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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19화 (11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19화

“레온!”

그레이스는 얼른 몸을 틀어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향해 몸을 굽혔고, 레온은 짧은 팔을 벌려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레이스는 늘 쓰고 있던 검은 가면 없이 말갛게 드러난 레온의 살짝 상기된 뺨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늘 쓰던 가면이 없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엄청 잘생겨 보이네?”

“헤헤, 형님께서 이제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 주셔서 벗었어요!”

“잘했어. 확실히 이 귀엽고 잘생긴 얼굴을 가리는 건 아까운 일이지.”

그레이스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드러난 레온의 뺨에 입맞춤했다. 그러자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아서가 동쪽 탑에서 그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레이스는 곁에 서 있던 샐리가 정중히 허리를 굽히는 모습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아서를 발견하고는 몸을 일으켜 그를 맞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서.”

“좋은 아침입니다. 레온도 잘 잤니?”

“네! 형님께서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편히 푹 잤단다.”

아서는 먼저 그레이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두 팔을 뻗어 번쩍 레온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팔을 자신의 목에 감는 레온의 등을 토닥이며 아서는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사이가 좋은 둘의 모습을 다정히 바라보다가 아서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잘 잔 것 맞아요? 어젯밤에 나, 엄청 뒤척였잖아요.”

“그러셨습니까? 전 별로 못 느꼈는데요.”

“……거짓말. 피곤하죠?”

“하나도 안 피곤합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괜찮아요.”

연신 서로를 걱정하며 묻던 아서와 그레이스는 마치 짠 듯이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 모두 반역과 혈족을 향한 복수라는, 일생일대의 큰일을 눈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라기엔 너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낮게 웃는 그레이스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다정하고도 낯간지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조금 전까지 시종들을 감독하고 있던 펠릭스 저택의 집사장 로버츠가 그들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공작 각하, 부인. 그리고 레온 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네, 로버츠. 곧 가지.”

아서의 대답에 집사장은 깊게 허리를 숙인 후, 그들에게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러자 아서가 그레이스와 그녀의 뒤에 선 샐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준비된 마차에 오르시죠. 제가 에스코트해 드리겠습니다.”

“네. 좋아요.”

“레온, 너도 오늘은 내가 마차까지 데려다주마.”

아서는 한 팔로는 레온을 단단히 고쳐 안고 다른 한 팔은 그레이스를 향해 내밀며 마차를 향해 눈짓했다. 그레이스는 기꺼이 그의 팔 위로 실크 장갑을 낀 손을 올리고는 나란히 마차까지 걸어갔다.

마차 앞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그 앞에 서 있던 마부가 문을 열어 주자 아서의 손을 잡고 마차로 올랐고, 뒤따라 샐리 또한 올라탔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온이 울상을 지으며 아서에게 슬쩍 떼를 쓰기 시작했다.

“……히잉. 저도 같은 마차에 타면 안 돼요, 형님?”

“아쉽겠지만, 오늘은 안 된단다. 너와 부인을 경호하는 일로 기사들과 의논한 결과, 각자 다른 마차에 타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거든.”

“그래, 레온. 이번에는 다른 마차에 타고, 다음번부터는 꼭 같은 마차에 타자.”

아서는 아랫입술을 툭 내민 레온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그리고 마차에 탄 그레이스 또한 다정하게 설득하자, 레온은 여전히 마땅찮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이해해 줘서 고맙다, 레온.”

그 대답에 아서는 레온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 넘기며 그레이스가 탄 마차 앞에 서 있는 마부에게 말했다.

“이제 마차 문을 닫고,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네, 공작님.”

“그리고 부인께서는 전날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해 피곤하신 상태이니, 되도록 마차를 천천히 몰도록 하고. ……그럼, 몇 시간 후에 뵙겠습니다.”

“네. 조금 있다 봐요, 아서.”

마부에게 당부를 마친 아서는 마차에 탄 그레이스에게 인사를 건넨 후, 레온의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레이스는 멀어지는 아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마부가 문을 닫자, 푹신한 등받이에 편안한 자세로 몸을 기댔다. 그때 곁에 앉아 있던 샐리가 맞은편에 놓인 푹신한 쿠션을 집어 그레이스의 무릎 위로 올려 주며 말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수도까지는 족히 반나절은 걸릴 테니, 그동안 좀 주무셔요.”

“그럼 샐리가 심심하지 않겠어?”

“제 걱정은 마세요. 오늘을 위해 자수를 놓을 천과 실을 잔뜩 준비했답니다.”

그레이스는 작은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너스레를 떠는 샐리의 모습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조금 있다가 졸리면 잠깐 눈을 붙일게.”

“네, 그러셔요.”

