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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23화 (12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23화

그때, 성을 향해 달려오던 펠릭스 기사단이 두 사람의 앞에 도착했다. 그 선봉에 서 있던 기사, 올리버 경은 곧장 말에서 내려 아서와 스펜드라 후작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기사 올리버, 주군과 스펜드라 후작님을 뵙습니다.”

“고생 많았다, 올리버 경. 현재 기사들의 상태는 어떤가?”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입니다.”

“수도 주변 영지를 수호하는 토스란 후작과 카노샤 공작군의 상황은 어떻지?”

“지금 그들을 정벌하기 위해 캐러독 경과 위그 백작의 연합군이 출정했습니다. 그리고, 후방에서 우리 군을 지원하기 위해 로이엔느 공국군이 조금 전 국경을 넘어 플라이엔 성으로 진격 중입니다.”

“그렇군. 알겠다.”

모든 보고를 들은 아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올리버 경은 곧장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도로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이후, 아서는 곁에 선 스펜드라 후작에게 눈짓하고는 자신의 앞에 모여든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검을 쥔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는 지금 당장 황궁으로 진격한다! 지금껏 나와 레온에게 저주받은 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그대들을 저주받은 공작이 이끄는 군대라 멸시하며, 그대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명예와 보상을 가로챈 황실과 사악한 앨버튼 공작에게 심판을 내려라!

그들은 더 이상 우리가 지켜야 할 주군이 아니며, 존경해야 할 공작도 아니고, 저주의 이름으로 영애들을 죽거나 미치게 한 살인자이고 위선자이니 말이다!”

“와아아―――!”

“나의 군사들이여! 당장 4관문을 열어라!”

아서의 말이 끝나자 기사들과 병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 냈고, 스펜드라 후작은 당장 성문을 개방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곧장 단단히 닫혀 있던 성문이 활짝 열렸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가장 선봉에 선 올리버 경을 따라 수도로 진격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전부 성문 안으로 들어오자 스펜드라 후작과 수도 방위군은 친 황제군의 지원을 막기 위해 곧장 성문을 걸어 잠그고 성벽을 에워쌌다. 아서는 그런 그들에게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곧장 수도로 진격하는 자신들의 기사들을 쫓기 위해 말에 채찍질을 가했다.

그러자 아서의 팔 위에 앉아 쉬고 있던 매가 곧장 창공으로 날아갔고 아서를 태운 말은 곧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서는 반대편 창공으로 날아가는 매를 잠시 응시하고는 달리는 말에 몸을 맡기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부디,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그레이스가 무사하기를. 아서는 그것만을 간절히 빌며 황궁으로의 진격을 서둘렀다.

* * *

수천 개의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화려한 샹들리에가 연회장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밝혔다.

내일 있을 황태자의 결혼식을 맞아, 황금색 비단과 색색의 보석으로 꾸며진 연회장 안에는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으로 몸을 치장한 제국의 귀부인들과 그런 그녀들을 에스코트하는 황족들과 귀족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황제와 황태자를 알현하여 갖은 선물을 갖다 바친 후, 황궁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곧바로 연회장에서 벌어지는 결혼 전야 파티에 참석했다.

비록 파티를 벌이기엔 좀 이른 시간이었으나, 황궁의 시종들이 가져다주는 고급 와인과 오랜만에 벌어진 파티의 흥겨운 분위기에 기분 좋게 취한 그들은 황궁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긴 안락의자에 앉아 마음 맞는 귀한 이들과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들보다 한층 높은 단상 위에 위치한 네 개의 왕좌에는 황제와 황후, 그리고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인 황태자와 마리안느 앨버튼 영애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한층 아래의 단상에는 앨버튼 공작 부부가 자리해 있었다.

황제는 이미 밤인지 낮인지도 잊어버린 양 향락에 취해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 황족들과 귀족들을 조용히 살피더니 한층 아래에 있는 앨버튼 공작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은 기다렸다는 듯 황제에게로 걸어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황제는 그가 가까이 오자 귓속말을 건넸다.

“이제 슬슬 그곳으로 가도 될 것 같은데?”

황제의 물음에 잠시 연회장을 둘러본 그가 작게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아직은 보는 눈이 많습니다. 몇 시간 후, 파티가 정리될 때쯤 적당히 핑계를 대고 일어나시지요.”

“……알겠네. 그 말대로 하지.”

“지금 폐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 잘 압니다만, 조금 더 마음을 느긋하게 드십시오. 어차피 제물은 우리 손에 잡혀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과 함께 앨버튼 공작은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자 조급한 표정을 하고 있던 황제가 살짝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앨버튼 공작은 그런 황제를 살피며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로쉬 백작을 향해 말했다.

“로쉬 백작. 샴페인을 가져다주게.”

“네, 공작님.”

그 후, 앨버튼 공작은 로쉬 백작이 가져다준 샴페인을 황제의 금잔과 자신의 은잔에 따랐다. 그러고는 황제에게 샴페인이 가득 담긴 금잔을 건네며 말했다.

