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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28화 (128/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28화

도망치던 그레이스는 숲을 찢을 듯 울부짖는 앨버튼 공작 부인의 목소리에 놀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

이어 그레이스는 가슴에 단검이 꽂혀 숨이 꺼진 마리안느와 그녀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앨버튼 공작 부인, 그리고 큰 충격에 혼이 나가 버린 듯한 앨버튼 공작을 발견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도망치던 단 몇 분 사이 벌어진 참상에 경악했다. 그러곤 숨이 끊어진 마리안느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어떻게…….”

그러자, 마리안느의 죽음으로 넋이 나가 있던 앨버튼 공작이 서슬 퍼런 눈으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망할 계집!!’

저것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저것만 얌전히 죽어 주었어도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을 테고, 마리안느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앨버튼 공작은 증오에 사로잡힌 악마 같은 얼굴로 그레이스를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 너 때문이다, 그레이스. 이 악마 같은 것! 너만 아니었어도!”

앨버튼 공작이 거칠게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무력으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친 저 저주받을 계집의 목숨을 끊어 놓으리라!

그렇게 결심하며 그가 그녀를 향해 위협적으로 걸어왔고, 그레이스는 경계하며 뒷걸음질을 치던 그때였다.

히힝―!

그레이스의 등 뒤에서 수십 필의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말이 거칠게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스는 그 소리에 당장 고개를 돌렸고,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려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서!”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더욱 빠르게 달려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아내를 해치려 다가오는 앨버튼 공작을 향해 검을 겨누며 차갑게 일갈했다.

“이제 그만 허튼짓은 멈추고 투항하라, 앨버튼 공작. 이제 다 끝났다.”

“……저주받을 괴물 놈. 버러지 같은 반역자 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그러자 앨버튼 공작이 이를 갈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서는 분노와 절망, 증오로 타오르는 그를 향해 보란 듯 싸늘하게 코웃음 치곤 말했다.

“하, 글쎄. 지금 그대가 형편 좋게 날 걱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앨버튼 공작이 되묻자, 아서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완전 무장한 펠릭스 기사들이 어두운 숲속에서 튀어나와 아서와 그레이스, 그리고 앨버튼 공작과 황제 일가가 쓰러진 주변을 에워쌌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날카로운 검과 화살촉은 전부 앨버튼 공작과 황제 일가를 향해 있었다.

아서는 이제야 표정이 굳어 버린 앨버튼 공작을 향해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 투항하라, 앨버튼 공작.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벌이면 그땐 자비 없이 목을 베겠다.”

“……누가 네놈 같은 괴물에게 머리를 숙일까 봐? 웃기지 마라!”

아서는 앨버튼 공작의 발악을 보며 또다시 차갑게 비웃은 후, 자신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올리버 경, 시작해.”

“예, 각하!”

“이, 이거 놔! 내 사랑스러운 딸, 마리! 마리를 놔줘! 여, 여보! 구해 줘요!”

“레지나! 빌어먹을! 이것 놔라! 이 천한 것들!”

올리버 경을 비롯한 펠릭스 기사들은 순식간에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온몸을 포박하고 마리안느의 시신을 수습했다.

“안 돼! 내 딸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마리! 마리――!”

앨버튼 공작 부인은 자신에게서 마리안느의 시신을 떼어 놓는 기사들을 할퀴며 절규했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앨버튼 공작은 여전히 기절한 채 무력하게 끌려가는 황제 일가와 짐승처럼 절규하며 질질 끌려가는 아내를 핏발 선 눈으로 응시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자신에게 다가와 온몸을 포박하고 흰 천으로 입을 틀어막는 펠릭스 기사들에 의해 곧 묻히고 말았다.

아서는 황제 일가와 앨버튼 공작 부부를 싸늘하게 돌아보며 말했다.

“이자들을 황궁의 지하 감옥에 가둬라. 특히, 피츠제럴드 앨버튼과 레지나 앨버튼, 이 두 명은 마법사 전용 감옥에 가두고 각별히 감시하도록.”

“예, 각하.”

“끌고 가.”

“으읏! 윽!”

아서의 명령에 펠릭스 기사들은 포박된 앨버튼 공작을 말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아서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인지 입을 틀어막힌 채로 연신 뭐라고 소리치는 앨버튼 공작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을 느낀 앨버튼 공작의 눈이 증오로 새파랗게 불타올랐다. 그 눈빛은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어?’

아서의 품에 안긴 채 그를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스는 흰 천에 틀어막힌 앨버튼 공작의 입이 묘하게 웅얼거리는 것을 포착했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곧장 눈을 돌려 조금 전, 앨버튼 공작이 쓰러져 있던 곳을 살폈다. 그러자 그곳에 널브러진 긴 로브 밑이 꿈틀거리며 그 안에서 흰 올빼미의 날개가 퍼덕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본능적으로 현재 앨버튼 공작이 또다시 흰 올빼미와 괴물을 이용해 반격을 시도하려 함을 눈치채고는 곧장 아서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서! 저기!”

