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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09화 (109/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09화

아서는 그런 그레이스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네. 그러니 우린 황실이나 앨버튼 공작이 그 소문을 잠재우느라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나와 이전에 연을 맺었던 가문들에게 그들의 딸들이 그간 어떤 일들을 당해 인생을 망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조력을 구하는 것을 끝마쳐야 합니다.”

“맞아요. 그래야죠.”

“그래서 말입니다만, 지금 레이나 영애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한가요?”

“닥터 하이옌의 말에 따르면 최근엔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약을 마시면 최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심신이 워낙 쇠약한 상태라 언제 갑작스레 잘못될진 알 수 없다고도 했어요.”

그레이스의 말에 아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해야겠군요.”

“위그 백작과 로이엔느 대공을 부를 생각인 거죠?”

“네. 백 마디 말보다 레이나 영애를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요.”

아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레이스는 그의 말과 쓴웃음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저주로 인해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남긴 상흔을 읽어 냈다.

그래서 안쓰러운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겠어요? 그 사람들, 당신을 보자마자 모진 말을 내뱉을 텐데요. 그리고 진실을 알게 돼도 당신에게 순순히 사과를 건네지도 않을 거예요.”

“압니다, 부인.”

“만약 그들을 마주하는 게 힘들다면, 이번 일은 내게 맡겨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기사가 돼서 악담이 겁이 나 부인의 등 뒤에 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아서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모습에 더욱 마음이 쓰인 그레이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쓴웃음이 맺힌 아서의 얼굴에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걷히지 않을 희미한 자책감이 묻어 있었다.

그레이스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잡고 있던 아서의 손에 꾹 힘을 싣곤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같이 가요.”

“……그레이스.”

“사실 이 모든 일은 내 아버지 때문이니, 사과를 해도 내가 하는 게 맞는걸요. 만약 그 사람들이 당신을 원망하더라도 그냥 흘려들어요. 대신 내가 아프게 새겨듣고, 대신 사과할 테니.”

“부인께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피해자이니, 그들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아서. 당신 또한 이 일의 명백한 피해자라고요.”

그레이스가 고집스러운 얼굴로 아서를 바라보며 강조하듯 말했다.

그 모습에 잠시 멍해졌던 아서는 곧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는 얼굴에선 더 이상 조금 전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희미한 자책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아서를 따라 웃으며 깍지 껴 잡은 그의 손을 자신의 무릎 위로 가져오고는 말했다.

“그러니, 자책할 것 없어요.”

“……알겠습니다.”

“이제 당장 그분들에게 답신을 보내요. 지금 레이나 영애의 상태를 볼 때, 최대한 신속히 펠릭스 성으로 오시는 것이 좋겠다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서는 그레이스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후, 곁에 서 있던 올리버 경과 칼딘 경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곧장 양피지와 깃펜, 인장용 도장과 밀랍을 들고 아서의 곁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으며 살짝 거리를 벌렸다.

이후, 빠르게 서신을 작성하는 아서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희미한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떨리는 마음을 다스리려 심호흡했다.

모든 것이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다 잘될 것이라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함박눈이 쏟아지는 어두운 밤. 마차 두 대가 빠르게 펠릭스 공작가의 저택의 후문으로 들어왔다.

한 대는 제국의 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철제 마차였고, 나머지 한 대는 온통 검게 칠해져 있어 척 봐도 두 대의 마차가 다른 곳에서 왔음을 알게 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홀로 후문을 지키고 있던 올리버 경은 두 대의 마차가 멈춰 선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철제 마차 앞에 멈춰 서서 추운 기운에 얼어 버려 잘 열리지 않는 마차의 문을 비틀어 연 후, 그 안에 타고 있던 한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펠릭스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그 백작 부인.”

“그래요.”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털가죽 코트를 걸친 중년의 위그 백작 부인은 베일이 길게 내려진 모자의 챙을 고치며 올리버 경의 인사를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서 내리며 한 손으로 검은색 부채를 말아 쥐었다.

올리버 경은 여전히 내리는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마차에 드리운 차양 아래 선 위그 백작 부인을 향해 말했다.

“실례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위그 백작 부인. 다른 손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 다른 손님이라는 사람, 로이엔느 대공이죠? 남편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예, 맞습니다.”

“그리 오게 기다리게 하진 마요. 난 수도에서만 살아서 펠릭스 성의 추운 날씨에는 면역이 없는 사람이라.”

