시녀들의 목록을 살피며 혹시 이 안에 첩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의논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고서야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그녀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별채로 가 침실 문을 두드렸다.
“준비는 다 마치셨습니까, 부인.”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공작님! ……자, 이제 제 손을 잡고 일어나세요.”
그러자 안에서 평소보다 한층 상기된 샐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그녀와 샐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그 순간, 나는 참으로 한심하게도 그녀의 모습에 일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평소 그녀가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나 화려하게 꾸민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감히 아름답다는 표현마저 부족하다 싶을 만큼 예뻤다.
악마나 요정에 홀리는 인간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나는 마치 갓 피어난 장미처럼 화사한 새틴 드레스를 입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머나, 공작님. 아무리 마님께서 아름다우셔도 그렇지,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시면 민망해하셔요.”
멍해져 있던 나를 다잡은 것은 샐리의 짓궂은 한마디였다.
나는 쑥쓰러워져서 평소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첫사랑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소년도 아니면서, 자꾸만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여 주고 마는 스스로가 창피했다.
그러자, 곁에서 그녀까지 짓궂게 놀리던 샐리는 부축하고 있던 그녀의 손을 끌어 내 팔 위에 올려 주고는 말했다.
“자, 그럼 저는 마님의 짐을 마저 챙겨 내려갈 테니 공작님께선 마님을 마차까지 에스코트해 주셔요.”
“……내가 짐을 들어도 상관없다만.”
“어머, 어찌 고귀한 공작님께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겠어요? ……자, 자. 어서 함께 내려가셔요, 공작님. 이러다 늦으시겠어요.”
그 후, 샐리는 등을 떠밀듯 그녀와 나를 복도로 밀어내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그녀의 손이 닿은 부분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은 희한한 감각을 느끼며 물끄러미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녀가 머쓱한 표정으로 내 팔 위에 올린 자신의 손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작고 마른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
그러자 그녀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꼭, 내게 당장 이 손을 놓으라고 하는 듯했다.
하지만 붙잡은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척하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내 팔 위에 올라온 그녀의 손을 단단히 고정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늦었습니다. 이만 가시죠.”
“……아, 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이끌고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나는 혹여 그녀가 마음을 바꿔 붙잡은 손을 뿌리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마차가 대기 중인 저택의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게도 이 순간만큼은 정문까지 가는 길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조금 한심한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마중 나온 사람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레온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곧장 달려오며 소리쳤다.
“형님! 형수님!”
나는 곧장 그녀의 드레스에 폭 파묻히듯 안기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칭찬을 늘어놓는 레온의 모습에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또 저렇게 솔직할 수 있는 게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입은 드레스의 모양이 망가질 만큼 꽉 끌어안고 있는 레온의 머리를 쓸어 주며 말했다.
“이런, 레온. 이만 부인을 놓아주거라.”
“조금만 더 이대로 있으면 안 돼요?”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구나. 나와 네 형수는 폐하께서 주최하시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야 하거든.”
“……그거 말인데, 저도 같이 따라가면 안 돼요?”
“그것도 미안하지만 안 되겠구나.”
“왜요?”
“초대를 받은 건 나와 네 형수뿐이거든.”
“……폐하께서도 제가 저주받은 아이라서 싫어하세요? 그래서 초대를 안 해 주신 건가요?”
나의 단호한 대답에 레온은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못내 가슴이 아팠지만, 나는 내 뜻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파티에 참석하지 못해 속상한 것이, 낯선 어른들에게 모진 말을 듣는 것보다 백번 나았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아이의 눈을 애써 피하고 있던 그때, 내 곁에 서 있던 그녀가 몸을 굽혔다. 그러더니 레온과 눈을 맞추며 다정한 목소리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런 게 아니야. 레온이 아직 어려서 그래.”
“……어려서요?”
“응. 레온은 아직 어려서 밤에는 자야 하잖아? 그런데 이번에 폐하께서 초대해 주신 파티는 아주 늦―은 밤에 열리거든.”
“그렇게 늦게 열려요?”
“응. 그래서 폐하께서 레온을 초대하지 않으신 거야. 레온 또래의 아이는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약해지니까, 그래서 그래.”
마치 짠 듯 자연스럽게 내 말에 맞춰 주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혹시 레온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나는 그녀에게 내 속내를 들킨 것이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별말 없이 말을 맞춰 주는 배려심이 고맙고 또 애틋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레온은 찡그렸던 얼굴을 펴긴 했으나 못내 미련이 남은 듯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레온의 모습에 나는 아이의 뒤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올리버 경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가 눈치 빠르게 레온을 번쩍 안아 들고 이어 설득했다.
그래도 영 마음이 찜찜한지 레온은 나와 그녀에게 무사히 돌아올 것을 약속해 달라고 했고, 나와 그녀는 새끼손가락까지 걸고서야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먼저 마차에 태운 후, 그녀가 드레스 자락을 완전히 정리한 후에야 마차에 올라탔다. 곧, 마부는 출발하기 위해 마차의 문을 닫았고 마차 안에는 오롯이 그녀와 나만이 남았다.
나는 마차를 호위하고자 대열을 갖추는 펠릭스 기사단의 모습을 살핀 후,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화려한 마차 안이 신기한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말을 걸었다.
“……부인.”
내가 말을 걸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듯이 그녀가 놀라 되물었다.
“네?”
“감사합니다.”
“……뭐, 뭐가요?”
“조금 전 말을 맞춰 주신 것 말입니다.”
“……아.”
나는 그녀가 말을 맞춰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슬쩍 대화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한 듯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못내 씁쓸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었기에 살짝 열어 놓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주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편히 있을 수 있도록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하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편안하게 하품을 쏟아 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잠든 척 연기하는 것도 잊고 웃어 버릴 뻔했지만,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