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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21화 (12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21화

“……각하.”

“내 동생과 시종, 시녀들을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아서는 곧장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곧장 수도를 향해 뻗어 있는 숲길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러자 토어 경 휘하에 있는 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기사가 일제히 아서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토어 경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레온을 고쳐 안으며 남은 기사들과 샐리를 비롯한 시종, 시녀들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자, 각하의 명령도 떨어졌으니 우린 이만 펠릭스 성으로의 귀환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지.”

“공작님께서 무사히 마님을 구해 오시겠죠?”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어린 시녀 중 한 명이 토어 경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그 어린 시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가볍게 웃고는 대답했다.

“물론, 그러실거다.”

“……네.”

“그러니 우리는 무사히 펠릭스 성으로 돌아가야 해. 그래야 그 두 분께서 돌아오셨을 때, 반갑게 맞이해 드릴 수 있을 테니까.”

토어 경은 자신의 대답에 그제야 살며시 웃음 짓는 어린 시녀에게서 고개를 돌린 후, 곧장 말에 올라탔다.

그는 자신의 망토로 제 몸과 쓰러진 레온의 몸을 떨어지지 않게 칭칭 감았다. 마치, 레온의 안전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고 다짐하듯이. 그리고 그는 부서진 레온의 마차와 비어 버린 그레이스의 마차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펠릭스 공작과 그의 기사단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승리뿐이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아내를 구해 펠릭스 성에 돌아오실 터였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세상 또한 열리리라.

토어 경은 그렇게 굳게 믿으며 펠릭스 성을 향해 말을 몰았다.

* * *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산산이 흩어졌던 몸이 다시 짜 맞춰지고 있었다. 악마 같은 괴물에게 안긴 채 납치된 그레이스가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지하였다.

품에 안고 있던 그레이스를 놓은 괴물은 허공에 손가락을 휘둘러 그물을 소환하더니 그것으로 그레이스의 손목을 결박했다.

“읏―.”

그레이스는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죄는 강한 힘에 신음하며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가늠할 만한 단서가 그녀에게는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층으로 통하는 계단과 문을 비추는 횃불, 그리고 몇 발짝 앞에 있는 검은 돌문 외에는 모두 어둠에 묻혀 있어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사소한 것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레이스가 주변을 살피고 있던 그때, 괴물이 닫혀 있던 돌문을 열어젖히고는 손발이 묶인 그녀를 안으로 잡아끌며 말했다.

“자, 이제 들어가자고. 제물.”

“윽!”

밧줄에 단단히 묶인 손목이 시큰거릴 만큼 거칠게 잡아끄는 괴물의 힘에 그녀는 석실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레이스는 네 면이 두꺼운 돌로 이루어진 벽과 일정한 간격을 투고 촘촘히 붙어 있는 횃불, 그리고 중앙의 작은 침대와 긴 검이 놓여 있는 테이블이 있는 그 지하실에서 어떤 기시감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틀림없어. 이곳은 그때 내 환상 속에서 보았던 그 장소야.’

그레이스는 자신을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리는 괴물의 강한 힘에 신음하며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어떤 것이든 좋으니 이 장소에 대한 단서, 혹은 탈출할 수 있는 출구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괴물은 그런 그레이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낄낄 웃으며 비웃듯 말했다.

“그리 쥐새끼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살펴봐야 소용없어.”

그 말에 그레이스는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앞에 선 괴물을 노려보았다. 괴물은 또다시 낄낄거리며 웃더니 갑자기 한 팔을 접어 위로 치켜들었다.

푸드덕―.

그러자 석실 구석에서 한 마리의 흰 올빼미가 날아오더니 괴물의 팔 위로 안착했다. 그레이스는 단숨에 그 흰 올빼미가 얼마 전 펠릭스 저택에 숨어들었던 그 올빼미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탈출한 거지? 설마, 펠릭스 저택 내에 숨어 있던 첩자가 지하 감옥에 있던 저 올빼미를 놓아준 건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아서와 자신의 계획이 그들에게 새어 나갔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생각에 그레이스가 불안해하며 괴물의 팔에 앉은 올빼미를 노려보고 있자, 괴물이 흰 올빼미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감사 인사를 잊었군. 여기 내 분신, 그레고리가 펠릭스 성에서 신세를 졌다지?”

“……그래. 감히 남의 성에 날아와서 정보를 엿듣는 새의 날개를 화살로 꿰뚫어 주긴 했지. 이렇게 탈출할 줄 알았다면, 아서에게 심장을 쏘아 맞히라고 할걸 그랬어.”

“이 망할 인간 계집이!”

그레이스가 조소하며 빈정대자, 괴물이 위협적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해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제물로 쓸 자신에게 흠집을 내진 못할 테니 말이었다. 과연, 그 예상대로 괴물은 손을 치켜들기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진 못했다.

그 모습을 그레이스가 싸늘하게 비웃던 그때였다.