“왜 그러십니까?”

“저 로브 밑에 있는 올빼미의 심장을 쏴요! 어서!”

“……알겠습니다.”

그레이스의 외침에 아서는 곧장 조금 전까지 앨버튼 공작을 노리고 있던 검을 고쳐 쥔 후,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는 로브를 향해 집어 던졌다.

쐐액――!

그러자 아서의 검이 화살처럼 날아가 꿈틀거리던 올빼미의 심장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으아아아악――!”

[끼이이익――!]

그 순간 흰 올빼미에게서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며 그 주변으로 진녹색 빛의 마법진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아서의 품에 안겨 있던 그레이스의 손등에 조금 전 바닥에 나타난 마법진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광경에 아서와 그레이스가 놀라며 서로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으, 으아아악―――!”

“저, 저주다!”

“빌어먹을! 당장 죄인의 손을 놔! 저주가 옮을지도 모른다!”

조금 전, 기사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발악하듯 주문을 외우던 앨버튼 공작에게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 저게 대체…….”

황급히 그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레이스의 손목에 떠올랐던 그 마법진이 앨버튼 공작의 목에 떠오른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마법진은 마치 불꽃처럼 앨버튼 공작의 목을 태웠고, 그는 연신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를 구속하고 있던 기사들은 붙잡고 있던 그를 짐짝처럼 내팽개쳤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은 밧줄에 묶여 쓰러진 채 바닥을 구르며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잠시 후 진녹색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던 앨버튼 공작이 기절했을 때, 그의 목에는 마법진 같은 검은 낙인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스는 앨버튼 공작이 정신을 잃자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아서는 그런 그녀를 다정히 끌어안으며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이자를 가둔 후에 교황청 소속의 고위 신관과 수도 서쪽에 구류 중인 마법의 탑 소속의 대마법사를 불러 저 마법진을 조사하도록 해.”

“명 받들겠습니다, 각하.”

아서의 명령에 기사들은 정신을 잃은 앨버튼 공작을 짐짝처럼 들고는 죄인들을 태우기 위해 준비한 말 쪽으로 걸어갔다.

아서는 그런 그들을 잠시 눈으로 좇다가, 곧 자신의 품에 안긴 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레이스를 향해 말을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요?”

그레이스가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묶인 곳이 좀 쓰라린 것 빼고는 괜찮아요.”

아서는 그런 그레이스의 얼굴을 애틋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양팔로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혹여 내가 늦어서 부인께서 잘못되진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나도요. 혹시 내가 잘못되어서 당신이 죽게 될까 봐……. 나는 그게 더 무서웠어요.”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당신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미안합니다.”

아서가 한 손으로 살짝 부은 그레이스의 뺨을 쓸어내리며 사과하자, 그녀는 그의 손에 살포시 자신의 뺨을 비비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마요. 불가항력이었잖아요.”

“……그레이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은 없을 거예요. 이번 일로 인해 현 황가와 앨버튼 공작가는 멸문을 맞았고, 이 일이 세간에 퍼지게 되면 강한 마법의 힘을 휘두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에 대해 모두가 경각심을 갖게 되겠죠. 그럼, 다시는 마법사의 피를 짙게 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거듭하는 자도, 강한 마법의 힘을 원하는 자도 줄어들 거예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그레이스의 얼굴은 일견 속이 시원한 듯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아서는 그런 아내의 얼굴을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다정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그러곤 아서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자 그레이스가 검지로 그의 입술을 꾹 누르며 말했다.

“지금,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그랬죠?”

“…….”

무언은 곧 긍정이었다. 그레이스는 조용히 시선을 내리까는 아서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아 억지로 그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이 미안해할 것 없어요. 앨버튼 공작, ……아버지의 일은 다 자업자득이니까요.”

“…….”

“그러니까, 나 때문에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경감한다든가 그런 일은 하지 마요. 그건 그 사람들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당신에게 협력을 결심한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니까요.”

“……그 말, 진심이십니까?”

“네. 진심이에요.”

그레이스는 쓴웃음을 짓는 아서의 볼에 입맞춤했다. 그 후, 그녀는 밝게 웃으며 그의 품에서 나와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숲에서 황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가요.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당신이 무사히 황실과 친황제파를 제압하고 반역에 성공했다는 것도 선포해야 하고, 저도 저 나름대로 바쁘고요.”

“……그 바쁜 일이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서의 물음에 그레이스가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장 펠릭스 성으로 서신을 보내서 우리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레온과 샐리, 그리고 성의 모두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죠.”

“……그러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빨리 가요, 아서.”

“네.”

아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레이스는 팔짱을 낀 그의 팔을 채근하며 흔들었다. 그러자 순순히 자신을 따라오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그레이스는 밝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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