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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13화 (113/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13화

앨버튼 공작은 조금 전까지 벨리알이 있었던 자리를 흘긋 곁눈질하며 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앨버튼 공작 부인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 가문 측의 결혼 준비 상황은 어떻지, 레지나?”

“우리야 뭐, 당장 내일 결혼식을 치러도 문제없죠, 여보. 황실이 문제죠.”

“그렇다면 당장 결혼을 좀 더 앞당기자고 해야겠군.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그레이스 그것의 목숨으로 황태자의 저주를 벗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교황청 놈들의 검증도 통과할 수 있고, 그 후엔 곧 소문도 잠잠해질 테니까 말이야. 어쩌면 그 과정에서 이따위 일을 벌여 수도를 혼란스럽게 한 그 살인자 놈의 정체와 배후도 밝혀질 수도 있고.”

“……황태자가 순순히 그러겠다고 할까요? 또 있는 대로 언성을 높이며 거부할 텐데.”

“제까짓 게 별수 있겠어? 우린 황제만 잘 설득하면 돼. 그리고, 그놈도 막상 제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레이스를 향한 마음보다 제 목숨을 선택할 것이 분명해!”

앨버튼 공작은 앨버튼 공작 부인의 조심스러운 반론을 단칼에 쳐 내며 대답했다.

그래. 황태자 그놈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봐야 별수 없을 터였다. 그놈의 알량한 사랑으론 지금까지 자신과 황제가 진행해 온 일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그럴 의지도 없을 것이 뻔했다.

‘황태자는 그 괴물 공작 놈과 달라. 그 비겁한 놈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해서라도 그레이스를 살리고 싶을 만큼 그것을 사랑하지 않아.’

무엇보다 그깟 이기적인 사랑으로는 그레이스의 목숨을 지킬 수도 없다. 앨버튼 공작은 황태자를 잔인하게 비웃으며 앨버튼 공작 부인과 마리안느를 향해 말했다.

“당장 결혼식을 이번 달 말 내로 당기자고 황제폐하께 서신을 보낼 거야. 그러니 레지나 당신과 마리안느 너는 내일이라도 결혼식을 치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해 두도록 해.”

“걱정 마세요, 여보.”

“알겠어요, 아버지.”

앨버튼 공작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후, 오른손을 들어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양피지와 깃펜이 생겨나더니, 깃펜이 춤추듯 움직이며 빈 양피지 위로 서신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앨버튼 공작은 채워지는 서신과 소파에서 일어나 응접실 밖으로 걸어가는 아내와 딸을 보며 서늘하게 미소 지었다.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고 말 터였다. 만약 어떤 놈들이 방해해도 상관없었다. 그것들을 전부 죽여 없애 버리면 그만이었기에.

* * *

앨버튼 공작가에서 보낸 서신은 곧장 그날 밤, 황궁으로 전달되었다. 서신을 받아 든 황제와 황후는 곧장 앨버튼 공작이 제안한 대로 결혼을 앞당기라 명령했고, 그 명령은 시종장 로쉬 백작을 거쳐 황태자 궁으로 전해졌다.

마리안느와의 결혼이 결정된 이후, 어떤 일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으며 궁에 칩거하고 있던 황태자 오웬은 결혼을 앞당기고자 결정했다는 소식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고성을 질렀다.

“……앨버튼 공작이 결혼을 앞당기자 주장했다고? 게다가, 부황께서는 그걸 승인하셨다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전하.”

“젠장할! 부황께서 그리 결정하신 건, 지금 돌고 있는 소문 때문인가?”

“맞습니다.”

“그럼, 빨리 그 범인을 잡을 생각을 해야지!”

“……전하의 말씀대로 그 방법이 가장 최선입니다만, 폐하께서 아직 실마리도 잡지 못한 범인을 잡고자 힘을 쓰는 사이 소문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습니다.

또한, 여론을 등에 업은 교황청이 전하를 검증하고자 나설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최악의 경우 전하께서 교황청의 검증을 받게 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전하의 피에 흐르는 저주를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으실 테죠.”

“……빌어먹을!”

오웬이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흐트러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부황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자신 또한 현재 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흉측하고 불길한 일들과 그로 인해 퍼지는 소문에 대해 경계하고 있던 참이니까.

이 일을 벌인 놈들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피를 타고 흐르는 초대 신의 저주의 정체와 그 저주를 벗기기 위해 황실과 앨버튼 공작이 어떤 일을 벌여 왔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오웬 또한 비밀리에 사람을 풀어 범인을 색출해 내고자 했지만, 별 수확은 없었다.

오웬은 점점 자신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가는 일들에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내 손으로 그녀의 심장에 칼을 겨누어야 하나?’

괴물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자신의 손으로 거둬야 한다.