“쯧쯧. 잡혀 와서도 그리 건방을 떨 수 있다니. 간이 큰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구나, 그레이스.”

석실 문이 열리고 예복을 차려입은 앨버튼 공작과 앨버튼 공작 부인, 그리고 화려한 연보랏빛 드레스와 연분홍색 스피넬로 온몸을 화려하게 꾸민 마리안느가 들어섰다.

그레이스는 괴물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자신을 비웃듯 내려다보는 그들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이 보란 듯 코웃음을 치며 괴물을 향해 말했다.

“저 새파랗게 독이 오른 얼굴을 보아하니, 언제든 의식을 치러도 무방해 보이는군. 안 그런가, 벨리알?”

“아아, 물론이지. 그런데, 의식의 주인공인 황태자는 어디 두고 너희들만 내려왔지?”

“전하께서는 폐하, 황후님과 함께 손님 접대에 여념이 없으셔서 말이야.

“그렇다면 의식은 그 빌어먹을 접대라는 걸 끝낸 후겠군?”

“그렇지.”

“낄낄!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벨리알과 앨버튼 공작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인 그레이스를 내려다보며 앞으로 벌어질 끔찍한 일들에 대해 떠들어 댔다.

그레이스는 그런 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앨버튼 공작님?”

이미 그들이 꾸민 일들과 앞으로 벌일 일들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레이스는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이 짧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글쎄, 앞으로 네가 어떻게 될지 대충 감이 오지 않느냐?”

“아뇨. 전 아무것도 모르겠는데요.”

넌지시 떠보는 듯한 앨버튼 공작의 말에 그레이스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앨버튼 공작은 짧게 신음하며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더니 음흉한 표정을 짓곤 말했다.

“그래. 그렇게 알고 싶다면, 앞으로 펼쳐질 네 미래에 대해 말해 주마.”

“……제 미래라, 그게 뭔데요?”

“너는 앞으로 몇 시간 뒤, 이 제국의 후계자이신 황태자 전하를 위해 네 목숨을 바치게 될 거다.”

“……뭐라고요?”

“지금껏 하등 쓸모없던 네 목숨이 이 제국의 황실과 앨버튼 공작 가문의 번영에 기여하게 된다니, 이것만큼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 자랑스러운 일이요?”

그레이스는 이어지는 앨버튼 공작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지금껏 앨버튼 공작이 자신을 가족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쯤으로 취급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리 직접 확인 사살을 당하니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연민마저 모조리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레이스가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황실과 앨버튼 공작 가문의 번영 따위를 위해 어째서 제 목숨을 바쳐야 하죠?”

“네 의사와는 관계없다. 이미 그리 결정되었으니까.”

“누구 마음대로요?”

“그야, 나와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뜻대로이지.”

“내 목숨을 희생시켜 가며 뭘 얻고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거예요. 제가 그렇게 쉽게 죽어 줄 것 같아요?”

“……정말이지 용기가 가상하구나, 그레이스. 이 상황에서도 그따위 말대꾸를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너무도 태연히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 하는 앨버튼 공작의 말에 그레이스는 끝까지 뒷사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대답을 했다.

아서의 반역이 무사히 성공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선 끝까지 황실과 앨버튼 공작이 가진 비밀에 대해 모른 척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앨버튼 공작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레이스를 비웃으며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며 위협하듯 말했다.

“아무런 마법 능력도 없는 네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그리 시건방을 떠는 것이냐, 응? 설마, 네 쓸모없는 남편 놈이 널 구하러 오리라고 믿고 이러는 것이냐? 그렇다면, 그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게다. 그놈이 아무리 강한 기사라 해도, 무력은 마법 앞에서 아무 소용 없으니 말이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리는 앨버튼 공작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글쎄요. 요즘 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보니, 그 대단하신 마법도 별것 아닌 모양이던데요?”

“……뭐라?”

“하긴, 수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도 하나 못 잡은 실력이니 날 납치할 때도 비겁하게 어린 레온을 볼모로 붙잡았던 거겠죠. ……우습네요. 예전엔 강한 마법으로 최종 방어선이라 불리던 앨버튼 가문도 이제 옛말인가 봐요. 선대 앨버튼 공작 각하들께서 지금의 당신을 보면 아주 땅을 치고 통곡하시겠어요.”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 대!”

“전 진심으로 수도와 앨버튼 공작가가 걱정되어 드린 말씀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설마, 정말로 그 일이 황태자 전하의 저주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던가요? ……아, 혹시 제 목숨이 필요한 이유도 그 이유 때문인가요? 당신의 미천한 마력으로는 어떻게 안 되니까 제 목숨으로 그 일을 수습해 보시려고요?”

그레이스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마치 지금 알아챈 것처럼 가장해 도발하자 앨버튼 공작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핏줄이 도드라진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을 보며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말에 정곡이 찔려서 화가 나 미칠 지경일 텐데, 제물이라서 손을 대지 못하고 화만 삭이는 그 꼴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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