그레이스는 조금 전 샐리가 무릎 위에 올려 준 쿠션을 끌어안고 더욱 편한 자세를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부가 말에게 채찍질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레이스는 살짝 창문을 열고 펠릭스 저택과 자신들을 배웅하는 저택 내 사용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풍경은 빠르게 멀어졌고, 그레이스는 곧 이어지는 펠릭스 성의 시가지를 응시하다가 이내 창문을 닫았다.

* * *

펠릭스 공작 부부와 레온 공자를 비롯해 그들을 보좌하는 수행원들이 펠릭스 성을 출발해 수도로 향했다.

황태자의 국혼에 참석하는 것이니만큼 많은 축하 선물을 실은 마차가 그들의 뒤를 따랐고, 그 주변에는 펠릭스 기사단의 기사들이 주변을 호위했다.

그 일행의 가장 선두에 선 아서 펠릭스 공작은 이따금 기사들과 길을 확인하며 자신들이 무사히 수도로 향하고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종종 자신에게 날아온 매의 발목에 달린 서신을 확인하며 현재 키프란 산맥에서 매복 중인 기사들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펠릭스 공작령을 떠나 중간 지대인 황무지를 거쳐 수도로 이어지는 관문, 리포라 숲에 도달했다.

아서는 숲의 입구에 잠시 멈춰 선 후, 기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숲만 빠져나가면 제국의 심장인 수도에 도착한다. 모두 지금부터 행동에 각별히 주의하도록 해. 황제는 교활한 자이고 그의 근위군은 수도 곳곳에 흩어져 있으니, 키프란 산맥에 있는 우리 기사단과 합류하기 전엔 절대로 ‘목적’을 들켜서는 안 된다.”

“예, 각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숲으로 들어간다. 나와 토어 경, 그리고 토어 경 휘하의 기사들은 마차를 호위하고 나머지는 마차와 수행원들을 호위하도록.”

지시를 마친 아서는 멈춰 있던 말에 다시 채찍질을 가하며 수도를 향해 길게 뻗은 숲길을 달려 나갔고, 그 뒤를 그레이스와 레온을 태운 마차가 따랐다.

그렇게 어두운 숲길을 30분쯤 달렸을 때, 아서는 선두를 토어 경에게 넘겨준 후 말을 돌려 그레이스의 마차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닫힌 마차의 창문을 손가락을 굽혀 두드렸다.

똑똑―.

그러자 곧장 마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 그레이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서는 자신을 보자마자 방긋 미소 짓는 그녀에게 마주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멀미는 나지 않고요?”

“네. 저는 괜찮아요. 당신이야말로 고단한 건 아니고요?”

“수많은 전쟁터를 돌며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전혀 고단하지 않습니다. 부인이야말로 언제든 멀미가 나거나 몸이 힘들면 말씀해 주세요. 당장 마차를 세우라고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아서.”

그레이스는 연신 자신의 걱정뿐인 아서를 안심시키듯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아서가 조금 더 마차와 가까이 말을 붙이려던 그때였다.

“꺄아아악――! 저, 저게 뭐야!?”

갑자기 뒤에서 시녀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서와 그레이스는 황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레이스의 마차,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레온의 마차의 지붕에 온몸을 가리는 긴 로브를 입은 수상한 물체가 매달려 있었다.

사람 같기도 했고, 사람을 닮은 마물 같기도 한 그 생물은 칼날처럼 긴 손톱 달린 깡마른 손으로 달리는 마차의 지붕을 뜯어낼 듯 꽉 움켜쥔 상태였다.

아서는 재빨리 말을 돌리며 마차 앞에서 달리고 있던 펠릭스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말과 마차를 멈춰라! 누군가 레온의 마차를 습격했다! 시종들과 시녀들은 숲속에 숨고, 기사들은 지금 당장 저 흉측한 침입자를 처치한다!”

“예! 각하!”

아서의 다급한 지시에 기사들은 곧장 말을 돌려 레온의 마차를 에워쌌다.

아서는 검을 뽑은 기사들이 레온의 마차로 조금씩 다가가며 포위하는 것을 살핀 후, 마차에서 고개만 내민 채 두려움에 가득 차 떨리는 눈으로 레온의 마차 위를 바라보는 그레이스를 향해 말했다.

“부인, 당장 마차의 창문을 닫고 의자 아래로 숨으세요!”

“……하, 하지만, 아서! 레온이!”

“레온은 내가 반드시 구할 테니까, 어서요!”

“아, 알겠어요.”

그의 채근에 그레이스는 얼른 마차의 창문을 닫고 샐리와 함께 마차 아래로 주저앉았다.

아서는 그 모습을 확인한 후, 자신이 탄 말에 매달려 있던 석궁을 뽑아 곧장 레온의 마차 지붕 위에 붙어 있는 괴생물체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이런!”

그러나 괴생물체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던 석궁은 마치 허공을 통과하듯 그것의 몸을 통과해 그 뒤에 있는 나무줄기에 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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