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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29화 (12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29화

그레이스는 혹시 자신이 애써 밝은 척하는 것은 아닐까, 하며 아서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여 가족을 향한 일말의 미련이 남은 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벌을 받게 되면 상처를 입게 될까 걱정하는 그의 다정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레이스의 마음은 아서의 걱정과는 달리 꽤 가벼웠다. 그들을 향해 많은 미련이 남지도 않았고,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물론 조금 전 마리안느의 죽음이 큰 충격을 주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했기에 받은 충격일 뿐, 가족으로서의 애틋함이 남아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가족을 향한 애정은 이전의 생에 수도원에서 독살당하던 날 대부분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일말의 애정조차 이번 생에 독에 당했을 때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나더러 매정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나에게 가족은 아서와 레온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레이스는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던 앨버튼 공작가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털어 냈다. 또한, 지금은 그냥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음에 순수하게 기뻐하자고 생각했다.

그 후, 그레이스는 앞으로 자신이 전할 소식에 기뻐할 펠릭스 공작가의 사람들의 얼굴을 즐겁게 상상하며 아서와 함께 어두운 숲길을 걸어갔다.

* * *

태초의 숲을 나와 황궁으로 돌아온 아서와 그레이스는 그곳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펠릭스 기사단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이 일구어 낸 승리와 그레이스의 무사 귀환을 기뻐하며 환호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조금 멋쩍어하던 둘의 앞에 명령을 완수한 후, 돌아온 올리버 경이 다가왔다.

올리버 경은 다정하게 팔짱을 낀 두 사람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예를 표했다.

“기사 올리버, 펠릭스 공작 각하와 펠릭스 공작 부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올리버 경.”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공작 부인. 혹여, 그놈들이 흉악한 짓을 벌이진 않았습니까?”

“네. 모두가 걱정해 준 덕분이에요.”

조금 전, 태초의 숲에서는 경황이 없어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그레이스가 뒤늦게나마 반갑게 인사하자 올리버 경 또한 친근하게 말을 받았다.

그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서가 올리버 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자들은 지금 지하 감옥에 있나?”

“네. 명하신 대로 앨버튼 공작 부부는 별도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지금쯤 칼딘 경이 데려온 교황청 소속의 신관들과 마법사들이 그들을 조사하고 있을 겁니다.”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내게 보고하라고 전해. 그리고, 혹여 조사에 참여한 마법사들이 허튼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라고도 전하고.”

“알겠습니다.”

자신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올리버 경에게 아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한 후,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연회장에 있는 황족들과 귀족들은 지금 어쩌고 있나?”

“황제의 은혜도 모르고 감히 모반을 꾀했다며 날뛰다 기사들에게 제압당한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얌전히 연회장 안에 갇혀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 그렇겠지. 굳이 실각한 황제와 앨버튼 공작의 편을 들어 내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풀려나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리 순순히 따를지는 의문이라는 게 문제로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황제와 앨버튼 공작가를 실각시키고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수도를 장악한 각하에게 어떤 저항을 벌이려 하진 않겠지만, 그들이 돌아간 후에 무슨 짓을 꾸밀지 모릅니다.

……하여 제 생각엔 각하께서 그들을 만나 이번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허튼짓을 벌일 수 없게 약간의 경고 정도는 해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알겠다. 그럼, 지금 당장 연회장으로 가 봐야겠군. 올리버 경, 기사들과 함께 나를 따르라.”

“명 받들겠습니다.”

올리버 경은 또다시 깊게 고개를 숙인 후, 기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껏 조용히 아서와 올리버 경의 말을 듣고 있던 그레이스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슬쩍 남편의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서.”

“왜 그러십니까?”

“나도 함께 따라가도 될까요?”

“안 될 것은 없습니다만, 피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 험한 일을 겪으셨는데, 잠시라도 쉬는 편이…….”

아서는 조금 창백한 그녀의 뺨을 다정히 손으로 쓸어내리며 물었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를 향해 괜찮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난 괜찮아요. 음……. 솔직히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인걸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돕고 싶기도 하고요. 이번 일을 벌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나 때문이잖아요. 당신이 이번 일을 설명할 때 내가 곁에서 황제와 앨버튼 공작에게 겪은 일을 증언하면 그들을 설득하기 더 쉬울 거예요.”