오웬은 생각만 해도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에 의해 칼에 찔려 붉은 피를 토하며 스러져 갔던 다른 이들처럼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대로 절명하고 만다면, 자신은 그 순간 저주에서 벗어나 목숨은 건지겠지만 영혼의 잃고 말 것이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오웬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갑작스런 자신의 행동을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로쉬 백작을 향해 말했다.

“로쉬 백작, 당장 말 한 필과 온몸을 가릴 수 있는 로브를 준비해 줘.”

“어디에 가실 예정이십니까?”

“당장 펠릭스 성으로 가야겠어.”

“네? 그곳은 왜……?”

“그녀를 만나서 앨버튼 공작과 부황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도망치라고 할 거야.”

“예!?”

오웬의 말에 로쉬 백작은 당장 밖으로 나가려는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전하!”

“당장 비켜라, 로쉬 백작.”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두고 보라는 건가?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이라고?”

“네! 전하께서는 그러셔야 합니다! 그래야 전하께서 사실 수 있으니까요!”

오웬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로쉬 백작을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는 완고하게 오웬의 앞을 가로막으며 거듭 애원했다.

“전하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살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일이 어찌 쉽겠습니까! 하지만, 전하는 그 어려운 일을 하셔야 합니다! 전하께서는 이 제국의 하나뿐인 황태자이시니까요!”

“……그래서, 황태자로 태어났으니 이 정도 고난은 감당해야 한다?”

“네. 감당하셔야 합니다! 자고로 군주의 목숨은 군주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만일 전하께서 저주로 목숨을 잃게 된다면, 그 이후 벌어질 혼란스러운 상황들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

“제발 한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행동하려 하지 마십시오! 사실상 이번이 전하께서 초대 신의 저주를 벗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런데 고작 현 펠릭스 공작 부인의 목숨 하나 살려 두자고 황제 폐하와 황후님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실 참이십니까?”

“……로쉬 백작.”

“그레이스 펠릭스 공작 부인보다 젊고 아름다운 데다 전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전하의 귀한 목숨을 던질 생각은 마십시오!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것을요!”

로쉬 백작은 무례를 무릅쓰고 오웬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읍소했다. 그러나 오웬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릎 꿇은 그를 밀치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전하! 제발!”

문을 열고 나가려는 오웬에게 로쉬 백작이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오웬은 그 목소리에 느리게 고개를 돌린 후, 눈물로 젖은 그의 얼굴을 싸늘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미안하군. 그대가 아무리 애원해도, 난 가야겠어.”

“전하!”

“내 목숨은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으로 연장하면 돼. 그리고 그사이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야. 앨버튼 공작도 해낸 일을 나라고 못 할까.”

“안 됩니다! 그러다 지난번처럼 앨버튼 공작이 또 훼방을 놓으면 어쩌시려고요! 그는 이미 지난번 전하께서 자신 몰래 마법사들을 수배하고 다닌 일로 적잖이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또 뒷일을 벌이다가 앨버튼 공작이 전하의 생명을 연장하는 마법조차 그만하겠다고 한다면 어쩌시려고요!”

로쉬 백작이 답답해하며 다그치자, 오웬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괜찮아. 그럴 일은 없어.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니까.”

“……네?”

“그놈이 내게 원하는 건 마리안느와 나 사이에 태어난 후계자니까, 그를 위해 그놈은 마리안느가 아이를 가질 때까진 날 살려 두려고 할 거야. 그렇게 적당히 눈치를 보는 척 시간을 끌면서 몰래 일을 진행하면 그만이야.”

“……전하.”

“생각해 보니 그레이스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허울뿐인 결혼, 못할 것도 없겠다 싶어. ……어차피 그녀가 아니면, 상대가 그 누구라도 똑같을 테니 말이야.”

오웬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더 이상 결혼을 진행하는 것은 멈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레이스의 목숨만이라도 지켜야겠다. 남들은 자신의 이런 마음이 지극히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그런 사랑밖에 배우지 못 한 자신에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오웬은 마치 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멍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로쉬 백작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라. 더 이상 날 방해했다간 불경죄로 처벌하겠다.”

“저, 전하! 기, 기다려 주십시오!”

그 후, 오웬은 로쉬 백작을 차갑게 외면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더욱 빨리 걸음을 옮겼다.

당장 황궁 내 마구간으로 가 말을 빌리고, 로브는 적당히 믿을 만한 시종을 시켜 구해 오게 하면 그만이었는데 괜히 로쉬 백작에게 부탁하는 바람에 시간을 낭비했다.

오웬은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그레이스를 만날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피를 타고 흐르는 저주도, 그로 인해 위태로운 목숨도, 황제와 앨버튼도 없었다. 오로지 한시라도 빨리 그레이스를 만나 설득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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