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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31화 (13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31화

얼른 뒤따라 나온 아서가 다정히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레이스.”

“……절대, 저 사람 때문에 슬퍼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화가 나서 그래요.”

“압니다. 이해해요.”

“그깟 권력이 뭐라고, 힘이 뭐라고. ……저런 사람의 딸로 태어나 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어린 날의 내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과 저 사람에게 희생된 영애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자식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며 신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존재에게 사랑 받고자 한 것을 누가 비난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인께서는 미안해하실 것도, 부끄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어깨를 꼭 끌어안은 채 토닥이는 아서의 품에 매달리며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드시 저 사람이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 누구도 권력에 눈이 멀어 저런 일을 벌일 수 없도록요.”

“네. 그렇게 될 겁니다.”

아서는 울분을 토해 내는 그레이스를 꼭 끌어안으며 조용히 그녀를 위로했다. 지금 그 누구보다 복잡할 아내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

* * *

이후,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그사이 희생된 영애들의 가문에서 적어 보낸 증언이 예배당으로 하나둘 도착했고, 그레이스가 갇혀 있던 황태자궁의 지하실을 조사한 기사들과 신관들 또한 증인석에 올라가 증언을 마쳤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새운 끝에 재판은 끝이 났고, 교황과 배석한 두 명의 대신관은 판결을 내렸다.

전 황제, 알렉센드르 클라이브와 그의 아내, 마리아 클라이브 황후는 평생 제국 수도의 서쪽 끝에 있는 황족 전용 감옥인 제국 탑에서 죽을 때까지 유폐를 명했다.

본디 황태자 또한 그 부모와 함께 유폐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와 펠릭스 공작이 내리는 모든 처분을 따를 테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그를 자유롭게 살도록 해 달라 애원하는 전 황제 부부의 요청으로 인해 제국 밖으로의 추방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피츠제럴드 앨버튼 전 공작에게는 제국 최고형인 화형이 선고되었다. 레지나 앨버튼 공작 부인은 큰딸인 마리안느의 죽음으로 미쳐 버린 데다 상대적으로 가담한 바가 적다고 판단되어 독살형이 선고됐다.

그 소식을 들은 황족들과 귀족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고려하면 나름대로 합당한 형이라고 수군거리는 한편, 교황청의 판결이 잔혹한 것에는 현재 제국의 일인자나 다름없는 아서 펠릭스 공작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개국부터 이어지던 클라이브 황가는 그들을 저주한 초대 신의 뜻대로 몰락하고야 말았다.

또한 지난 몇십 년간 제국 곳곳에 퍼져 있던 ‘괴물 공작’의 이야기 또한 사라졌으며, 유폐된 황제의 뒤를 이어 황위를 이어받게 된 아서 펠릭스 공작이 마법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지금껏 강력한 힘으로 세력을 유지하던 마법사 세력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새 세상이 열린 것이다.

* * *

황궁의 북쪽 끝, 흉악범들을 가둔 지하 감옥은 대낮임에도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그레이스는 횃불을 든 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감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걱정 마요.”

그레이스는 자신을 걱정하는 기사들을 향해 가볍게 미소 지은 후, 척척 계단을 내려와 어두운 지하 감옥의 복도를 걸어갔다.

곳곳에서 그레이스의 인기척과 그녀를 따르는 기사들의 횃불을 발견한 죄수들이 하나둘 철창으로 달라붙어 제발 이곳에서 꺼내 달라는 듯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그 죄수들은 그레이스와 시선을 마주칠 새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에게 제압되어 다시 차갑고 어두운 지하 감옥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그레이스가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걸음을 멈춘 곳은 지하 감옥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마법사 전용 감옥이었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뒤따르던 기사, 올리버 경에게서 횃불을 받아 들며 온통 저주 마법이 걸려 있는 석실 안을 비추었다. 그러자, 구석에 웅크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전 앨버튼 공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레이스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리는 그를 향해 말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군요, 앨버튼 공작.”

“……내 꼴을 조롱하러 온 것이냐?”

“네. 맞아요. 마음껏 비웃어 주러 왔어요.”