“……그건 그렇지만, 당신이 그 일을 증언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려야 할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물론 예전엔 꿈에서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일들을 떠올리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요. 그때 겪었던 모든 일이 다 당신의 곁에서 행복하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싶거든요. 왜,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온다고들 하잖아요?”

그레이스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의 손을 끌어다 그 손등 위로 입을 맞추며 말했다.

가만히 시선을 맞추며 웃어 보이는 그레이스를, 아서는 눈이 부시다는 듯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괴물 공작으로 불렸기에 부인께서 내게 올 수 있었다 생각하면, 그간의 과거들도 그리 괴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랑은 다르죠. 당신은 황제와 앨버튼 공작 때문에 부당한 오해를 받고, 겪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겪은 거잖아요. 으……. 그것만 생각하면 화가 나요.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는데.”

“그건 부인께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고작 마법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다니,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겪지 말았어야 할 일들은 겪은 건 부인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 그건 아니죠. 앨버튼 공작가에서 마법 능력이 없는 자식으로 태어났을 때, 내 운명은 반쯤 그렇게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어요. 피할 수 없이 겪었어야 할 일들이었어요. 사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인께서는 그런 일들을 겪으시면 안 될 사람이었어요.”

서로가 겪은 일을 언급하며 잠시 티격태격하던 둘은 곧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다가 가벼운 말싸움을 벌이다니. 남들이 보면 유난이다, 낯간지럽다고 비웃을 일이었다.

그렇게 둘이 서로의 몸에 기댄 채 마주 웃고 있던 그때, 기사들을 불러 모은 올리버 경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고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각하.”

“알겠다.”

아서는 짧게 대답한 후, 다정한 목소리로 제 곁에 선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그럼 연회장까지 같이 가 주시겠습니까, 부인?”

“네. 물론이죠.”

그레이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서는 자신의 팔에 손을 올린 채 팔짱을 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올리버 경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연회장을 향해 걷는 아서와 그레이스의 뒤로 올리버 경과 펠릭스 기사단 휘하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두 사람을 보호하며 따라갔다.

* * *

아서와 그레이스가 올리버 경을 비롯한 펠릭스 기사단과 병사들의 비호를 받으며 연회장에 도착하자, 연회장 입구를 지키고 있던 펠릭스 기사단의 병사가 가장 먼저 그들을 맞았다.

아서는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한 병사를 향해 명령했다.

“문을 열어라.”

“예, 각하.”

병사는 곧장 몸을 일으켜 굳게 닫혀 있던 연회장 문을 열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앞에 화려하게 꾸며진 연회장과 펠릭스 기사단에 의해 두 개의 무리로 나눠진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레이스는 아서와 함께 기사들이 터놓은 연회장의 가장 높은 단상으로 올라서며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아서를 응시했다.

조금 전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자신과 아서에게 황족들과 귀족들의 시선이 집중된 데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밟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던 연회장 가장 높은 단상 위에 서게 되자 긴장이 되었다.

아서는 그런 마음을 안다는 듯, 다정히 그녀의 손을 토닥인 후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황족들과 귀족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내가 왜 지금껏 주군으로 모셨던 황제를 배반하고 반역을 일으켰는지 궁금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부터 그 연유를 설명하고 그대들에게 새로운 제국을 함께 이끌어 나가는 데에 도움을 얻고자 하니, 모두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라지!”

그 말을 서두로 아서는 그들에게 지금껏 벌어진 일들을 설명했다.

황태자에게 황실의 피를 타고 흐르는 초대 신의 저주가 발현된 일부터 앨버튼 공작이 그 저주를 풀기 위해 방법을 찾아다닌 일, 그리고 그 일 때문에 펠릭스 공작가가 어떤 오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그레이스를 비롯한 영애들이 목숨을 잃거나 미쳐 버리는 저주가 가해졌던 것에 대해 말이다.

“세상에, 그 무슨…….”

“너무 끔찍해요……!”

아서의 말이 이어질수록 황족들과 귀족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자신들이 알던 것과 정반대의 사실일 테니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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