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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33화 (외전) (13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33화

외전. 운명(아서 펠릭스 시점 번외)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쑥스러워서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우리의 처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 * *

그날은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무사히 승리로 이끈 후,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황제께 알현을 청한 날이었다. 나는 황궁의 시종장인 로쉬 백작을 따라 태양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나는 왕좌에 앉아 나를 반기는 황제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고는 무사히 보고를 마친 내가 물러날 것을 청하던 그때, 돌연 황제가 불러세웠다.

“펠릭스 공작, 그대에게 전할 것이 있다.”

“하문하십시오, 폐하.”

“짐이 그대에게 결혼을 주선하고자 해.”

그러더니 황제는 나에게 결혼을 주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주군에게 감히 저질러서는 안 되는 불경인 줄 알면서도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게 나에게 혼담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첫 아내였던 엘렉트라 공녀의 불미스러운 죽음 이후로 나와 혼담이 오간 모든 영애마다 죽거나 미쳐 버려서 ‘괴물 공작’이라 불리는 내가 또다시 결혼이라니.

나는 드물게 진절머리를 치며 황제에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송구하오나, 폐하. 소신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없던 일로 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럼, 죽을 때까지 홀로 살 생각인가?”

“예. 그럴 생각입니다.”

“아니 된다. 그러기에 그대는 너무 젊어. 게다가, 후계자 문제도 있지 않나.”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 제게는 레온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레온 또한 그 저주받은 오드아이를 물려받지 않았나. 장차 그 아이가 장성하면 그대와 같은 일을 겪게 될 테고, 그럼 펠릭스 가문은 대가 끊기고 말겠지. 그건 제국에 있어 용납할 수 없는 큰 손실이야. 다시 말해, 그대에겐 그 ‘오드아이’를 물려받지 않은 ‘깨끗한’ 후계자 한 둘쯤 더 필요하다는 소리지.”

그러나, 황제는 완강했다. 저주받지 않은 후계가 필요하다며 재혼할 것을 몰아붙이는 황제의 모습에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물론 후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와 엮인 자들이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고 마는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또 어떤 무고한 사람의 목숨이 희생될지를 생각하면 너무도 끔찍했다.

그래서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또다시 황제를 향해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폐하. 그렇다 해도 소신은 더 이상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더는 결혼할 수 없습니다. 소신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게 귀한 딸을 선뜻 시집보낼 귀족이나 공국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아, 그 부분은 걱정 말게. 앨버튼 공작이 자네에게 선뜻 둘째 딸을 시집보내겠다고 했으니까.”

“……앨버튼 공작이요?”

나는 이어진 황제의 말에 조금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앨버튼 공작가는 제국 유일의 마법사 가문으로서 이 제국의 황족과 귀족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혼담을 맺고 싶어 하는 가문이지 않은가. 그런 가문에서 먼저 혼인을 제안해 오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터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

그러던 중, 머릿속으로 한 가지 납득할 만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 듣기로 앨버튼 가에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영애가 한 명 있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한눈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음에도 일찍이 황태자비로 간택되었던 언니와는 다르게, 여태껏 그 어떤 황족이나 귀족에게도 청혼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설마, 그 영애를 말하는 건가.’

나는 넌지시 황제에게 물었다.

“……그 둘째 딸이라는 분이, 혹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던 그 영애입니까?

“그렇다네.”

“…….”

“왜,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가?”

황제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왜 저렇게 자신 있게 나에게 혼담을 권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였다.

이건 누가 봐도 두 명의 골칫거리를 한 번에 치울 계산이 들어간 혼담이었다.

황제는 충성스럽고 강하지만 아내를 맞이하는 족족 죽거나 미쳐 버리는 저주받은 사촌에게 결혼 문제를 해결해 주고, 앨버튼 공작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무능력자 딸을 어느 정도 작위를 가진 자에게 보내 가문의 격과 영향력을 높이고.

철저히 황제와 앨버튼 공작의 계산이 들어간 이 ‘정략결혼’에, 나는 마치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체스 말이 된 것만 같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유독 강하게 결혼을 권했던 거군.’