빈정거리는 전 앨버튼 공작의 말에 그레이스는 차갑게 비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녀가 서 있는 철창 쪽으로 걸어왔다.

그레이스는 살짝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점점 자신에게 가까이 걸어오는 전 앨버튼 공작의 허름한 몰골을 관찰했다.

다 해진 죄수복, 검게 그늘이 내려앉은 퀭한 눈,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지금 그의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그 볼품없는 모습을 관찰하는 사이, 철창 앞에 바싹 붙은 전 앨버튼 공작은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차림을 한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이죽거리듯 말했다.

“……그래. 언니의 목숨을 빼앗고, 부모를 지옥으로 몰아넣고 얻은 권력과 부는 누릴 만한 것이더냐?”

“네. 아주 꿀처럼 달더군요.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마리안느 영애가 죽은 건 저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탐욕 때문이에요. 그리고, 당신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 또한 당신들이고요.”

“망할 것! 장차 황후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상 모든 게 다 네 뜻대로 될 것 같으냐? 천만에!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죽어 가며 널 저주하고, 또 저주할 것이야!”

발악하듯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 그녀의 뒤편에 서 있던 기사들이 얼른 그녀를 보호하듯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괜찮다는 듯 손짓하며 기사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고는 철창에 매달린 전 앨버튼 공작의 앞으로 걸어가 보란 듯 비웃으며 말했다.

“네, 어디 마음껏 해 보세요. 그 저주, 나에게는 먹히지 않을 테니. 설령 당신이 마력을 잃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죠.”

“……뭐라고?”

“그거 아세요?”

그레이스는 전 앨버튼 공작의 귓가에 바싹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댄 후, 그의 귓가에만 들릴 만큼 작고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저, 이번 생이 처음이 아니에요. 당신들에 의해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죠. 내 마법의 힘으로 말이에요.”

“……!”

“그뿐인 줄 아세요? 당신과 선황제의 계획을 미리 눈치채고 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게 건 저주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마력 때문이죠.”

“뭐, 뭐!?”

“이런, 더 확실하게 말씀드려요? 당신이 후계자로 삼고, 황태자비로 만들고자 했던 마리안느보다 내가 가진 마법이 더 강했다는 소리예요.”

그 말에 전 앨버튼 공작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는 것을 보며 그레이스는 더욱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끝까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이 분에 넘치는 마법의 힘을 탐하지 않도록, 앞으로 제국에서 마법사의 ‘혈통’을 잇기 위한 정략결혼을 금지하겠다는 아서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영원히 자신이 겪고 경험한 마법에 대해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전 앨버튼 공작이 이렇게 자신의 죄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없는 모습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에게도 그랬을 터였다.

‘당신은 끝까지 뉘우칠 줄 모르는군요. ……아버지.’

그래서 일부러 그에게 자신의 ‘마법 능력’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있는 대로 절망해 주길 바랐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후회하다 죽기를 바랐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내 말을 되새기며 끊임없이 후회하겠지. 내 마법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언니 대신 날 이용하지 못한 것을. ……당신은 끝까지 그런 후회나 할 테지.’

그래, 끝까지 그런 후회로 절망하기를.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해 자책하다 죽어 가기를 그녀는 진심으로 바랐다. 이것이 바로 끝까지 반성을 모르는 그에게 주는 그녀의 마지막 복수였다.

그레이스는 전 앨버튼 공작의 눈동자에 어두운 절망이 깃드는 것을 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덧붙이듯 말했다.

“혹여 다시 태어나면, 그땐 사람을 보는 안목을 더 키우시길 바랄게요. 그럼 저는 잠시 후, 전 앨버튼 공작 부인의 형 집행에 참석해야 해서요.”

“……이, 이!”

“마리안느를 비롯해, 세 분께서 부디 지옥에서 무사히 만나길 신께 기도하죠.”

그 말을 끝으로 그레이스는 냉정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으아아아악――――!”

그러자,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레이스는 그 소리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더욱 빨리 지하 감옥의 복도를 걸어 나갔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평생 그녀를 붙잡고 괴롭혀 온 앨버튼 가문과의 기억들을 평생을 걸쳐 잊어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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