“자, 한잔하시지요. 폐하. 오늘처럼 기쁘고 중요한 날에 술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앨버튼 공작의 권유에 황제는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앨버튼 공작 또한 샴페인을 마시며 슬쩍 곁눈질로 황태자의 얼굴을 살폈다.

자신의 바로 옆에 앉은 마리안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술만 마시는 황태자의 얼굴은 새로운 인생과 새 신부를 얻게 될 신랑의 얼굴이라기보다 단두대 앞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얼굴에 가까웠다.

그 모습에 앨버튼 공작은 비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며 잔을 더 기울였다.

‘저렇게 죽을상을 한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제 몇 년 안 남았다.’

무사히 결혼식을 치르고, 마리안느가 저 유약하고 어리석은 황태자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넉넉잡아 3년. 딱 그때까지만 저놈과 황제의 요구에 맞춰 살리라. 그리고 그 이후엔 벨리알의 저주를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리라. 그리고 나면 이 제국은 전부 이 앨버튼의 것이 되고 말 테니까.

그를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아내에게 지옥 같은 산고를 버티게 하고, 자신의 피를 이은 아이 하나쯤 죽게 하는 건 그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앨버튼 공작은 몇 시간 뒤 평생 동안 꿈에 그려 왔던 찬란한 미래가 열릴 그 순간을 기대하며 술을 전부 비워 냈다.

* * *

벨리알이 건 마법에 빠져 얼마나 잠이 들었던 걸까. 그레이스는 온몸을 파고드는 지하실의 지독한 한기를 느끼며 지독한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잠에 취해 멍한 눈을 몇 번 깜빡여 시야를 회복한 후, 가장 먼저 구속된 손발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눈을 돌려 이 지하실 안에 지금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레이스는 어렵게 상체를 일으키고는 고개를 쑥 빼고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묶은 밧줄을 풀 만한 도구를 찾아 헤맸다. 자신을 이곳에 두고 사라진 앨버튼 공작과 그 가족들이 황궁을 방문한 황족들과 귀족들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어떻게든 탈출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힘겹게 무릎으로 돌바닥을 기고 있던 그때, 허공에서 온몸을 로브로 가린 벨리알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바닥을 기고 있던 그녀를 향해 비웃듯 말했다.

“이런, 슬슬 마법 효과가 떨어질 때가 됐다 싶어서 보러 왔더니만. 뭐 하는 거지?”

“……아무것도.”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는 게 좋아. 어차피 넌 곧 죽게 될 거니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벨리알을 본 그레이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움직임을 멈추며 시치미를 떼자, 그는 이미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이죽거렸다.

그레이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무릎을 꿇어앉은 후, 편하게 침대 기둥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유령처럼 허공에 둥둥 뜬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벨리알에게 물었다.

“대체 넌 누구지? 그리고, 왜 앨버튼 공작에게 협력하는 거야.”

“그게 왜 궁금한데? 설마, 내게서 네 몸에 걸린 내 저주를 풀 수 있는 실마리라도 찾으려는 거라면 관둬. 네 몸에 걸린 저주를 해제하는 건 내 ‘본체’를 소멸시키기 전엔 불가능하니까.”

벨리알은 빙글거리며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흰 올빼미가 나타나더니 그의 손가락 위에 올라탔다.

그레이스는 크고 샛노란 눈알을 굴리며 목을 움직이는 흰 올빼미를 무심코 바라보다, 깃털이 듬성듬성 뽑힌 오른쪽 날개를 발견했다. 아마도 펠릭스 성을 감시하다 들켰을 때 아서가 날린 화살에 맞아서 생긴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듯했다.

그레이스가 그곳을 유심히 살피자,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벨리알이 손가락으로 흰 올빼미의 오른쪽 날개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어. 너에게 갚지 못한 빚이 있었지.”

“……빚?”

“그래. 감히 내 날개에 화살을 쏘게 한 빚 말이야. 불쌍한 그레고리. 네 빌어먹을 괴물 남편의 화살에 맞아서 며칠 동안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감히 우리 성에 침입해서 기밀을 훔치려고 했던 올빼미의 고통에 왜 내가 공감해 줘야 하지?”

그레이스가 날카롭게 맞받아치자 벨리알이 낮게 킬킬거리며 대꾸했다.

“킥킥, 맞아. 네가 공감해 줄 필요는 없지. 넌 이 고통에 대해 모르니까.”

“…….”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화가 나네. 그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게 해 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뭐?”

“음……. 맞아. 생각해 보니 ‘그 정도’ 고통쯤이야 저주에 별 지장은 없겠어. 왜냐하면, 아주 잠깐 내 기억을 옮겨 주는 것뿐이니까.”

킬킬거리며 웃던 벨리알은 불현듯 정색하더니 그레이스를 음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어 그레이스의 오른쪽 어깨 위로 어느새 날카롭게 손톱이 솟아난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는 위협하듯 싸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자, 그럼 겪어 봐. 그리고, 공감해 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레이스의 오른쪽 어깨로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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