나는 답답함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번 결혼을 거절하면 황제의 진노는 물론이고 앨버튼 공작가에도 큰 무례를 저지르고 말게 된다.

나로서는 어느 쪽이든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황제와 수도의 명망 귀족 모두를 적으로 돌리기엔 내가 현재 가진 힘과 영향력만으로는 불가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안 그래도 적이 많은 나인데, 여기서 더 적을 늘려 펠릭스 성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위험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소신에게는 과분한 상대라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과분하긴, 짐의 사촌이자 이 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를 소유한 그대에게 딱 걸맞지. 아니, 오히려 그대에겐 부족할 정도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하하. 겸손하기는!”

내 말에 황제는 기쁜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확답을 듣고 싶은 것은지 나에게 못을 박듯 물었다.

“그럼 짐은 그대가 이 혼담을 수락한 것으로 알고 있어도 되겠지?”

“……예, 폐하.”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승낙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황제는 마치 큰 골칫거리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즐거운 얼굴을 하며 곁에 있던 로쉬 백작에게 당장 국혼을 치르듯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한편, 나는 쓴웃음이 멈추지 않아 입을 가려야만 했다.

대체 무엇이 그리 좋은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와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약속한 여자는 모두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죽거나 미쳐 버리는데, 그걸 알면서도 즐거운 얼굴로 나의 결혼식을 거론하는 황제의 모습에선 그 숙녀의 불행에 대한 동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끔찍해. 모든 것이.’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또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나로 인해 불행을 맞게 될 그 사람, 나의 후처가 될 그레이스 앨버튼을 상상하며 굳게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내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그래서 그녀만큼은 죽거나 미치고 마는 결말을 겪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그를 위해 앞으로 그녀와 평생을 명목상의 부부로 살겠다고 말이다.

* * *

결혼은 내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다. 집안의 강요에서인지, 아니면 황제의 강권 때문인지 그레이스 앨버튼 또한 나와의 혼담을 승낙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나와의 결혼을 승낙한 것일까. 내가 저주받은 자라는 걸 모를 리 없는데.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신없이 이어지는 결혼 준비에 휩쓸려 그런 생각들은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혼담이 성립한 후, 일주일 뒤.

제국 수도의 킹 세인트라 대성장에서 치러진 결혼식에서 나는 그녀, 나의 아내 그레이스 앨버튼을 처음 만났다.

곳곳마다 최고급 백장미와 백합, 눈부신 흰 베일로 장식된 아름다운 대성당에 먼저 도착해 성스러운 단상 앞에 서 있던 나는, 그녀를 부르는 교황의 목소리에 성당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부, 그레이스 앨버튼 공녀께서는 성소로 들어오십시오.”

이후 내 눈앞에 나타난 자는 은빛의 요정이었다.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향해 걸어오는 나의 신부, 그레이스 앨버튼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기나긴 베일 아래 틀어 올린 긴 은발과 가만히 시선을 내리깐 녹색 눈, 그리고 요정처럼 끝이 예쁘게 솟은 코와 작고 붉은 입술은 도저히 그녀를 이 세상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게 했다.

그래서 나는 바보처럼 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저주받은 나의 아내가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나의 앞에 마주 섰을 때, 나는 집요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바보처럼 떨고 말았다.

“신부, 그레이스 앨버튼 양은 베일을 걷고 신랑, 아서 펠릭스 경을 바라보시오.”

남들에겐 찰나였으나 나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지나고, 주교가 혼인 성사를 위해 그녀에게 베일을 벗으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녀는 사뿐히 허리를 굽혔고, 시녀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던 긴 베일을 걷어 냈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앞에 선명히 드러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긴장하여 숨을 멈추었다.

“……아.”

그리고 터져 나온 그녀의 비명 같은 감탄사에 나는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내 오드아이를 똑바로 마주한 순간, 그녀의 얼굴이 두려움에 물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생각에 확신을 심어 주듯, 그녀는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나의 노골적인 시선을 피했다.

나는 냉정하게 나의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녀 또한 나처럼 가문의 강권에 억지로 이 정략결혼을 승낙한 것이리라.

나는 한순간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희망을 짓밟으며 냉소했다. 참으로 어리석었다. 감히 저주받은 나 따위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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