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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18화 (118/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18화

“……뭐라!?”

그 말에 황제의 왼편에 서 있던 앨버튼 공작이 표정을 굳혔고, 황제 또한 험악한 얼굴로 스펜드라 후작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스펜드라 후작은 꼿꼿한 태도로 자신의 주장을 설파했다.

“그 괴물 공작, 아니, 저주받은 아서 펠릭스 공작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가 선대 펠릭스 공작과 에일린 황녀님께서 불행한 죽음을 맞았을 때 곧장 교황청의 검증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경원시하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잇따른 불행이 깃든 그의 인생을 불쌍히 여겼을 테죠. ……제 딸, 비앙카 또한 저주를 받았다며 가족들과 떨어져 수도원에서 죽음을 맞는 일도 없었을 테고요.”

덤덤하게 말을 잇는 스펜드라 후작의 무심한 눈이 딸을 언급하는 순간 차갑게 번뜩였지만, 그것을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제는 스펜드라 후작의 말이 영 마땅찮은 듯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스펜드라 후작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다. 하지만, 그것은 황태자가 정말로 ‘저주가 걸리지 않은’ 몸임을 전제할 때의 말이었다.

그가 또다시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스펜드라 후작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자네의 고견, 짐이 마음속 깊이 새기도록 할 테니 이만 물러나게. 자네들을 보고 있자니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해서 앨버튼 공작과 차라도 한잔하며 기분을 풀어야겠으니.”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트리스탄 경 또한 이만 가 보게.”

“예, 폐하.”

이후 스펜드라 후작과 트리스탄 경은 정중히 예를 표하고는 몸을 돌려 태양의 방을 나갔다.

곧 문이 닫히고, 넓은 태양의 방에 앨버튼 공작과 단둘이 남게 된 황제가 앨버튼 공작을 돌아보며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어떡하면 좋나, 앨버튼 공작.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황태자를 교황의 앞에 세워야 할지도 모르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제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을 테니까요.”

“어떻게 할 건가? 뭐 좋은 수라도 있나?”

황제의 물음에 앨버튼 공작은 독사 같은 눈을 번들거리며 대답했다.

“……일단 교황청에는 그 ‘신의 검증’을 받겠다고 답신을 보내십시오, 폐하.”

“뭐!? 자네, 정신이 나갔나? 그랬다간 황태자의 비밀이 전부 새어 나갈 텐데……!”

“대신, 그 ‘검증’은 결혼식 뒤에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다십시오.”

“……그 말인즉…….”

“예. 무사히 제물을 죽여 황태자 전하의 피에 흐르는 초대 신의 저주를 벗긴 후에 검증을 받도록 하자는 뜻입니다.”

“오오! 그래, 그러면 되겠군!”

이어진 앨버튼 공작의 말을 들은 황제는 화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가 또다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앨버튼 공작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정말 펠릭스 공작 부인을 무사히 납치해 황태자 궁의 지하실로 데려갈 수 있겠나? 분명 아서, 그놈이 눈에 불을 켜고 제 아내의 곁을 지킬 텐데 말이야.”

“걱정 마십시오, 폐하.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자네만 믿고 있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앨버튼 공작은 초조해하는 황제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조금 기분이 나아진 듯 얼굴 근육을 느슨하게 푸는 황제와 눈을 맞추며 앨버튼 공작은 머릿속으로 냉혹한 계획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 계획이 모두 성공한 이후 맞이하게 될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며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 * *

황태자가 펠릭스 저택을 급습하듯 방문한 이후, 아서와 그레이스는 각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서는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에 자신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보내 언제든 수도로 진격해 그곳을 포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또한, 황실에 반감을 지닌 지방 귀족들과 이웃의 강소국들을 설득해 자신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현재 수도 방위군의 수장인 스펜드라 후작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현 수도의 상황과 수도를 지키는 방위군의 규모에 대한 정보를 얻어 냈다.

그러는 사이, 그레이스는 위그 백작 부인과 함께 앨버튼 공작의 또 다른 비밀 기지와 같은 애플튼 수도원을 압박해 그곳에서 레이나 영애가 사라진 사실이 앨버튼 공작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또한, 아서가 돌보지 못하는 펠릭스 저택 내의 일들을 살피며 아직 아서에 대한 반감으로 자신들을 돕는 결정을 유보한 로이엔느 대공에게 서신을 보내 끊임없이 설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분주하게 움직이며 차근차근 황실과 앨버튼 공작가를 향한 복수와 반역을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시간은 잘만 흘러, 황태자의 국혼을 이틀 앞둔 그 날, 아서는 늦은 밤 별채에 들러 그레이스를 향해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습니다. 이제 내가 지시를 내리면, 수도의 키프란 산맥에 있는 펠릭스 기사단이 수도를 침공하게 될 겁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레이스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아서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안색이 영 좋지 않으십니다. ……혹시, 앨버튼 공작을 치는 것이 어딘가 마음에 걸려서 그러신 겁니까?”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럼 왜 그러십니까?”