올리버 경은 위그 백작 부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그녀의 마차 뒤에 서 있는 검은 마차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닫힌 마차의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 추운 날씨에 날 언제까지 바깥에 세워 둘 셈이지? 펠릭스 공작, 그놈은 손님 접대도 예술로 하는구만그래.”

그때, 마부석 쪽에서 빈정거리는 로이엔느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버 경은 얼른 몸을 돌려 마부석 쪽에서 뛰어내리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로이엔느 대공.”

“오랜만이야, 올리버 경. 그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얼굴도 여전하군.”

“대공께서도 날카로운 언행은 여전하시군요.”

“난 사내들에겐 친절하게 굴 필요를 못 느끼거든. 하물며 그자가 불쌍한 내 동생, 엘리의 인생을 망치는데 일조한 자의 기사라면 더더욱.”

연신 차갑게 빈정거리던 로이엔느 대공이 자신의 앞에 선 올리버 경을 한번 노려보았다.

그 후, 로이엔느 대공은 뚜벅뚜벅 눈이 쌓인 길을 지나 마차 차양 아래서 눈을 피하고 있던 위그 백작 부인에게로 걸어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위그 백작 부인.”

“처음 뵙겠어요, 로이엔느 대공 각하.”

위그 백작 부인이 자신의 검은 드레스 끝자락을 살짝 쥐며 그에게 인사했다.

올리버 경은 그들의 수행원들이 하나둘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차양 아래 선 위그 백작 부인과 로이엔느 대공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만 저택으로 들어가시죠. 펠릭스 공작님과 공작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안내해 주세요.”

“그러지.”

올리버 경은 후문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정원을 반 바퀴 돌아, 서쪽에 마련된 오래된 별채 앞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그곳은 다른 펠릭스 저택의 건물들과는 달리, 오래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외벽이 매우 낡고 허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로이엔느 대공이 그 볼품없는 외관을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보며 자신의 앞에 선 올리버 경에게 말했다.

“나와 백작 부인을 이 낡은 곳으로 안내한 저의가 대체 뭐지? 펠릭스 공작은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하나?”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아닙니까, 올리버 경?”

“맞습니다. 백작 부인.”

“칫.”

투덜거리는 로이엔느 대공과는 달리, 위그 백작 부인은 무심한 목소리로 올리버 경의 편을 들듯 말했다.

그 모습에 로이엔느 대공은 짧게 혀를 차며 올리버 경에게 눈짓했다. 빨리 안내나 하라는 뜻이었다. 올리버 경은 재빨리 닫힌 별채의 문을 열고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들어서자마자 현관에 붙은 벽난로에서 피어오른 후끈한 열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위그 백작 부인과 로이엔느 대공은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깔끔하고 안락하게 꾸며진 안쪽 풍경을 눈으로 살피며 올리버 경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그 후, 복도를 지나 오른쪽 모서리를 돌자 큰 문이 나타났다. 올리버 경이 문을 두드리며 인기척을 냈다.

“각하, 공작 부인. 위그 백작 부인과 로이엔느 경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그러자 안에서 펠릭스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버 경은 살짝 몸을 비틀어 자신의 뒤에 선 위그 백작 부인과 로이엔느 대공에게 앞을 터 준 후, 문을 열었다.

로이엔느 대공은 자신의 곁에 선 위그 백작 부인을 에스코트하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락하게 꾸며진 응접실 안에서 자신을 맞는 아서와 그레이스를 불쾌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또 보는군, 펠릭스 공작.”

“…….”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펠릭스 공작 부인.”

“처음 뵙겠어요, 로이엔느 대공. 그리고 위그 백작부인.”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펠릭스 공작님, 그리고 공작 부인.”

그레이스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훑어보는 로이엔느 대공에게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그 후, 곁에 선 위그 백작 부인에게도 인사했다. 그녀의 인사에 위그 백작 부인은 의례적인 미소로 화답했고, 로이엔느 대공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로이엔느 대공의 무례한 행동에 그를 바라보던 아서의 시선이 날카로워지던 그때, 연신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근처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로이엔느 대공이 아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서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눴으니,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지. 펠릭스 공작.”

“꽤 조급한 태도로군. 뭐 바쁜 일이라도 있나?”

“바쁜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네놈과 느긋하게 차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지. 그리고 난 네가 밝혀냈다던 내 불쌍한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에 관해 한시라도 더 빨리 듣고 싶어. 그건 위그 백작 부인도 마찬가지겠지. 내 말이 틀렸습니까, 백작 부인?”

로이엔느 대공의 말에 위그 백작 부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 또한 제 딸 레이나가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모습인지 한시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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