아서의 거듭된 물음에 그레이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로이엔느 대공님 때문에요. 대공께서 마음을 돌려 주시면 우리 일도 한층 더 수월해질 텐데, 그분께서는 끝내 긍정적인 답신을 주지 않으셨잖아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여전히 당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큰가 봐요.”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낮에 로이엔느 대공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거든요.”

“정말요? 뭐라고 하셨어요?”

그레이스가 묻자, 아서는 한 가닥 흘러 내려온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말했다.

“우리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정말요?”

“추신에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과 똑같은 일을 겪을 뻔한 이들과 현 펠릭스 공작 부인을 위한 것이니 착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반역이 성공할 경우, 공국이 아닌 왕국으로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히 엘렉트라 공녀의 복수뿐만이 아니라, 이 기회를 발판으로 로이엔느 공국의 세력을 대륙에 과시하기 위해 우릴 돕겠다는 거로군요.”

“뭐, 그 정도의 명분이 없다면 불과 얼마 전 플라이엔 성의 침공에 이어 또다시 군사를 일으키자고 공국 내부의 귀족들을 설득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저 또한 도움을 준 대가로 그 정도는 요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랬군요. 어찌 됐든 다행이에요. 만약 로이엔느 대공이 우리 손을 잡는 게 아니라 황실과 앨버튼 공작의 편에 섰다면, 일이 복잡해질 뻔했는데 말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그레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서에게 웃어 보였다. 그 후, 그녀는 두 팔을 벌려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다 마쳤네요. 벌써 긴장감으로 손이 떨리는 기분이에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일은 다 부인께서 바라는 대로 될 테니까요. 내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서. 하지만, 틀렸어요.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될 거라고 해야죠.”

그레이스는 자신을 단단한 두 팔로 마주 안아 주는 아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배시시 웃으며 대꾸했다.

아서는 얼굴을 살짝 틀어 드러난 그녀의 볼 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 간지러운 애정 표현에 그레이스는 살며시 볼을 붉히며 아서의 몸을 살짝 밀어냈다. 그 후, 순순히 밀려나는 그와 시선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별채에서 자고 가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 말에 아서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다정히 웃으며 대답했다.

“안 될 리 있겠습니까.”

그레이스는 그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아서를 안은 채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아서는 그런 그녀를 다정히 안아 받치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 뒤로 자신의 팔을 괴어 베게 했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아서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꼭 눈을 감았다.

* * *

드디어 황태자, 에우제니우스 클라이브와 앨버튼 공작 영애 마리안느 앨버튼의 결혼식 전날의 아침이 밝았다.

펠릭스 성은 이른 새벽부터 국혼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로 향하는 성주인 펠릭스 공작 부부와 그들의 동생인 레온 공자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시종들은 펠릭스 부인과 레온 공자를 위해 준비된 두 대의 마차에 각각의 짐과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인 황태자 부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실었고, 이번에 동행하는 시녀들은 단정한 드레스로 갈아입고 여정 내내 모시게 될 주인의 마차에 올라탔다.

그 분주한 사람들 속, 장밋빛 리본으로 장식된 진녹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에메랄드 장식으로 긴 은발을 높게 틀어 올린 그레이스가 살짝 불편한 얼굴로 옆에 서 있는 샐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 샐리.”

“네, 말씀하세요.”

“……드레스가 너무 화려한 것 같아. 좀 더 수수한 걸 입혀 줄 순 없었어?”

그레이스가 화려한 장밋빛 리본 장식과 드레스 자락에 잔뜩 박힌 크리스털 자수를 가리키며 작게 투덜거리자, 샐리가 그게 무슨 안 될 소리냐는 듯 슬쩍 미간을 좁히며 대꾸했다.

“펠릭스 공작 부인이시자 이번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의 동생분이신데 이것보다 더 수수한 걸 입으시겠다뇨? 그건 안 될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부담스러워.”

“그리고, 이렇게 입고 계셔야 혹시나 마님께서 파티장에서 사라지셨을 때 곧바로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 것 아니겠습니까?”

“……샐리.”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덧붙이는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자 샐리가 씩 웃으며 통통한 손으로 그레이스의 손을 잡아 토닥이며 말했다.

“저희 시종들은 물론이고 공작님과 기사들까지 전부 마님을 지키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놓으셔요. 어젯밤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두 시간 전쯤에 마님을 깨우러 갔었는데, 그때 공작님께서 대신 침실에서 나오시며 말씀해 주셨답니다. 마님께서 이제 겨우 잠드셨으니, 조금 더 주무시게 두라고요. 출발이 조금 늦어져도 상관없다고 하셨죠.”

“……그랬구나.”

샐리의 말에 그레이스는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샐리 또한 자연스레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서쪽 별채 쪽에서 화려한 예복을 입고 머리를 넘긴 맨얼굴의 레온이 그레이스를 부르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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